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등반사 개요

2011. 5. 17. 23:34山情無限/등산학교

 

 

 

한국의 등반사 개요

 

백령회 창립 / 1937

년 도

주           요           내           용

1929년

영국인 공사관 아처(C.H.ARCHER)는 페이시(E. R. Paccy), 일본인 야마나카(山中)와 인수봉을 등반하다. 이는 기록상 한국 최초의 암벽 등반으로, 이들은 인수봉 정상에서 이미 이 땅의 선조들이 남긴 발자취를 보았다고 말했다.

 1931년

일본인 이야마와 이누마가 금강산 비로봉(1,638m)에서 처음으로 스키 등산을 하다.

한편,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 중심으로(조선인이 합류) '조선산악회'가 창립되고, 회지 <조선산악>을 창간하다.

 1935년

양정고보 영어교사인 황욱이 <월간 중앙> 7월 호에 기고한 ' 록크 크라이밍과 그 지식' 은 암벽 등반에 관한 우리 나라 최초의 글일 것이다. 황욱은 당시 일본의 입교(立敎)대학 산악부 출신이다.

이듬해인 1936년 국내 최초의 여성지<女性> 창간호에 이화여전 하이킹클럽과 경성체육학교 하이킹클럽이 소개되다. 한편, 1월에는 일본의 경도제대 산악부가 극지법을 사용해 백두산(2,750m)을 동계에 초등하고, <백두산 원정 보고서>를 펴냈다.

 1937년

 조선인으로 구성된 첫 산악회 "백령회(白嶺會)" 가 창립되어, 당시 엄흥섭,김정태,주형열 등 백령회의회원들은 활발한 등반 활동을 하였다.

또한 "양정고보 산악부" 가 학교 산악회로는 처음으로 창립하다.황욱이 초대 지도교사를 맡았다. 양정고보 산악부의 전신으로 30년대 초부터 "무레사네(물에산에)"라는 이름의 건실한 등산 모임이 있었다.

 1945년

 8.15해방과 더불어 백령회의 회원이 주축이 되어 9월15일 '한국산악회'를 창립하다. 이는 사회단체로는 두 번째로 정부에 등록된단체이며, 북한산 비봉에서 광복기념 등산회를 개최하다.

 1946년

 한국산악회는 최우선 사업으로 국토구명 학술조사를 대대적으로 전개키로 하고,2월 한라산을 시작으로 오대산과 태백산맥, 울릉도와독도, 차령산맥 그리고 서해고도와 다도해 등 1955년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전 국토의 학술조사를 실시한다.

한국산악회는 최초로 지방지부(경남지부,경북지부)를 설치한다.

한편 한국산악회는 9월 인왕산, 북한산에서 '제1차 암벽 등반(Rock Climbing)강습회'를 개최하다.

36명이 참가한 이강습회는 일반 산악인을 위한 최초의 등산교육으로 기록된다.

 1949년

 경희대 산악부, 서울대 산악부 등 대학산악부가 창립되기 시작하다.

 1957년

 경북학생연맹이 최초로 지방연맹체를 창립하다. 경북학생산악연맹은 최초로 종합 정기간행물<산악>을 발간하였다(1961년).

 1962년

 군사정권이 수립되면서 정부의 유사단체 통합령에 의해 대한 산악 연맹을 창립하다.

한편 우리 나라 최초의 히말라야 원정이 이루어진다. 경희대산악부가 다울라기리2봉의 정찰 등반을 하였다.정찰활동중 무명봉(6700m)을 등정하고, 박철암 대장은<히말라야 다울라기리 산군탐사기>란 제목으로 정찰보고서를 펴냈다.

 1967년

 대한산악연맹 산하 조직으로 서울특별시 산악연맹을 필두로 경기도, 전북, 경북, 제주, 충북, 충남산악연맹이 차례로 가입하다.

 1968년

 대한산악연맹이 '국토종주3천리' 대장정을 시작하다. 최남단인 마라도에서 출발하여,1972년 향로봉에서 끝났다.

이는 산악인에 의한 최초의 백두 대간 종주로 기록되었다.

 1969년

 한국산악회가 해외원정등반 훈련으로 설악산에서 동계훈련을 실시하던 중 이희성 대장 등 10여명의 대원이 중음의계곡에서 눈사태로 사망하다.

한편, 최초의 산악잡지 <등산(지금의 '월간 山'의전신)>이 5월에 창간하다. 6월에 또 하나의 잡지 <산수>가 창간하였으나 불과 넉 달만에 문을닫았다.

이해에는 인수봉,선인봉에서 무려 10개의 등반 루트가 개척되었다.

중앙관상대는 국내최초로 관악산 정상에 기상 레이더를 설치하였다.

 1970년

 정부가 대한산악연맹의 협조를 얻어 전국 유명산에 인수산장, 권금성산장, 노고단산장 등 산장 및 대피소 35개를 건립하다.

