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한 장

2020. 3. 17. 00:04여백/살아가는이야기








마스크 한 장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마스크 품귀현상을 겪고 있다. 말 그대로 마스크 구입 대란이다. 이 마스크 대란은 한적한 시골이라고 비켜가지 않았다. 오히려 연로하신 분이 많은 시골이 더 문제인 것 같다. 

부산 사는 동생과 교대로 매주 엄마를 뵈러 시골을 가는데, 지난 주에는 코로나가 위험하다며 당분간 오지 말라고 하셔서 가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무한정 찾아 뵙지 않을 수없는 것 아닌가. 평소에도 인적이 드물었던 마을이 더 한산하다. 마을 회관도 문을 닫은 지 오래되었다.


저녁을 먹고 TV를 보는데 출생 연도 별 공적 마스크 구매 요일 안내를 한다.

엄마도 솔깃한 모양이시다. 

지난번 추운 날 마스크 사러 읍에 가서 고생하신 이야기를 무슨 무용담 같이 하셔서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낼은 일찍 가서 줄 서야 데재?”하신다.

“아임미더 엄마는 금요일 날 가야 됨미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모래가야 덴다꼬?” 하시길래

캘린더의 금요일에 표시하고, 

“달력 표해 놓은 날에 주민등록증 가지고 가야 마스크를 살 수 이썸미더” 하고 설명을 드렸지만, 이번에는 또 얼마나 고생을 하실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마스크를 사지도 못하면 얼마나 속상해 하실지 걱정이 된다. 

서랍을 열어보니 마스크가 몇 장 있다.

“엄마, 마스크 사러 가지 마이소. 필요하면 구해 드릴게요.” 라 말씀 드렸지만, 엄마는 한 번 마음을 먹으면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한 가지 일에 골몰하시는 분이라 안 되겠다 싶어 

“엄마, 오는 목요일 밤에 또 올 테니 금요일 날 같이 사러 가입시더.”


울산 돌아오는 길에 읍내 약국을 다 돌면서 마스크 판매 시간을 물어봤다. 

약국마다 마스크 오는 시간을 알 수 없다며 시원한 답을 주지 않았는데, 한 곳에서 8시에 번호표를 나누어 주고, 오후에 마스크와 교환해 준다는 답을 들은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


목요일, 시골로 출발하기 전 읍내 약국에 전화를 걸어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마스크 판매한 시간을 물으니 두어 곳은 10시, 제일 큰 약국은 10시도 팔고 오후 2시도 팔았다며 내일은 몇 시에 팔지 모르겠다고 한다. 다행히 지난번 8시에 번호표를 나눠준다고 한 약국은 내일도 8시부터 순번 표를 나누어 주겠다고 한다. 


“엄마, 7시에 아침 먹고 7시 40분에 읍에 가입시더.”

밥을 막 시작했는데 윗집에 사시는 인단 아주머니가 

“7시 버스로 몇 사람 가고 작은 차로 또 몇 사람 갔다.”라면서 엄마를 빨리 나오라고 하신다. 

지난번, 엄마가 가실 때 인단 아주머니하고 같이 가면 되겠다고 하시길래, 

“인단 아주머니는 수요일이고, 엄마는 금요일이라서 같이 가더라도 인단 아줌마는 마스크를 안 준다.” 했는데.. 오히려 인단 아주머니가 더 바쁘게 준비를 하신 것 같다.


서둘러 출발한 탓에 약국 문 열 시간은 한참 남았다.

약국 앞에 줄을 선 사람도 없다. 오늘이 장날이지만 보름 전부터 전통 시장도 열리지 않는다. 시간 여유가 있어 약국 옆 병원에 엄마와 인단 아주머니 물리 치료 접수를 하고 약국으로 가서 번호표를 받았다. 

