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등산학교 명강사의 족집게 강좌]
- 암벽등반 기초
- 전영래 한국등산학교 강사
“추락을 부끄러워 말라”
네 가지 주요 매듭은 눈 감고도 할 수 있어야
▲ 노란색 암벽화는 스포츠클라이밍 전용이며,
붉은색 암벽화는 스포츠클라이밍과 자연암장 겸용.
발목 부위가 긴 암벽화는 자연암벽 전용이다.
-
-
암벽등반의 첫 단추, 암벽화
암벽등반을 배울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장비 구입이다. 이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등반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
먼저 자기 발에 맞는 암벽화를 사야 한다. 처음 입교한 등산학교 교육생들을 보면 보통 장비점 직원이 추천해주는, 발을 꽉 조이는 벨크로 형태의 암벽화를 가져온다. 이걸 신고 등반하면 발이 아파 5~10분 후에는 제대로 된 등반자세를 취하지 못한다. 심한 경우 발톱이 빠지기도 한다. 장비점 직원들도 대부분 등반을 하기에 자기 눈높이에서 권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중·상급자 입장에서는 발을 꽉 조이는 신발이 좋지만 초보자는 암벽화에 익숙지 않으므로 발이 편해야 한다. 그렇다고 자기 치수보다 큰 것으로 사라는 얘기는 아니다. 반드시 신어 보고 되도록 발이 편한 것을 사야 한다. 그러나 암벽화는 운동화가 아니므로 어느 정도 발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목이 긴 암벽화를 신는다. 지금 생산이 안 되는 모델일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내겐 제일 편한 암벽화다. 목이 긴 암벽화는 복사뼈를 보호해주는 역할도 하지만 무엇보다 발목을 잡아줘 자연 암벽의 멀티피치 등반에 좋다. 국내 암벽등반 루트 대부분은 여러 피치 등반이며, 나무나 흙이 있는 잡목지대를 지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등반에선 4~5시간씩 암벽화를 신고 있을 때도 있다. 스포츠클라이밍은 15~20분 짧게 등반하기에 발을 꽉 조이는 벨크로 형태가 유리하지만 암벽등반은 오래 신고 있어야 하기에 발이 편한 것이 좋다.
초보자는 고통을 참으며 고난도 등반을 할 필요가 없으므로 양말을 신고 암벽화를 신어도 무방하다. 대부분 양말을 벗고 신는 것은 최대한 바위를 느끼고 힘을 쓰기 위함인데, 이는 암벽등반에 익숙한 사람들의 얘기다. 처음 암벽등반을 배우는데 암벽등반은 힘들고 고통스런 것이라는 생각을 스스로에게 심을 이유가 없다. 등반을 집중력 있게 배우려면 발이 편해야 한다.
안전벨트와 헬멧·하강기
북한산 바위에서 등반하는 이들을 보면 사람들이 종종 그 중요성을 간과하는 장비가 안전벨트다. 특히 리지등반 사고를 보면 리지화는 신었지만 안전벨트 없이 등반하다 다치는 경우가 많다. 안전벨트는 이름처럼 자신을 지켜주는 장비이므로 필히 준비해야 한다.
안전벨트는 넓적한 연결용 테이프가 꼬이지 않게 착용해야 한다. 또한 벨트 앞 연결 고리에 한 번 통과시키고 난 다음엔 반드시 반대로 다시 통과시켜야 안전하다.
-
- ▲ 안전벨트를 착용한 앞모습과 뒷모습. 끈이 꼬이는 데 없이 깔끔해야 한다.
-
- ▲ 1 암벽등반 장비를 착용한 모습. 헬멧에 챙이 긴 모자를 겹쳐 쓰지 않는 게 좋다. 2 하강할 때 8자 하강기에 줄을 연결한 모습.
-
헬멧을 쓸 때 햇볕에 얼굴이 탈까봐 챙이 긴 모자를 쓰고 헬멧을 쓰는 이들이 종종 있다. 등반에선 고개를 들어 위를 봐야 할 때가 많으므로 시야 확보를 위해 챙이 긴 모자는 금물이다.