 1971년

 대한산악연맹 원정대가 최초로 8,000m봉인 로체사르(8,400m)에 도전하다. 등정은 실패했으나, 최수남은 한국인 최초로 8,000m 선을 넘어선 산악인이 된다.

같은 무렵 전국합동대가 마나슬루(8,163m)에 도전한다. 김기섭이 등반 도중 추락사하므로 한국인 최초의 희말라야 조난자로 기록된다.

한국산악회에서는 최초로 8명을 프랑스 국립스키등산학교(ENSA)로 보내 40일간 교육을 받다. 이듬해에도 4명을 ENSA로 파견햐였다.

 1972년

 김정섭이 마나슬루에 재도전하였으나, 눈사태로 15명(대원5명,세르파10명)이 사망하다. 이 사고는 세계 희말라야 등반사에서,1937년 낭가파르밧에서의 독일팀 16명 사망에 이어 두 번째의 대형사고로 기록되었다.

 1974년

 한국등산학교(초대 교장 권효섭)가 상설등산학교로는 최초로 개교. 정규반, 암벽반, 동계반, 특별반으로 나누어 정기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대한산악연뱅은 에베레스트 원정 제1차 훈련을 지리산에서 실시한다.

 1975년

대학산악연맹은 에베레스트에 1차 정찰대 7명을 현지로 파견하다. 이들은 정찰활동중 트레킹 피크인 아일랜드 피크(6.189m)의 주봉과 서봉을 전원 등정한다. 한국인이 히말라야 독립봉 등정은 이것이 처음이다.

구곡폭포(김재근), 설악산 형제폭(김호진 등)이 초등되어, 빙벽 등반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다.

 1976년

 에코 클라이밍 클럽의 유기수 등이 선인봉 남측 오버행 전 코스를 너트만을 사용하여 완등하다. 이로써 국내에서도. Clean Climbing의 열풍이 일기 시작한다.

 1977년

 한국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이 이루어지다. 김영도 대장이 이끄는 대한산악연맹 원정대는 한번의 실패를 딛고, 고상돈과 펨바 노르부 셰르파가 9월 15일 정상에 섰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8번째 에베레스트 등정 국가가 되었고, 고상돈은 58번째 등정자가 되었다. 박상열과 앙 푸르바 셰르파는 8,700m의 고도에서의 비박 기록을 세웠고,이 최고 높이의 비박은 한동안 꺠어지지 않았다.

한편, 국내 최대의 빙폭인 토왕성 폭포의 상하단이 4박 5일만에 크로니산악회의 박영배, 송병민에 의해 초등되다.

 1978년

 '자연보호헌장' 이 선포되다.

한국산악회 원정대(전병구 대장 외 5명)는 안나푸르나 4봉(7,525m)을 등정하고, 유동옥은 최초의 7,000m 급 등정자가 되었다.

한편, 대한산악연맹은 중앙일보와 합동으로 북극탐험대(대장 김영도)를 조직, 최초로 북극권에 도전한다. 대방원을 가로질러 북위 80도선에 도달하였다.

 1979년

 최초로 북아메리카주 최고봉 매킨리(6,194m)에 3개의 한국대(한국일보, 고령산악회, 고려대산악부)가 도전하여 모두 성공하지만, 선두의 한국일보대는 고상돈, 이일교가 하산시에 추락사한다.

또한,최초로 악우회가 유럽 알프스의 아이거(3,970m) 북벽에 도전하여 성공하다.

 1980년

 동국산악회의 마나슬루 원정대(대장 이인정)가 등정에 성공하다. 이는 단일 산악회가 8,000m 봉을 등정한 첫 기록이다.

요세미티에서는 이영식, 허정식, 강구영의 3명이 하프돔을, 재미교포 산악인 주영이 엘캐피탄을 최초로 등정하다.

 1981년

 서울문리대 OB산악회가 최초로 남아메리카 최고봉 아콩카구아(6,959m)에 도전하여 등정에 송공하나, 1명이 실종되었다.

악우회가 최초로 카라코람에 진출하다. 난이도 높은 바인타브락 2봉(6,960m)에 도전하지만 1명이 추락사한다. 악우회는 2년 후인 1983년에 재도전하여 유한규, 임덕용이 세계 최등정의 위업을 이루어낸다.

 1982년

 최초의 여성 원정대가 히말라야로 떠난다. 선경여자산악회는 람중히말(6,986m)을 등정하고, 기형회, 윤형옥은 산국인 최초의 여성 등정자로 기록된다.

부산학생산악연맹은 지방 팀으로는 최초로 히말라야에 도전하여, 가네쉬 4방(일병 파빌봉, 7,102m)을 등정하다.

