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연표3(해방후~2002년)

2008. 12. 3. 01:15역사/독도

 

독도연표3(해방후~2002년)

 

1945년
*8월 15일. 포츠담 선언을 거부했던 일본은 원폭투하와 소련의 참전 등으로 결국 이날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
*9월 2일. 연합국과 일본 대표는 동경만 미국 전함 미주리(Missouri)호 선상에서 항복 문서에 공식 서명함. 태평양지구 미군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는 점령군 사령관으로서 일본의 어로활동을 일본 혼슈[本州]·홋카이도[北海道] 주변의 일정 해역에 한정하는 조치(MacArthur Line)를 선포함. 이 때 독도는 물론 제외되었음.
*9월 6일. 항복 이후 미국대통령이 SCAP(연합군 최고 사령관, 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 Powers)에 전달한 '미국의 초기정책 지침(United States Initial Post-Surrender Policy for Japan)'에서는 일본 "주권(Japanese Sovereignty)"의 지리적 범위를 다음과 같이 한정함. "혼슈[本州]·홋카이도[北海道]·규슈[九州]· 및 시코쿠[四國]와 주변 제 소도(小島)"
*9월 7일. 태평양 미군 사령부, 한반도 38°선 이남 점령을 선포함(사령부 포고 1호).
*9월 27일. 일본의 어로(漁撈)활동 제한 조치(MacArthur Line)의 범위를 확장함(독도는 물론 제외됨).
*11월 3일. 미국 대통령이 SCAP에게 보낸 '일본의 점령과 관리를 위한 초기 지침(Basic Initial Post-Surrender Directive to the SCAP for the Occupation and Control of Japan)'에서 점령군 사령관이 행사할 권한의 적용에 있어 [일본 영역범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함. "일본의 4개 본도(本島) 즉 홋카이도[北海道]·혼슈[本州]·규슈[九州] 및 시코쿠[四國]와 대마도(對馬島)를 포함한 1000여 개의 인접한 제 소도(小島)"

 

1946년
*1월 29일
연합국 최고사령부에서 내린 지령 677호 '약간의 주변지역을 정치상 행정상 일본으로부터 분리하는데 대한 각서'를 발표하면서 Liancourt Rocks를 일본영토에서 제외함을 3조에서 규정.
위의 규정에 대해 일본은 6조에 "최종적 결정에 관한 연합국의 정책을 표시한 것은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어 이것이 일본영토를 규정한 것은 아님을 주장.
우리나라는 이후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한다는 적극적인 규정이 없으므로 독도가 명확히 일본영토에서 제외되었음을 근거로 일본측의 주장에 반박.

 

1946년
*1월 29일 연합국최고사령부(SCAP)이 일본 제국정부에게 보낸 '약간의 주변 지역을 정치상 행정상 일본으로부터 분리하는 각서(Governmental and Administrative Separation of Certain Outlying Areas from Japan)' 즉 '연합군 최고 사령부 훈령 제677호(SCAPIN No.677)'에서는 일본의 종래 식민통치 영역에 대한 주권적 관할을 다음과 같이 분리함. "일본의 영역은 일본의 4개 본도(本島) 즉 홋카이도[北海道]·혼슈[本州]·규슈[九州] 및 시코쿠[四國]와 대마도(對馬島)를 포함한 1000여 개의 인접한 제 소도(小島)로 제한하고", "울릉도·독도·거문도 및 제주도를 일본의 영역 범위에서 제외함"(3항)· "한국에 대한 일본 제국정부의 정치적 행정적 관할을 배제함."(4항)
(연합국최고사령부는 위 근거에 의해 독도를 주한 미군정에 이관하였고 미군정은 이를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후 대한민국 정부로 반환함. 그러나 일본은 지령 677호는 행정권의 정지였을 뿐 영토의 처분은 아니라고 해석.) 
*6월 22일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일본 제국정부에게 보낸 '연합군 최고 사령부 훈령 제1033호(SCAPIN No.1033)'에서 '일본의 어업 및 포경업을 위한 인가구역의 설정(Areas Licenced for Japanese Fishing and Whaling)'에서 일본의 선박과 승무원은 독도로부터 12해리 이내에 접근하지 못하고 이 섬에 어떠한 접촉도 불가함을 명시함.

 

1947년
*8월 16∼25일. 한국산악회의 주관으로 [울릉도·독도 종합학술조사]를 실시함(단장 신석호). 각 섬들의 크기와 높이를 실측하고, 식물 및 수산물을 채집한 후 [산악회보고서]와 {수산}에 결과를 발표함.

 

1948년
*6월 8일 '미군 독도폭격 양민학살 사건' 발생.(독도를 미군의 폭격연습장으로 삼아 미군 폭격기의 무차별 폭격을 행하여 어민 150명~320명이 희생)
정부는 정부 수립 후 양민학살 사건을 미국 제5공군에 조회하였는데 미국 제5공군은 "독도와 그 근방에 출어 금지된 사실이 없었다. 독도는 극동 공군의 연습목표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회신만 답변.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 발발.

 

1951년
*4월 25일. 한국 정부가 미국 제5공군 당국에 독도 어민 피폭사건에 관해 조회함.
*5월 4일. 미국 제5공군은 독도 주변수역에 출어금지 조치를 한 사실이 없으며, 독도는 미 제5공군의 연습목표로 되지 않았다고 회신해 옴.
*6월. 독도 조난 어민 위령비 제막.
*7월 19일. 주미 한국 대사, 미일평화조약의 미국측 조인 초안에 일본의 영역권에서 제외되는 한국의 도서에 독도를 포함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함.
*8월 10일 (한국 주미대사의 요청에 대해) 미국무부는 "독도에 관해서는 우리들의 정서에 의하면 한국의 일부로써 다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며, 1905년경부터 시마네현 오끼지청 관할하에 있고, 이 섬은 예전에 한국에 의해 영토 주장이 이루어졌다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한국의 수정요구를 거부.
*9월 8일. 미국과 일본간의 강화조약('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이 체결됨. 조약 제2조 A항에는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권리·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음. 여기에 독도가 빠짐.
*10월 20일. 도쿄에서 SCAP측 옵서버가 출석한 상황하에 제1차 한일회담이  개최됨.

