금북정맥 3구간 (유량리 고개에서 216봉 직전까지)
○ 산행날씨 : 맑음, 산행하기 좋은 날씨
○ 참석인원 : 홀로
○ 산행거리 : 도상거리 : 6.7km + (4.5km) 누적거리 : 47.45km
○ 산행코스 : (흑성산 고개-흑성산)-유량리고개-장고개-취암산-21번국도/1번고속도-216봉 직전
○ 소 재 지 : 충북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구간 진행시간
① 접근
07:45~08:05 이동 (허브시티 사우나 ~ 흑성산 고개) / 택시
② 구간별 산행 시간
08:10 흑성산 고개 출발
09:00 흑성산 (517.3m)
09:35 흑성산 고개 회귀
09:55 유량리 고개
10:30 장고개
10:55 배넘이 고개
11:23 취암산 (319.9m)
12:05~25 21번국도 / 1번고속도
12:55~13:30 216봉 직전
③ 복귀
13:50~14:25 이동 (21번국도 ~ 허브시티 사우나) / 시내버스
15:00~17:20 천안박물관 / 조병옥박사 생가 / 김유신유적지
17:30~21:00 이동 (연곡지 ~ 울산) / 승용차
천안 허브시티 사우나에 들리니 밤 10시 반이 넘은 시간이었다.
고속터미널 옆에 있는 허브시티 불가마사우나는 정맥꾼들에게는
꽤나 유명한데 명성 그대로 금요일 밤인데도 제법 사람들이 붐볐다.
정맥바람에 요 근래 사우나를 몇 번 들렸는데 이전의 사우나들보다는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고 특히 밤늦은 시간 pc방을 찾아 전전하지
않아도 되게 컴퓨터가 많이 설치되어 있어 좋았다.
양쪽에서는 기차 불통을 삶아 먹었는지 장단맞춰 합주를 하지만
국립공원 대피소에서 잠 자는 것 보다는 훨씬 편하게 잔 것 같다.
또 하룻길을 가기위해 배낭을 꾸려 나와 아침을 먹으려 주위를 살피니
마침 길 건너편에 문을 연 '금송아지한우촌'이 눈에 띄어 들어가
곰탕을 시켰는데 식당이름에 걸맞게 음식이 깔금하고 맛도 좋았다.
아침까지 든든하게 먹은데다 오늘 길은 그렇게 고도차이도 심하지 않고,
또 어제의 그 고마운 호의까지 되살아나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유량리고개로 가자고 했다.
그런데...
(택시기사에게 유량리 고개로 가자고 했더니..)
택시기사가 유량리 고개가 어디냐고 되묻기에
지도를 보여주었더니 지도는 모르겠다하여,
"유량리에서 목천 넘어가는 고개"라고 했더니
"아 거기"하며 그곳을 잘 아는듯 속력을 내어 달려 왔는데..
대간 초창기 전설같은 이야기로 가끔 대간 들머리를 잘 모르는
버스기사들이 한밤 중에 엉뚱한 곳에 내려주면 그것도 모르는 대간꾼들은
산봉우리까지 쎄빠지게 올랐다가 정상석을 보고야 잘못된줄 알고
다시 돌아내려왔다더니 오늘 내가 꼭 그 꼴이다.
(오늘 벌써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금북길을 지나갔나 싶기도 했지만..)
택시비가 5,600원 나왔지만 거스름돈도 받지않고
감사하다며 인사까지하고 기분좋게 유량리고개(?)에 내렸는데..
(가끔 산새들의 지저귐이 정적을 깨우지만 눈 내린 숲이 고요하다)
이른 아침 눈 쌓인 고요한 숲 길을 걸으니 좋다.
기분이 좋으니 왠 300고지가 이렇게 높냐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게 힘들지 않고 기분좋게 519m의 흑성산을 오른다.
(산 정상은 요새같이.. 어지러운 방송중계탑들..)
(흑성산 정상의 정자, 그 정체는? 성벽같이 높은 담장에 문도 잠겨있고..)
(흑성산 / 519.3m, 그런데 왠 흑성산?)
아직도 상황판단을 못했다.
웬 흑성산? 하면서도 착각을 했다.
오늘 구간중 '취암산'을 지형도에는 '경암산'이라 하기에
흑성산을 '취암산'의 또다른 이름으로 생각했다.