물론, 엄마는 해당 요일이어서 번호표를 받았지만, 인단 아줌마는 번호표를 받지 못했다. 약사가 내일과 모래 중 한 날에 오면 마스크를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러자 그걸 그냥 주면 되지 먼 데서 왔는데 뭐 그러냐며 실망하시는 모습이 역력하다. 마스크는 10시 이후에 번호표와 교환해 주겠다고 한다. 마스크 판매에 약사도 손이 많이 가는 것 같다.






근래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방역 당국의 고군분투와 헌신적으로 애쓰는 모습이 숙연할 정도인데, 요즘 마스크 관련하여 정말 혼란스럽다. 특히, 대부분의 언론과 의사들이 혼란을 부추기는 것 같아 화가 나기도 하고 한심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코로나19로 팬더믹이 선언된 현 상황에서 마스크는 전세계적으로 품귀현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니 모자라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현재 마스크를 대량 생산하는 나라가 대략 15개국 정도 된다고 한다, 전 세계의 마스크 하루 평균 생산량은 약 4,000만 장 수준으로, 그중 중국이 2,000만 장이고, 한국이 1,000만 장, 일본은 200만 장도 안 된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은 마스크 쓰는 것이 오히려 위험하다고 하고, 한국, 중국, 일본은 마스크를 써야 안전하다고 한다. 어느 것이 옳은지는 헷갈리지만, 분명한 것은 꼭 써야 할 사람과 써야 할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경중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전 국민이 모두 쓰기에는 마스크가 턱없이 부족한데 전문가인 척하는 의사는 TV나 언론에 대고 마스크를 꼭 써야 안전하고, 일회용은 한 번 쓰고 버려야 되며, 면 마스크는 효과가 없다고 공자님 같은 말만 하고, 언론은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부추겨 너나 할 것 없이 마스크 사는 대열에 합류하게 만든다.


전 국민이 하루에 1장씩 사용할 정도로 마스크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 않느냐? 

의사가 전문가집단이라면, 국민들을 마스크 구입 쟁탈전에 내몰 것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언론 또한 국민이 혼란 없이 꼭 필요한 사람이 먼저 구할 수 있도록 보도해야 함에도 선정적인 기사로 무한경쟁으로 내몰고 있으니 이게 제대로 된 언론인가?

궁여지책으로 요일제 판매를 시행하고, 마스크가 있는 약국을 알리는 앱까지 등장하지만, 공급 자체가 못 따라가니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구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꼭 써야 하고, 일회용이니까 하루 쓰고 버려야 안전하다는 이따위 말을 하면 유치원생하고 뭐가 다르겠는가?

우리나라는 그나마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마스크 사정이 좋은 나라다.

전문가라면 전문가답게 좀 더 책임 있는 자세로 공익을 위해 지혜를 모아주었으면 좋겠다.


각설하고,

물리치료를 마쳤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가니 10시, 약국에서 번호표와 마스크 두 장을 교환했다. 마스크를 건네받으신 엄마는 큰 횡재를 한 냥 기분이 좋으신 것 같다. 그런데 그 시간에도 '표가 동이 났다'고 하니 '표를 어디에서 살 수 있느냐?'고 물으시는 어르신, 오늘은 해당하는 날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이해되지 않는 듯 막무가내로 달라고 하는 어르신.. 약국에 약 사러 오는 사람은 없고 전부 마스크 사러 온 사람들 같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농촌은 동네 이장을 통해 나눠주면 안 될까?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엄마가 인단 아줌마에게 

“아침부터 고생해따”며 마스크 한 장을 건넨다. 한참을 사양하시다 받으시면서 

“나도 타면 한 장 주꺼마” 하신다.

“엄마, 이제 엄마도 당분간 회관에도 갈 일 없으니 있는거로 아껴 쓰시고 마스크 더 사러 가지 마입시더. 담에는 일요일 날 올게요.”

오늘 마스크를 살 수 있는 날이지만 나 만이라도 이 북새통에 가세하고 싶지 않았다, 당분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고, 손 자주 씻으며 개인위생 관리에 더 노력하면 되겠다 싶다. 오늘 내가 사지 않은 마스크 두 장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 갔으면 하는 소박한 마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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