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 톨스토이

2011. 7. 24. 23:13시,좋은글/좋은글

 

 

 

 

 

톨스토이의 '러시아 민화집'에

<사람은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글이 있다.

탐욕스런 한 사나이가 지평선에 해가 떨어지기 전에 한 치라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는 욕심으로 걸음을 재촉하다가 지쳐서 쓰러져 죽고 마는 내용인데,

그 소설의 끝은 다음과 같은 글로 맺고 있다.

 

"바흠(주인공의 이름)의 하인은 괭이를 들고 주인을 위해 구덩이를 팠다.

그 구덩이는 바흠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단 2미터의 길이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그곳에 묻혔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How Much Land Does a Man Need?

 

LEO TOLSTOY

 
  

 

 

 

 

 

 

 

1


도시에 사는 언니가 시골의 여동생을 찾아왔다. 언니는 도시 상인의 아내였고, 동생은 시골농부의 아내였다. 자매는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언니가 자신의 도시 생활에 대해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크고 안락한 집에 사는지, 아이들에게는 어떤 옷을 입히고 음식은 어떤 것을 먹는지, 그리고 어떤 마차를 타고 어디를 놀러 다니며 어떤 연극을 보러 다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동생은 분한 생각이 들어 장사치들의 생활을 헐뜯으면서 자신들의 생활의 나은 점을 늘어놓았다.

 


“누가 뭐래도 난 언니의 생활과 내 생활을 바꾸고 싶지 않아요. 우리들 사는 꼴이야 물론  보잘 것 없지요. 하지만 우린 지금껏 근심이란 걸 모르고 살거든요. 언니 말대로 도시생활은 깔끔해서 좋을지 모르지만 운수가 사나워 망해먹기라도 하는 날엔 하루아침에 빈털터리 신세가 되는 것 아니에요? ‘손해와 이득은 손의 앞뒷면과 같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오늘의 부자가 언제 알거지가 될지 누가 알겠어요? 거기에 비하면 우리들의 생활은 안전하고 확실하죠. 큰 부자는 못 될지 몰라도 배를 곯는 일은 없으니까요.”

 


언니가 그 말을 되받아서 말했다.

 


“배를 곯지 않는다고? 그래서 소나 돼지처럼 살아도 좋단 말이야? 좋은 옷 한 벌 입어 보지도 못하고, 변변한 사교생활도 없이? 네 남편이 뼈 빠지게 일하면 뭐하니? 그래봤자 평생 이 돼지우리를 벗어나지 못할 테고, 네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살아가게 될 텐데.”

 


동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우리의 방식인걸요. 대신 우리네 생활은 건전하고 자유로워요. 누구에게 굽실거릴 일도, 누군가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죠. 하지만 도시 생활이란 유혹과 불안의 연속이잖아요? 오늘이 아무리 좋아도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죠. 이를테면 형부만 해도 언제 어떤 유혹에 걸려 재산을 몽땅 날리고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될지 누가 알겠어요?”

 

 

 

 

 


동생의 남편 바흠이 벽난로 곁에서 자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대화에 끼여 들었다.

 


“그건 사실이죠. 우리네 농부들을 어릴 때부터 어머니 품같은 이 땅을 가꾸며 살아 왔기 때문에 어리석은 짓에 한눈 팔 틈이 없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땅이 너무 적다는 거죠. 만일 나에게 원하는 만큼의 땅이 있다면 난 그 누구도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겁니다. 악마까지도.”

 


자매는 차를 마시며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릇을 치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벽난로 뒤에서 악마 하나가 이들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듣고 있었다. 농부가 아내의 말을 거들어, 땅만 있으면 악마도 두렵지 않다고 큰소리치는 것을 듣고 악마는 몹시 약이 올랐다.

 


‘좋아! 그렇다면 어디 한판 겨루어 보자. 소원하는 땅을 듬뿍 안겨주어 네 놈을 홀려볼 테니까.’

 

 

 

2

 


그 마을에 바렌카라는 애칭을 가진 한 여지주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약 120데샤티나(*324에이커. 1에이커는 4.047평방미터) 정도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제껏 소작인들을 노엽게 하거나 억울하게 하는 일 없이 서로 의좋게 지내오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한 퇴역 군인이 그녀의 관리인으로 들어와서는 사사건건 벌금을 매겨 농부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바흠도 조심을 한다고 했지만, 아무리 신경을 써도 그의 말이 귀리 밭을 짓밟는다든지 송아지들이 목초지에 들어간다든지 하는 사건이 발생하곤 했다. 관리인은 그때마다 벌금을 매겼다.