산행기 정리하면서 찾아봤더니
"흑성산은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남화리의 뒷산으로
금북정맥에서 조금 비껴나 있는 구릉성 산이다.
북쪽으로는 태조봉, 남쪽으로 백운산과 취암산 등이 있다.
북쪽은 태조봉에 연속되며 서쪽은 아홉싸리고개, 유랑리고개, 장고개 등이 있다.
이들 고개와 산 서쪽 기슭의 승척골은 매우 아늑하여 전쟁 때에는 피난처가
되었으며 승천사터가 남아 있다.
산의 본래 이름은 '검은성(儉銀城)'이다.
산정에는 둘레 739보(步)인 흑성산성터가 있으며 성 안에는 지지(地址)가 있다.
6.25전쟁 때 6개 면의 주민을 동원하여 목천면 서리에서 산정까지 군용도로를
개설한 이래 산정에는 공군 항로보안단의 지대(地隊)와 미극동공군의 통신대를
비롯한 군사시설과 방송시설, 텔레비전 중계소 등이 들어서 있다.
흑성산성은 천안시 안의 고대산성 중 기록에 남아 있는 유일한 산성으로서
옛 기록에 의하면 이 산성은 목천현의 서쪽 11리, 험하고 가파른 흑성산 위에
있는 석축산성으로 북동쪽으로 산맥이 계속 이어져 성거산성, 의례산성과
이어지고 남쪽으로 남화리토성과 세성산성으로 연계된다.
산성 바로 아래 기슭에는 1983년 8월 15일 독립기념관이 건립되었다.
이곳에 독립기념관이 들어서게 된 것은 동쪽의 병천면에 3.1운동의 한 본거지였던
유관순기념사당이 있어 독립운동과 관계된 곳이라는 것과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지형이 평탄한 넓은 땅이 있다는 입지조건 때문이다. 이 산은 풍수지리상
서울에서 외청룡이 되며 '금계포란형'의 명당 길지로
독립기념관 정면, 겨레의 집 뒤로 보이는 산이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이 광덕산 같아 보이는데..)
(흑성산에서 철사다리를 타고 내려 높다란 담장옆 눈밭을 지나..)
조망이 되는 곳에서 지형을 살펴보니 뭔가 이상하다.
그제서야 지도를 내어 나침반을 놓아보니 남남동을
가르켜야할 자침이 남남서를 가르키는 것 아닌가?
그제서야 흑성산이 취암산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오늘길도 순탄치 않을 것을 예감한다.
(어제 지나온 성거산 국가시설물)
(대간과 정맥길에서 늘 반갑게 맞았던 '대구 산이좋아모임' 시그널들이..)
선답자의 산행기 한번 읽어보지 않고 온데다
택시기사가 내려준 고개를 들머리로 철썩같이 믿었고,
그리고 변명같지만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될 때 만난 '산이좋아모임'
(다시 돌아온 흑성산(?)고개)
유서깊은 흑성산에 올랐다가 1시간 반만에 원점회귀를 했지만
현실은 현실.. 이제 유량리 고개로 가서 금북길에 들어야 하는데..
(유량리 고개를 향하여..)
흑성산 고개에서 유량리 고개까지는 약 1.5km,
거리가 얼마되지 않기도 하지만 아침부터 지나가는 차에 손을 들
용기가 나지않아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힐끔힐끔 쳐다본다.
(유량리 고개, 제대로 찾은 오늘 들머리)
이렇게 특이한 고개를 택시기사가 그냥 지나쳤으니..
도로 위로 동물이동통로를 만들어 놓아 터널같은 유량리 고개.
(철망에는 낯익은 반가운 시그널들이 어디갔다왔냐는듯..)
(아직도 취암산은 아득한데..)
고개라 할 것도 없는 안부 장고개를 지나
야트막한 봉우리를 내려서는데 등로에서 약간 왼쪽으로 비껴난 곳에
벤치에 앉아 조금 쉬었다가 비탈을 내려서니
이전에 배가 넘다들었다는 배넘어고개라는 안부.
취암산을 배넘어산이라고 하는데 이는 주변에 사기파편이
출토되어 고개와 산이름의 유래와 관련있다는데..
(성거산 이후로는 동네 뒷산같은 등로여서 산객들이 제법 다니는 것 같다.)
(천안시 목천읍 시가지 모습, 시가지를 관통하는 21번 새 도로)
(배넘어고개에서 20여분 걸려 오른 돌탑봉)
아래로 새로생긴 21번 국도가 지나간다.
