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노트 / 문정희

2009. 10. 18. 21:50시,좋은글/詩





        가을 노트 / 문정희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한 말
        못다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머잖아
        한잎 두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녘
        고즈넉한
        볏단처럼 놓이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속에
        담아가는 것이지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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