 


바흠은 꼬박꼬박 벌금을 물어주었지만, 그럴 때마다 애꿎은 집안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하곤 했다. 덕분에 그는 여름을 나는 동안 꽤 많은 죄를 짓게 되었다. 그래서 가축을 헛간에 들이게 되었을 때는 오히려 그것을 기쁘게 생각했을 정도였다. 사료는 부족했지만 걱정거리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겨울동안 그 여지주가 땅을 팔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저택 관리인이 그 땅을 사들이려 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소작인들은 그 소식을 듣고 한탄했다.

 


“만일 땅이 그 자의 손에 들어간다면, 그는 지금보다 훨씬 심한 벌금으로 우리를 못살게 굴 게 틀림없어. 우리가 그 땅 없이 산다는 건 불가능한데 말이야. 어쨌든 우리 모두는 그 땅 위에 살고 있으니까.”

 


농부들은 한덩어리가 되어 여지주가 찾아가서, 그 땅을 저택 관리인에게 팔지 말고 자기들에게 양도해 줄 것을 간청했다. 그들은 저택 관리인보다 더 비싼 값을 쳐주겠다고 약속했다. 부인은 승낙했다.

 


농부들은 조합을 만들어 그 땅을 한꺼번에 사들일 방법을 의논했다. 그들은 회의를 거듭했다. 그러나 좀처럼 결론이 나질 않았다. 악마가 훼방을 놓아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농부들은 각자의 능력에 맞춰 적당한 면적을 따로따로 사기로 결정했다. 여지주는 동의했다.

이웃 사람 하나가 20데샤티나의 땅을 샀는데 부인이 땅값의 반을 1년 뒤에 값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말을 듣고 바흠은 몹시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동네 사람들이 땅을 모두 사버리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의 아내와 의논했다.

 


“사람들이 땅을 모두 사들이고 있소. 우리도 10데샤티나쯤은 사야 되지 않을까? 그러지 않고는 살아갈 방도가 없어. 그 관리인이란 작자가 벌금으로 숫제 우릴 집어삼키려 드는 판이니.”

 


내외는 땅을 살 궁리를 했다. 그들에게는 저축해 둔 돈이 100루블 정도 있었다. 거기다 망아지 한 마리와 꿀벌 절반을 팔고 아들을 머슴살이 보내고 처남에게 얼마를 꾸어 가까스로 땅값의 반 정도를 마련했다. 바흠은 미리 숲이 딸린 15데샤티나 정도의 땅을 봐놓고 여지주를 찾아가 흥정을 하고 계약을 마친 다음 땅값의 절반은 현찰로 지불하고 나머지는 2년후에 갚기로 약속했다.

 


그리하여 바흠은 마침내 자기 땅을 갖게 되었다. 그는 씨앗을 사다가 그 땅에 뿌렸다. 첫해에 풍년이 들어 1년 농사로 여지주와 처남에게 진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이제 바흠은 명실공히 지주가 된 것이었다. 자기 땅을 갈아 씨를 뿌리고 자기 땅에서 건초를 마련하여 자기 땅에서 땔감을 베어내고 자기 땅에서 가축을 기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땅을 갈러 가거나, 작물의 싹이 돋아나는 밭이며 목초지를 둘러보러 나갈 때마다 바흠은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그 땅에서 피는 꽃이나 풀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땅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바가 없었지만 바흠에게는 그곳이 아주 특별한 땅이 되었던 것이다.

 

 

 


3

 


바흠은 기쁨으로 충만한 나날을 보냈다. 이웃 농부들이 그의 작물이나 목초지를 짓밟는 일만 없다면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제발 좀 조심해 달라고 농부들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놓아먹이는 소들이 여전히 그의 목초지를 침범했고, 때로는 우리를 뛰쳐나온 말들이 그의 경작지로 뛰어들기도 했다.

 


바흠은 그때마다 그것들을 달래서 몰아낼 뿐 법에까지 호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자 결국은 지쳐서 재판소에 고발을 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그도 모든 문제가 땅이 워낙 좁아서 생기는 것이지, 농부들에게 나쁜 마음이 있어서는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는 생각했다.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 이런 식으로 가다간 숫제 내 땅에다 자기네들의 방목지를 만들려고 덤빌 테니까. 절대로 그럴 순 없다는 걸 보여줘야지.’

 


그는 소송을 걸어 자신의 농작물에 피해를 입힌 농부에게서 벌금을 받아냈다. 그 뒤 다시 그런 일이 생기자 그는 이번에도 고발을 했고, 상대방은 벌금을 물었다. 이런 일이 거듭되자 이웃 농부들은 그를 욕하기 시작했고, 이젠 고의로 그의 땅을 짓밟기 시작했다. 그 중 한 사람이 밤중에 그의 숲에 들어가 수십 그루나 되는 참피나무의 껍질을 모조리 벗겨 버렸다. 다음날 아침 바흠이 숲 근처를 지나가다 보니 뭔가 희끗희끗한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나무들은 껍질이 벗겨지고 밑동이 잘린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그루터기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바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누군지 잡기만 해봐라. 내 가만두지 않을 테다.’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그래, 쇼무카야! 그놈이 아니고는 이런 짓을 할 사람이 없어.’

