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12. 22:26ㆍ글쓰기/생각의 창
시가 떠나기 전에
― 마감 앞에서 다시 만난 문장들
원고를 출판사로 넘기고 나면 긴 퇴고의 여정도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줄 알았다. 이제부터는 편집과 교정의 시간이며, 나는 한 권의 책이 되어 돌아올 시집을 기다리는 시간이 지겨울 줄 알았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하게도, 원고가 내 손을 떠나자 비로소 시의 모습이 더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붙들고 씨름할 때는 안개 속에 숨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것들이, 마치 시험지를 거두어 간 뒤에야 뒤늦게 정답이 선명해지듯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단단히 다듬었다고 믿었던 시어는 어딘가 모나 있었고, 자연스럽다 여겼던 한 행은 느닷없이 길고 진부해 보였다. 시 뭉치를 덮고 돌아서려 할 때마다 문장들은 나직한 음성으로 나를 다시 불러 세우는 듯했다.
결국 1차 교정본이 도착하기도 전에 다시 연필을 들고 원고 곳곳에 손을 댔다.
어떤 시는 행을 다시 가다듬어 나누었고, 어떤 시는 멀리 떨어져 있던 두 행을 끌어당겨 붙였다. 넘치는 말을 가만히 덜어내고 그 자리에 다른 시어를 들여놓기도 했다. 무심코 찍었던 마침표 하나가 지나치게 무거워 보이는가 하면, 쉼표 하나가 문장의 숨결을 끊어놓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얼마 후, 1차 교정본을 사이에 두고 편집자와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1차 교정본은 온통 붉은 펜 자국으로 뒤덮였다. 편집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만큼 많은 곳을 손댔다. 이만큼 고쳤으니 이제는 정말 끝났다고 생각했다. 남아 있는 2차 교정은 오탈자나 가볍게 확인하는 절차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출판사 문을 나서는 순간, 조금 전까지 숨을 죽이고 있던 시들이 다시 귓가에 말을 건네왔다.
‘저 단어는 차라리 비워 두는 편이 낫지 않을까.’
‘거기서는 호흡을 바꾸어 행을 넘겨야 하지 않을까.’
‘끝맺음이 지나치게 친절하여 여운을 해치지는 않는가.’
하나의 의문이 꼬리를 물면 뒤이어 또 다른 문장이 고개를 들었다.
2차 교정지를 받기도 전 한층 더 미세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사 하나, 조그만 부호 하나, 행갈이의 미세한 틈새까지 온통 마음에 걸렸다. 단어 하나를 건드리면 시의 중심이 이동했고, 다른 단어를 가만히 들여놓으면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여백이 열렸다. 시는 결코 완결된 문장이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제 고유한 형상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는, 살아 있는 생물과도 같았다.
작가 닐 게이먼은 "영감이 절박함과 마감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온다"고 했다. 마감을 앞두고 거듭 시를 고치다 보니 그 말이 전과 다르게 가슴에 와닿았다. 마감이 새로운 영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동안 영감을 가리고 있던 망설임과 미련을 비로소 걷어내 주는 것은 아닐까.
시간이 넉넉할 때는 많은 갈림길이 있다. 이 단어도 그럴듯하고 저 단어도 아까워 보인다. 더 나은 표현이 어딘가 숨어 있을 것만 같아 자꾸만 문장 주위를 서성거리고, 고쳐 놓았다가도 이내 되돌아가며 버렸던 낱말을 다시 불러오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세상 밖으로 떠나보내야 할 순간이 오면 더 이상 모든 가능성을 붙잡고 유예할 수는 없다. 수많은 갈림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남길 것과 버릴 것을 결정해야 한다. 바로 그 절박함 속에서 흐릿했던 문장이 오히려 선명해지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퇴고란 그저 시간이 넉넉하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닌 듯싶다.
한 달의 시간을 더 얻는다고 해서 한 달 먼저 지금의 문장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문장은 충분히 길을 잃고 헤맨 뒤에야 제 길을 보여 주고, 어떤 단어는 다른 단어들을 몇 번이고 밀어내 본 뒤에야 비로소 자기가 들어앉을 자리를 드러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넉넉한 시간이 아니라, 문장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때’일지도 모른다.
원고를 써 내려가는 동안 시는 늘 내 안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에 마음이 먼저 붙들렸고, 그 말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그러나 책이라는 옷을 입고 다른 사람에게 건너갈 순간이 다가오자 시는 조금씩 나에게서 떨어져 나와 홀로 서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내가 쓰고 있는 시’가 아니라, 머지않아 ‘누군가가 읽게 될 시’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한 뼘의 거리가 그동안 가까이 있어서 보이지 않던 흠을 비로소 보여 주었다.
퇴고란 단순히 부족한 곳을 찾아 고치는 작업만은 아닐 것이다. 오래도록 함께 살아온 글이 스스로 제 모습을 찾아갈 때까지 곁에서 기다려 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감 또한 단지 끝을 다그치는 시간이 아니다. 더는 미룰 수 없기에 작품이 내는 목소리에 가장 깊이 귀를 기울이게 되는 순간이다. 이제 정말 되었다고 몇 번이나 말해 보았건만, 시는 또다시 나지막이 나를 부른다.
‘아직, 여기에 하나 남아 있다고.’
다시 조용히 연필을 쥐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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