곧이어 대전쟈일클럽은 고줌바캉(7,806m)에 도전, 김영한이 세계 초등정의 대기록을 수립힌다.

한편, 남선우는 푸모리 (7,145m)를 동계에 등정하는데, 이는 우리의 첫 동계 등정이다

 1983년

 포항향로산악회가 최초로 인도 캐시미르에 진출하여 눈(7,135m)에 등정하다.

허영호는 마나슬루를 대상으로 최초로 8,000m 급 단독 등정에 성공하다.

중앙대, 양정 합동대는 최초로 아마다블람(6,812m)의 동계 초등정을 이루어낸다.

 1985년

 울산의 합동대가 히말출리 북봉(7,371m)에 도전장을 내어, 이재홍이 세계 초등정의 위업을 달성하다.

남극관측탐험대(대장 홍석하)의 허욱, 허정식, 이찬영이 최초로 남극대륙의 최고봉인 빈슨 매시프(5,642m)를 등정하다. 토왕성 빙쪽에서는 전년도 이태식이 이루어낸 단독 등반 성공에 이어, 최초의 여성완등자(조희덕)가 나왔고, 대승폭빙폭을 윤대표, 정호진이 초등하다.

 1987년

 한국산악회의 합동대가 에베레스트를 동계에 도전하요, 허영호와 셰르파 1명이 등정에 성공하다.

한편,광운공고 OB산악회가 고줌바캉(7,806m)를 동계 초등정하고, 고교생 최미호(당시 17세)는 최연소 등정 기록을 세웠다.

 1988년

 대한산악연맹의 원정대가 에베레스트와 로체(8,516m)를 동시에 등정하다. 최초의 8,000m 급 연속 등정기록이고, 총 10명의 대원이 등정자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경남산악연맹의 원정대는 난이도 높은 고산 등반을 추구하자는 일념으로 눕체 북서봉(7,745m)을 동계에 초등정하다.

울산의 합동대는 다울라기리 6봉(7,268m) 구르자히말(7,193m) 구스퉁 북봉(6,529m)을 연속등정한다.

최초의 여성대가 매킨리 등정에 성공하고, 검악산악회는 뉴질랜드의 마운트 쿸(3,754m)을 등정하다.

한편, 국내 최초의 인공암벽이 서울 사레바 지사에 설치되고, 청악산우회가 설악산 소승폭 빙폭을 초등하다.

 1990년

 처음 파미르의 최고봉 코뮤니즘(7,495m)을 등정하다. 이인정 대장이 이끄는 합동대의 5명이 정상에 오른다. 이어 한국산악회에서는 1명이 코뮤니즘에 등정하고, 2명이 코르제네프사카야(7,105m)의 정상에 올랐다.

한편, 전년도에 김운회, 조금석이 국사대폭을 초등한데 이어, 김용기, 이상록이 토왕성 빙폭은 하루에 세 번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1991년

 충북 서원대산아고히가 최초로 동 파미르에 진출하여, 무즈타그아타(7,546m)를 등정하고, 대한산악연맹에서는 최초로 티베트에 진출하여 시샤팡마(8,046m)를 등정한다.

토왕성 빙폭엣허는 여성(남난희,이현옥)으로만 파티를 이루어 등반에 성공한다

 1992년

 천산 산맥의 국제 캠프에 참여한 대구경북, 광주전남, 강릉대, 대구, 전주, 수원, 개인팀 등이 칸텡그리(7,010m)에 19명이 대거 등정하고, 이어서 2명이 포베다(7,439m) 등정을 성공한다.

 1993년

 대한산악연맹의 여성원정대가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다. 지현옥, 최오순, 김순주는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첫 한국여성이 되었다.

히말라얀클럽의 허영호는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종주하고, 동국산악회의 박영석은 최초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기록을 세운다.

검악산악회는 최초로 남미 파타고니아의 피츠로이(3,441m)를 등정한다.

국내에서는 정승권이 토왕성 빙폭 단독 등반후 클라이밍 다운하는 기록을 세웠다.

 1994년

 경남산악연맹은 안나푸르나 남벽에 도전하여 박정현이 정상에 오른다. 이로써 히말라야 거벽 등반의 성공을 이루었다.

한편 토왕성 빙폭에서는 37분만에 상, 하단을 모두 완등한다.

 1995년

 경남산악연맹 원정대가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정에 성공하다. 조형규가 이끄는 이 팀은 김영태, 박정헌이 셰르파 2명과 함께 남서벽으로 정상에 오른다.

경기북부연맹에서 최초로 힌두쿠시로 진출하여, 최고봉인 트리치미르(7,708m)등정에 성공하나, 등정자 2명이 하산중에 실종하는 비극을 당한다.

김미선이 여성으로는 최초로 알프스의 그랑드조라스 북벽와 아이거 북벽을 오르고, 김점숙이 여성 최초로 토왕성 빙폭 단독 등반에 성공하다.