 


바흠은 쇼무카의 집으로 가서 동정을 살폈다.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으나 두 사람이 서모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그 바람에 더욱 쇼무카의 짓이라는 심증을 굳혔다, 그는 쇼무카를 고발했다. 두 사람은 법정에 출두했다. 재판은 몇 번이나 되풀이되었다. 그러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쇼무카는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바흠은 더욱 화가 나서 재판장이며 이장한테까지 행패를 부렸다.

 


“당신네들은 모두 도둑놈 편을 들고 있소. 당신네들이 정직하다면 도둑놈을 무죄로 석방하지는 않았을 거요.”

 


바흠은 마을 사람들과도 자주 다퉜다. 그러자 이웃들은 그의 집에 불을 질러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바흠은 넓은 땅을 소유하게 되었으나 인심을 잃는 바람에 외톨이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 무렵, 사람들이 새로운 땅으로 이주하려 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바흠은 생각했다.

 


‘나야 이곳을 떠날 이유가 없지. 이웃들이 여길 떠나면 빈 땅이 많아질 것 아닌가. 그 땅을 사들인다면 우리살림도 한결 나아질 거야. 이대로는 답답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 말이지.’

 


어느 날, 그곳을 지나가던 한 농부가 바흠을 찾아왔다. 바흠은 농부를 하룻밤 재워주기로 하고 식사를 대접한 뒤 함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흠이 농부에게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묻자, 농부는 그저 볼가 강을 따라 내려오는 길이라면서, 자신은 지금까지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막일을 하고 지냈다고 대답했다. 그 농부는 자신이 일하던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오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 조합에 가입하여 한 사람당 10데샤티나씩의 땅을 배당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농부는 말을 이었다.

 


“땅이 어찌나 비옥한지 농사가 그렇게 잘될 수가 없답니다. 호밀을 파종하면 말 잔등이 보이지 않을 만큼 쑥쑥 자라는데, 이게 또 어찌나 실한지 다섯 움큼으로 한 다발이 될 정도지요. 어떤 농부는 알거지 신세로 맨주먹만 달랑 들고 왔다가 지금은 말 여섯 필에 암소를 두 마리나 기르는 처지가 됐죠.”

 


바흠의 마음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살기 좋은 땅을 두고 이 좁은 곳에서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땅과 말을 팔아 당장 그곳으로 가는 거야. 가서 새출발을 하는 거다. 이렇게 비좁은 땅덩어리에서 살다보면 공연한 죄나 짓게 될 뿐이지. 우선 가서 그곳 사정을 알아본 뒤에 이사를 해야겠다.’

 


여름이 되자 그는 그곳을 향해 떠났다. 사마라까지는 기선을 타고 볼가 강을 따라 올라가, 거기서부터 다시 400베르스타(*베르스타는 약 3,500피트)를 걸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보니 모든 것이 들은 대로였다. 농부들은 각자 10데샤타니나씩의 땅을 배당받아 풍족하게 살고 있었으며, 모두 조합에 가입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돈만 있으면 배당받은 땅 이외에도 데갸티나당 3루블 정도에 좋은 땅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모든 사정을 자세히 살펴본 바흠은 가을이 되자 집으로 돌아와 재산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땅을 좋은 값에 팔았으며 잡과 가축도 매각했다. 그리고 조합에서도 탈퇴한 뒤 봄이 오기를 기다려 가족을 데리고 새로운 땅으로 떠났다.

 

 

                         

4

 


바흠은 가족과 함께 새로운 땅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어느 큰 마을의 조합에 가입하기로 했다. 그는 마을 어른들을 초대하여 보드카를 대접하고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했다. 얼마 후 그는 조합원이 되었고, 다섯 명의 가족에 대한 50데샤티나의 땅과 목장을 배당받았다. 이제 그가 가진 토지는 이전의 세배가 되었고 땅도 기름졌다. 살림은 이전보다 열배는 나아졌다. 그는 충분한 경작지와 목장을 소유했으며, 가축도 얼마든지 기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만족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차츰 생활이 안정되고 살림이 불어나자 이곳도 역시 비좁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이주한 첫해는 그는 밀을 파종했다. 농사는 대풍이었다. 그는 더 많은 밀을 갈고 싶었다. 그러나 가진 땅만으로는 부족했다. 또 밀을 심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땅도 있었다. 밀은 놀리고 있는 땅에 갈아야 했다. 그리고 거기에 1년이나 2년 농사를 짓고는 다시 잡초가 자랄 때까지 휴경지로 묵혀 두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땅은 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차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 땅 때문에 곧잘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돈이 많은 사람도 적은 사람도 모두 그 땅에 파종하기를 원했다. 그러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은 으레 상인들한테 빚을 지게 마련이었다.