하강기는 시중에 여러 형태가 나와 있다. 초보자는 8자 하강기가 가장 무난하다. 로프를 가장 쉽게 끼울 수 있는 게 8자 하강기다. 끼운 후에는 제대로 연결했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강은 하강기와 로프에 목숨을 맡기고 하는 것이다. 안전하게 하강하려면 로프가 제대로 연결되었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하며 초보자가 쉽게 익힐 수 있어야 한다. 8자 하강기는 또한 로프의 꺾임이 덜해 줄 손상도 줄여준다. 나는 개인적으로 8자 하강기를 30년 가까이 쓰고 있다.
장비 잘 사는 법
등산학교 입학 시즌이 되면 장비점에서 등반장비를 세트로 묶어 할인판매한다. 그러나 장비는 모르는 상태에서 한꺼번에 사기보다 하나하나 사는 것이 좋다. 강사들이 얘기하는 장비 구입 요령을 듣고,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 등산학교에서 대여하는 장비를 써 보고 사도 늦지 않다. 한꺼번에 다 사게 되면 자기 의도와 다르게 권해주는 장비로 사게 될 확률이 높다. 재고 정리를 위해 발에 맞지 않는 암벽화를 권할 수도 있고, 등반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은 일반적인 것들로 구색을 갖추게 된다.
로프 관리법
줄, 곧 로프는 생명이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등산학교에서도 6주 교육이 끝나면 줄 몇 동을 버린다. 수많은 교육생이 하강하기 때문에 줄이 빨리 손상된다.
줄은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하다. 생명줄인 만큼 소중히 다뤄야 손상을 막을 수 있다. 이동할 때는 줄을 배낭 밖에 메고 다니지 말고 배낭 속에 넣어 다녀야 한다. 그래야 자외선이나 먼지 등으로 인한 손상을 피할 수 있다. 줄을 함부로 다루면 미세한 돌가루가 속으로 파고들어 끊어질 수도 있다. 이것을 막기 위해 줄은 가끔 세척해야 한다. 줄을 물에 담가 놓고 흔들면 돌가루가 빠져나온다. 그 다음 그늘에서 말리면 된다.
주요 매듭은 눈 감고도 지을 수 있어야
매듭법은 그 종류가 너무도 많다. 그러나 다 알 필요는 없다. 다음의 네 가지 매듭은 반드시 익혀야 한다. 그러면 다른 매듭은 필요없을 정도다. 다만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숙달해야 한다.
-
- ▲ 1 등반에 가장 많이 쓰이는 8자 매듭. 옭매듭으로 마무리했다. 2 까베스통 매듭. 자기 확보나 등반자 확보용으로 쓰인다. 3 이중피셔맨 매듭. 줄끼리 연결할 때 쓰인다. 4 볼라인 매듭. 안전벨트가 없을 때 몸에 직접 묶을 수 있다.
- 첫째, 8자 매듭이다. 매듭 중에서 가장 편하고 강도가 세기 때문에 등반에 가장 많이 쓰인다. 고리 구멍은 카라비너 1~2개를 걸 수 있을 정도로 최대한 작게 만들어야 좋다. 묶은 다음엔 다시 한 번 매만져서 고리 모양을 예쁘게 해줘야 더 높은 강도가 나온다.
둘째, 까베스땅(클로브히치) 매듭이다. 줄 중간에서 빠르고 쉽게 카라비너에 묶을 수 있는 매듭이며 자기 확보나 등반자 확보용으로 쓰인다.
셋째, 이중피셔맨 매듭이다. 줄끼리 연결할 때나 겨울에 줄이 얼어 잘 풀리지 않을 때 사용하면 좋다.
넷째, 볼라인 매듭이다. 안전벨트가 없을 때 몸에 직접 줄을 묶거나 나무에 줄을 묶을 때 쓰인다.
그 밖에 알고 있어야 하는 매듭이 프루지크 매듭이다. 비상시 등강기가 없을 때 대용으로 쓰인다.
매듭을 빨리 익히는 비결은 계속 반복연습하는 방법밖에 없다. 보통 등산학교 6주 동안에는 매듭을 잘하다가 한 달만 등반을 쉬면 못하는 경우가 많다. 등산학교 수료 후에도 반복해서 연습해 눈 감고도 매듭을 지을 정도가 돼야 한다.
