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비 그치면서
江은 서둘러 경계마다 안개를 풀어 놓았다.
수평선 먼먼 곳 강물 흘러가야할 목표를 지우고
건너 편 야트막한 산과 하늘을 끌어 안더니
몇 채 안되는 집이 하나씩 그림자가 되어갔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일주야 내리 몰아쳐 내리던 장대비 아래
잎새 아프게 흔들리던 키 큰 나무는 나무대로
묶여 출렁이던 거룻배는 거룻배대로
나긋나긋 퍼지는 안개 사이
그 자세로 멈춰 가쁜 숨 고르면서 물결 바라보았다
숨차게 내몰리던 생활 속 잠시 찾아든 이 평온한 休止.
움직이는 것 움직이지 않는 것 모두 입 다물고 있으면
짙은 안개 속.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본다면
그랬다. 뭍이거나 물이거나 하나 정물인 것을
몸과 몸 끌어안고 가는 평안한 한 길인 것을.
안개 가득한 두물머리의 저녁
산도 없고, 집도 없고, 수평선도 없는
江, 어디선가 물새 까르르 까르르 알아들은 체 하며
안개와 안개 사이에 말이음표 그려갔다.
두물머리 / 서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