지금은 지선이 된 원래 21번국도는 여기서 2km쯤 떨어진
1번 고속도로와 나란히 응원리를 통과한다.
(95)
(지형도에는 경암산이라고 되어있는 취암산 / 鷲岩山 319.9m △평택464)
금강의 지류인 병천천이 시작되며 곡교천과 분수계를 이룬다.
두 개의 바위봉우리가 마치 수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경암산 또는 취엄산이라고도 하며, 두 봉우리가 이 빠진
것처럼 생겼다 하여 이빠진산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산 이름과 관련된 전설로, 옛날에는 이곳이 바다여서
사기를 가득 실은 배가 넘어가다가 산꼭대기 바위에 부딪쳐
배에 실었던 사기그릇이 깨지는 바람에 지금도 사기조각이
뒹굴고 있다 하여 배너머산이라고도 부른다.
바위 중턱에 용이 승천하였다는 용샘이 있어서 옛날에는
가뭄이 들면 이 샘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며, 산기슭에 있는
천연동굴 용혈 앞에는 조선시대까지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던 제단 터가 남아 있다고 한다.
취암산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빠지는 목천읍의 경계를 타면
납안들고개, 도리티고개로 내려서는데 정맥은 좌측으로 빠지는데
이정표상 '동우아파트' 방향이다. 소나무에 '취암산' 명패가
달려 있고 조금 더 진행하면 삼각점이 나온다.
(군데군데 벤치도 놓여있더니만.. 취암산 정상에는 원색의 플라스틱 의자 2개가..)
(매(鷲)의 머리모습 같은 봉우리)
취암산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하는듯 뾰족게 솟은 암봉은
영락없이 매의 머리같고, 매가 목천읍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
눈 덮인 암봉을 넘어가야하나 신경쓰였는데 정맥길은
다행히 우측으로 돌아 계단길로 내려선다.
(목천읍 독립기념관 방향)
(동우아파트 앞 절개지를 지나는 금북길)
취암산에서 내려서면서 길은 복잡하게 얽힌다.
중간중간에 정맥시그널이 보이기는 하지만 좌측 능선을 타고 내려가면
정맥 마루금이다. 동우아파트가 나오면 정맥은 우측으로 꺽어
동우아파트 절개지를 타고 가는데 길이 끝없이 늘어진다.
(산짐승들이 먼저가며 길을 안내하고..)
동우아파트 절개지까지는 일반산객들도 다니는 길로
눈위에 길이 나 있었으나 첫번째 절개지를 벗어나면
정맥길은 숲속으로 들면서 인적이 끊기고
이제 산짐승들이 안내한다.
(숲으로 들었던 길은 다시 아파트 안방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아파트 절개지까지 나왔다가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숲에 들어서면 시그널도 드문드문 달려있고, 먼저 간 발자국도 없다.
분지형태라 능선도 확연하게 표나지 않아 산세를 보고
어렴풋한 마루금을 더듬어 간다.
(어지러운 길을 한참 헤쳐나가니 21번 국도로 내려서는 철계단이..)
만만찮은 길을 잘 헤쳐 나왔다. 눈이 오면
첫길을 가는 사람은 길찾기가 어렵지만 따라가는 사람은
오히려 쉽다. 길을 제대로 내어 놓으면 말이다.
어제 오늘 눈길을 걸으면서
서산대사의 "踏雪野中去"를 실감한다.
눈 내린 들판을 밟고 걸어갈 때 (踏雪野中去 / 답설야중거)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不須胡亂行 / 불수호란행)
지금 걷는 나의 이 발자국은 (今日我行跡 / 금일아행적)
뒤따라 오는 이의 이정표가 되리니 (遂作後人程 / 수작후인정)
(가파른 철계단을 내려서서 우측으로 꺾어 21번 국도 인도를 따라)
(천안삼거리가구센타 앞에서 21번 국도를 건너고, 1번 고속도로 지하통로를 지나)
(동천안자동차공업사 옆길로..)
(xx공장 주차장을 지나 산으로 드는데 여기서도 정맥길을 안내하는 것은..)