 

1952년
*1월 18일. 인접해양에 대한 대통령의 주권 선언(평화선 선언). 이승만 대통령은 독도와 그 영해가 포함된 '인접 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선언'(평화선)을 선포.(1945년 9월 28일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의 선언에 따른 국제적 관행)
*1월 28일. 일본 정부는 평화선 선포에 대해 "다께시마는 의문의 여지없는 일본영토"라는 항의 구술서를 보냄에 따라 이후 한일간에 구술서를 통한 독도영유권 분쟁이 시작.
*2월 12일. 한국은 일본에 각서를 보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인함과 동시에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반박.
*2월 25일. 제1차 한일회담 경위서 발표.
*4월 25일. 맥아더 라인(MacArthur Line) 철폐.
*4월 28일. 미국 일본 간의 강화조약 발효.
*5월 28일. 일본 시마네현 어업시험장 소속 시험선 '시마네마루(島根丸)'호, 독도영해를 침범.
*6월 25일. 한국전쟁의 혼란을 틈타 일본 수산시험선(미국기 게양) 1척이 독도 침범, 일본인 9명이 독도(동도)에 입도하여 '독도 조난 어민 위령비'를 파괴함.
*6월 27일. 일본인 8명이 독도에 상륙하여 협박 및 파괴 행위를 함.
*6월 28일.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2척이 미국기를 게양하고 독도를 침범, 경계표목과 게시판을 설치함.
*7월. 일본순시선 일본국 영토표식하고 갔음. 일본국 시네마현 다케시마
*7월 12일. 일본 선박, 독도에 침범하여 한국 경찰과 충돌.
*7월 26일. 미일안보조약 실시를 위한 미일합동위원회에서 독도를 미국 공군의 연습지역으로 지정함.
*7월 27일. 한국전쟁(6·25전쟁) 휴전 성립.
*9월 8일. 대일강화조약체결(샌프란시스코 조약)
*9월 17일. 일본 수산시험청 선박이 독도에 침범, 일본 관리 다수가 독도에 상륙함.

 

1953년
*2월 27일. 미국 공군은 한국 정부의 항의에 따라 독도를 미 공군 연습기지에서 제외함.
*4월 20일 '독도의용수비대'가 울릉군민에 의해 자발적으로 구성되어 독도에 상륙.
*5월  일본인들 독도상륙, 조난어부 위령비 파괴하고 일본영유권 표시. 독도의용수비대 일본인들 몰아냄
*6월 19일. 시마네현, 해방 이후에도 현 어민들에게 독도에 대한 어업허가권 발부함.
*6월 28일 일본 해상보안청이 순시선 2척으로 관리 30여명을 독도에 불법 상륙시켜 경계표를 설치
*7월. 변영태 외무부 장관 독도 성명 발표 (독도는 일본의 한국침략에 대한 최초의 희생지였다. 독도는 단 몇 개의 바위덩어리가 아니라 한국 독립의 상징이다. 이 섬에 손을 대는 자는 모든 한국인의 완강한 저항을 각오하라.)
*7월 8일. 한국 국회는 독도를 일본의 침공으로부터 보전할 것을 결의. 
*7월 12일. 독도의용수비대가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에게 발포 위협을 가해 격퇴.
*7월 13일. 일본은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역사적 사실 등을 인용하며 주장(일본 정부 견해-Ⅰ, No.186/A2).
*9월 9일. 한국은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측 주장을 역사적 사실을 들어 반박(한국측 구술서: 한국정부 견해-Ⅰ)

 

1954년
*5월 18일 독도의용수비대가 독도의 바위에 '한국령(韓國領)'이라는 문자를 새김.
*8월 1일. 한국은 독도에 항로표지인 등대를 설치하고 점화 개시.
*8월 23일. 일본,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문제를 제소할 것을 제의함.
*9월 15일 대한민국 체신부가 독도풍경이 그려진 우표를 2환짜리 500만장, 5환짜리 2000만장, 10환짜리 500만장 등을 각각 발행.(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같은 해 11월 29일에 구술서를 통해 우표발행은 독도를 한국 영토로 세계에 선전하려는 활동으로 항의.)
*9월 25일. 일본 정부는 구술서를 한국 정부에 보내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으로 위임하자고 제안.
*10월 28일. 한국,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실효적으로 한국의 영토이므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이유가 없다'고 이를 거부함.
*11월 21일. 일본 해상보안청의 순시선인 오키호와 헤쿠라호가 독도 해안에 접근하여 독도의용수비대가 경고 사격을 하자 퇴각.

 

1955년
*7월 8일. 한국, 독도에 신등대 설치.

 

1956년
*
12월 30일.
독도의용수비대가 경북 경찰청 울릉경찰서에 독도경비업무를 인계.

 

1957년
*일본, 한국 관민의 독도 상주 및 등대 상존에 항의.

 

1959년
*8월. 시마네현 총무부장, 독도 인광채굴에 대한 광구세와 연체금을 자국국민들에게 부과. 인광채굴권자는 1959년 8월 28일 합계금 35,480엔을 시마네현에 납부.
*9월 15일.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헤쿠라), 독도 영해를 침범.
*9월 28일. 일본 극우단체, 도쿄 히비야에서 24개의 극우단체가 '독도돌격대'를 조직하고 3척의 철선과 150명의 인원으로 독도탈취를 기도하다 실패함.