- 등반은 자세가 좋아야 한다
암벽등반은 걷는 것의 연장이다. 보통 등반을 팔힘으로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은 발로 하는 것이다. 슬랩의 경우 손은 짚어서 균형을 맞추는 보조용으로, 걸어서 올라간다는 생각으로 등반해야 한다. 올라갈 때는 발 앞꿈치에 체중이 실리므로 중심이동을 잘해야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바위에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문제는 어떤 폼으로 가는지가 중요하다. 한마디로 암벽등반은 폼이 좋아야 한다. 자세가 자연스럽고 좋아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당연한 얘기지만 부단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
- ▲ 1 슬랩등반 자세. 손은 보조일 뿐 발로 오른다. 2 암벽등반에서의 발자세. 앞꿈치에 체중을 싣는다. 3 크랙등반 자세. 팔힘보다 발을 잘 써야 한다.
-
모든 운동의 기본자세는 어깨 넓이 안에서 이뤄진다. 그래야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슬랩에서 걸음의 간격이 멀어지면 발을 끌게 되고 무게중심이 깨진다.
크랙을 등반할 때는 팔을 펴고 뼈로 몸을 지탱해야 한다. 팔을 구부리면 힘의 소모가 커지고, 자세가 불안하면 힘이 금방 빠진다.
-
- ▲ 1 크랙에서의 발자세. 바위틈에 발을 끼워 넣는다. 2·3 주먹과 손등을 이용한 재밍 동작.
-
크랙에서도 발을 잘 써야 등반이 수월해진다. 바위틈에 팔을 넣어 재밍할 때는 살갗이 눌리는 아픔이 있어야 손을 다치지 않는다. 아프다고 힘을 덜 주면 팔이 빠지면서 더 긁히게 된다. 홀드를 잡고 오를 때는 엄지손가락을 함께 사용하면 큰 힘을 보탤 수 있다.
앞 사람의 등반을 주시하라
초보자는 크랙과 침니를 좋아한다. 높이에 대한 공포를 피하려는 본능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밖으로 나오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넓어져 힘이 적게 든다. 선등자가 있고 확보를 하고 있으니 후등자는 줄을 믿고 과감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래야 등반실력이 는다. 항상 초보자로 머물고 싶지 않다면 용기를 내야 한다.
초보자는 앞선 이의 등반을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 밑에서 잡담하느라 위에서 등반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앞 선 사람의 등반자세를 보고 자기 등반을 머릿속에 그려야 한다. 등산학교에서 강사가 시범을 보이면 모든 학생이 주시한다. 이후 1~2번째 학생은 따라서 잘 등반하다 세 번째부터는 달라지기 시작하다가 마지막 학생에 가서는 등반자세가 딴판이 된다. 잡담을 나누는 사이 머릿속에 그린 그림이 백지가 된 것이다.
-
- ▲ 1 줄을 가지런히 사리면 등반할 때 확보자가 줄을 풀어주기 쉽다. 2 선등자나 후등자 확보를 할 때는 8자 하강기보다 튜브형 하강기가 더 안정적이다. 3 확보 도중 등반자가 추락했을 때는 오른손을 뒤로 젖혀 제동한다.
-
자기 확보와 후등자 확보
등반해서 한 피치를 올라서면 자기 확보를 해야 한다. 등반해서 확보지점까지 올라서면 숨이 차고 긴장이 풀려 아무렇게나 확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초보자는 등반 후 자기 확보를 할 때도 신경 써야 하지만 가급적 앞선 등반자가 확인해줘야 한다. 자기 확보를 할 때까지 등반은 끝난 게 아니다. 자기 확보를 할 때는 올라온 순서대로 나란히 서야 다음 피치 등반이 효율적이다.
자기 확보 후에는 후등자 확보 준비부터 해야 한다. 후등자를 확보할 때는 어느 지점에 하강기를 걸어 간접확보를 하는 것이 직접확보를 하는 것보다 확보법을 숙달하는 데 더 좋다. 직접확보를 하게 되면 초보자의 경우 손이 덜 숙달되다 보니 줄이 엉키고 정리하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린다.
확보할 때 자세가 불안하면 몸에 힘이 들어가 쉽게 지친다. 초보자들은 후등자가 안 올라오는데 줄을 당기니까 힘이 든다. 등반자 확보를 할 때는 편하게 벨트에 체중을 실은 상태에서 등반하는 사람을 보면서 왼발 오른발 등반하는 사람의 리듬에 맞춰 줄을 풀어야 한다. 확보할 때 줄을 잘 사리면 등반자가 다시 올라갈 때 줄을 풀어주기 편하다.
