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은 얼굴 외 / 최백호

2013. 10. 13. 22:15Music/Music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이며 펄 벅의 대지 같은 닳도록 읽고 또 읽던 문학 전집이 세월 속에 졸고 있다.
모든 것이 늙고 병들고 잊혀가기 마련인데 꿋꿋이 거실 한쪽에 버티고 있는 한나절, 사반세기를 훌쩍
넘기고도 십여 년의 나이를 더 먹은 유난히 손때 묻은 노트에 이끌리듯 눈길이 꽂힌다. 좀체 손길이
닿지 않아 먼지가 쌓여 있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고 적벽돌 빛깔의 촌발 날리는 양장본 겉표지는 늘
가시권에서 벗어나 있곤 했다. 월남전에 참전한 이력의 소유자인 오촌 당숙에게서 받은 만년필 때문인지
빠이롯드 잉크 때문인지, 사반세기를 훌쩍 넘기고도 십여 년의 나이는 뺄셈의 세월 같다. 삽화까지 그려
넣은 수줍은 시절들을 넘길 때마다 문학 전집의 가슴 울리던 구절들, 뜻을 다 이해하지 못했던 난해한
명시들의 진득한 냄새가 새삼 가슴에 파고든다. 오래 잊혔던 추억을 한 장씩 넘기며 등을 댄 책장 속으로
깊숙이 침잠한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듯 그렇게 행복하지도 또 불행하지도 않다는 여자의 일생
마지막 구절이 뇌리 속에 뒤척이며 인생이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라고.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 김설하

 

 
 
 
 

 
  보고싶은 얼굴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거리마다 물결이 거리마다 발길이
휩쓸고 지나간 허황한 거리에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거리마다 물결이 거리마다 발길이
휩쓸고 지나간 허황한 거리에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낭만에 대하여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리 들어 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리 들어보렴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이  일어 버린것에 대하여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 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내마음 갈곳을 잃어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낙엽지면 서러움이 더해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눈길을 걸으며 눈길을 걸으며
옛 일을 잊으리라
 
거리엔 어둠이 내리고
안개 속에 가로등 하나
비라도 우울히 내려 버리면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거리엔 어둠이 내리고
안개 속에 가로등 하나
비라도 우울히 내려 버리면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하얀 겨울에 떠나요
 
 

 

  

부산 출신(1950년 생)으로,
1976년 제대 후 부산 음악살롱 무대를 전전하던 중
하수영과의 인연으로 서울로 상경하여 가수로 데뷔하였다.
데뷔곡은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라는 곡이 발표 3개월만에 6,000장이 판매되어
가요계에 최백호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78년에는 독특한 창법으로 연이은 히트를 하여
데뷔 1년만에 톱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가요제가 한창 무르익을 1979년에는인기가수 산울림, 김만준,
사랑과 평화, 전영 등과 함께 대학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가요계를 휩쓸며
주류를 이루던 트로트 가요를 밀어내고 새바람을 일으켰다.
데뷔와 동시에 전성기를 누비던 최백호는 1980년, 당시 국민배우 김자옥과 결혼하였고
<영일만 친구>라는 곡으로 TBC 방송가요대상 남자가수상을 수상하였다.
1983년에는 <고독>이라는 곡으로 MBC 10대 가수상,
KBS 가요대상 남자가수상을 수상하여 정상에 올랐다.
김자옥과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1984년 재혼한 후 다시 안정을 찾아 복귀.
1987년에는 삼각산에 들어가 가수로서의 마지막 승부를 걸고 작곡에 전념하였지만
1년후 <시인과 촌장>을 끝으로 1989년부터 미국으로 이민, 미국 LA에서 한인방송
라디오코리아 DJ로 활동하며 지냈다. 1993년에 그는 트로트로 전향하여 1995년,
삶의 허무와 지나간 시간에 대한 미련을 담은 <낭만에 대하여>라는 곡이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