(양지바른 무덤가에서 라면을 끓여 점심을 먹고나니 오후 1시반이나 되어버렸다)
(덕고개까지 가려했지만 러셀이 엄두가 나지않아 여기서 끊는다)
그렇찮아도 예정에 없던 흑성산을 들렸다 오느라
1시간 반이나 늦은데다, 어제 하루종일 아이젠을 차고
눈길을 걸은 탓에 아직도 발바닥이 불붙은듯 하고, 가야할 길도
러셀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날머리 덕고개까지 가기는 무리고
그렇다고 중간에 끊자니 고려산 지난 고등고개 밖에 없는데
그기는 대중교통 연결이 안되고.. 여기서 끊는다.
발길을 돌려 천안 박물관과 유적지를 찾아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산을 찾는 행위는
동일하더라도 그 산행에서 추구하는 것은 각각일 것이다.
특히, 백두대간과 정맥길을 가는 것은 목적산행으로 일반산행과는
차이가 있고, 산행형태도 목적하는 바와 형편에 따라 각양 각색이다.
안내산행이 편하지.. 들머리에 내려주면 정해진 구간만큼 걷다가
하산하면 또 기다리고 있던 버스가 집앞까지 데려다 주니..
왠지 그렇게 하기에는 아쉬운 것이 대간이고 정맥산행인 것 같다.
뭐랄까? 답안지 보고 답을 써내려가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 멋있는 방법을 동경하며 실천해 보고 싶었다.
홀로 정맥길을 가기로 하면서 몇가지 목표를 세웠다.
즉, 그 지방의 문화와 유적지를 들려 볼 기회를 만들고,
그 지방분들을 만나고(안되면 택시기사라도 만나고),
형편이 되면 시장터에도 가 보고,
그 지방 향토음식도 먹어보기로 했다.
산행거리를 길게 잡다보니 낮이 짧은 계절에는
일몰전에 하산하기도 바빠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는데
오늘 산행을 일찍 접는 바람에 밀린 숙제할 기회가 생겼다.
앞으로도 산행거리 욕심보다는 조금 일찍 끊고
그 지방을 좀 더 알고 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먼저 천안박물관을 찾았다)
아무래도 주마간산식이긴 해도
천안삼거리로 유명한 천안은 예로부터 영남과 호남, 그리고
충청도의 문물과 사람이 만나고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교류의 장이었으며,
이해와 화합의 장이었기에 역사적,문화적으로 중요한 장소였다고 한다.
천안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천안박물관에서 본다.
(역사의 도시 천안의 연혁, 그리고 역사)
천안시는 선사시대부터 인류의 정착지로서 삼한시대에 마한의 지역이었고,
삼국시대에는 백제 시조 온조가 졸본부여로부터 내려와 위례성을 세웠고,
백제의 대목악군과 감매현 순치현 고구려의 사산현 지역이었고
고려시대 이후는 천안, 목천, 직산지역으로 나누어 기술한다.
천안은 태조 13년에 동서도솔을 합하여 천안부를 설치하고 도독부를 두었으며,
성종때 환주라 개칭하고 도단련사를 두었다가 목종 8년에 단련사를 폐지하였으며,
현종 9년에 봉성홍경사를 창건하여 천안부라 복칭하고 지부사를 두었다.
천안부에 소속된 곳은 온수군, 아주, 신창현, 풍세현, 평택현, 예산현,
직산현, 청양현이었으며, 후에 청양현은 홍주에 목부를 폐지함에 따라
영주로 고쳤다가 공민왕 11년에 천안부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태조때 영주를 다시 불리었다가 태종13년 영산으로 고쳤다가
태종16년에 천안군으로 복칭하여 상리, 하리, 군남, 소동, 대동, 원이, 원일,
원서, 북이, 북일, 모산, 돈의, 덕흥, 신종, 우평의 15개면을 관할하고
고종32년에 지방관제를 개정할 때 공주부 천안군이 되었으며
모산면은 아산군으로, 우평은 면천군으로 넘기어 10개면이 되었다.
목천현은 고려초에 목주로 고쳐서 청주에 붙였다가 성종때 신정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이원동, 세성, 서면의 8개면을 관할하고 고종32년 지방관제를 개정할 때
공주부 목천군으로 되었으며, 1896년 충청남도에 속하였다.
직산현은 고려초에 직산으로 고치고, 현종9년에 천안부에 붙였다가 그 후에 감무를 두었다.