-
- ▲ 1 팔과 다리를 쭉 편 바른 등반자세. 2 팔과 다리를 구부려 힘의 소모가 큰 잘못된 등반자세. 3 엄지손가락의 힘을 활용하는 클링 홀드 오픈 그립.
-
등반자 확보를 할 때는 8자 하강기보다 튜브형 하강기를 권한다. 등산강사들 사이에서도 8자 하강기가 하강기구냐 확보기구냐 하는 논란이 있었다. 8자 하강기로 확보를 하면 줄이 끝에 가서 꼬일 수 있으며, 뒷줄만 잡고 있으면 제동력이 크지 않아 제대로 된 확보가 어렵다. 추락 반동이 크지 않은 완만한 곳에서는 8자 하강기로 확보를 하더라도, 추락 가능성이 높은 곳에서는 튜브형이나 그리그리를 쓰는 게 좋다. 다만 그리그리는 사용 요령이 제대로 숙달되지 않았을 경우 사고가 나기 쉬우므로 확실히 익힌 뒤 사용해야 한다. 튜브형은 조금씩 생김새가 다른 제품이 많이 나와 있는데 단순한 모양의 제품을 써야 한다. 초보자는 복잡한 것을 사용하면 안 된다. 최대한 간편하고 복잡하지 않은 게 초보자에게 좋다. 그 장비에 대해 완벽히 숙달된 경우 새로운 장비를 써야 한다.
-
확보물 통과와 추락
선등자가 퀵드로나 프렌드 같은 확보물을 설치하고 등반하면 후등자는 줄을 통과시켜 등반해야 한다. 이때 당황하거나 균형이 맞지 않아 추락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기준에 어려운 코스를 통과할 경우 초보자는 확보지점을 두 손으로 잡아 균형이 안정되게 잡힌 상태에서 뒷줄을 통과시켜야 한다. 충분히 인공등반을 해서 안전하게 올라야 한다. 제대로 된 등반은 숙달된 다음에 잘해도 늦지 않다.
초보자가 직접 확보물을 설치할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선등자나 리더가 설치하기 때문에 초보자는 확보장비 없이 카라비너만 가지고 등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초보자도 만약에 대비해 1~2개의 확보장비를 가지고 등반해야 한다.
-
- ▲ 1·2 자신의 안전벨트에 연결된 윗줄을 빼 아랫줄을 연결해야 확보물을 통과할 수 있다. 3 미끄러지거나 추락해 쉴 때는 줄에 체중을 실어 편안히 쉬어야 한다.
-
등반하다 미끄러질 때는 과감하게 미끄러져야 더 안전하다. 추락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무서워하면 등반실력이 늘지 않는다. 팔에 펌핑이 나서 추락했을 때는 몸에 힘을 빼고 확실히 쉬어야 한다. 줄을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불안하게 바위를 잡고 있으면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초보자 때는 등반 경험이 없고 미숙한 게 당연하므로 사람들이 다 이해해준다. 이걸 충분히 숙지하고 이용해야 등반실력이 는다.
하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안전
하강할 때는 자기 확보가 된 상태에서 몸에서 최대한 확보지점에 가깝게 줄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 확보줄인 데이지체인을 풀기 쉽다. 하강할 때는 몸이 삼각형이 되도록 하여 균형이 잡힌 상태로 천천히 내려와야 한다. 초보자 중에는 멋있게 보이려고 특전사 요원처럼 붕붕 뛰어서 하강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위험하다. 심할 경우 줄이 충격을 받아 끊어지기도 한다. 적을 제압하기 위해 등반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즐기기 위해 등반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하강은 가장 등반을 잘하는 리더가 먼저 내려가서 줄을 정리한다. 두 번째로 잘하는 사람은 마지막까지 남아 다른 이들의 하강을 도와주고 줄을 정리해 내려온다.
-
- ▲ 1 바른 하강자세. 균형을 잡아 두 다리와 몸이 삼각형이 되도록 해야 하며 뒤를 보며 천천히 내려와야 한다. 2 현수하강자세. 오른발을 왼발 밑에 두고 한 발 한 발 내려와야 균형을 잡을 수 있다.
-
하강했다고 끝이 아니다. 초보자는 자기만 내려오면 등반이 끝난 줄 아는 이들이 있는데, 등반은 남을 배려하는 게 중요하다. 초보자가 하강할 때는 밑에서 줄을 잡고 있다가 만약의 경우 줄을 당겨 제동해야 한다. 하강이 끝난 줄은 잘 사려서 사람들이 밟지 않도록 해야 한다.
