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서설 / 문병란
인연서설 / 문병란
꽃이 꽃을 향하여 피어나듯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다
물을 찾는 뿌리를 안으로 감춘 채
원망과 그리움을 불길로 건네며
너는 나의 애달픈 꽃이 되고
나는 너의 서러운 꽃이 된다
사랑은
저만치 피어 있는 한 송이 풀꽃
이 애틋한 몸짓
서로의 빛깔과 냄새를 나누어 가지며
사랑은 가진 것 하나씩 잃어 가는 일이다
각기 다른 인연의 한 끝에 서서
눈물에 젖은 정한 눈빛 하늘거리며
바람결에도 곱게 무늬지는 가슴
사랑은 서로의 눈물 속에 젖어 가는 일이다
오가는 인생 길에 애틋이 피어났던
너와 나의 애달픈 연분도
가시덤풀 찔레꽃으로 어우러지고,
다하지 못한 그리움
사랑은 하나가 되려나
마침내 부서진 가슴 핏빛 노을로 타오르나니
이 밤도 파도는 밀려와
잠 못 드는 바닷가에 모래알로 부서지고
사랑은 서로의 가슴에 가서
고이 죽어 가는 일이다
문병란 / 文丙蘭 1935년 3월 28일 전남 화순 출생.
김현승(金顯承)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가로수」(1959. 10),
「밤의 호흡」(1962. 7), 「꽃밭」(1963. 11)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
순천고, 광주제일고교 교사를 거쳐 조선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
1970년에 첫 시집 『문병란 시집』서문에 “시는 시인에겐 하나의 신앙과 같은 것”이라 하여
시인은 시를 통해 현실의 부조리나 각종 횡포 속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보고,
시의 창조를 분만의 고통에 비유. 이 시집에는 개인적인 서정이나
실존적 고독과 방황을 형상화한 시들과 역사 및 현실에 입각한 시들이 실려 있다.
1970년대 이후 『죽순 밭에서』(1977), 『벼들의 속삭임』(1978), 『5월의 연가』(1986),
『양키여 양키여』(1988) 등 현실에 입각해서 저항‧비판의식을 주조로 한 민족‧민중문학 창작에 몰두.
역사성과 민중성을 통해 민족민중문학을 건설하려고 노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민주교육실천협의회 국민운동본부 대표를 역임. 1985년에는 제2회 요산문학상을 수상.
위의 시집 외 『땅의 연가』(1981), 『뻘밭』(1983), 『무등산』(1986), 『견우와 직녀』(1991),
『새벽의 차이코프스키』(1997), 『인연서설』(1999),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2001), 『동소산의 머슴새』(2004), 『매화연풍』(2008) 등의 시집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저 미치게 푸른 하늘』(1979), 『어둠 속에 던진 돌멩이 하나』(1986)와
문학논집으로 『현장문학론』(1983), 『민족문학강좌』(1991) 등.
『원탁시』 동인으로 활동.
강물처럼
채린 시 / 김성희 곡 / 테너 이재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