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10. 23:27ㆍ山情無限/山
[특별기고]
지리산 유람록을 통해 본 선인들의 산행
글·최관 경북대학교 농생대 임학과 교수,
한상열 경북대학교 농생대 임학과 교수,
이호승 경북대학교 대학원 임학과 석사과정 대학원생
절에서 유숙하며, 천왕봉은 꼭 올랐다
지리산행은 양반 사대부나 가능했던 사치… 술은 매일 마셔
자연을 찾는 여행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양하지만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정화한다는 공통된 경험을 갖는다. 옛 선인(先人)들 역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하여 심신을 단련하고자 여행을 했다. 지금처럼 다양한 형태의 여행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주로 산과 강, 바다를 벗 삼아 대자연을 여행했다.
과거 봉건사회에서는 일반 백성들이 여행을 한다는 것은 어려웠고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있는 양반 사대부 계층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학자로서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그들에게 여행은 현대인들의 여행보다 더 깊고 중요한 의미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인들이 자연과 함께한 여행의 의미와 여행 행태, 여행지 경로 등을 파악해 현세대인 우리들의 자연으로의 여행과 비교하는 것은 산림문화·휴양적 측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주제일 것이다.
조선 후기 것 제외한 9편 유람록 대상
▲ 중리를 출발, 천왕봉을 향해 오르는 등산객들. 옛 선인들도 이 길을 애용했다.
선인들의 여행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여행과 관련된 문헌자료가 필수적인데, 이는 주로 시, 소설, 일기, 여행기 등과 같은 문학작품에서 얻을 수 있다. 특히 이 가운데 여행기는 과거의 여행을 분석하는 기초자료로 활용되어 왔다.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들을 대상으로, 산림휴양의 관점에서 바라본 그들의 여행동기, 여행경로(현재 지리산국립공원 탐방로와 지리산길과의 관계), 휴양 행태, 당시 지리산의 식물학적 출현 수종(초본류 포함) 등을 파악 해보았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선인들의 지리산 여행기인 ‘지리산 유람록’은 총 52편(篇)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문학성이 떨어지고 이전 유람록과 중복되는 조선후기에 작성된 유람록을 제외한 총 9편의 유람록을 대상으로 삼았다.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 경로를 분석하기 위하여 지리산국립공원과 지리산길을 경계로 하여, 지리산국립공원 내 주요 이동경로를 지도에 표시해 연결했다.
지리산 유람록에서 기술된 식물학적 출현 수종 파악은 지리산유람록의 번역문과 원문(原文)을 참조로 모두 발췌했으며, 원문 분석에서 정확한 한자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수목도감 및 한자사전과 한한대자전(漢韓大字典)을 활용해 분석했다. 이외에도 수집한 자료를 분석해 현재의 산림문화 분야에서 활용 가능한 다양한 정보들을 도출했다.
연구대상 지리산 유람록은 유람을 실행한 연도와 저작연도가 동일하며, 그 기간은 1463년부터 1616년으로 조선 전기에서 중기에 걸쳐 저술되었다. 선인들은 15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지리산을 유람했고, 그 흔적을 꾸준히 남겼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유람에 앞서 이전에 지리산을 유람한 선인들의 자료를 읽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 이유는 박여량과 유몽인, 성여신의 유람록 본문 중에 잘 나타난다. 첫 번째로 박여량이 김일손의 유람기에 빗대어 농담을 하는 내용이 나오고, 두 번째로 유몽인이 화개동에 이르러 김종직과 김일손의 유람록을 읽었다고 서술한 것이 나오며, 세 번째로 성여신은 쌍계석문 앞의 비석을 표현한 구절이 조식의 표현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람록 저자들은 모두 사대부계층
총 9편의 유람록 저자들은 모두 사대부 계층임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유람록을 남긴 인물들만을 대상으로 한 데에도 원인이 있으나, 당시 유람을 위한 장거리 여행은 비용과 시간 등을 고려할 때 일반 백성들에게 유람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표 2>는 유람록 저자들의 인물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으로, 유람 당시 연령과 거주지, 생졸년, 이력, 주요저서 등을 기술한 것이다.
