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유학재에게 마지막으로 묻는다. “왜 산에 가는가?” 그는 “왜 사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답한다. 산을 떠난 삶을 살아본 적 없으므로 ‘왜 산에 가냐’는 도시인의 의문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대신 그는 벽을 오를 때의 매력적인 흡인력에 대해 얘기한다. “등산은 무궁무진합니다. 어떤 룰이나 제한된 영역이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산이 가만히 서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들어가면 순간순간 결정해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합니다.”
등반은 삶을 닮아 있어 늘 사람을 선택의 기로에 세운다. 정해진 틀은 없다. 그저 가는 것이다. 왼쪽 혹은 오른쪽 아님 정면으로 올라치던가, 그것도 아니면 대기하거나 후퇴해야 한다. 수많은 결정을 통해 거대한 벽을 넘어서고, 그런 경험들이 쌓여 더 나은 등반가로 진화해 가는 것이다. 유학재는 자신만의 확고한 진화론을 가지고 있다. “절대 길은 하나가 아니다. 막히면 돌아서 올라갈 것을 생각해야 한다. 등반은 산과의 대화다. 산의 변화에 적응하며 계속 반문을 하고 대화를 나누는 게 등반이다. 정상에 서면 끝이라 생각하지만 내려가는 것도 중요한 대화이며 정확한 계산을 필요로 한다. 나는 아마도 산과의 복잡한 대화를 즐기는 것 같다.”
거대한 산 앞에 한 사내가 있다. 키가 크지도 힘이 세지도 않은 작은 사내지만 아무리 큰 산이 나와도 넘어선다.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독하게 오른다. 그의 가장 강력한 기술은 고정관념의 틀을 뛰어넘는 생각을 한다는 것. 의식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운 등반가 유학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