 


바흠은 가능한 한 많은 밀을 심고 싶었다. 그래서 이듬해에는 상인을 찾아가 1년 기한으로 땅을 빌렸다. 그는 더 많은 밀을 갈았다. 밀은 잘 자랐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15베르스타를 걸어야 했다. 그는 부근의 농부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한편으론 장사에도 손을 대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을 보았다.

 


그는 생각했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땅을 살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한결 형편이 나아질텐데.’

 


그래서 바흠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땅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느덧 3년이 흘렀다. 그는 더 많은 땅을 빌려 더 많은 밀을 심었다. 해마다 풍년이 들었고 돈도 웬만큼 모으게 되었다.

 


이제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바흠은 해마다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어야 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어디에 조금이라도 좋은 땅이 있다는 소리가 들리면 그곳 농부들이 이내 달려가서 몽땅 차지하곤 했다. 우물쭈물하다가 땅을 빌리지 못하면 한 해 농사를 공치는 수밖에 없었다.

 


3년째 되던 해에 바흠은 한 상인과 공동으로 농부들로부터 목초지를 빌렸다. 그러나 목초지를 개간해 경작을 마쳤을 때 농부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한 해 농사가 헛일이 되고 말았다. 그는 생각했다.

 


‘이게 만일 내 땅이라면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 필요도 없고 불쾌한 꼴을 당할 필요도 없을 텐데.’

 


그래서 영구히 사들일 땅을 찾고 있던 중에 바흠은 한 농부를 만났다. 그 농부는 500데샤티나의 땅을 갖고 있었는데 파산을 하여 사정이 급한 탓에 아주 싸게 판다는 것이었다. 바흠은 그 농부와 흥정을 했다. 여러 차례 교섭한 끝에 1,500루블로 값을 정하고, 절반은 현금으로 지불하며 나머지 반은 후불로 한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

 


일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을 즈음, 지나가던 장사치 하나가 바흠의 집에 들렀다.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장사치는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바시키르로부터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바시키르에서 그곳 주민들로부터 1,500데샤티나의 땅을 샀는데, 땅값은 겨우 1,000루블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바흠이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자 장사치는 설명했다.

 


“내가 한 일이라곤 마을 노인네들의 비위를 맞춰준 것뿐이죠. 나는 100루블어치쯤 되는 옷과 카펫과 차 한 상자를 그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술을 대접하는 것으로 1데샤티나당 20카페이카라는 헐값에 그 땅을 손에 넣은 거죠.”

 


그러면서 등기 서류를 보여주었다.

 


“그곳은 작은 강을 끼고 있는데 온통 풀로 뒤덮은 넓은 들판이랍니다. 모두 바시키르 주민들의 땅인데, 그들은 양처럼 순해빠진 얼간이들이어서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땅을 살 수 있지요.”

 


바흠은 생각했다.

 


‘그런 곳이 있는데 나는 고작 500데샤티나의 땅을 사기 위해 1,000루블을 써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빚까지 짊어져 가면서? 그곳에 가면 똑같은 1,000루블로 엄청나게 넓은 땅을 살 수 있는데......’

 

 

 

5

 


바흠은 그곳으로 가는 길을 자세히 물었다. 그리고 장사치가 떠나자마자 자신도 떠날 채비를 했다. 그는 집안일을 아내에게 맡기고 일꾼 한 사람은 데리고 출발했다. 도중에 그는 작은 도시에 들러 장사치가 말한 대로 차 한 상자와 선물들과 술을 샀다. 그리고 가시 길을 서둘러 50베르스타를 여행했다. 7일 만에 두 사람은 바시키르 인들의 유목지에 도착했다.

 


모든 것이 장사치가 말한 그대로였다. 바시키르 인들은 작은 강을 따라 펼쳐진 넓은 초원의, 펠트 천으로 덮개를 씌운 마차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땅을 경작하지도 않았고 빵을 먹지도 않았다. 널따란 초원에는 가축들이 떼지어 풀을 뜯고 있었으며 말들도 무리를 지어 노닐고 있었다.

 


덮개마차 뒤에는 망아지들이 매여 있었는데, 하루에 두 번씩 암말을 데려다 젖을 먹였다. 아낙네들은 말 젖으로 마유주를 만들었고, 이것을 휘저어 치즈를 만들기도 했다. 바시키르 남자들이 하는 일이란 마유주를 마시며 양고기를 먹고 피리를 부는 것뿐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정중하고 쾌활했으며, 온 여름을 축제 기분으로 지내고 있었다. 모두들 문맹이어서 러시아말도 할 줄 몰랐지만 하나같이 매우 친절했다.