지리산 유람의 동기
유람록을 살펴보면 대부분 유람록 앞부분에 유람동기가 기술되어 있는데, 지리산 유람을 평소의 소원으로 간직하고 있었던 경우, 단순한 휴양의 목적으로 유람한 경우, 그리고 지리산 유람을 수양 내지는 공부(工夫)의 다른 방식으로 간주했던 경우다<표 3>. 세 번째의 경우는 현재 산림휴양의 본질적인 의미와 잘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선인들의 유람은 단순히 여행을 목적으로만 한 것이 아니라, 대자연을 접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며 한 층 더 성숙한 자아를 만드는 것에 참뜻을 둔 듯하다.
지리산 유람의 여정
산림문화적 측면에서 선인들의 지리산유람 경로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과거의 지리산 유람경로의 추적을 통해서 현재 지리산국립공원의 탐방로 혹은 지리산길(지리산둘레길)을 좀 더 개선·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조성된 숲길에 과거 선인들의 역사·문화적 요소를 추가시킨다면 훨씬 더 가치 있는 산림문화자원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구자료에서 나타나는 선인들의 유람 여정을 살펴보면, 현재의 지명과 다소 차이가 있고, 특히 그들이 숙박장소로 지낸 사찰의 경우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곳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유람경로를 추적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표 4>는 9편의 지리산 유람록에 나타난 인물별 지리산 유람 전체 경로를 정리한 것이고, <그림 1>은 지리산국립공원 권역 내에서의 유람일정을 표시한 것이다.
연구대상인 9명의 선인들이 당시 지리산 유람 경로는 전반적으로 상이하지만, 공통적으로 거쳐 간 장소가 있다. 그곳은 제석봉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경로로 현재의 법정 탐방로와 일치하는데, 총 9명 중 7명(이륙, 김종직, 남효온, 김일손, 양대박, 박여량, 유몽인)이 이 경로를 거쳐 유람을 했다.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은 우리나라에서 백두산 다음으로 높은 해발고도를 자랑한다. 앞서 말한 듯 선인들은 산에 오르는 것을 단순한 등산·휴양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수양이나 공부의 방법으로 여겼기에 천왕봉에 오른 이유는 남다르다. 천왕봉에 올라 대자연을 조망하거나, 과거의 대선비들을 떠올리며 수신제가(修身齊家) 했을 것이다.
이들의 유람 출발지는 당시 관직을 맡고 있던 지역인데 함양, 삼가, 남원 등 모두 지리산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그렇기에 유람의 목적지가 지리산으로 선택된 것이 당연했던 것이라 추측되기도 한다
또한 유람 중 청학동에 들른 인물들이 있는데, 청학동과 관련된 일화에는 대부분 ‘최치원’이 등장함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서술에 따르면 청학동은 ‘고운(孤雲)이 신선이 되어 노니는 곳’ 혹은 ‘이상향’으로 간주했던 것 같다. 이러한 이유에서 청학동을 유람일정에 포함시킨 것으로 간주된다.
▲ <그림1> 인물별 지리산 유람여정
유람록 본문 중에 당나라의 시인 ‘두보’가 몇 번씩 언급이 된다. ‘봉증태상장경계이십운(奉贈太常張卿二十韻)’이라는 그의 시 첫 구에 ‘방장산(方丈山)은 바다 건너 삼한(三韓)에 있네’ 라는 구절이 있다. 옛 말에 전하기를 지리산은 백두산, 한라산과 함께 우리나라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진산(鎭山)으로 여겼다. 그렇기에 중국 최고의 시인이라 불리는 두보의 시에도 지리산이 언급되었고, 사대부였던 선인들이 지리산으로의 유람을, 더 나아가 천왕봉 등반을 고집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림 1>을 통해 알 수 있듯 인물별로 지리산을 유람한 여정의 길이도 다양하다. 남효온과 유몽인의 경우는 지리산 일주에 가까운 긴 여정을 소화해 냈다. 반면에 조식과 성여신의 경우는 지리산 유람 중 지리산 권역 내에서의 여정은 굉장히 짧다. 그 이유는 유람록을 저작하기 이전 수차례 지리산을 유람한 적이 있어서 유람록에 나타난 여정이 짧은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전체 여정경로를 추적하다 보면 현재 ‘지리산길’의 코스와 중복되는 지역이 몇 군데 있다. 김종직과 김일손의 유람경로에는 인월~금계 구간의 등구재와 등구사, 곧 완공 예정인 산청의 ‘지리산길’이 포함되어 있고, 양대박과 유몽인의 유람경로에는 운봉~인월 구간의 운봉과 인월을 경유하는 경로가 포함되어 있다.