 

1960년
*일본, 한국의 등대 존속에 항의.

 

1961년
*한국, 일본의 항의에 반박.
*11월 9일. 동경지방재판소, 인광채굴권자가 시마네현을 상대로 '국가(일본)가 죽도(독도)에 대한 통치권을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광구세 납부의무 없음'에 대하여 항의하자, 광구소재지역에 대한 통치권이 상실된 경우가 아니라, 그 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광구세의 무과징수권은 상실되지 않는다고 판결.

 

1962년
*7월 13일. 김종필, 딘러스크 미국 국무장관에게 독도 폭파 제안함.(미국무부 외교문서 동북아시아-1961~1963)
*일본, 한국 아마추어 통신원의 독도 상륙활동에 항의.
*12월 22일.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오오끼), 독도 주변 해역을 순시.

 

1963년
*1월 8일. 한국 경찰 순시선(화랑호), 시마네현에 표류.
*일본, 한국 경비정의 무기 반입에 항의.

 

1964년
*1월 31일.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헤쿠라), 독도 주변 해역을 순시.
*일본, 한국 경찰의 독도 퇴거 요구.
*11월 12일. 김종필, 일본오오히라 외상에게 독도가 한일국교를 정상화 하는데 저해하는 요인이라면 이 섬을 폭파할 수도 있다고 제의함.(독도연구문헌접, 양태진편 P152참조)

 

1965년
*2월 13일.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오오끼), 독도 주변 해역을 순시.
*6월 22일. '한일기본관계조약', '한일어업협정' 체결.
일본은 '분쟁 해결에 관한 교환 공문'에서 "이 교환공문의 '양국간 분쟁 해결에 관한 합의 조건'에 따라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은 일본측의 제안에 따를 의무가 있다."고 주장
한국, "이 교환공문은 '한일협정에서 발생하는 양국간의 분젱해결에 한정하는 합의 조건'이므로 한국의 영토임이 분명한 독도문제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
*12월 17일. 한국정부, 1953년 7월 13일의 일본 정부 견해(Ⅰ, No.186/A2)에 대해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의 일부임을 확인하는 답변서를 보냄.
*12월 18일. '한일기본관계조약', '한일어업협정' 발효.
*울릉도 주민 최종덕, 독도에 거주하면서 전복·소라·미역 등을 채취, 양식함.

 

1968년
*3월 13일. 한국- 국유지등기 (일본 1906. 5월 17일 관유 토지대장에 등재)

 

1969년
*한국, 일본 순시선의 한국 영해 침범에 항의.

 

1972년
*일본, 한국의 반항구적 등대 설치계획에 항의.

 

1973년
*한국, 독도종합개발계획 수립.
*일본, 한국의 독도개발계획에 항의.

 

1974년
*1월 30일.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양국에 인접한 대륙붕의 북부구역의 경계획정에 관한 협정' 체결.

 

1975년
*일본, 독도에서의 한국 관헌의 퇴거와 건물철거 요구.

 

1976년
*8월. [제2차 종합학술조사] (한국자연보존협회 주관) 실시, 《자연과보존》제22·23호에 결과 발표.

 

1977년
*1월 1일 일본의 12해리 영해법과 200해리 어업수역에 관한 잠정조치법을 시행. 상호주의에 따라 한국해역에는 어업수역법을 적용하지 않았으나 독도주변에는 고유영토론을 주장하면서 12해리 영해를 설정.
*2월 5일 후쿠다(福田) 수상이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발언.
*2월 7일 후쿠다 수상의 발언에 대해 한국정부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나 독도는 한구의 고유영토이므로 일본정부의 영유권 주장이나 관할권 행사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힘.
*9월. [제3차울릉도·독도에 대한 학술조사](경북대학교 주관) 실시, {울릉도·독도답사기요}에 결과 발표.
*10월초. 최종덕씨 일가 독도로 주민등록 옮김.
*
12월 31일
영해법에 따라 독도주변에 영해 12해리를 설정.

 

1978년
*6월 22일.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양국에 인접한 대륙붕의 북부구역의 경계획정에 관한 협정' 발효.

 

1979년
*12월. 대한국제법학회, 독도학술연구조사.

 

1981년
*[제4차 종합학술조사](한국자연보존협회 주관) 실시, 울릉도 및 독도에 관한 지질·지형·생물·토양·해양·인문 등 조사, {울릉도 및 독도 종합학술조사보고서} 에 결과 발표.
*10월 14일. 최종덕씨가 최초로 주민등록을 독도로 등재.

 

1982년
*11월 16일. 독도 해조류 번식지를 '천연기념물 제 336호'에 지정.
*독도는 우리땅 노래발표(노래 정광태, 작사 박문영) 금지당함.

 

1984년
*아베 신타로 외상, 독도영유권 망언

 

1987년
*9월. 최종덕씨 사망.
*11월 2일. 송재욱씨 일가족 6명, 독도로 호적을 옮김.

 

1988년
*2월. 최종덕의 딸 최경숙·사위 조준기 내외 독도의 유일한 주민으로 거주.
*9월 16일. 소련군용기, 독도근해를 비행.

 

1990년
*7월 27일. 독도를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지정.

 

1991년
*11월 17일. 김성도·김신열 부부가 독도로 전입(울릉군 울릉읍 산63번지).
*12월 27일. 독도에 일반전화 개통.