초보자들도 장갑을 끼고 하강하는 게 좋다. 하강기나 로프가 뜨거워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사장에서 작업할 때 쓰는 반코팅 장갑은 고무이기 때문에 하강기에 말려들어갈 수도 있어 좋지 않다. 가죽장갑이 무난하다. 여자의 경우 스카프나 머리가 장비에 끼는 경우도 있으므로 머리와 옷차림을 정리해서 하강해야 한다.
안전벨트나 카라비너가 없고 하강기를 떨어뜨리거나 했을 때 로프를 몸에 감고 하강하는 것을 현수하강이라고 한다. 비상시에 대비한 하강법이다. 현수하강을 연습할 때 줄과 옷의 마찰열로 인해 화학섬유로 된 등산복은 상하기 쉽다. 면옷을 입고해야 옷이 상하지 않는다.
이론과 구호
이론을 이해해야 등반을 잘할 수 있다. 암벽 용어 같은 것들을 알아야 동료들의 조언을 이해할 수 있으므로 용어를 먼저 알아야 한다. 크랙에서의 레이백 자세 같은 것도 초보자가 바로 할 수는 없지만 머릿속으로는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사소하게 생각되는 것 중에 중요한 것이 바로 구호다. “준비, 완료, 출발” 같은 구호를 확실히 해야 의사소통이 원활해지고 안전하게 등반할 수 있다. 구호는 팀 내에서 통일시켜서 “줄 당겨, 줄 늦춰”처럼 간단하게 빨리 말할 수 있는 구호를 써야 한다.
팀원이 중요하다
등반은 혼자 할 수 없으므로 팀원이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리더가 어떤 사람이냐가 초보자 입장에선 중요하다. 리더는 팀에서 가장 등반을 못하는 사람에게 등반기준을 맞춰야 한다. 리더는 모든 사람이 갈 수 있는 대상지를 택해야 하며 사고 발생시 탈출로는 어딘지, 장비는 어떤 게 필요한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등 모든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초보자가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 등반은 평생의 등반을 좌우하므로 어떤 리더와 어떤 동료를 만나느냐가 무척 중요하다.
리더, 즉 등반대장은 등반실력이 좋아야 하지만 꼭 등반기술이 뛰어나야 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적인 면이다. 포용력과 결단력이 있어야 하며 거드름 피우기보다 앞장서서 솔선수범할 수 있는 사람, 다그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좋은 리더다. 대장의 능력에 따라 초보자는 쉽고 재미있는 등반을 할 수도 있고, 조난을 당할 수도 있다.
높이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려면
등반에 입문하면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높이에 대한 공포다. 아직 장비에 대한 믿음이 없고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낮은 데에서부터 반복교육을 해야 한다. 하강 역시 낮은 곳에서 충분히 반복연습을 해서 숙달된 다음 점점 높은 곳으로 가야 한다. 초보자가 바로 인수봉처럼 큰 바위를 시작하면 고도감 때문에 제대로 등반하기 어렵고 오히려 교육 효과도 떨어진다.
그러나 초보자들은 보통 인수봉처럼 큰 바위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어 큰 바위를 멋있게 등반하고 싶은 욕심을 가진 사람이 많다.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으므로 서두르지 말고 낮은 곳에서 충분히 등반시스템을 몸에 익힌 다음 인수봉처럼 고도감 있는 곳을 등반하는 게 교육효과나 자기 안전에 있어 더 낫다.
초보자들의 공통된 실수
초보자들의 공통된 실수는 침착성을 잃고 금방 당황한다는 것이다. 초보자는 올라가는 게 능사가 아니다. 루트와 홀드를 충분히 살펴야 한다. 초보자는 침착하기 어렵겠지만 그럴수록 더 느긋하게 해야 실수가 적다.
가장 잦은 실수가 장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장비를 떨어뜨리면 남은 등반을 둘째 치더라도 후등자와 바위 아래에 있는 사람이 맞아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 당황해서 카라비너를 제대로 닫지 않는 경우도 생기는데 초보자들은 카라비너를 걸 때 “딱” 하는 소리가 나게 거는 습관을 들여 눈과 귀로 확인하는 게 좋다. 등산학교를 신청할 때는 졸업하면 바위를 다 올라갈 것 같지만 등산학교 교육은 등반의 가장 기본을 익히는 과정이므로 졸업 후 활동이 중요하며 배워야 할 것도 더 많다.
