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해방

2018. 3. 2. 01:01여백/살아가는이야기









돌아서면 과제물, 돌아서면 출석시험,

산 하나를 넘었다 싶으면 또 숨돌릴 틈 없이 다가오던 높은 산 기말고사

4년간 정말 치열하게 살아 봤다. 기말시험 치르고 느끼던 그 해방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는데 이제 그 압박에서 완전히 해방되니 시원섭섭하기까지 하다.


버킷리스트 1번을 이뤘다.

회사를 졸업하고 학교에 입학했다.

의욕은 넘쳤지만, 늦게 하는 공부는 생각과 달리 만만하지 않았다.

교재 한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앞 페이지의 내용이 하얗게 지워져

낭패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정신을 집중하고

몰입을 하니 어느덧 머리도 기름을 친 듯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느낀 자신감과 용기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했다. 과락 없이

4년 만에 졸업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이왕 할 바엔 제대로 해 보자.

고시를 준비하는 것도 취업하기 위해 성적 올리는 것도 아닌 깨우침을 위한

공부를 해 보자.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어디까지인지 한 번 확인해 보자.

애쓴 결과 1학년은 설정한 목표를 달성했다.


욕심이 생겼다. 공부는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 아닌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거리를 두었던 문과도전해 보고 싶었다.

국문학과와 중문학과를 견주다가 일단 국문학과 2학년으로 편입했다.

이번에는 의욕이 너무 앞선 것 일까? 적성이 문과가 아닌 데다 1학년에 배우는 

 총론을 건너뛰고 2학년으로 편입했으니 사방이 벽으로 우겨 쌈을 당한 느낌...

기출문제를 보고 기겁을 했다. 문제를 보면 답은 차치하더라도 감이라도 잡혀야

하는데 국어가 딴 세상 말같이 생소하기까지 했다.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1학년부터 다니지 2학년으로 편입했느냐며 국문학과 시험은 문제지를 다 읽기도

전에 시험시간이 종료되는 과목도 있다며 겁을 준다. (선배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다른 시험지는 2쪽짜리인데 온통 한자에다 4쪽이나 되는 시험과목이 있었다.)


문제에는 답이 있고, 난관은 돌파하라고 있는 것.

1학년 교재를 모두 샀다. 교재는 준비를 했는데 부족한 것은 시간,

그래 이제부터 3년 동안만 눈 딱 감고 앞만 보고 달려 보자. 비상을 걸었다.  

그 좋아하던 산행도 줄이고, 학기 중에는 오직 공부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강의는 모두 내려받아 핸드폰과 USB에 담았다. 자동차 오디오는 켜면 무조건

강의가 나오게 하고, 동네 뒷산을 오르거나 길을 걸을 때도 강의를 듣거나 외웠다.

그렇게 하여 국문학과 6학기 동안에 8학기 전공과목 전부를 이수했다.

최종 평균 학점은 A-, 평균점수 93점, 4년간 치열하게 공부한 결과

졸업증서와 덤으로 성적우수상도 받았으니 보람도 있다.


살아오면서 보람과 성취감을 가장 크게 느꼈던 일은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겨울 때 백두대간과 정맥길을 혼자 걸으며

그 처절했던 시절을 이겨낸 것과 이번에 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한 것이다.

이 두 가지 일은 스스로 결정하고, 과정 또한 자기 주도적(self-directed)으로

최선을 다해서 이루어 내었기에 자부심도 크다. 백두대간과 정맥을 걸으면서 얻은

인내와 용기, 자신감은 인생의 변곡점을 가져다 주었다. 그 때 그 열정이라면 세상에서

못할 것이 없겠다는 자신감과 용기가 회사를 마치고 곧바로 학교로 향할 수 있게 했다.

40여 년 전 공부가 하고 싶어 U대학교 야간대학에 입학을 하였지만,

출장이 잦은 업무로 인해 아쉽게 학업을 중하차 한 것이

그동안 恨으로 남아 있었는데 이렇게 젊을 때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룰 수 있어 감사하다.


이제

그동안 읽지 못한 책도 읽고, 미뤄 두었던 산도 찾고,

여행도 하며,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도 많이 가져야겠다.

1년쯤 여유를 가지고 준비하여 다시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아프리카 배낭여행에 도전해 보아야겠다.


산에 올라야 산 넘어 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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