이동, 삼동, 이남, 일서, 이서, 삼서, 이북, 경양, 안중면, 언리면, 외야곳면의
13개면을 관할하고 고종32년에 지방관제를 개정할 때에 공주부 직산군으로
되었으며 1896년 충청남도에 속하였다. 광무10년 언리면, 외야곳면, 안중면은
수원군으로, 경양면은 평택군으로 넘기어 9개면으로 되었다.
1914년 부군면 통합시 천안군, 목천군, 직산군 지역을 조정하여 천안군이 되었으며
1917년 1영성면을 천안면으로, 성산면을 직산면으로 고쳤으며,
1931년 천안면이 읍으로 승격하고 1942년에 갈전면을 병천면으로 고쳤으며
1963년 천안읍과 환성면이 병합하여 천안시로 승격하여 29개동을 관할하고
군의 명칭을 천원군이라 하여 12개면을 관할하였다.
1963년 천안시ㆍ군이 분리된 후 통합 전까지는 시ㆍ군으로 나누어 기술한다.
천안시는
1975년 출장소를 폐지하고 10개 행정동으로 개편하였고
1985년 원성동을 분동하여 11개 행정동, 30개 법정동으로 하였고
1993년 250통 1,590개 반으로
1994년 성촌동을 분동하여 12개 행정동으로 하였고,
1995년 쌍봉동을 쌍용동과 봉명동으로 분동하였다.
천원군은
1973년에 성환면을 성환읍으로,
1982년에 군청소재지를 천안시 오룡동 25번지에서
1985년에 성거면을 읍으로 승격,
1991년에 천원군을 천안군으로 환원하였으며,
1995년에 지방자치시대를 앞두고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져
천안시와 천안군을 통합, 천안시로 2읍 10면 13동으로 새롭게 개편되었으며,
1996년에 쌍용동을 쌍용1동과 쌍용2동으로 분동 2읍 10면 14행정동으로 되엇으며,
1999년에 대룡동과 남산동이 통합하여 중앙동으로 행정동의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2002년에 직산면과 목천면이 각각 직산읍과 목천읍이 승격되었고,
2003년 쌍용2동이 쌍용2ㆍ3동으로 분동되어 천안시 행정구역은
4읍 8면 14동 388리 412통 3,884개반으로 구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안시 홈페이지에서 / 칙령 등 근거와 월일은 생략-
(전시실 로비에는 천안12경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125)
(127)
(재현한 천안삼거리 주막의 모습)
천안군지(1872년)에도 천안삼거리가 나와 있다는군요.
주막을 의미하는 '店'도 표기되어 있고..
(천안삼거리 능수버들의 유래는..)
능소야 아가씨와 과거보러가는 박헌수 선비와의 이야기도 재밌다.
(조선전기의 역로도, 위는 봉수(烽燧), 아래는 역(驛))
(마침, 충성공 한명회 선생 지석 전시회도 열리고 있었다)
(앞에 보이는 산줄기가 금북정맥, 오른쪽의 산이 ?)
(161)
(160)
(159)
(162)
(163)
(153)
마지막으로 김유신 탄생지 및 태실을 찾아가 보았다
(138)
(139)
(140)
(143)
(145)
(148)
(김유신 유적지에 있는 만뢰산 등산 안내도)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 전경)
(꽁꽁 언 연곡지에서는 얼음을 뚫고 빙어낚시를..)
(오는 길 노을빛이 너무 아름다워)
이번에도 하룻길을 이틀동안 걸었지만
지난번에도 그랬듯 오히려 더 진한 추억으로 남을 구간이 되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준비도 철저히 하면서 남은 길을 준비해야겠다.
눈이 귀한 곳에서 왔다고 밤새 눈을 펑펑 쏟아 부어 간신히
들머리에 들게 하고는 지겹도록 눈길을 밟도록 해 줘서 감사하고,
캄캄한 밤에도 마다않고 차를 태워주시며 도움주신 어르신,
충청도와 천안과 금북정맥을 떠 올리면 언제나 따뜻한 그 모습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어르신 내내 건강하십시오.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른 산꾼들도 흑성산 입구를 유량리고개로 알고 잘못 데려다줄까
신경쓰입니다만 천안 온 김에 흑성산도 들렸다 가라는듯
엉뚱한 곳에 내려준 택시기사님께도 감사를 드려야겠지요.
인생이 짜여진 각본대로라면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싶기도하고,
뜻밖의 일들을 만나 더 감사하다. 다음 구간에서는
또 어떤 추억을 만들 수 있을지 밀린 숙제를 하면서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