 

1992년
*2월 14일. 약 50톤급 일본 순시선 1척, 독도영해를 침범.
*4월. 일본 극우단체(대일본정의국수회) 행동대원 2명이 주일한국대사관에 난입, '다께시마는 일본 땅'이라며 난동부림.
*11월 7일. 울릉도·독도지역, 특정지역으로 개발하기로 함.

 

1993년
*
한일외무장관 회담때 무토 가분 외상,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일본영토 주장
*10월 29일.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독도가 한국땅임을 입증하는 고지도 발견.

 

1994년
*2월 11일. 일본 해양경찰 소속 순시선, 독도영해를 침범.
*3월 24일. 1996년까지 독도 동도에 부두를 만들기로 계획수립.

 

1995년
*1월. 일본여당 총선에서 『독도침탈』용어사용
한국의 독도접안시설 공사 착공, 문제삼음

 

1996년
배타적 경제수역 설정시 일본이 독도를 기점으로 삼을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 한·일 양국 마찰.
*2월 9일. 일본외상 다께시마 영유권 천명, "죽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일본 고유의 영토이니 한국은 경찰수비대를 즉각 철수시키고 부착한 시설물을 철거하라" 요구. (일본측 주장에 대해) 한국정부는 "독도는 한국 고유의 영토이고, 한국이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영토이기 때문에 이러한 접안공사는 한국의 정당한 주권행사이므로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밝혀 독도 주변수역을 공동관리수역으로 할 수 없음을 주장.
*4월. 접안 시설 공사 개시
*6월 5일. 일본은 독도 기점으로 200해리 EEZ채택을 결의하고 독도를 일본EEZ의 기점으로 취한다고 발표함. (EEZ구획선을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확정하였음을 선언함)
*6월 27일. 경북경찰청, 울릉경비대 신설. 울릉경비대 산하에 독도경비대.
*10월. 하시모토 류타로, 독도 영유권 주장

*10월 20일. 일본자민당, 독도·조어도·쿠릴열도 확보를 총선 공양으로 내세움.

 

1997년
*1월. 일본 외교백서에서 일본 외교 10대 지침의 하나로 독도 탈환외교 방침을 설정하였음.
*3월 10일. 독도사랑 전화번호 확정.
한국통신 대구본부는 10일 지난달 11일부터 보름동안 독도상징 전화번호를 공모해 심사한 결과 "동해의 외로운섬, 국토의 막내둥이, 국토사랑 1번지"란 뜻을 담고 있는 791-0001번을 고유번호로 확정. 지역번호는 울릉도 권역과 같은 0566번. 이번 공모에는 전국에서 모두 1천3백 여명이 응모했는데 채택된 전화번호는 독도경비대의 착신전용전화에 붙여져 이달 말께 개통될 예정.
*4월 11일. 일본 자민당은 독도 영유권문제와 관련해 "독도는 일본 영토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처할 각오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외교정책지침을 마련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보도. 자민당은 지침에서 독도에 관한 이 같은 주장과 함께 "영토문제를 분리해 배타적 경제수역 설정 및 (한-일) 어업협정의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
*6월 2일. 일본정부, 독도개발계획 철회요구.
일본 정부는 독도(일본명 다케시마)가 일본 영토라고 거듭 주장하면서 해양수산부가 최근 발표한 '21세기 해양수산 비전'의 일환인 독도 개발계획을 철회해달라고 요청. 일본 외무성 가토 료조 아주국장은 이날 주일 한국대사관 김용규 공사와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아펙) 환경각료회의 등에서 양국이 협조하는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독도 개발계획을 중지해달라고 요구.
*7월. 한국정부는 울릉도를 한국 EEZ 기점으로 취한다고 발표함. 그후 양국 EEZ 구획선을 울릉도와 오키도의 중간선을 제의함(1년 2개월후)
*8월. 울릉도 약수공원에 독도박물관(관장 이종학) 개관
*11월 6일.  독도 동도에 접안시설 준공. 접안능력 500톤급, 총사업비 172억 4천3백만원, 면적 569평.
(한국이 울릉도에서 독도 접안시설공사 준공식을 치르자) 일본은 극우파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행사를 소규모로 해줄 것을 요청함. 야나이 외무성차관이 김태지대사에게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이므로 독도에 건설한 시설을 모두 철거하라"고 요구.
일본정부 한국의 독도 접안시설 완공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시설철거를 요구. 외무부 당국자는 "야나이 순지 일 외무성 사무차관이 이날 오후 김태지 주일대사를 불러 독도접안시설 완공에 대해 항의하고, 이를 철거할 것을 요구해 왔다"면서 "김 대사는 독도의 우리 고유의 영토이므로 일본쪽의 '항의'는 전적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전달했다"고 밝힘.
*11월 21일. 독도 서도에 '어민숙소'를 서도에 준공. 35.97평에 2층건물로 수용인원 25명, 총사업비 4억 8천만원.
*12월 13일. 법률 제5447호로 '독도 등 도서지역의 생태계 보존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

 

