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2010. 7. 29. 06:25山情無限/山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동아시아에서 가장오래된 지도 2번째 오래됨

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약칭: 강리도(疆理圖)

 

 

 

 

 

일본인들의 복사본 2개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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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曆代國都之圖)

 

 

왜 만들었나?


조선 초기 수도 이전과 행정 구역의 개편, 그리고 압록강ㆍ두만강 유역 일대의 영토 회복과 주민 이주 등 일련의 국가적 사업을 추진하면서 조선 왕조는 각 지역에 대한 정확한 지리 정보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 초기부터 지도와 지리지의 편찬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불안정한 북방 영토 및 고려 말 이후 잦은 왜구의 침입 등에 대비하기 위해 세계 지도의 제작을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지도 제작은 행정ㆍ국방상의 필요성 이 외에 조선 왕조의 국가적 권위와 왕권을 확립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즉, 중국 중심의 세계에 조선 왕조가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세계 지도를 통하여 보여줄 수 있었다.


조선은 세계 지도를 만들기 위해 우선 사신을 통하여 다른 나라의 지도를 수집하였다. 그리고 지도 제작에 조정의 중신들(좌정승과 우정승)이 직접 참여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에서 세계 지도의 제작이 국가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사업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떻게 만들었나?


조선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전통적인 중국의 세계 지도에는 중국과 주변 지역만 그려져 있을 뿐 유럽과 아프리카는 나타나 있지 않았다. 그런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 당시 알려진 세계가 모두 그려져 있다. 이 중 동남 아시아, 인도, 이슬람은 교류가 있었고, 또 그 곳에 다녀온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지역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유럽과 아프리카는 교류도 없었고 가 본 사람도 없었는데 어떻게 100여 개의 유럽 지명과 35개의 아프리카 지명을 지도에 기재할 수 있었을까? 이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만들 때 참조한 지도들을 통하여 추리할 수 있다.


지도를 만드는 데 참여한 권근의 발문에 의하면, 이 지도는 중국에서 들여온 『혼일강리도』와『성교광피도』를 좌정승 김사형과 우정승 이무, 검상 이회가 검토한 후 합쳐 하나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교광피도에는 요수(遼水, 중국의 랴오허) 동쪽과 우리나라가 자세하게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일본에 대한 지도를 첨부하여 새로운 지도로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이택민의 성교광피도에서 아랍 지역을, 청준의 혼일강리도에서 중국을, 이회의 팔도지도와 동서가 남북으로 된 행기도(行基圖)에서 각각 우리나라와 일본을 참조한 것이다. 따라서 이 지도는 아랍ㆍ중국ㆍ한국ㆍ일본 지도가 합쳐져서 편집된 세계 지도이며, 유럽과 아프리카의 지명은 성교광피도에서 인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는 신대륙이 빠져 있는데, 이는 이 지도가 신대륙 발견(1492)보다 무려 90년이나 앞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얼마만큼 뛰어난가?


전체적인 지도의 모습을 보면 지도 가운데에 중국이 있고, 중국 오른편에는 조선과 일본이, 외편에는 아프리카와 유럽이 자리잡고 있다. 중국과 조선은 매우 정확하며, 하천과 도서를 자세히 기입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강은 매우 자세히 표현되어 있어, 중국 남부 지방은 마치 수많은 섬처럼 보인다. 그 중에서도 중국의 황하(黃河)는 다른 강들과 달리 노란색으로 표현되었으며, 만리 장성도 뚜렷이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도 이 때부터 백두대간을 비롯한 정맥들의 산줄기와 낙동강, 한강 등 강이 비교적 자세히 표현되어 있다.

 

일본은 비록 방위는 틀리지만 혼슈(本州)와 큐슈(九州)의 형태가 비교적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 지도의 가장 큰 특징은 한반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크게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한편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는 실제보다 훨씬 작게 그려져 있지만 모양은 비슷하다. 특히 아프리카의 가운데에는 사하라 사막(黃沙)이 그려져 있고, 북쪽으로 흐르는 나일 강도 나타나 있다. 그러나 지중해는 바다가 아닌 강으로 표현되었다. 이에 비해 인도와 인도차이나 지역은 오류가 심하다. 인도는 반도가 아니라 단순한 해안선으로 연결된 육지처럼 표현 되었고, 인도차이나의 여러 나라들은 남쪽 바다 위의 섬들로 표현되어 있다. 이렇듯 일부 지역들은 너무 과장되거나 왜곡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도는 동ㆍ서양을 막론하고 당시에 그려진 세계 지도 가운데 가장 뛰어난 지도임에 틀림없다.

 

지도에 숨겨진 것들, 개방적이고 과학적인 조선 창업기의 문화적 배경 아래에서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매우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먼저 이 지도는 동ㆍ서양 간의 문화 교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지도는 인도가 반도로 표현되지 않은 점과 나일 강의 수로 형태로 보다 톨레미(Ptolemy)식 지도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은 것으로 보인다. 톨레미식 지도의 영향을 받은 이슬람 지도가 원나라에 전해지고, 한역(漢譯)된 원나라의 전도가 조선으로 전해진 것이다. 따라서 이 지도에 나타난 유럽, 아프리카, 서아시아 지역은 지명은 중세 이슬람의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가 만든 세계 지도에 나오는 지명을 한자로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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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지도는 당시 사람들의 지리적 사고를 보여 준다. 이 지도에는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4배정도 크게 그려져 있으며, 심지어 아프리카 대륙보다도 더 크게 그려져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이 지도의 가운데에 놓여 세계 육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보아 중화적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한편 우리 나라와 중국과의 거리는 매우 가깝게 그린 반면, 일본과의 거리는 매우 멀게 표현했고, 도서 방향의 일본을 남북 방향으로 나타내었다. 즉, 우리나라에 중요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중국은 크고 가깝게 그린 것이고, 중요하지 않고 관심도 적은 일본은 멀고 작게 나타낸 것이다. 현대인들도 이와 같은 지리적 사고를 종종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가적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여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당시에는 가장 뛰어난 세계 지도였으며, 현재에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 유산이다.그러나 이러한 세계 지도 제작의 전통이 이후 계승되지 못하여 참으로 안타깝다.

 

이 지도의 원본은 현재 한국에는 없고 일본에서 2종을 보관하고 있다. 원본은 임진왜란 중에 가토 기요마사가 이 지도를 일본으로 가져가 자신의 개인사찰인 혼묘지에 보관하였고 후일 류코쿠 대학에서 이를 기증받아 보관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다른 한 종은 에도 시대 혼코지에서 이를 복사한 것으로 텐리 대학에서 보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