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 9. 06:07ㆍ시,좋은글/좋은글
민숙아!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인데,
사람이면 누구나 다 메고 다니는 운명의 자루가 있고,
검은 돌은 불운, 흰돌은 행운을 상징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이 돌들을 하나씩 꺼내는 과정이란다.
그래서 삶은
어떤 때는 예기치 못한 불운에 좌절하여 넘어지고,
또 어떤 때는 크든 작든 행운을 맞이하여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는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아마 너는 네 운명자루에서 검은 돌을 몇 개 먼저 꺼낸 모양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남보다 더 큰 몫의 행복이
분명히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또 하나, 꼭 네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로키산맥 해발 3000미터 높이에 수목한계선 지대가 있다고 한다.
눈보라가 얼마나 심한지 이 나무들은 생존을 위해
그야말로 무릎꿇고 사는 삶을 배워야 했던 것이지.
그런데 민숙아,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꿇은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온갖 매서운 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나름대로 거기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며
제각기의 삶을 연주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민숙아,
너는 이제 곧 네 몫의 행복으로 더욱더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내라고..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중에서
장영희 [張英姬, 1952.9.14~2009.5.9]
1952년 9월 14일 출생, 생후 1년 만에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으나 역경을 딛고
서울대학교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를 거쳐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77년 동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이듬해 미국으로 유학하여 1985년 뉴욕주립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85년부터 모교인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번역가와 수필가로도 활동하였다.
2001년 유방암, 2004년 척추암을 이겨낸 뒤 다시 강단에 섰다가
2008년 간암으로 전이되어 투병하였으나 2009년 5월 9일 사망하였다.
목발에 의지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옮길 수 없는 장애와
세 차례의 암투병 속에서도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수필과 일간지의 칼럼 등을 통하여 따뜻한 글로 희망을 전하였다.
수필집으로 "내 생애 단 한번"(2000), "문학의 숲을 거닐다"(2005),
"축복"(2006),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2009) 등을 펴냈고,
"살아 있는 갈대", "슬픈 카페의 노래", "이름 없는 너에게" 등을
번역하였으며,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하였다.
한국호손학회·한국헨리제임스학회·한국마크트웨인학회 편집이사,
신영어영문학회·한국비교문학회 이사로 활동하였으며,
1981년 한국번역문학상, 2002년 올해의 문장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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