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실내악
베토벤은「피아노 3중주 op.11 E-flat(1793)」을 시작으로 피아노 4중주와 현악 4중주를 작곡하였다. 피아노 3중주와 4중주는 1798년 이전에 모두 작곡하였고, 현악 4중주는 1978년 이후부터 작곡하기 시작하였다.
피아노 3중주(piano trio)
피아노 3중주와 4중주는 본에서 시작되는 초기 창작 시기에 작곡되기 시작하였다. 첫 출판곡은 빈에서 작곡한 「피아노 3중주 op.1(1793∼1795)」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소나타 형식의 고전적인 4악장 구조로 되어있고, 제 3악장은 미뉴엣이나 스케르초로 되어있다. 1808년에는 2개의 「피아노 3중주 op.70(D, E-flat)」을 작곡하였다. D장조 3중주는 제 2악장이 신비하고 감정적인 표현이 두드러져서 'Ghost trio'라는 별명을 갖는다. 1811년에 쓴 제 7번 「대공 3중주 op.97 B-flat」는 오스트리아의 루돌프(Archduke Rudolph) 공작을 위하여 TMs 작품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현악 3중주(string trio)
베토벤 시대에 이르러 바이올린은 구조적으로 더욱 개량되었다. 운지판과 목 부분이 길어지고 몸체와의 경사도도 변경되었다. 브리지는 더욱 높아졌으며 활도 길어졌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에 맞추어 베토벤의 현악 작품도 새로운 기법을 추구하였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구성한 「현악 3중주 op.3 in E-flat」, 「세레나데 op.8 in D」, 「현악 3중주 op.9 (G, D, c)」, 「2개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로 구성한 현악 3중주 op.87 C, 전주와 푸가 e」가 있다.
현악 4중주(string quartet)
베토벤은 현악 4중주를 그의 가장 심오하면서도 난해한 음악적 아이디어들을 표현하기 위한 실험적인 매체로 활용하였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에 이르면 이 장르는 더이상 아마추어들을 위한 음악이 아니었다. 교향곡이나 소나타에서와 같이 베토벤은 연주가나 듣는 이의 한계를 고려한 어떠한 양보도 허용하지 않았으며 특히 그의 후기 현악 4중주에서 연주가나 청중에게 엄청난 집중력과 이해력을 요구하였다. 그의 현악 4중주는 시대별로 세 그룹으로 나뉜다.
(1) 6개의 초기 4중주 : op.18 1∼6 (F, G, D, e, A, B-flat. 1798∼1800) (2) 5개의 중기 4중주 : op.59 1∼3 (F, e, C. 1805∼1806) op.74 B-flat (하프4중주. 1809) op.95 f (세리오소. 1810) (3) 5개의 후기 4중주 : op.127 E-flat (1822/1824∼25) op.130 B-flat (큰 푸가를 가짐) op.131 c-shap (1825∼26) op.132 a (1824∼25) op.135 F (1826)
그의 초기 현악 4중주, 특히 op.18-3에서 고전주의적 정통은 실험적인 정신과 혼합되어 나타난다. 세 곡의 「라주모브스키 4중주 op.59」는 베토벤의 현악 4중주의 성숙한 양식을 대표하는 곡이다. 당시 비엔나 주재 러시아 외교관이었던 라주모브스키(Rasumovsky)에게 헌정된 곡들로 베토벤은 러시아 민요집에서 2개의 선율을 사용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조성적 관계와 형식 구조면에서 혁신적인 시도를 하였다. 즉 한 악장 안에서 부분부분의 구획선을 은폐시킴으로써 형식적 윤관을 흐리게 하였으며 때로는 악장과 악장 사이를 곧장 연결시겼다.
그의 후기 4중주는 선율적, 동기적, 조성적 관계에서 순환구조를 보여준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는 다성음악의 전통과 소나타 악장의 극적인 면, 새 시대의 시적인 내용을 실내악의 집중적인 형식에 결합시킴으로써 그 수준이 너무 높고 난해하여 당대의 청중들을 혼란시켰음은 물론 오늘날의 청중들에게도 결코 쉽게 이해되는 곡들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