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14. 21:38ㆍ글쓰기/생각의 창
미완의 해방, 그리고 우리가 세워야 할 정의
광복절을 맞이할 때마다 국권을 되찾은 감격과 함께 마음 한구석에는 묵직한 아쉬움이 남는다. 해방은 이룩했으나 친일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업은 끝내 완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광복은 단지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날에 그치지 않는다. 되찾은 조국을 어떤 가치와 원칙 위에 세울 것인가를 되묻는 ‘원점의 날’이다. 그렇기에 광복절은 해방의 환희와 더불어 미완으로 남은 역사적 청산을 정면으로 직시하게 만든다.
혹자는 ‘구조적 친일’이라는 궤변까지 동원해 부역의 책임을 희석하려 한다. 식민지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교육을 받고, 직업을 얻고, 일제가 만든 제도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으므로 개개인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식민지 백성이 일제의 제도 밖에서 살아가기란 난망했으며,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어를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모두를 부역자로 몰아세울 수는 없다.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순응과, 침략 권력에 기생해 사익을 도모한 적극적 부역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적극적 친일을 ‘구조’라는 핑계 뒤로 감싸서는 안 된다. 같은 식민지 체제 아래에서도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에 몸을 던진 이가 있었고, 침묵으로 고통을 견뎌낸 이가 있었으며, 일제에 협력해 권력과 부를 누린 이도 있었다. 독립운동가를 체포·탄압하고, 침략전쟁을 찬양하며 청년들을 학병과 징병의 사지로 몰아넣고, 식민 통치에 협력한 대가로 재산과 지위를 챙긴 이들까지 ‘시대의 한계’로 면죄부를 준다면 역사에서 개인의 선택과 책임은 설 자리를 잃는다. 구조가 선택을 제약할 수는 있어도, 선택 그 자체를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
더 깊은 상흔은 해방 이후에 새겨졌다. 새로 세운 조국은 친일 세력을 엄정히 청산하지 못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마저 좌절되면서 일제에 협력했던 관료와 경찰, 지식인과 경제인 상당수가 다시 권력과 사회의 중심부로 복귀했다. 혼란한 틈을 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은폐하거나 독립 공신으로 신분을 세탁하는 몰염치마저 벌어졌다. 해방은 찾아왔으나 역사의 엄정한 심판은 유예되고 만 것이다.
그 후유증은 오늘날까지 짙은 그림자로 이어졌다. 친일의 대가로 축적한 재산과 지위는 후손들의 세습적 기반이 되었지만,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바친 가문은 재산을 잃고 투옥과 망명을 겪으며 해방 뒤에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친일하면 삼대가 잘살고 독립운동하면 삼대가 망한다”는 서글픈 자조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한 대가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공정성에까지 깊은 상처를 남긴 것이다.
친일 청산은 무조건적인 적개심이나 국수주의적 발상이 아니다. 과거의 침략 행위를 축소·미화하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태도가 지속되는 한 진정한 화해는 어렵고, 일본 역시 과거사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성찰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청산해야 할 핵심은 특정 민족에 대한 감정적 적대가 아니다. 침략을 정당화하고 공동체를 배반한 행위가 오히려 보상받았던 ‘뒤틀린 역사의 정의’를 바로잡는 일이다.
광복 81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친일 잔재를 청산한다는 것은 과거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미래의 엄정한 도덕적 기준을 세우는 작업이어야 한다. 친일의 행적을 사실대로 기록해 뒤바뀐 공과를 바로잡고, 독립을 위해 희생한 분들과 그 후손에게 합당한 명예와 보상을 돌려주어야 한다. 나라가 어려울 때 헌신한 이가 존경받고, 나라를 이용해 사익을 챙긴 자가 영광을 누리지 못한다는 당연한 원칙을 다음 세대에 분명히 남겨야 한다.
광복은 1945년 8월 15일에 찾아왔지만 광복의 정신까지 완결된 것은 아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독립운동의 희생을 온전히 기억할 때, 광복은 비로소 과거의 기념일을 넘어 오늘을 지탱하고 미래를 밝히는 살아 있는 정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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