 


바흠은 보자 바시키르 인들은 덮개마차에서 몰려나와 그 주위를 에워쌌다. 그 중에서 러시아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나와 인사를 했다. 바흠은 땅을 좀 살까 해서 왔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매우 기뻐하며 바흠을 바닥에 양탄자가 깔려있는 훌륭한 마차로 안내했다. 그들은 그를 양털 방석 위에 앉히고 마유주와 차를 권했다. 또한 양을 잡아 양고기를 대접했다.

바흠은 선물을 꺼내서 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바시키르인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들은 자기네끼리 왁자지껄 떠들어대다가 통역에게 무어라고 이야기를 했다.

 


“당신이 자기들 마음에 들었다는 말을 해달라는군요. 그리고 우리네 관습에 다라 당신의 선물에 대한 답례를 하고 싶으니, 우리의 소유물 가운데서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씀하시랍니다.”

 


통역이 말했다.

 


“당신네들이 가진 것 중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땅을 조금 얻었으면 합니다. 제가 살던 곳은 워낙 땅이 부족해서요. 게다가 너무 많이 경작하여 이젠 아주 황폐해져 버렸답니다. 그런데 당신네는 땅이 아주 많군요. 토질도 아주 비옥하고요. 저는 일찍이 이렇게 좋은 땅을 본 적이 없습니다.”

 


바흠이 말했다. 통역이 그의 말을 옮겼다. 바시키르 인들은 서로 의논을 하는 눈치였다. 바흠은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하는 모습으로 보아 매우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입을 다물고 바흠을 바라보았다. 통역이 말했다.

 


“이 사람들은 단신의 친절에 보답하기 위해 기꺼이 당신이 원하시는 만큼의 땅을 드리겠다고 하는군요.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원하시는 땅을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뭔가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차츰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한바탕 언쟁이 벌어졌다. 바흠은 그들이 무슨 일로 다투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통역이 설명해 주었다.

 


“몇몇 사람들이 땅에 관한 일은 촌장에게 물어봐야 하며, 촌장의 말을 들어보지 않고 결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또 다른 몇몇은 촌장의 승낙 없이도 땅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고.”

 

 

 


6

 


바시키르 인들은 계속 다투고 있었다. 이때 여우털 모자를 쓴 사람이 들어왔다. 떠들던 사람들은 조용해졌다. 통역이 말했다.

 


“이분이 촌장어른이십니다.”

 


바흠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가지고 온 선물 중에서 제일 좋은 옷과 제일 좋은 차를 꺼내 촌장에게 주었다. 촌장은 그것을 받아들고 윗자리에 앉았다. 바시키르 인들이 그에게 지금가지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촌장은 주의 깊게 듣고 있다가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러시아어로 바흠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어디든 당신이 원하시는 땅을 가지십시오. 여긴 땅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바흠은 생각했다.

 

 

 

 

 


‘마침내 내가 원하는 만큼의 땅을 가질 수 있게 됐어! 이런 일일수록 빨리 결정을 내려야지. 땅을 차지하라고는 했지만 곧 다시 빼앗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친절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긴 정말 땅이 넓군요. 하지만 제게 필요한 건 그저 얼마간의 땅입니다. 다만 어느 것이 제 땅인지, 그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군요. 하느님께서도 생명을 주셨다가는 곧 거두어 가시지요. 당신들은 좋은 분들이니깐 제게 땅을 주겠다고 하시지만 언젠가 당신들의 후손이 땅을 도로 빼앗아갈는지도 모를 일 아닙니까?”

 


“옳은 말씀이오. 그렇게 해드리지요.”

 


촌장이 말했다. 바흠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일전에 당신들은 한 상인에게 땅을 팔면서 등기 증서를 만들어 주셨다지요. 제게도 그와 같이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촌장은 바흠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여기도 서기가 있으니깐 시내로 나가 정식으로 증서를 작성하도록 하시지요.”

 


“땅값은 어떻게 되나요?”

 


바흠이 물었다.

 


“가격은 일정합니다. 하루당 1,000루블이지요.”

 


바흠은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루당이라면 몇 데샤티나를 말하는 겁니까?”

 


촌장이 말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계산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하루치로 계산해서 땅을 팔지요. 하루 동안에 당신이 돌아보는 곳 전부가 당신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그 하루당 가격이 1,000루블이지요.”

 


바흠은 깜짝 놀라서 말했다.

 


“하루 종일 돌아본다면 상당히 넓은 땅이 될 텐데요.”