1998년
*1월. 일본, 독도주변 해역에 해저광케이블 설치공사. 일본, 1965년 체결된 한일어업협정 일방 파기.
*1월 7일. 일본 해양순시선이 독도 북방 10.5마일 해상에서 표류중인 국적불명의 선박을 인양한다며 한국 해군의 경고를 무시하고 독도 주변 영해를 침범. 외무부는 일본 순시선이 선박 구조라는 인도적 목적이긴 하지만 한국 해군의 경고를 무시하고 영해를 침범한 것은 고의성이 있다고 보고, 8일 외교경로를 통해 강력히 항의.
*9월. 한-일어업협정 개정협상이 2년4개월 만에 타결되어 독도를 한일어업공동위원회 관리를 받는 수역에 포함하는 '신한일어업협정'에 서명.
(이번 협상에서 한-일 양국은 동해에 양쪽 연안으로부터 35해리 떨어지고, 동경 135도30분과 동경 131도40분을 동.서 경계선으로 하는 "금붕어" 모양의 중간수역을 설정. 또 두 나라는 중간수역을 제외한 자국 연안의 "배타적 어업수역"을 사실상의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획득.)
*11월. 일본자위대, '동해의 한섬'을 가상한 적 점령섬 양륙훈련 실시. 황도(이오지마섬)극비 종합상륙훈련 실시 "동해의 어떤섬(한국의 독도)탈환작전". 2차대전 때 25000명의 일본 군인이 장렬하게 전원 전사한 곳임
*11월 9일. 농림해양수산위의 해양수산부 국감에서 이완구 의원(자민련)은 한-일 어업협정과 관련해 "독도 주변을 중간수역으로 설정해 172억원의 예산을 들여 설치한 접안시설 등 독도 유인화작업의 실익이 상실됐다"며 "독도 인근에 배타적 경제수역을 설정하고, 이번 협상에서 체결된 중간수역의 성격을 '공해'로 명시해 독도에 대한 실효성 있는 지배를 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

 

1999년
*1월 22일. 신한일 어업 협정 체결. 독도 중간수역에 포함(한·일 공동관리수역)
*1월 27일.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어업에 관한 협정' 공포. 본 어업협정으로 동해 잠정조치 수역이 독도 및 주변 수역을 둘러싸고 있어 독도의 주권을 훼손하였다는 비판이 제기됨.
*3월 1일, 1951년 체결된 미-일 평화협정 초안이 독도를 한국령으로 명시하고 있는 것이 밝혀짐.
(미국 국립문서기록보존소에 보관된 이 평화협정 초안은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일본에 대한 미 군정책임자였던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가 자필로 일본은 독도에서 떠나야 한다고 지시한 것으로 명기. 이 협정초안은 일본이 한국으로 영유권을 넘겨야 할 한반도 주변의 섬들로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및 독도 등 4개 도서를 명시. 이는 당시 일본을 점령한 미 군사령부가 독도를 한국령으로 공식 인정했음을 보여주는 것.)
*3월 10일. '독도 유인등대' 점등. 1997년 12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998년 12월에 시험가동을 끝냄. 유인등대는 서도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해양수산부 독도항로표지관리소 직원이 상주.
*4월 12일. 한국의 독도영유권을 확인시킬 1910년판 일본인 제작 지도를 처음으로 발견.
(독도 영유권 문제를 연구해온 이진명(53.한국학) 프랑스 리옹3대학 교수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 보관중인 50쪽 분량의 (대일본분현지도첩)에 나란히 실린 '조선전도'와 '일본 시마네현 전도'를 공개. 이 교수가 공개한 지도첩은 한일병합 직후인 1910년 일본 박애관출판사가 제작한 것인데, 조선전도에는 독도를 칭하는 '죽도'(다케시마)가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표기돼 있으나 일본 시마네현 전도에는 독도가 없음. 이 교수는 "일본인이 제작한 지도첩에 독도가 조선의 영토로 표기돼 있고, 정작 일본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며 "이는 그동안 일본이 '독도는 1905년에 일본 시마네현에 편입됐다'며 영유권을 주장해온 근거가 희박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밝힘. 이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 제40호에서 독도를 다케시마로 이름 붙였다는 사실을 주요 근거로 독도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해온 상황. 그러나 정작 1910년에 일본인이 제작한 지도첩에 포함된 시마네현 전도에는 독도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 이 교수는 "일본의 권위있는 지도 제작자인 이토 세이조가 지도첩을 만들고 도쿄에서 발행한 점으로 미뤄 당시 일본인 사이에 '독도는 조선 땅'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말함.)
*8월. 미국의 대학 지리교재인 {지오그래피}(렐름스, 리전스 앤드 컨셉츠)가 최신 개정판에서 동해의 영문 명칭인 '이스트 시(East Sea)'를 주명칭으로 표기.
*11월. 일본인의 독도로 호적이전 사실 뒤늦게 확인, 1999년 12월 현재 6가구 7명 확인.
*12월 22일. 한-일 양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내 입어협상 타결.
*12월 26일. 한국정부, 일본 주민의 독도로의 호적 이전을 확인하고 일본측에 항의서한 전달.

 

2000년
*1월1일. 새천년준비위원회, 울릉도·독도가 아닌 포항 호미곶에서 해맞이.17개 대학의 답사관련 동아리 재학생,언론인, 독도를 사랑하는 각계인사와 전국어민총연합 등 회원 120여명은 일본인 독도호적 이전사건과 새천년준비위원회의 독도해맞이 제외에 항의하여 독도에서 '새천년맞이 독도주권선언식'을 치르려 하였으나 저지당함.

