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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친일', 어불성설이자 언어도단이다
'구조적 친일', 어불성설이자 언어도단이다 최근 친일 행위를 두고 ‘구조적 친일’이라는 궤변이 등장한다. 식민지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업을 얻고, 일제가 만든 제도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으니 당시 사람들의 친일 행위를 오늘의 잣대로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구조와 선택은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조선인이라면 누구나 식민지 제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어를 배우며 일제가 만든 제도 안에서 살아갔다는 사실만으로 모두를 친일이라 부를 수는 없다. 문제는 그 구조 속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행동했느냐이다. 최근 다시 조명되고 있는 김익남과 안상호의 삶은 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두 사람 모두 대한제국의 관비 유학생으로 ..
2026.08.15 -
미완의 해방, 우리가 세워야 할 정의
미완의 해방, 그리고 우리가 세워야 할 정의 광복절을 맞이할 때마다 국권을 되찾은 감격과 함께 마음 한구석에는 묵직한 아쉬움이 남는다. 해방은 이룩했으나 친일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업은 끝내 완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광복은 단지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날에 그치지 않는다. 되찾은 조국을 어떤 가치와 원칙 위에 세울 것인가를 되묻는 ‘원점의 날’이다. 그렇기에 광복절은 해방의 환희와 더불어 미완으로 남은 역사적 청산을 정면으로 직시하게 만든다. 혹자는 ‘구조적 친일’이라는 궤변까지 동원해 부역의 책임을 희석하려 한다. 식민지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교육을 받고, 직업을 얻고, 일제가 만든 제도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으므로 개개인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식민지 백성이 일제의 제도 밖..
2026.08.14 -
시가 떠나기 전에
시가 떠나기 전에 ― 마감 앞에서 다시 만난 문장들 원고를 출판사로 넘기고 나면 긴 퇴고의 여정도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줄 알았다. 이제부터는 편집과 교정의 시간이며, 나는 한 권의 책이 되어 돌아올 시집을 기다리는 시간이 지겨울 줄 알았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하게도, 원고가 내 손을 떠나자 비로소 시의 모습이 더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붙들고 씨름할 때는 안개 속에 숨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것들이, 마치 시험지를 거두어 간 뒤에야 뒤늦게 정답이 선명해지듯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단단히 다듬었다고 믿었던 시어는 어딘가 모나 있었고, 자연스럽다 여겼던 한 행은 느닷없이 길고 진부해 보였다. 시 뭉치를 덮고 돌아서려 할 때마다 문장들은 나직한 음성으로 나를 다시 불러 세우는 듯했..
2026.08.12 -
그대들 돌아오시니 / 정지용
그대들 돌아오시니 - 재외(在外) 혁명동지(革命同志)에게 鄭芝溶 (정지용) 백성과 나라가이협(夷狹)에 팔리우고국사(國祠)에 사신(邪神)이오연(傲然)히 앉은지죽엄보다 어두은오호 삼십육년! 그대들 돌아오시니피 흘리신 보람 찬란(燦爛)히 돌아오시니! 허울 벗기우고외오 돌아섰던산(山)하! 이제 바로 돌아지라.자휘 잃었던 물옛 자리로 새소리 흘리어라어제 하늘이 아니어니새론 해가 오르라 그대들 돌아오시니피 흘리신 보람 찬란(燦爛)히 돌아오시니! 밭이랑 문희우고곡식 앗어가고이바지 하올 가음마자 없어금의(錦衣)는 커니와전진(戰塵) 떨리지 않은융의(戎衣) 그대로 뵈일밖에! 그대들 돌아오시니피 흘리신 보람 찬란(燦爛)히 돌아오시니! 사오나온 말굽에일가친척 흐터지고늙으신 어버이, 어린 오누이낯 서라 흙에 이름 없이 굴으는..
2026.08.09 -
수확의 즐거움
수확의 즐거움 어제 옥상 정원에서 포도를 수확했다.수확이라 하니 거창하게 들리지만, 정성을 들여 가꾼 열매를 거두는 일이니 작은 수확이라도... 거둠의 크기는 열매의 양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간이 결정하니까.손녀에게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려고 며칠을 미루었다. 그사이 너무 익어버리지는 않을까 마음 졸였지만, 다행히 포도는 기다려 주었다. 주말까지 기다린 시간이 오히려 수확의 일부가 되었다.올해는 욕심을 조금 줄였다. 여린 송이들을 많이 솎아내고 스무 송이에만 봉지를 씌웠다. 얼마 전 거센 바람에 한 송이가 떨어져 나갔지만, 남은 열아홉 송이는 봉지 속에서 제 무게를 견디며 탐스럽게 알알이 익어 갔다. 옥상에는 작은 화단과 함께 체리 한 그루, 블루베리 네 그루, 포도 두 그루, 대추나무 한 그..
2026.07.27 -
놓아 주는 마음
놓아 주는 마음― 첫 시집 원고를 건네며 원고를 출판사로 넘겼다. 마침내 해방이 된 기분이다. 오랫동안 어깨를 짓누르던 묵직한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했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많은 밤을 문장과 씨름하며 지새웠던가. 단어 하나를 붙들고 서성였고, 한 행을 옮겼다가 이내 제자리로 돌려놓기를 반복했다. 이제 내 손을 떠났으니 더는 다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는 듯했다. 첫 시집을 펴내겠노라 스스로와 약속했던 시한은 이미 2년이나 훌쩍 지나버렸다. 쓰고 고치기를 수없이 되풀이하면서도 좀처럼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더 좋은 문장이 어딘가 숨어 있을 것만 같았고,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더 좋은 표현이 드러날 것만 같았다. 그 머뭇거림의 틈새로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마음 한..
2026.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