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17. 12:31ㆍ글쓰기/생각의 창
놓아 주는 마음
― 첫 시집 원고를 건네며
원고를 출판사로 넘겼다. 마침내 해방이 된 기분이다.
오랫동안 어깨를 짓누르던 묵직한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했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많은 밤을 문장과 씨름하며 지새웠던가. 단어 하나를 붙들고 서성였고, 한 행을 옮겼다가 이내 제자리로 돌려놓기를 반복했다. 이제 내 손을 떠났으니 더는 다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는 듯했다.
첫 시집을 펴내겠노라 스스로와 약속했던 시한은 이미 2년이나 훌쩍 지나버렸다. 쓰고 고치기를 수없이 되풀이하면서도 좀처럼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더 좋은 문장이 어딘가 숨어 있을 것만 같았고,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더 좋은 표현이 드러날 것만 같았다. 그 머뭇거림의 틈새로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한 가지 분명한 생각이 나를 붙들고 있었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다’는 후회만큼은 남기고 싶지 않았다. 완벽하기에 세상에 내놓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내놓아야 비로소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마침내 받아들인 것이다.
마침내 원고를 한 권으로 묶었다. 오랫동안 써 온 글들 가운데 남길 것을 고르고, 시집 전체의 결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다듬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애착이 가는 시조차 전체를 위해 내려놓아야 했다. 마지막 정리된 파일을 전송하는 순간, 그렇게 오래 붙들고 있던 시간이 손끝에서 툭 떨어져 나가는 듯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끝났다는 안도감 뒤로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밀려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원고이건만, 막상 손을 떠나고 나니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었다. 제대로 보내 준 것인지, 아직 내가 손보아야 할 자리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그 원고 안에는 단순히 시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줄을 써 놓고 다음 줄을 잇기 위해 망연히 바라보던 날들도, 이미 써 놓은 문장을 고치려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던 날들도 스며 있었다. 한 줄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줄을 버려야 했고, 마음이 가던 시 한 편을 내려놓기까지 며칠을 망설이기도 했다.
왜 진작 끝내지 못했을까 자책한 적도 많았다. 조금 더 과감했더라면 훨씬 일찍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 머뭇거림과 방황조차 지금의 원고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어떤 문장은 오래 묵혀야 제 빛깔을 드러냈고, 어떤 시는 몇 번의 계절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
이제 시들은 정말 내 품을 떠났다.
편집자의 손을 거쳐 활자의 자리를 얻고, 페이지를 얻어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모습을 갖추어 갈 것이다. 오랫동안 내 안에서 나지막이 숨 쉬던 말들이 이제 다른 사람의 눈길 앞에 온전히 놓이게 될 것이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면 이 시들은 한 권의 시집으로 모습을 바꾸어 내게 돌아올까.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득해진다. 그동안은 언제든 시를 다시 불러 세울 수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단어를 바꿀 수 있었고, 한 행을 슬그머니 옮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책이 되어 세상으로 나가는 순간부터 시는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손에 들려 저마다의 기억과 삶 속에서 다른 의미로 읽힐 것이다.
문득 과년한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이와 같을까 싶다. 드디어 제 길을 찾아 떠난다는 대견함과, 조금만 더 따뜻하게 대해 줄 걸 하는 아쉬움. 부디 제 자리에서 잘 살아가기를 바라면서도 문밖을 나서는 뒷모습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는 그 아련함 말이다.
지금 그 문 앞에 서 있다.
오랫동안 품어 온 시들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며, 잘 가라고 선뜻 손조차 흔들지 못한다. 후련하면서도 섭섭하고, 설레면서도 두렵다.
이 아리송한 마음에는 어떤 이름을 붙여 주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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