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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대 돌아오다 삼각대 돌아오다 삼각대가 없었다.사람들은 환호했고, 불꽃은 하늘에서 터지고 있었다. 나는 불꽃도 포기한 채 삼각대를 찾아 인파를 헤집고 다녔다. 결국 까치발을 하고 남강에 뜬 유등 몇 장을 P모드로 찍었다.손에 쥔 카메라가 갑자기 가벼워진 듯했다. 삼각대가 없으니 카메라만 덩그러니 남은 것 같았다. 그 가벼움이 이상하게 서늘했다.“삼각대는 여기 맡겨두고 가시지요.”그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차에서 한쪽 어깨에 메는 카메라 가방과 삼각대, 시집을 꺼내 들었을 때는 짐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짐 하나를 덜 수 있다는 생각에 어깨가 홀가분해졌었다. 그때는 그것이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분명 여기 맡겼는데요.”“없는데요.”인파를 헤치고 나는 몇 군데를 더 찾아다녔다. 종합안내센터의 오렌지색 부스라는.. 2026. 11. 4.
물들다 물들다 노랑이 질투라 하여 질투 많은 나는 그 색을 멀리했다 나를 따르던 친구, 가장 좋아하던 노랑 언제 물들었는지 가을, 은행나무 정겹다 71p 에서 * * * * * 어릴 때 노랑색을 좋아했다. 햇살도 병아리도, 들판의 꽃도 노랑이면 마음이 먼저 환해졌다. 그런데 어른들은 노랑을 질투의 색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색에도 사람의 마음처럼 이름이 붙는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색만 그렇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낯선 지역에도 색깔을 입힌다. 한 번 덧칠된 의미는 본래의 모습을 가리고, 어느새 그것을 진짜 모습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한다. 속는 줄도 모르고 자신마저 속는다. 흔히 말하는 색안경이란 그런 것인지도 .. 2026. 11. 3.
유영, 귀환 유영, 귀환 원래 가려던 길이 있었다. 사정이 생겨 먼 길을 돌아가게 되었다. 목적지에는 도착했지만 돌아간 만큼 다시 돌아 나와야 했다.날은 저물고 발걸음을 재촉하던 참이었다. 그 즈음하늘을 유영하듯 지나가는 철새들이 눈에 들어왔다. 새의 날갯짓, 유영... 움직임을 붙잡고 싶었다. 새들은 순간 방향을 틀어 멀리 날아간다. 그 아래로는 물이 빠져나가고 있다. 물러난 자리마다 갯벌이 모습을 드러낸다. 갈 곳을 정해 놓고 걷다 보면 새로운 것, 뜻밖의 것을 만나기 쉽지 않다그날의 장면도 애초에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먼 길을 돌아갔기에, 계획에 없던 길을 걸은 덕분에 만날 수 있었던 뜻밖의 덤이었다. 여행도, 인생도 그런 것 같다목적지를 향해 가지만,예상하지 못한 길에서 불현듯 만난 것들이뜻밖의 의미.. 2026. 11. 2.
장욱진 화백의 새 / 박상천 장욱진 화백의 새 / 박상천 사람도 아니고 새도 아닌 아니, 사람 같기도 하고 새 같기도 한 장욱진 화백의 그림을 보면 슬퍼진다.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려다 멈추고만 사람 같기도 하고 날개가 상해 날지 못하는 새 같기도 한 장욱진 화백의 그림을 보면 이 세상, 어딘가에 그러한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세상. 어딘가에 그러한 새가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여 또다시 슬퍼진다. 장화백이 세상을 떠난 이후 화폭 속의 그들이 자꾸만 화폭 밖으로 빠져 나와 밤마다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며 자꾸만 슬퍼진다.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 (1997, 문학아카데미 시선 101) 중 박상천(朴相泉)1955년 전남 여수 출생. 시인, 극작가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2026. 11. 1.
미지의 감각 미지의 감각 능선에 올라서면 문득 걸음이 느려지는 곳이 있다. 나무 사이로 다음 봉우리가 희미한 윤곽만 내비칠 뿐,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자리다. 여러 번 오른 산도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거나 눈발이 흩날리면 금세 낯선 얼굴로 돌아선다. 발밑의 돌과 나무뿌리는 어제와 다르지 않을 텐데, 불과 몇 걸음 앞의 길은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다. 젖은 낙엽 위에서 발이 미끄러지고 식어가는 땀에 목덜미가 서늘해지면,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른다.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저 너머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돌이켜보면 처음 산을 찾던 시절의 목적은 오롯이 정상이었다. 정상석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인증 사진을 남기며, 다녀온 산의 이름을 하나씩 늘려가는 일이 자부심이자 기쁨이었다... 2026. 10. 30.