 


그 말을 듣고 촌장은 웃으면서 대꾸했다.

 


“어쨌든 그 전부가 당신의 땅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따르지요. 해 지기 전까지 출발한 장소로 되돌아오지 못하면 당신은 땅도 갖지 못하고 돈을 되돌려 받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돌아본 땅을 어떻게 표시하지요?”

 


바흠이 물었다.

 


“당신이 마음에 들어하는 곳에 우리가 같이 가서 서 있을 겁니다. 당신은 거기서 한 바퀴 돌아오면 됩니다. 갈 때 괭이 하나를 가지고 가서 적당한 곳에 표시를 해두십시오. 구부러지는 지점에 구멍을 파고 잔디나 한 덩이씩 던져두면 충분합니다. 나중에 구멍과 구멍을 서로 연결하면 되니까요. 어떤 식으로 돌아오든 그건 당신의 자윱니다. 다만 해 지기 전까지는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그렇게 해서 원 안에 들어간 땅은 모두 당신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바흠은 뛸 듯이 기뻤다. 그들은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하고, 다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양고기를 먹고 술을 마셨다. 그러는 동안 날이 저물었다. 사람들은 바흠을 위해 포근한 털이부자리를 마련해 준 다음 각자의 텐트로 돌아갔다. 그들은 다음날 아침 해뜰 무렵에 출발지점에 모이기로 약속했다.

 

 


7

 


바흠은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땅에 관한 생각 때문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한 멀리 돌아와야지. 하루에 50베르스타는 충분히 걸을 수 있으니까. 둘레가 40 베르스타라면 굉장한 땅 아닌가? 그 중 신통치 않은 부분은 팔거나 농부들에게 빌려주면 될 거야. 제일 좋은 땅을 골라 거기 정착해야지. 황소 두 마리가 끄는 쟁기를 사고 일꾼도 두 명 정도는 필요할 거야. 50데샤티나 정도만 농사를 짓고 나머지는 가축을 놓아 먹일 목초지로 삼아야지.’

 


바흠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녘에 깜빡 졸았다. 잠에 빠지자마자 꿈을 꾸었는데, 그는 텐트 안에 드러누운 채 누군가가 마차 밖에서 낄낄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웃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바시키르 인들의 촌장이 마차 바깥에 주저앉아 무엇이 우스운지 배를 움켜쥔 채 낄낄대고 있었다. 그는 촌장에게 다가서서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웃고 계십니까?”

 


그런데 다시 보니 그는 촌장이 아니라 언젠가 자기 집에 들러 이곳의 땅 이야기를 해준 그 장사치였다.

 


“아니, 언제부터 여기 와 있었소?”

 


바흠이 말을 건넨 순간, 장사치는 어느새 볼가 강 부근에서 일했다던 그 농부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다시 살펴보니 농부의 모습은 간 데 없고 뿔 달린 악마 하나가 그곳에 앉아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앞에는 속옷 바람에 맨발인 사내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바흠은 조심스럽게 사내를 살펴보았다. 사내는 이미 죽어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다름 아닌 바흠 자신이었다. 바흠은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그것은 꿈이었다.

 


“뭐 이런 꿈이 다 있담?”

 


중얼거리며 열린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니 벌써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출발할 시간이군. 사람들을 깨워야겠어.

 


바흠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고 있는 일꾼을 깨워 출발 준비를 하라고 이른 후 자신은 바시키르 인들을 깨우러 갔다.

 


“일어나세요. 땅을 정하러 나갈 시간이 됐습니다.”

 


바시키르 인들이 일어나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조금 있자니 촌장도 왔다. 바시키르 인들은 언제나처럼 마유주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들은 바흠이 자기들에게 차를 대접해 주기를 원했지만 바흠으로서는 그렇게 한가히 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는 말했다.

 


“서두릅시다. 출발할 시간이 됐습니다.”

 

 

 


8

 


바시키르 인들은 말이나 마차를 타고 출발했다. 바흠은 괭이를 준비해 가지고 자기가 대리고 온 일꾼과 함께 자신의 마차를 타고 떠났다. 초원으로 나가자 날이 밝았다. 일행은 바시키르 말로 ‘시칸’이라 불리는 작은 언덕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각자 타고 온 말이나 마차에서 내려 한곳에 모였다. 촌장이 바흠에게 다가 와 손으로 초원을 가리켜 보이면서 말했다.

 


“지금 보시는 모든 땅이 우리의 소유입니다. 그러니 마음대로 좋은 곳을 고르십시오.”

 


바흠의 두 눈은 활활 타올랐다. 눈앞에 펼쳐진 땅은 온통 무성한 풀로 덮여 있었고 손바닥처럼 평평하며 거무스름했다. 움푹한 곳에는 사람의 가슴에 닿을 정도로 키가 큰 풀들이 빽빽이 우거져 있었다.