*1월23일. 민간인 570여명 사상최대 인원 독도주권수호차 독도순회방문.
*4월 7일. 울릉군의회는 독도의 행정구역 주소를 '독도리'로 변경, 다음날 공포. 이에 따라 독도의 주소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1~37번지'.
*5월 1일. 독도박물관(관장 이종학)은 1997년 12월 5일 현재 독도로 본적을 옮긴 일본주민은 6가구 7명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 이는 1997년 12월 5일 열린 '일본 시마네현 의회 제369회 정례회'의 회의록을 열람한 결과 확인한 내용으로 일본 당국이 1954년 독도 주변지역에 대해 인광석 채굴권을 설정해 주고 광구세까지 징수해 온 사실이 확인되었다. 일본 정부는 1960년 이후 광물채굴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세금감면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하면서 시마네현은 자체 행정면적에 독도의 면적인 0.23㎢를 포함시켜 보통교부세를 산정해 온 사실도 확인.
*5월 9일. 일본 외무성, 2000년판 외교청서에서 독도 고유영토를 주장. "역사적인 사실에 비추어도, 국제법상으로도 명확히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일본의 입장은 일관돼 있으며 앞으로도 양국간에 끈기있게 대화를 거듭해나갈 방침"이라고 서술.
*5월 23일. 독도박물관(관장 이종학)은 정부의 저자세 독도정책에 항의하여 "지키지 못하는 독도, 독도박물관 문닫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박물관 입구에 부착하여 박물관을 폐관. 울릉군은 다음날 바로 독도박물관을 다시 개관시킴.
*5월 25일. 울릉군(군수 정종태)는 외교통산부가 독도 유인도(有人島)화 계획에 대해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점을 이유로 유보의견을 냄에 따라 독도의 유인도화 계획을 중단한다고 밝힘.
*5월 26일. '독도 유인도화 국민운동 본부'는 "독도가 해조류 번식지라는 이유로 일반인이 마음대로 독도에 들어갈 수 없도록 한 문화재청 고시는 헌법의 거주이전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것"을 근거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
이종학 독도박물관장은 "우리 땅 독도를 지켜야 하는 책무를 다할 수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자리를 지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어 사직서를 제출한다."는 글을 울릉군에 보내면서 독도박물관장 사직서 제출.
*5월 29일. 일본 모리 요시로 총리 방한에 대하여 시민사회단체들은 세종문화회관에서 모리 총리 방한과 관련하여 한일자유무역협정 반대와 일본 군국주의화 반대, 일본 독도침탈 분쇄 등을 구호로 규탄대회.
*6월 2일. 일본 자민당, "독도에 대한 영토권 주장"을 실은 일본 중의원 선거공약집 발표.
*6월 13일. 울릉군, 5가구 10명 정도의 어민을 거주토록 하는 독도 유인도화 계획을 추진키로 함.
*7월 4일. 울릉군은 독도의 공시지가를 발표하였는데 독도 전체의 공시지가는 2억 6천 292만 1천 116원.
*7월 7일. 데라다 데루스케 주한일본대사,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독도는 일본고유의 영토"라고 주장, "다께시마는 역사적으로는 물론 국제법 관점에서도 명백히 일본고유의 영토이며, 이것은 일본정부의 명확하고도 일관된 입장이다"라고 발언.
*7월 26일. 북한, 일본이 자원부원을 노리고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주장하고 있다고 비난.
*9월 15일. 단재 신채호 선생의 며느님인 이덕남(57세)씨가 독도로 호적을 이전.
*9월 19일.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 KBS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다케시마(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발언.
*9월 26일. 일본 모리총리가 9월 19일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직전에 가진 KBS와의 인터뷰에서 "독도는 역사적으로, 국제법적으로 일본영토"라는 주장을 했는데 이를 삭제 방영하였던 사실을 KBS노조가 노보를 통해 공개.(이 사건으로 같은 해 12월 7일 KBS는 방송사의 이미지를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노조 관계자를 해임.)
*9월 30일. 북한 외무성, 일본 총리의 독도영유권 주장 발언에 대해 비판.
*11월 15일. 대한항공 기내 비치용 잡지의 칼럼에 동해를 일본해(JAPAN SEA)로 표기한 자료 그림을 게재한 사실이 알려짐. 대한항공은 잡지를 전량회수 폐기하라는 공문 발송.
*11월 17일. 주일한국대사관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독도가 삭제된 한국 위성사진을 올린 사실이 알려짐. 비판여론 일어남. 다음날 지도 교체.

*12월2일. 독도영유권수호를 위하여 독도찾기운동본부 역사적 출범.
*12월 31일. 현재  독도로 호적을 옮긴 사람은 147가구에 527명인 것으로 집계됨.

 

2001년
*1월 1일. 경북 울릉군 독도에 호적을 옮긴 가구 수는 2001년 1월 1일 현재 모두 147가구에 527명.
*1월 12일. `2001 한국방문의 해'를 맞이해 외국인 유치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한국관광공사가 인터넷 홈페이지(
www.knto.or.kr) 영어판에 독도가 없는 한반도 지도를 게재.
*2월. 북한은 월간 {금수강산}에서 `독도는 신성한 조선의 영토'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그 어떤 타당한 근거도 없는 파렴치한 날조이고 왜곡이며 억지"라고 강조.
*2월27일. 스미타 노부요시 시마네현지사,"한국이 독도 불법점거"망언

