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산경표> 개정증보판 펴낸 박성태씨

2010. 9. 6. 12:56山情無限/山

 
[신 산경표] 개정증보판 펴낸 박성태씨
우리 산의 족보를 정리한 ‘비현실적인 사람’

 

 

 

<태백산맥은 없다>의 저자 조석필씨는 그를 ‘비현실적인 사람’이라 했다. ‘쌀 한 톨에 반야심경을 새기는 일처럼, 우리나라의 모든 산을 하나의 표 안에 잘 짜인 피륙처럼 엮어 넣은 비현실적인 사람이 박성태(朴成泰·67) 선생’이라 했다.


2004년 <신 산경표>를 펴내 산꾼들에게 “우리나라 산의 족보를 정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박성태씨가 <신 산경표> 개정증보판을 펴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북한 쪽 산줄기를 작은 줄기까지 모두 포함시킨 것이다. 그밖에도, 과거엔 기맥까지 이름 붙였으나 30km 이상 지맥 300개에 모두 이름을 붙였으며 30km 미만의 산줄기도 구분해 표시했다. 또 백두대간을 셋으로 나눠 북부대간, 중부대간, 남부대간으로 나누어 부르는 것을 제안했다. 강 일람표와 물줄기 표를 만들어 물줄기의 흐름을 쉽게 볼 수 있도록 했다.


▲ 자신이 만든 책을 들고 자신의 지도인 대한민국 산경도 앞에 선 박성태씨.

“신 산경표를 책으로 만들 때 원래 <남한 산줄기표>라고 제 나름대로 제목을 붙였는데 책이 나올 때는 <신 산경표>로 나와서 마음이 찜찜했습니다. 당시 북한 쪽은 대간, 정맥, 기맥 같은 큰 산줄기만 표시했거든요. 그리고 품절이 되다 보니 책을 살 수 없느냐는 요청이 계속 들어와서 기왕 찍는 거 북한 쪽도 해서 다시 만들자고 한 겁니다.”


직접 가볼 수 있는 땅이 아니었기에 그는 북한 쪽 줄기를 완성하고자 자료를 수소문하다가 <조선향토대백과>를 찾아낸다. 북한의 자연지명을 정리한 책으로 원고는 북한에서 썼으며 책은 우리나라에서 한정판으로 제작되었다. 더불어 일제 강점기에 발행한 <근세 한국 5만분의 1> 지형도와 옛날 소련군이 제작한 한반도 항공지도를 참고해 북측 산줄기를 완성했다. 이를 위해 그는 “통일부 북한지도열람실을 이용하며 일제강점기 지형도와 지명을 모두 대조했다”고 한다.


엑셀 프로그램을 기본으로 만들었으며, 한 칸만 바뀌어도 오류가 생겨 기존 <신 산경표>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한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새로 작업해야 했다. 대부분의 작업은 컴퓨터로 이뤄졌으며 ‘e-산경표’를 만든 대구의 최인찬씨가 산줄기의 거리를 잴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줘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주고받은 메일만 해도 수백 통은 될 것이란다. 이런 작업을 2년간 한 끝에 완성된 것이 <신 산경표> 개정증보판이다.


 
▲ 개정증보판과 2004년에 나온 초판.

“아침 6시에 일어나 작업 시작하면 점심을 안 먹고 저녁 7시까지 작업합니다. 밖에 나가 있을 때는 점심을 먹는데 집에 있을 때는 안 먹어요. 또 집중을 해야 하니까 그런 것도 있어요. 정신이 흐트러지면 꼭 오류가 나거든요. 작업하다 눈이 피곤하거나 안 풀리는 게 있으면 동네 산을 가요. 개정판 작업할 땐 광명의 구름산과 서독산을 많이 갔어요.”


책을 만드는 작업은 컴퓨터로 했지만 실제 그는 발로써 산줄기를 확인하는 걸로 유명하다. 백두대간과 정맥, 기맥은 2001년에 모두 완주했고 지금은 지맥을 종주하고 있다. 그 줄기만 100개인데 현재 60%를 종주했다고 한다. 고희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나이지만 일주일에 보통 이틀 정도 산행하며 하루에 12~15km를 간다. 초판을 만들던 당시 그는 덤불을 헤치고 가느라 찢어진 옷을 갈아 입어가며 발로 확인했다. 그 결과 <산경표>에 부분적인 오류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기본 원리에 의거,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은 새로운 산줄기를 제시했다.


조석필씨는 “산경표에 오류가 있다면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수정하고 보완하여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다. 박성태씨는 철저히 일관된 기준으로 엄청난 양의 산에 족보를 부여했다. 그러나 “산꾼들은 다 산경표대로 9정맥을 했다”고 한다. 그가 제시한 남한의 큰 산줄기는 1대간 7정맥이다.


책에는 한반도의 산줄기 족보를 지도로 펴냈다. 이에 대해 그는 “지난 책의 지도는 지도 제작업체에서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직접 만들었다”며 다만 측량협회 승인 때문에 제작업체의 이름을 빌렸다고 한다. 지도는 북부대간, 중부대간, 남부대간 세 장으로 나뉘어 있다. 산을 찾아보려는 사람들이 “백두대간 어느 산”이라고 하면 찾기 힘들어서 더 찾기 편리하게 바꿨다고 한다.


그는 공무원을 하다가 세무사로 전환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돈벌이를 잘할 만큼 융통성이 없어” 1998년에 그만뒀다. 그러면서 “평생 숫자를 만지고 성격이 꼼꼼하다 보니 전혀 엉뚱하게 산줄기 지도를 만들게 됐는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책이 나온 지금 그는 “속이 후련하다”고 한다. 산경표에 관해서는 “이제 더 이상 할 것도 없고 더 할 생각도 없다”고 얘기한다.


▲ 금오지맥 염속산 전망바위에서 산세를 살피는 박성태씨.

“사실 이건 젊은 사람은 답답해서 못 보는 책이지. 사실 별 필요 없는 것이지만 나라의 지도가 만들어지려면 그 이론에 바탕이 되는 책이 필요한 거죠. 조사하고 기록하며 산행을 하다 보면 점점 재미가 없어집니다. 이젠 기록에 대한 부담 없이 산행을 즐기고 싶어요.”


덧붙여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없냐고 묻자 선생은 “특별히 하고 싶은 얘긴 없고, 다리나 말썽 안 나고 꾸준히 산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산에 관심 없는 일반인들은 <신 산경표>가 어떤 의미인지 아마 전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여졌던 일본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의 우리나라 산맥론에 대해 분개하며 대간과 정맥을 타 본 사람이라면, 가시덤불을 헤치고 고생하며 산경표에 대한 열정으로 그 긴 산줄기를 타본 사람이라면 안다. 박성태 선생이 한 작업이 얼마나 힘든 것이며, 이 책이 매달 쏟아지는 수많은 책들과 얼마나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 글 신준범 기자
  사진 허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