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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창/엄마

엄마 TV

by 시나브로@ 2026. 9. 17.

엄마 TV

 

 

엄마 방에는 두 개의 텔레비전이 있다. 큰 것 하나, 그리고 그 곁에 소박하게 놓인 17인치 액자 모니터 하나. 엄마는 화려한 세상이 쏟아지는 큰 화면보다 작고 조용한 ‘엄마 TV’를 들여다보신다.

 

시작은 구순연이었다. 아흔 번째 생신에 틀어드릴 영상을 만들며 서랍 속 사진들을 꺼냈다. 흑백사진 속 희미한 얼굴에서부터 최근의 실버센터 일상까지, 어느 사진에서든 화면의 중심에는 엄마가 있었다. 잔칫날 사진 한 장 한 장이 화면에 번져갈 때마다 웃음 끝에 숙연함이 감돌았고, 이모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 뒤 사진을 더 보태 삼십 분 남짓한 영상으로 엮어 액자 모니터에 담았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곧바로 엄마의 일생이 흘러나오도록.

화면이 바뀔 때마다 엄마는 사람들의 얼굴을 지그시 들여다보신다. 아는 얼굴이 나오면 반갑게 만난 듯 반기고, 이름이 입가에 맴도는 사이 장면이 바뀌어버리기도 한다. 외할머니의 모습이 지나갈 때면 애틋한 마음이 이는 듯하다.

 

“참 사람이 좋았는데…… 인물도 참 이뻤는데.”

 

회한이 묻어나는 나지막한 한마디다.

엄마가 열다섯 되던 해, 콜레라가 엄마의 엄마와 언니를 데려갔다. 세 동생이 남았고,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작은 어미가 되었다. 열아홉에 시집을 갔고, 이듬해에는 친정아버지마저 여의었다. 그 시절의 무게를 자식들은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엄마 TV가 켜진 지 이 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곧잘 알아보던 얼굴들 앞에서 이제는 머뭇거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늘진 눈으로 화면을 오래 바라보신다. 기억으로 이어지던 실이 조금씩 풀리고 있는 것이다.

 

“엄마, 이 사람은 누고?”

“…….”

 

입가에 맴도는 듯한 이름도 있고, 이제는 아예 생각나지 않는 사람도 는다. 그러다 문득 이름 하나가 떠오르면 어린아이처럼 반가운 얼굴이 된다.

 

가끔 젊은 시절 사진이 나오면 내가 먼저 슬쩍 한마디 건넨다.

 

“엄마, 젊었을 때 참 미인이었네.”

 

엄마는 빙긋 웃으며 수줍게 받으신다.

 

“사람들이 이쁘다 사안-니라.”

 

“할배가 엄마 이뻐했다면서?”

 

“할배가 참 이뻐핸니라. 우리 할배 같이 좋은 사람 업따.”

 

그 말을 들으면 나는 더 묻지 않는다.

 

오늘도 엄마는 누워서 엄마 TV를 보시다 잠드실 것이다. 화면 속에서는 젊은 엄마가 아버지 곁에서, 자식들 틈에서, 낯선 풍경 앞에서 여전히 다소곳이 웃고 있다.

기억은 자꾸 아득해지는데, 사진 속 엄마는 여전히 푸르다.

 

나는 곁에 앉아 엄마의 어깨에 온기를 얹은 채 같은 화면을 바라본다.

언젠가 이름들을 모두 잊는 날이 오더라도, 이 작은 화면 속에서 엄마는 여전히 자기 삶의 주인공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작은 화면 속에는
아직도 엄마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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