*3월 2일. 중국정부가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회'가 주도한 교과서를 검정에 불합격시킬 것을 공식요청. 왕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중국주재 노모토 가오 일본 대리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회'의 교과서를 구체적으로 지목하면서 “일본의 침략을 미화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이는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피해국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이고 중국으로서도 강하게 반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왕 부부장은 또 “일본정부는 중국쪽의 입장을 중시해 실제행동으로 양국관계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강하게 요망한다”고 전함.
*3월 3일. 일본인 30여 명, 일본 도쿄(東京)의 한국 대사관 앞에서 일본 교과서 검정제도에 대한 내정간섭 중단과 독도(다께시마)는 일본 영토임을 주장하는 시위를 벌임.
*3월 6일. 일본 시마네현 스미다 노부요시 지사의 독도영유권 망언과 관련 경상북도는 "독도 영유권을 지켜나가기 위해 시마네현과 교류협력사업을 당분간 중단한다"고 발표. 곧이어 시마네현에 파견한 경북도청 직원 이응원(38·7급)씨에게 즉시 귀국하라고 지시. 이태현 국제통상과장은 “현재로서는 당분간 교류를 끊을 방침이며 교류 재개여부는 국내여론 등을 봐가며 나중에 결정하겠다”고 밝힘.
*3월 8일. 일본 산케이신문, 독도(다께시마)는 일본 영토이며 한국이 이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
*3월 14일. 노무현 해양수산부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측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관련, "현재 독도는 분명히 우리땅이고 우리가 영유와 지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여론만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면서 "독도는 분명 한국의 땅이지만 일본에게 독도가 한국의 땅이라며 도장을 찍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리"라며 "독도를 지키기 위한 정부의 의지는 분명하다"고 밝힘. 또한 "각 사회단체에서 거론하고 있는 독도의 입도절차 완화와 관련, 이곳은 현재 생태계 보존지구와 문화재 보호지구로 묶여 있고 자연 그대로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훼손방지 차원에서도 입도는 최대한 통제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힘. 그는 또 "총 1조3천408억원(정부투자 6천891억원, 민자 6천517억원)이 투자되는 영일만 신항개발과 관련, 민간투자로 그동안 선석사업을 추진해오던 주관사인 현대건설이 사업을 포기함에 따라 오는 4월 중 공고를 통해 민자 투자자를 다시 선정하겠다"고 말하고 "이 경우 정상 공기(1996년-2011년)에 비해 다소 늦긴 해도 전체적인 사업추진에는 별다른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 또 선박 접안시설 9선석 중 5선석은 민자투자로, 4선석은 정부투자로 전환하겠다고 설명. 한편 "현행 수산자원보호령에 의해 동경 128도(경남 삼천포 기점)를 기준으로 규제하고 있는 경남지역의 멸치잡이와 대형 트롤어선의 경북 동해안으로의 조업구역 확대 조정문제는 당분간 기존질서를 그대로 유지 하겠다"고 밝힘.
*3월 26일. 안용복(安龍福)장군 사당준공.
*4월 4일. 일본 문부성의 우익단체 역사 왜곡 교과서 검증에 대해 59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일본역사교과서 개악저지운동본부' 등의 여러 시민단체가 시민들을 상대로 일본 역사교과서의 공식 채택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시작.
*4월 5일. 한중어업협정 체결(6월말 발효). 이로써 중국 선박들이 독도 외곽 해역까지 진출해 오징어를 잡을 수 있게 됨.
*6월 1일. 잠수부 8명이 독도의 물골 앞바다 30~40m까지 들어가 못쓰는 그물 1t을 거둬 올림. 잠수부 정석두(35)씨는 “장비가 모자라 가로 1m, 세로 1m를 웃도는 대형 통발그물들은 바다 밑에 그대로 두고왔다”며 “통발그물 안에는 문어 같은 바다 물고기들이 엄청나게 죽은 채 썩어가고 있을 것".
*6월 11일. 환경부는 독도와 울릉도 두 지역을 해양 생태계보호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해 다음달 23일부터 10월까지 두 차례에 걸쳐 종합조사 계획 발표. (그동안 독도에 대한 정부의 생태계 조사는 이뤄진 적이 없었으며, 울릉도의 경우 지난 1992년 한 차례 조사를 한 적이 있으나 종합적인 정밀조사는 처음.)
*7월 26일. 독도 주변 해역의 수심과 암초 분포, 조류 등에 대한 정밀측정 결과를 수록한 축척 5000분의1 독도 해도가 처음으로 간행됨. 국립해양조사원은 인공위성 위치측정장치(DGPS)를 이용해 기존 독도 해도(축척 1만분의1)보다 크기와 축척 면에서 2배로 확대된 정밀 해도를 간행.
*7월 31일. 서울 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김목민 부장판사)는 `독도 유인도화 국민운동본부'가 "독도방문을 불허한 처분은 부당하다"며 경상북도를 상대로 낸 독도입도승인 불허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각하.
북한의 역사학회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그 어떤 타당한 근거도 없는 파렴치한 날조이고 왜곡이며 억지"라면서 "독도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조선의 신성한 영토"라고 단언. 독도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초지일관 `조선영토'라는 것이며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조선에 대한 재침책동의 한 고리"라는 시각임을 시사.
*8월 31일. 독도 방문제한에 대한 헌법소원, 각하됨.
*9월 5일. 경북경찰청은 "독도 삽살개를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하라는 환경부쪽 요구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자세를 표명. 경비대원 40여명이 키우는 독도 삽살개 12마리를 두고 환경부와 경찰청이 지난달 10일부터 공방전을 벌여온 상황.
*9월 20일. 최근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낸 문서 `연합국의 구일본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와 지도를 통해 독도영유권에 대한 국제법적 근거를 새로이 추가. 샌프란시스코 조약 1~5차 초안에 매번 복사돼 붙어 있는 이 문서는 제3항에서 독도를 한국의 섬으로 명시. 여기에는 독도를 한국에 포함시킨 지도도 첨부.
(독도학회와 독도연구보전협회가 개최한 독도영유권 학술심포지엄에서 신용하 교수는 1951년 일본과 연합국이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앞서, 47년 연합국이 사전에 합의해놓은 것으로 보이는 문서와 지도를 한국의 독도영유권의 새로운 근거로 발표. 그 동안 일본쪽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한국영토로 규정된 섬들 가운데 독도의 명칭이 제외된 것을 근거로, 독도가 일본영토임을 인정했다고 주장. 이에 대해 한국의 주요한 논리는 46년 발표된 연합국 최고사령부지령 677호를 근거로 일본에서 제외되는 섬으로 리앙쿠르섬(독도)을 명기. 또한 이런 일본의 정의에 대해 다른 특정한 지령이 없는 한 모든 미래의 지령·각서·명령에 적용된다고 했기 때문에 국제법상 합법적으로 발표되고 이후 수정되지 않은 이 지령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 하지만 일본은 “이 지령 가운데 어떠한 것도 포츠담선언 제8조에 언급된 여러 작은 섬의 최종적 결정에 관한 연합국의 정책을 표시한 것은 아니다”라는 조항을 들어 반박. 이런 논란 속에서 신 교수가 지난해 신 교수가 <독도영유권 자료의 탐구>(독도연구보전협회)에서 밝혔듯이 일본의 맹렬한 대미로비에 따라 미국은 6차초안에서부터 독도를 일본에 포함. 하지만 영국·뉴질랜드 등이 강력히 항의하자 당황한 미국이 미·영합동초안을 3차에 걸쳐 만들었고 최종 샌프란시스코 조약에는 독도명칭이 빠지게 되었다는 것.)
*10월 15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한국민의 고통에 위념을 표한다”는 `사과' 발언(이에 대해 각 시민·사회단체들은 “실질적 과거청산 없이 또다시 말장난으로 한국민을 농락했다”며 일제히 비난. 특히 이날 정부가 정상회담 뒤 “현안에 대해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고 평가한 데 대해서도 비판.)
*10월 17일. 울릉도와 독도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기로 함.