[족집게 강사 전영래] ‘영래교 교주’에게는 그만의 비결이 있다
-
-
한국등산학교 전영래(47) 강사는 학생들로부터 ‘영래교 교주’로 통한다. 그만큼 인기 있는 강사다. 이런 인기에 대해 등산학교를 수료한 지 5년쯤 됐다는 한 졸업생은 “재미있는 얘기로 긴장을 풀어주고 교육생 한 사람, 한 사람을 각별히 대하는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등산학교 김재운 사무국장은 그에 대해 “교육생을 대하는 마음 씀씀이가 남다르다”며 “10년 전에 교육받은 학생의 이름과 특징까지 기억한다”고 혀를 내두른다. 이에 대해 그는 “딱히 기억력이 좋은 건 아닌데 등산학교 학생들만 습관적으로 외워진다”고 말한다.
“다들 한국등산학교가 군대 같다고 얘기하는데, 1980년대에나 그랬지, 지금은 예전 같지 않아요. 산이 좋아서 등산을 배우겠다고 온 사람들이고 내가 산을 조금 더 일찍 배웠을 뿐이니 서로 존중해야죠. 그래도 안전이 달려 있으니까 학생들에게 강하게 할 때가 있고 웃겨서 긴장을 풀어줘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런 조절을 잘해야죠.”
서울이 고향인 그는 30여 년 전인 고교 시절 거리산악회에 입회해 산을 배웠다. 1990년 권효섭 초대 교장이 “자네, 여기 와서 봉사 좀 해”라고 한 한마디 때문에 지금까지 강사일을 하고 있다. 보통 바쁜 일이 있으면 한 기수 정도는 교육을 빠지기도 하는데 그는 빠진 적이 없다.
“강사를 하게 되면 포기해야 할 게 많아요. 가족과의 주말 나들이나 자기 등반이나 경조사 같은 것들을 포기하게 되죠. 지금은 20년간 해 와서 등산학교가 싫고 좋고의 개념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됐어요. 다만 강사를 오래 하면 주위에서 보는 눈이 많아 운신의 폭이 좁아지죠.”
전 강사는 단순히 등반기술을 알려주는 강사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의 카운슬러 역할도 도맡았다. 졸업생들과 인간적인 연결의 고리를 이으며 고민 상담 역할을 해왔다. 졸업 후에도 전 강사를 찾는 건 그의 교육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초보자한테 잔잔한 기술을 가르쳐줘봤자 돌아서면 잊어버려요. 등반윤리나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제대로 알려주는 게 더 장기적인 등반의 틀을 잡아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등반실력이야 산에 한 번이라도 더 오는 사람이 더 잘하게 되어 있으니 등반할 때의 바른 마음가짐을 잡아주고 싶다는 게 그의 교육관이다.
월간산/ 정리 신준범 기자-사진 이구희 기자
- [등산학교 명강사의 족집게 강좌]
- 암벽등반2
- 슬랩ㆍ크랙등반
- 자기 몸에 맞는 동작을 찾아라
슬랩등반은 완력이 약해도 가능하지만 크랙에서는 어느 정도의 완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초보자가 크랙등반을 잘하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서 팔의 힘을 키워야 한다. 팔의 힘이 있다면 균형감각을 최대한 활용해서 힘을 가능한 한 적게 들이며 등반하는 요령을 터득해야 한다.
크랙에서는 3지점 같은 기본에 연연할 게 아니라 3지점, 2지점, 4지점 등 모든 걸 이용해서 올라서야 한다. 재밍도 손가락 재밍부터 어깨까지 들어가는 재밍까지 정해진 공식이 없다. 자신에게 맞는 동작으로 크랙을 최대한 이용하고 기본 기술들을 응용해 변형시켜 올라야 한다. 같은 크랙이라도 등반자의 키나 힘에 따라 자세가 다 다를 수 있다.
기본적인 등반 자세들을 자기 몸에 맞도록 응용해서 오르는 게 중요하다. 등반은 남이 어떤 자세로 잘한다고 나도 그 자세로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걸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재밍은 크랙등반의 기본 기술로 중요하다. 재밍을 잘하기 위해선 그 원리를 이해하고 경험해서‘저렇게 갈라진 데를 어떻게 잡고 올라가나’하는 생각을 없애야 한다.