 


촌장이 여우털 모자를 벗어 땅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여기가 출발점입니다. 이곳에서 출발해서 이곳으로 돌아오십시오. 당신이 돌아온 곳은 모두 당신의 땅이 되는 것입니다.”

 


바흠은 돈을 꺼내 그 모자 곳에 넣었다. 그리고 카프턴(*띠가 달린 긴 웃옷)을 벗고 조끼 바람에 가죽띠로 단단하게 배를 졸라매었다. 빵이 든 작은 주머니는 목에 걸고 물병은 허리띠에 묶고 각반을 단단하게 조인 다음 일꾼에게서 괭이를 받아드는 것으로 출발 준비는 끝났다.

 


그는 어느 쪽으로 가는 게 좋을지 곰곰이 생각했다. 어느 쪽이나 다 좋은 땅이었으므로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였다. 그는 동쪽을 향해 가볍게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절대로 시간을 낭비해선 안 돼. 오전 중의 선선한 시간에 많이 걸어 두어야지.’

 


이윽고 지평선 위로 해가 떠오르자 바흠은 괭이를 둘러메고 초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걸었다. 1베르스타쯤 가서 걸음을 멈추고 괭이로 작은 구덩이를 판 다음 그 안에 잔디를 넣어 금방 알아 볼 수 있도록 표시를 했다.

 


그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가다가 작은 구덩이를 파고 또 가다가 구덩이를 파고 하면서 그는 쉬지 않고 걸었다. 한참 가다가 바흠은 뒤를 돌아보았다. 햇볕 아래 시칸 언덕이 또렷이 바라보였다. 그 위에 모여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고, 쇠로 만든 마차 바퀴가 햇살을 받아 번쩍이는 것도 보였다. 그는 이제 5베르스타쯤 걸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날이 상당히 더워졌으므로 그는 조끼를 벗어 어깨에 둘러메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날씨는 점점 더 무더워졌다. 그는 태양을 올려다보았다. 벌써 아침식사를 할 시간이었다.

 


“4분의 1은 걸은 셈이군. 하지만 방향을 돌려 잡기는 아직 좀 이른 감이 드는걸, 장화나 벗고 조금 더 걸어야지.”

 


그는 장화를 벗어 허리띠에 매달고 계속 걸었다. 신발을 벗으니 걷기가 한결 수월했다. 그는 중얼거렸다.

 


“이대로 5베르스타만 더 가서 왼쪽으로 돌아야지. 여기 땅은 정말 훌륭한데. 이런 땅을 포기하기는 너무 아깝단 말이야.”

 


앞으로 나아갈수록 땅은 점점 더 좋아졌다. 그래서 그는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계속해서 걸었다. 한참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이제는 시칸 언덕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개미만한 검은 점으로 보였고, 무엇인가 보일 듯 말 듯 반짝거렸다.

 


“됐어. 이쪽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이쯤에서 방향을 돌려볼까. 이런, 땀을 너무 많이 흘렸군. 물을 좀 마셔야지.”

 


바흠은 걸음을 멈추고 구덩이를 파서 잔디를 넣은 다면 물통 뚜껑을 열어 물을 마셨다. 그리고는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는 걷고 또 걸었다. 풀은 점점 더 무성해지고 날씨는 더욱 무더워졌다. 태양을 올려다보니 그새 점심 때였다.

 


“좋아. 조금 쉬었다 가자.”

 


그는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누울 생각은 없었다.

 


“누웠다간 그대로 잠들어 버릴지도 모르니까.”

 


잠시 앉았다가 그는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까보단 걷기가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점심을 먹은 덕분에 기력이 어느 정도 회복된 탓이었다. 그러나 이제 날은 점점 더 무더워지고 있었다. 어느덧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 시간만 더 견디자. 그걸로 평생의 이득을 버는 셈이니까.”

 


그는 계속해서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왼쪽으로 돌아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눈앞에 촉촉한 저지대가 나타났다. 그 땅을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그는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이윽고 그 땅의 가장자리에 이르러서야 그는 구멍을 파서 표시를 한 다음 두 번째로 방향을 틀었다.

 


바흠은 시칸 언덕 쪽을 돌아보았다. 땅에서 피어오른 열기 때문에 어른거리는 대기 속으로 저 멀리 시칸 언덕 위의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좋아. 이쪽은 충분히 잡았으니 이번엔 좀 짧게 잡아야지.”

 


그는 세 번째 방향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해는 벌써 서쪽으로 떨어져가고 있었다. 세 번째 방향을 꺽은 후 겨우 2베르스타밖에 걷지 못한 상태였다. 출발점까지는 아직 15베르스타나 남아 있었다.