 

2002년
*1월 9일. 독도 유인도화 국민운동본부- 독도에 광산을 개발하겠다며 `광업권 설정 출원서'를 제출. "매장량이 40만~100만t으로 추정되는 독도의 인광석을 채굴하겠다"면서 "출원서를 제출한 진짜 목적은 광업권에 따른 세금을 꼬박꼬박 냄으로써 독도가 정부의 영향권 안에 있는 우리의 영토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힘.
*3월 15일. 한일어업협정 파기 및 재협상 촉구 국민서명운동본부가 부산역 광장에서 한일어업협정 파기요구 등 500만명 서명 보고대회를 행함. "한일어업협정에서 독도를 중간수역에 편입시키는 바람에 어장 상실 등으로 어민 실업자가 폭증하는 등 천문학적인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 만큼 이 협정은 반드시 파기되고 재협상해야 한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지난 1월 22일을 기해 3년 만료된 협정에 관해 아무런 논평 없이 넘기는 등 굴욕 외교를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
*4월 9일. 일본 문부과학성이 “한국이 시네마현의 다케시마(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기술이 새로 추가된 고등학교용 역사교과서 {최신 일본사}를 검정 통과시킴.
*7월. 캐나다에 하나밖에 없는 국제지도제작회사인 ITMB(INTERNATIONAL TRAVEL MAPS & BOOKS)출판사가 이 달 초 한국지도를 발간하면서 동해와 독도를 각각 영문으로 'EAST SEA' 및 'DOKDO ISLAND'로 표기. 한국전도에서 동해를 'EAST SEA(SEA OF JAPAN)'로 표기하고 울릉도와 독도의 한국명칭을 각각 영문으로 표기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 일본 3국의 위치도에서는 'SEA OF JAPAN' 표기 없이 동해를 'EAST SEA'로만 표기한 것이 특징.
*8월 12일. 울릉도와 독도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2004년 고시할 계획 밝힘. 이는 `독도는 한국 땅'이란 사실을 세계 각국에 다시 한번 천명하는 상징적인 의미. 환경부는 울릉도와 독도, 인근해상 등 300여㎢를 `울릉도 국립공원'으로 지정키로 하고 경상북도는 지난 4월 울릉도에 대한 국립공원 지정 건의서를 환경부에 냈으며 환경부는 울릉도(70㎢)만으로는 국립공원으로 면적이 부족하다고 보고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인 독도와 인근 해상까지 추가하기로 결정.
일본정부는 곧바로 한국 정부가 동해 독도 인근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하는 것에 대해 항의.
*8월 29일. 일본 집권 자민당은 외교관계 합동회의를 열어 한국 정부가 독도 인근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려는 방침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정리.
*9월  일본 문부과학성 “한국이 시마네현의 다케시마(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기술이 새로 추가된 고등학교용 역사교과서 {최신 일본사}를 검정 통과시킴
*10월3일. 독도찾기운동본부-독도역사찾기운동본부로 이름 바꿈.
*10월 6일. 산업자원부는 `가스하이드레이트(Gas Hydrate)'에 대한 탐사를 내년에 4억7천만원을 들여 독도인근을 포함한 울릉도 남동해역에서 행할 계획을 발표.
*10월 8일. 미국 사우스캘리포니아대(USC)가 동해를 '한국해'로 표기한 고지도들을 인터넷 데이터베이스화. USC 코리안헤리티지도서관(KHL 관장 조이 김)은 7일 동해를 'Sea of Corea' 'Corean Sea' 등 '한국해'로 명기한 133점을 포함,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지도 181점 모두를 웹사이트(
www.usc.edu/isd/archieves/arc/libraries/eastasian/maps.html)에 올림.
USC 도서관소장 고지도외에도 최근 LA교민 케니스 나(글렌데일)씨도 1794년과 1815년 런던에서 발간돼 한국해, 즉 영문으로 Corean Sea 혹은 Sea of Corea로 표기된 극동 및 세계지도를 공개. 이 지도는 독도와 울릉도로 추정되는 섬을 한반도 동해안 주변에 표기하고 만주 일부를 한국영토로 표기.
*11월 14일. 우정사업본부와 경북체신청은 `2003년판 전국우편번호부'에 경북 울릉군 독도리에 우편번호(799-805)를 부여할 것을 밝힘.
*11월 22일. 산업자원부는 독도를 우리나라 광업지적에 포함시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광업업무처리지침 개정안을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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