레이백은 팔힘이 있어야 한다
-
- ▲ 1. 레이백 등반 자세. 2. 레이백과 페이스 홀드를 결합한 혼합 기술.
- 레이백은 짝힘이다. 서로 반대되는 힘을 이용해서 오르는 것이다. 레이백 자세에서 엉덩이가 밑으로 처지면 두 팔에만 체중이 실리므로 펌핑이 빨리 온다. 엉덩이를 들고 올라야 체중이 분산된다. 팔힘 소모를 줄이려면 팔을 쫙 펴서 뼈로 가야 한다.
사실 초보자에게 레이백은 난이도가 있는 자세다. 바위에서 레이백은 변형된 자세로 많이 쓰이며 바위 모양에 따라 레이백 자세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등반 경험이 많을수록 레이백 자세를 더 안정적이고 능숙하게 쓸 수 있다.
레이백에서는 팔에 체중이 실리므로 완력이 어느 정도 있어야 기술을 소화할 수 있다. 그래서 초보자는 근력운동을 해야 한다. 운동을 안 하고 주말에 등반하겠다는 것은 욕심이며, 그렇게 해선 실력이 늘지 않는다. 주말에 열심히 등반했어도 일주일 사이에 근육이 풀어져버린다. 주중 2~3회 정도는 운동해야 주말 등반에 효과를 볼 수 있다.
-
- ▲ 중간 넓이 침니에서 짝힘을 이용해 오르는 연속동작.
- 근력을 키우려면 철봉이나 완력기를 습관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강박관념이 아닌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아야 한다. 남들보다 빨리 잘하고 싶다면 헬스클럽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산길을 걸을 때도 앞꿈치로 바위를 디디며 균형감각을 키운다거나 일상에서 계단을 오를 때 앞꿈치로 꾹 밟고 일어나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다. 가장 좋은 건 실내암장에 나가서 운동하는 것이다. 똑같이 등반을 시작했어도 주중에 실내암장에서 운동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등반실력의 차이가 크다. 결국 등반실력은 주중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고도감 있는 크랙에서 자신 있게 등반하기 위해선 장비와 확보자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며 적재적소에 장비를 잘 써야 한다. 선등자의 경우 크랙에 어떤 캠이 들어가겠다는 걸 빨리 판단해서 설치해야 힘의 소모가 적다.
발을 너무 넓게 벌리면 안 좋다는 것은 크랙에서도 적용된다. 발을 넓게 벌리면 발이 끌리게 되고, 힘이 더 들고, 균형이 깨진다. 가급적 어깨 넓이 안에서 이동하는 게 좋다. 그러나 슬랩과 달리 크랙에서는 빨리 판단해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힘의 소모를 줄이는 방법이다.
초보자는 자기에게 맞는 크랙 코스를 충분히 연습한 다음 더 어려운 코스로 넘어가는 게 좋다. 자기 힘으로 감당하기 벅찬 코스를 등반하면 실력이 늘지 않고 등반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다.
-
- ▲ 넓은 침니 등반 자세. 과감하게 밖으로 나와 양쪽 벽을 이용해 균형을 잡아 올라야 한다.
- 침니에선 짝힘을 써라
크랙이 등반자가 안에 들어가서 오를 수 있을 정도로 크면 침니라고 한다. 침니등반의 기본 원리도 짝힘이다. 오를 때는 양발을 서로 반대로 밀어주면서 올라야 한다. 발을 밀어줄 때 힘의 방향은 7시와 5시 사선 방향이어야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 있다.
등반에서 줄(로프 혹은 자일)이 너무 팽팽하면 안 좋다. 자기 힘으로 가야 하기에 너무 당겨주면 실력이 늘지 않고 동작을 자유롭게 취하는 데 방해가 된다. 확보자는 등반자의 리듬에 맞춰 로프를 당겨야 한다. 확보자도 함께 오른다는 생각으로 바위를 읽어야 편안하고 호흡이 맞는 확보를 할 수 있다. 등반에 왕도는 없다. 계속 등반하는 게 중요하다. 등반은 본인 스르로 몸으로 체험해야 하기에 말로써 가르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오르고자 하는 이여, 가자, 바위로!”
월간산 /정리 신준범 기자 - 사진 정정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