“안되겠어. 땅이 반듯하지 않더라도 곧장 서둘러서 돌아가야지. 더 욕심을 부려서는 안돼. 이만해도 굉장한 땅을 가지게 된 거니까.”

 


바흠은 급히 구덩이를 파고 곧바로 시칸 언덕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9

 


시칸 언덕을 향해 걸어가는 바흠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고, 자리는 상처투성이였으며, 기운이 다 빠져 발을 떼기조차 힘들었다. 잠시라도 걸음을 멈추고 숨을 돌리고 싶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부지런히 걸어도 해 지기 전에 도착할까 말까 였다. 태양은 잠시도 기다려 주지 않고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아아, 내가 잘못한 게 아닐까? 너무 욕심을 부린 것이 아닐까? 시간에 대지 못하면 어떡한담?”

 


그는 혼자 중얼거리며 시칸 언덕을 바라보았다. 지는 햇살 아래 언덕이 희미하게 바라보였다. 갈 길은 아직 멀었는데 해는 벌써 지평선 위에까지 내려와 있었다.

 


바흠은 더욱 서둘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피곤했지만 걸음을 늦추지 않고 길을 재촉했다. 그는 걷고 또 걸었다. 그러나 언덕까지는 여전히 멀기만 했다. 그는 조끼와 장화와 물통을 벗어 던지고 괭이를 지팡이 삼아 걸었다,

 

 

 

 

 


그는 다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아,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어. 욕심 때문에 일을 망친 거야. 해 지기 전에 저곳까지 간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해.”

 


이런 생각을 하자 숨이 더욱 가빠왔다. 그는 달렸다. 땀에 젖은 옷이 몸에 찰싹 달라붙었고, 입안은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가슴은 대장간의 풀무처럼 부풀어오르고 심장은 망치질하듯 두근거렸으며 다리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흐느적대는 것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이러다가 죽어 버리기라도 한다면....”

 


 바흠은 두려웠다. 그렇다고 걸음을 멈출 도 없었다.

 


 “그렇게 달려왔는데 여기서 멈춰 버린다면 다들 나를 바보라고 하겠지.”

 


 그는 달리고 또 달렸다. 이제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바시키르 인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고함 소리를 듣자 그의 심장의 고동은 더욱 격렬해졌다. 바흠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계속 달렸다. 바야흐로 해가 넘어갈려는 찰나였다.

 


 이제 출발점은 손을 뻗으면 잡힐 듯이 가깝게 보였다. 사람들이 언덕 위에 서서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땅바닥에 놓인 여우털 모자와 그 안에 들어있는 돈까지 볼 수 있었다. 두 손으로 배를 움켜잡고 땅바닥에 앉아 있는 촌장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바흠은 새벽녘의 꿈을 떠올렸다.

 


“많은 땅을 차지했지만 하느님은 내가 그 땅에서 사는 걸 허락해 주시지 않을 모양이야. 아아, 나는 스스로를 파멸시켰어. 도저히, 도저히 저기까지 갈 수 없을 것 같아.”

 


바흠은 태양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해는 이미 땅 속으로 들어가 형체가 보이지 않았고 마지막 둥그스름한 부분마저 이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바흠은 안간힘을 쓰며 양발을 번갈아 내디뎠다. 몸은 이미 앞으로 기울어지고 있었으나 두 다리가 겨우 쓰러지는 것을 막아주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시칸 언덕에 도착했다. 바로 그 순간,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는 해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알았다. 바흠은 신음소리를 냈다.

 


‘모든 것이 헛일이 되고 말았구나.’

 


그가 포기하고 멈춰 서려는 순간, 바시키르 인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서 있는 곳에서 보면 해가 진 것 같지만 언덕 위에는 햇살이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어 시칸 언덕 위로 달려 올라갔다. 그 작은 언덕 위에는 아직도 작은 빛이 비치고 있었다. 바흠은 모자가 놓여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모자 앞에는 촌장이 배를 움켜잡고 웃으며 앉아 있었다.

 


바흠은 새벽에 꾸었던 꿈을 떠올리며 신음을 토했다.

 


“아아!”

 


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털썩 쓰러지면서 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촌장이 소리쳤다.

 


“참으로 훌륭하오! 당신은 정말 좋은 땅을 차지했소.”

 


바흠의 일꾼이 달려들어 주인을 부축하려 했다. 그러나 바흠의 입에서는 피가 쏟아졌다. 그는 마침내 숨을 거둔 것이었다. 바시키르인들은 안됐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일꾼이 괭이를 들어 바흠을 위해 구덩이를 팠다.

 
 
그 구덩이의 길이는 바흠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의 키와 같은 3아르신(*약 2미터)에 불과했다.

 
 
바흠은 거기에 묻혔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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