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맥과 가락(가야)국

2009. 7. 26. 22:15山情無限/山



낙남정맥과 가락(가야)국





전기 가야



낙남정맥은 아직도 베일에 가려 있는 가락국 500년 역사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가락국이 서기 42년부터 532년까지 독특하면서도 찬란한 문화를 일구어 낼 수 있었던 까닭은 낙동강 언저리와 낙남정맥에 기대어 그 터전을 삼았던 때문이다.

비옥한 낙동강 가의 농경지와 낙남정맥 자락에서 나온 철 등 풍부한 물산 덕분에 일찍이 야철문화가 발달했고 막강한 국력을 가진 고대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낙남정맥


따라서 우리가 낙남정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야의 역사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야의 역사를 보면 삼한시대에는 구야국(狗耶國)으로 역사에 등장했으며, 그것이 가락국으로 발전해 가야 연맹체의 중심세력이 된 것으로 돼 있다.

서기 42년 수로왕의 건국에서부터 491년 10대 구형왕 때까지 역사를 이어오다가 신라 법흥왕 19년에 신라에 합병됐다. 

가야는 5∼6개의 소국가로 성읍 국가적인 형태에 머물러 있었으나 그 영역은 낙동강과 낙남정맥을 중심으로 상당히 넓었다. 




6 가야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는‘동은 황산강(낙동강), 서남은 창해(섬진강), 서북은 지리산, 동북은 가야산 이남으로 삼았다' 고 돼 있다.

또 6가야는 김해의 본가야(금관가야), 고령 대가야, 함안 아라가야, 진주(또는 함창) 고령가야, 성주 성산가야, 고성 소가야 등인데 대다수 영역이 낙남정맥과 낙동강 유역에 분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금관가야의 금관


가야는 건국설화부터 신비로워 1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역사가 베일에 싸여 있다.
서기 42년 3월 낙남정맥의 정기가 서려 있는 김해벌에는 나라 이름도 없이 모여 살던 구간(九干)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북쪽 구지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구지봉으로 올라가 흙을 파면서
‘거북아 거북아 네 목을 내놓아라/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
 (龜何 龜何 首其現也/若不現也 燔灼而喫也)란 노래를 불러라”는 것이었다.

이들이 그 말을 좇아 노래하고 춤을 추자 하늘에서 알 6개가 담긴 금합(金合)이 붉은 실에 매달려 내려왔다.

이튿날 그 황금 알이 모두 사내로 변해 있었는데 제일 큰형이 수로(首露)였고, 나라 이름을 대가락(大駕洛) 또는 가야국(駕倻國)이라 했다.
나머지 다섯도 각각 다른 나라의 왕이 됐다는 이야기가 바로 수로왕 탄강 설화다.




龜旨歌(迎神君歌) / 삼국유사 권2 가락국기 중




김수로왕


수로왕이 왕위에 오른지 7년 되는 해, 즉 48년 7월 어느 날 가락국 앞 서남쪽 해상에서 붉은 돛을 달고 붉은 깃발을 휘날리는 돛배에 인도의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 허황옥(許黃玉)과 신하, 노비 등 20여 명이 타고 들어왔다.

16세 공주는 “부왕과 모후가 꿈에 황천 상제로부터 가락국 임금 수로는 하늘이 내린 임금이니 공주를 보내 짝을 맺으라는 지시를 받고 저를 이곳으로 보냈습니다”고 말했다.

수로왕은 신하와 노비 15명을 돌려보내고 공주를 왕비로 맞이했다.

수로왕은 이미 예견하고 왕비를 맞기 위해 한 섬에서 기다렸는데 이 섬을 망산도(望山島)라 했고, 공주가 타고 온 배가 뒤집혀 돌이 됐다는 유주암(維舟岩), 공주가 첫 상륙한 마을을 주포촌(主浦村), 비단치마를 벗어 산신령에게 바쳤던 언덕을 능현(綾峴), 깃발을 휘날리며 들어온 바닷가를 기출변(旗出邊)이라 불렀다 한다. 망산도와 유주암은 용원 앞 바다에 있다.

신비로운 건국설화와 찬란했던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가락국은 그러나 마지막 구형왕대에 이르러 오히려 국력이 더 약했던 신라에 병합되고 마는 의문을 남기고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졌다.




구형왕릉


그 구형왕은 지리산 자락에 신비로운 돌무덤을 남기고, 또한 그의 아들 무력(武力)은 신라에 들어가 각간(角干)에 이르며 그의 손자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루는데 바로 김유신이다. 가야 역사의 두터운 베일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으나 낙남정맥은 베일 속의 일들을 알고 있겠지...




후기 가야



가야문화가 낙동강 문화의 원류이자 영남문화의 맥이었다는 것과 가야의 토양에서 통일신라의 화려한 문화가 움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가야의 옛땅인 낙남정맥 인근에 사는 가야의 후예들은 앞장 서 가야사의 꿈을 되찾고 그 베일을 벗길 책무가 있지 않을까?


          ◇ 가야사 주요 연표(개략)
 
            연 대             사   건                        근거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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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C  39년    변한이 신라에 항복                     삼국사기
           AD  42년    수로왕, 가락국 건국                    삼국유사
               48년    인도공주 허황옥, 수로왕과 혼인         삼국유사
              189년    가락국 허왕후 157세로 죽음             삼국유사
              199년    수로왕 158세로 죽음                    삼국유사
              209년    포상팔국 가락국 공격                   삼국사기
              40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 가야 공격            광개토대왕 비문
              452년    가락국 질지왕 왕후사 세움              삼국유사
              532년    금관국왕 김구해(구형) 신라에 항복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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