絶望 / 金洙暎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拙劣)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

오래된 여행가방 김수영 (金洙暎,1921.11.27~1968.6.16) 스무 살이 될 무렵 나의 꿈은 주머니가 많이 달린 여행가방과 펠리컨 만년필을 갖는 것이었다. 만년필은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낯선 곳에서 한 번씩 꺼내 엽서를 쓰는 것. 만년필은 잃어버렸고, 그것들을 사준 멋쟁이 이모부는 회갑을 넘..

사랑의 변주곡(變奏曲) / 김수영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都市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3월을 바라보는 마른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