한편, 이인정이 최초로 상설 산악박물관을 개관하고, 이듬해에는 상설 산악도서관도 개관하였다.

 1996년

대한산악연맹이 중국등산협회와 합동으로 충모강리(7,048m)와 룽보강리(7,095m)의 세계 초등정을 달성하다.

 1997년

성대산악부는 초오유(8,201m)에 5명의 대원 전원이 등정하다. 성대산악부는 1991년에도 가셔브룸 2봉(8,035m)에 4명의 대원 전원 등정에 성공한 바 있다.

한국산악회는 가셔브롬 4봉(7,925m)의 서벽 중앙립으로 루트 초등을 기록하다.

 1998년

 세계적인 거벽으로 알려진 탈레이사가르(6,904m)의 최난관 구간인 상단의 불랙타워를 최승철, 김형진, 신상만이 세계 최초로 돌파하지만, 정상 설원에서 미끄러지며 추락사한다.

장애인 김홍빈이 아콩카구아와 매킨리를 등정하고, 12세의 김영식이 매킨리의 최연소 등정자가 되었다.

 1999년

 8,000m봉 4개를 등정한 대표적 여성 산악인 지현옥이 안나푸르나에서 하산 중 추락사하다.

한편, 손정준이 5.14급에 등극한 최초의 산악인이 된다. 손정주은 설악산 적벽을 자유 등반으로 완등하는 기록도 세운다

 2000년

 엄홍길이 8,000급 14봉을 모두 등정하여, 세계에서 8번째 완등자가 되었다. 1988년 에베레스트를 시작으로 12년만에 이루어낸 쾌거이다. 엄홍길은 외국의 일부 산악잡지에서 로체와 시샤팡마 등정의 의문을 제기하자, 이듬해에 곧바로 두 봉을 다시 등정하는 저력과 슬기로 이를 극복하였다.

K2에서는 3개 한국팀에서 총 14명이 등정하다.

대한산악연맹은 세계 7대륙 최고봉을 한해에 모두 등정하고, '새천년 7대륙의 정상' 이라는 등반기를 발표했다.

충북산악연맹과 울산산악연맹에서는 에베레스트와 로체를 모드 등정하다. 김환구(45세)는 국내 최고령 에베레스트 등정자가 되었다. 이로서 1977년부터 총 34명(여자 3명 포함)의 한국인이 세계 최고봉에 올랐다.

한편, 손상원과 고미영이 5.14 급 클라이머 대열에 합류한다. 고미영은 월드컵 여자부 랭킹 6위에 올라 세계적인 수준의 클라이머임을 입증하였다.

 2001년

 박영석이 8,000m 급 14봉을 모두 등정하여, 세계에서 9번째 완등자가 되었다. 1993년 에베레스트를 시작으로 8년만에 이루어낸 대기록이다.

 2002년

 

 한 해 동안에 산행기, 사진집, 동화, 시집, 시조집, 등산이론집 등 산과 등산에 관련된 서적이 총 37권이나 출판되어 산악문학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박영석은 7대륙 최고봉 등정을 모두 끝냈고, 엄홍길과 이인은 에베레스트를 두번째로 등정했다.

 재미산악연맹에서는 미국 이민 100주년 기념으로 미국 50개주의 최고봉을 모두 등정하였다.

 한국도로공사산악회는 시사팡마 남서벽에 신루트를 개척했다.

 대구.경북학생산악연맹은 동계 촐라체 남서릉을 세계초등하고, 포스코산악회는 쉬모캉리(7,204m)를 세계초등했다.

 매킨리봉에는 총 10개의 한국팀이 등정했고(등정자 29명), 김은광은 세계 최초로 이 산의 정상에서부터 스노우보드로 활강했다.

 재일본조선인등산협회 임원 31명이 대산련의 초청으로 해방 후 처음으로 방한, 한라산과 지리산을 올랐다.

 

 2003년

 전국체전에 전시종목으로 등산의 2개봉목(등반경기, 일반등산)이 채택되었다.

 환왕용이 8,000m급 14봉을 세계 11번째로 완등했다. 1994년 초오유를 시작으로 10년만에 이루어낸 기록이다

 2004년

 박영석 외 4명은 무지원, 도보 세계최단기록(44일)으로 남극점에 도달했다.

 오은선이 국내여성 최초로 세계7대륙 최고봉을 모두 등정했다.

 한편, 에베레스트는 1977년 고상돈 이래 27년간 총 47명(여자 4명 포함)이 등정하고, 이중 1명은 3번씩, 2명은 2번씩 등정했다

 

   등산 (대한산악연맹 刊) 中에서

 

1977년 9월 15일 12시 50분 김영도 대장이 이끄는 대한산악연맹 원정대의

고상돈 대원과 셰르파 펨바 노르부가 8848m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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