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의 즐거움

2026. 7. 27. 11:13여백/살아가는이야기

 

수확의 즐거움

 

 

어제 옥상 정원에서 포도를 수확했다.

수확이라 하니 거창하게 들리지만, 정성을 들여 가꾼 열매를 거두는 일이니 작은 수확이라도... 거둠의 크기는 열매의 양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간이 결정하니까.

손녀에게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려고 며칠을 미루었다. 그사이 너무 익어버리지는 않을까 마음 졸였지만, 다행히 포도는 기다려 주었다. 주말까지 기다린 시간이 오히려 수확의 일부가 되었다.

올해는 욕심을 조금 줄였다. 여린 송이들을 많이 솎아내고 스무 송이에만 봉지를 씌웠다. 얼마 전 거센 바람에 한 송이가 떨어져 나갔지만, 남은 열아홉 송이는 봉지 속에서 제 무게를 견디며 탐스럽게 알알이 익어 갔다. 옥상에는 작은 화단과 함께 체리 한 그루, 블루베리 네 그루, 포도 두 그루, 대추나무 한 그루가 산다. 꽃들은 물만 주면 햇살과 계절을 따라 때 맞춰 꽃을 피운다. 그러나 유실수는 다르다. 열매를 맺는 순간부터 경쟁자가 생기기 때문이다.

체리는 새들의 몫이었고, 블루베리는 경쟁자와 함께 나누는 몫이었으며, 포도만이 비로소 우리의 몫이 되었다. 올해는.

작년에는 몇 알 달리지 않던 체리가 올해는 가지마다 검붉게 익어 갔다. 주말이면 손녀와 함께 따리라 기대하며 아침마다 옥상에 올라 열매를 살폈다. 그러나 손녀가 오기 하루 전날, 새들이 한발 먼저 거두어 갔다. 방조망 치는 것을 미룬 탓이니, 먼저 수확해 간 새들을 탓할 수만도 없다. 그렇게 올해 체리 농사는 새의 차지가 되었다.

블루베리만큼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꽃이 지자마자 방조망을 촘촘히 둘렀다. 그런데 하루는, 방조망 안에서 직박구리 세 마리가 태연하게 블루베리를 쪼고 있었다. 어디로 들어왔을까. 망을 아무리 살펴도 틈은 보이지 않았다.

비밀은 다음 날 드러났다. 한 마리가 방조망을 향해 몸을 다이빙하듯 던졌다. 촘촘한 그물코를 바람처럼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내가 만든 경계, 4cm 그물코는 사람의 기준이었을 뿐이었다. 새들에게는 그냥 열린 문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절반쯤은 우리 몫으로 건졌다. 잘 익은 열매는 새들이 먼저 따고, 우리는 그들이 남겨 둔 열매를 거둔다. 블루베리는 익는 때가 제각각이라 우리의 경쟁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내년에는 더 촘촘한 방조망을 준비해야겠다.

포도는 달랐다. 봉지 덕분에 새들의 눈을 피해 온전히 우리 차지가 되었다. 손녀는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포도송이를 따면서도 재미있다며 연신 웃음꽃을 피운다. 언젠가 이 아이가 자라, 할아버지와 함께 옥상에서 직박구리보다 먼저 익은 열매를 찾던 여름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작은 정원은 제 몫을 다한 셈이다.

생각해 보면 열매를 새들과 나누는 일이 아까운 것만은 아니다. 자연이 길러 낸 것을 사람만의 몫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녀석들이 잘 익은 열매를 알아보고 먼저 따 먹으니 새의 영리함을 잘 대비해야 할 것 같다. 

어린 시절, 시골집 지붕 끝에 까치밥을 남겨 두던 마음처럼, 풍경처럼...

포도 18송이를 따고 한 송이는 남겨 두었다.

올여름 우리 옥상을 함께 살아낸 깃털 달린 이웃들에게 보내는 작은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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