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을 만난 기분
시집을 내면서 뜻밖의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다. 그중에서도 가장 반가운 것은, 그동안 인연을 맺었던 분들에게 다시 안부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직장과 교회,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며 알고 지내던 분들, 신세를 지고 도움을 받았던 분들, 함께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며 힘을 모았던 분들, 마음이 잘 맞아 의기투합했던 동지들…. 연락이 끊겼던 이들에게도 시집을 보내며 오랜만에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다행히 전화번호가 바뀌어도 이름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간직해 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번호부에 남아 있지 않았다면 기억에서도 멀어졌을 사람들을, 여기저기 수소문해가며 하나둘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축하한다며 인터넷으로 시집을 직접 사겠다는 지인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서명해서 줄 테니 사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효섭이는 달랐다. 받을 것은 받는 것이고 살 것은 사야 한다는 듯,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시집 다섯 권을 직접 구입해서는 서명을 해달라고 내밀었다. 그러면서 내일 고향에 벌초하러 가는 길에 금동창 장로님을 만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순간 마음이 뜨거워졌다.
'금 장로님이라면 내가 직접 찾아뵙고 전해드려야 할 분인데.'
효섭이가 중간에서 생각지도 못한 큰일을 해주는구나 싶었다.
금동창 장로님.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다. 그분을 아는 사람치고 실력이 출중해 회사에서도 크게 인정받았던 분이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더 오래 기억하는 것은 실력보다도 그분의 인자함과 겸손함, 그리고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다.
그분에게 놀랐던 첫 기억부터가 남다르다.
H사에 입사한 뒤 회사 생활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당시 차장님이셨던 금 장로님을 뵈러 본관 건물 3층 사무실을 찾아갔다. 하필이면 기름 묻은 작업복 차림이었다. 사무실 아가씨들이 기름 냄새만 나도 코를 잡고 피하던 시절이었다.
사무실 맨 뒷자리에 앉아 계시던 장로님을 찾아가자, 그분은 나를 보고는 일어서시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의자를 옆으로 내미시며 말씀하셨다.
"잘 찾아오셨어요. 여기 앉으세요."
순간 당황했다. 나도 놀랐지만 주변 직원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사무실과 현장 작업자 사이의 차별이 심했고, 현장 작업자를 그렇게 대하는 간부는 거의 없던 시절이다. 도대체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기에 차장님이 저렇게 대하는가 하는 표정들이었다. 그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교회 청년회 모임에서 장로님이 들려주시던 특강은 지금도 또렷하다. 해박한 지식을 쉽게 풀어, 열정적으로 전하시던 말씀에 우리 청년들은 깊이 감동하고 감화되었다. 갈증과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생수와도 같았다.
세상을 살아가며 부딪치는 문제들, 그 시절 청년들이 안고 있던 고민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쉽게 답을 찾지 못했던 난제들을 장로님은 당신의 경험과 지혜를 곁들여 풀어주셨다. 우리가 그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던 분이다.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났지만, 이사를 하고 근무지가 바뀌고 세상사에 쫓기다 보니 끊어진 인연을 다시 잇는 일은 자꾸만 미루어졌다. 그러는 사이 기억 속의 한 장면으로 남으며, 그렇게 어느새 사십 년이 흘렀다.
그런데 효섭이를 통해 시집이 장로님께 전달되자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내가 먼저 전화를 드려야 하는데, 장로님께서 먼저 전화를 주신 것이다. 이산가족을 찾은 듯 반가운 목소리였다.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그 시절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울로 가는 차 안이라고 하셨다. 오랜만의 통화였지만 어색함은 없었다. 마치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사십 년 세월 동안 많은 것이 변했을 텐데도, 장로님은 내 시집에 실린 백두대간과 산행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셨다. 여쭈어보니 당신도 백두대간을 종주하셨고 낙동정맥까지 타셨다고 한다. 참 신기했다. 사십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우리는 산이라는 같은 길 위에서 다시 만난 셈이었다.
장로님은 시집 제목에서 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당신 나름의 깊은 해석을 들려주셨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짚어주시니, 시집을 내면서 품었던 여러 마음에 큰 힘이 되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생각했다. 참 감사한 일이다. 연결될 인연은 이렇게 연결이 되는구나.
이제는 전화번호도 알게 되었으니, 가끔이라도 안부를 전해야겠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첫 시집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를 쓰고 책을 만든 일은 단지 한 권의 시집을 세상에 내놓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래전 함께했던 사람들에게 다시 안부를 묻고, 끊어진 줄 알았던 인연을 다시 잇는 일이 되었다. 어쩌면 이번 시집은 시집이라기보다, 오래 묵혀두었던 인연들에게 보내는 한 통의 안부편지인지도 모르겠다.
통화 중 그 시절 지인의 연락처를 여쭈었더니, 장로님께서는 곧바로 문자를 보내주셨다.
"오늘 이산가족 만난 기분이요. 000은 폰 000-000-000이니 좋은 만남 있기를 바라오."
그 문자를 읽고 다시 한참을 생각했다. 시집 한 권이 사십 년 동안 끊어져 있던 인연을 다시 이어주었다. 그리고 그 인연은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내 첫 시집은 오래전 인연들에게 보내는 안부편지가 되었다. 금동창 장로님께도 그 편지가 닿았다. 사십 년 만에 다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끊어졌던 인연의 끈이 다시 이어졌다.
참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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