누긴누라, 영감재이지 누긴누라, 영감재이지 엄마 TV에는 엄마가 주인공이다. 아무리 유명한 배우라도 주인공이 나오는 시간은 잠깐 잠깐 이지만 엄마 TV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구순연을 기념해 어머니 영상을 하나 만들어 디지털 액자에 넣어드린 것이다. 리모컨으로 켜기만 하면 바로 재생된다. 그 안에는 일찍 돌아가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사진에서부터, 젊은 시절의 아버지와 어머니, 일본 친척, 이모님들 모습, 자녀들과 10년 넘게 해마다 전국을 옮겨 다니며 가족여행 겸 차려드렸던 어머니 생신연의 웃음들까지. 실버복지센터에서 노래하고 체조하던 장면, 꼬맹이 증손녀들이 서툰 말로 축하 인사를 건네는 모습까지 이어 놓으니 장장 30분이 넘는 분량의 영상이 되었다.예전엔 TV 리모컨을 쥐고 채널을 이리저리 바꾸.. 2026. 10. 28.
별천지 하동에서 보낸 짧은 오후 별천지 하동에서 보낸 짧은 오후 울산에 살다 하동으로 터전을 옮긴 후배를 찾아갔다.격주로 의령에 가서 1주일씩 머물다 보니, 의령을 중심으로 또 생활반경을 넓혀본다. 의령에서 진주까지는 그리 멀지 않고, 진주에서 하동으로 이어지는 길도 생각보다 가깝다. 이러다 야금야금 서쪽으로 내려가 목포까지 가는 것 아닌가 싶다. 다음에는 순천만 용산전망대에도 가볼 생각이니, 서쪽으로 난 길이 자꾸 나를 부르는 것 같다.진주 남강유등축제가 한창이라 낮부터 주차전쟁이었다. 어렵게 명당 하나를 잡아 모셔 놓았는데 하동을 다녀와 다시 주차하려면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애마는 그대로 두고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 시간 남짓 달려 하동터미널에 닿으니 후배가 마중을 나와 있다.오랜만이다. 그렇게 별천지 하동에 다.. 2026. 10. 25.
산은 바다가 되고 산은 바다가 되고- 구름바다에 빠지다 안개비 피해 잠시텐트 속에 들었다 나오니그새 구름이 점령군처럼 밀려온다 신불재를 살금살금 넘는 한 부대간월재를 파도처럼 덮치는 또 한 부대 조망 터진 바위 끝에 서자공룡의 등을 타고새벽을 거슬러 오는 두 작가 대체 무엇이저들을 이 높은 산정까지 밀어 올렸을까 마침내 운해가 공룡능선을 휘감자웅크린 능선 하나등뼈를 세우며 공룡으로 깨어난다 사방으로 번져가는 흰 물결산은 지워지고 바다만 남는다 나는 그 황홀 속으로대책 없이 풍덩, 빠져버린다 37p 에서 시작 노트 : “산이 부르고 있으니, 나는 가야 한다.”라고 존 뮤어가 말했던가.산에 오르는 데 늘 뚜렷한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마음이 동.. 2026. 10. 24.
진주 유등축제 해프닝 진주 유등축제 해프닝사진은 몇 장 못 찍고 사람 구경만 실컷 하고 왔다. 진주유등의 유래 : 진주 남강에 등(燈)을 띄우는 유등(流燈) 행사는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晋州大捷)에 기원을 두고 있다. 임진년(1592) 10월,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을 비롯한 3,800여 명의 수성군(守城軍)과 진주성을 침공한 2만 여명의 왜군이 벌인 제1차 진주성전투는 무려 10일간 이어졌다.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진주성 수성군이 칠흑 같이 어두운 밤에 남강에 유등(流燈)을 띄워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저지하는 군사전술로, 한편으로는 성 밖의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사용했다. 계사년 1593) 6월,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는 오로지 구국(救國)의 일념으로 왜군과 항전한 .. 2026. 10. 23.
코스모스, 우주가 잠시 꽃의 크기로 자신을 낮춘... 코스모스, 우주가 잠시 꽃의 크기로 자신을 낮춘... 고향이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라지먼 곳에서 건너와 가을 들판을 가득 채우는코스모스가느다란 꽃대마다다른 빛깔로 피어나바람 속에서 함께 흔들린다.kosmos, cosmos, 코스모스.꽃과 우주가 한 이름에 깃들어 있다. 아득한 별들은서로의 거리를 둔 채 빛나고,꽃들은 저마다의 흔들림으로하나의 들판을 이룬다.한 송이는 들판이 아니지만들판은 한 송이 없이지금의 풍경이 될 수 없다.별빛은 꽃잎을 품고꽃의 흔들림은 하늘을 안는다.별과 꽃,저마다 찬란하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 / 연주 이성식 2026. 10. 20.
따베이, 따벵이 따벵이 엄마는 실버센터에서 저녁을 안 준다고 하신다. 다른 분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저녁을 준다고 하시길래“세 시 반쯤 준다던데.”하며 엄마에게 다시 여쭈었더니 한마디로 잘라 말씀하신다.“그게 무슨 저녁이고. 실참이지.”그래서 엄마는 매일 집에서 저녁을 드신다. “엄마, 밥 묵자.” 하면 , 엄마는 “그라모, 빨리 묵고 자자.”밥을 많이 드리지 않아서인지, 내가 밥을 반도 먹기 전에 엄마는 벌써 숟가락을 놓으신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 내가 밥 먹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기다리신다. 내가 다 먹으면 설거지를 하실 참인 모양이다.“엄마,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거실 가서 TV 보세요.”“오늘은 마 내가 할란다.”밥을 다 먹고 보니 엄마가 정말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신다. 몸도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시면서... 2026. 10. 20.
자굴산에 올라 보니 자굴산에 올라 보니 일시 :2026.10.15(목) 11:15~14:00코스 : 쇠목재 - 자굴산 정상 - 쇠목재 (2.6km)날씨 : 청명, 산행하기 좋은 날씨누구와 : 혼자 오랜만의 자굴산 산행이다.사실 산행이랄 것도 없다. 쇠목재까지 자동차로 와서 정상에 오르면 한 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는 길이다. 예전에는 석양 무렵 사진을 찍으러 올랐다가, 지리산 너머로 넘어가는 일몰을 담고 한 시간 반 만에 내려오기도 했다.그때는 산이 가까웠다. 마음이 동하면 올랐고, 빛이 좋으면 다시 올랐다. 산에 오르는 일이 특별한 결심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는데.. 그렇게 오르내리던 길인데, 이제는 그 짧은 길마저 예전처럼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다.산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산과 나 사이에 시간이 쌓였다. 한때는 .. 2026. 10. 19.
가시나무 / 하덕규 가시나무 / 하덕규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당신의 쉴 곳이 없네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당신의 편할 곳 없네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쉴 곳을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당신의 쉴 곳 없네 하덕규(1958년 7월 21일 ~ )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목사. 시인과 촌장으로 활동하였다. 대표곡으로 , , 등 2000년대 이후로백석예술대학교 교수로 재임, 정년 퇴직 이후 다시 시인과 촌장 활동을 시작했다. 가시나무 / 시인과 촌장 2026. 10. 18.
한글날 100주년에 생각하는 표준어와 방언과 신조어 한글날 100주년에 생각하는 표준어와 방언과 신조어 올해는 한글날 100주년이라고들 한다. 시작은 1926년, 일제강점기에 조선어연구회가 정한 '가갸날'이다. 훈민정음 반포 480돌이 되는 해였다. 이 날이 1928년 '한글날'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의 한글날은 양력 10월 9일이다. 올해는 훈민정음 반포 580돌이기도 하다.한 세기 동안 한글은 제 몫을 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되었고, 한글의 과학성은 세계가 인정한다. 글자에 대한 관심은 말로도 이어진다. 2021년 9월 옥스퍼드 영어사전 업데이트에서 한국어 유래 단어 26개가 새로 실렸다. '한복'과 '반찬'이 그때 오른 말이다. 그 뒤로도 2024년 12월에 '판소리'를 포함한 7개가 올랐고, 최근에.. 2026. 10. 8.
가을 빛으로 붉게 물드는 기강 댑싸리 가을 빛으로 붉게 물드는 기강 댑싸리 어쩜이렇게 때를 맞춰물들까 약속이나 한듯.. 한 발 앞선 녀석들어서오라 하면서... 기강나루에 댑싸리가둥글둥글 몸을 여미고 서 있다. 가는 가지마다 다닥다닥 붙은 잎들이푸른빛을 내려놓고붉은빛을 하나씩 토해낸다. 옛날에는 베어 말려마당을 쓸던 빗자루였는데 이 가을, 댑싸리는빗자루 대신 붉은 몸으로나루의 가을을 쓸고 있다. 나도 한 계절댑싸리처럼가을을 쓸고 싶다 2026.10.3 의령 "기강꽃축제"에서 River Flows in You / Yiruma > 2026. 1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