▲ 많은 사람으로 복잡한 지리산 천왕봉 정상.
조선조 말까지도 지리산 구경은 일부 양반층이나 가능했다.
지리산 유람의 행태
지리산 유람의 계절적 분포 대상 유람록들을 살펴보면 선인들의 유람시기를 알 수 있다. 유람록에 나타난 날짜는 모두 음력으로, 9명 중 봄철에 3명, 가을철에 6명이 지리산을 유람했다. 현재의 봄꽃놀이와 단풍놀이를 즐기는 행태와 비슷하다. 선인들 역시 온화하고 청량한 계절에 맞추어 유람을 갔던 것이다.
<표 5>는 선인들의 지리산·금강산·청량산 유람의 계절적 분포를 비교한 것이다. 표에 나타난 바와 같이 금강산과 청량산 역시도 봄철과 가을철에 많이 유람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동수단 유람록을 남긴 인물들은 당시 조선시대 사대부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유람 간 의 이동수단을 보면 대체적으로 말을 타고 이동한 경우가 가장 많다. 지리산에 들어와서는 좁고 험한 산길이 많아 주로 지팡이를 짚고 도보로 이동했고, 평지 혹은 산길이 아닌 경우는 말을 타거나 남여(藍輿)를 타고 이동했다. 간간이 시내를 건너야 할 경우에는 승려의 등에 업혀 건너기도 했고, 가파른 길을 내려올 때는 나무를 잘라 만든 기구를 타고 내려오기도 했다. 이들의 신분이 양반계층이었기에 유람간의 이동을 비교적 수월하게 했던 것으로 사료된다.
숙박장소 지리산유람은 긴 시간이 소요되는 일정이다. 그렇기에 말과 도보로 이동하던 당시에는 숙박장소가 반드시 필요했다. 숙박장소는 대부분이 지리산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이고, 간혹 친척과 지인들의 집에서 묵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동수단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시대에는 승려가 지금과는 다른 사회적 신분을 가졌다. 그래서 사대부인 양반이 사찰을 방문할 경우 숙박장소 제공은 물론 술과 음식까지 대접했다. 물론 이튿날 사찰을 떠날 때 승려에게 시주의 형식으로 돈이나 쌀 등을 건네는 경우도 간간이 있으나, 지금과 비교해 볼 때 조금 독특한 경우로 여겨진다.
유람간의 휴양행태 선인들의 유람록을 보면 등산, 계곡에서의 물놀이, 자연경관 조망 외에도 다양한 휴양 활동들이 나타난다. 휴양 활동은 주로 이동 간에 휴식을 취하거나 숙박지에 도착해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식사와 음주가 잦았다. 특히 음주는 거의 매일 이루어질 만큼 그 빈도가 잦다. 이동을 하며 쉬는 중간 중간 술을 한 순배씩 돌렸다거나, 일정 간에 지인을 만나 음주를 했다거나, 숙박지에 이르러 저녁식사를 마친 후 일행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는 구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찰에서 숙박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승려들이 제공하는 술과 음식을 먹었다. 사찰에서 음주를 할 때는 승려가 흥을 돋우기 위해 춤과 노래를 하기도 하며, 어떠한 경우는 악공들의 연주와 기생들의 시중을 받으며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래서 유람하는 동안 악공과 기생들이 대부분 동행했으며, 이동 간에는 그들로 하여금 풍악을 울리게 했다.
두 번째는 문학 행위다. 숙박을 위해 사찰에 머물 때 승려들과 심오한 대화를 나누거나, 독서 혹은 글을 외고, 일행들과 강론을 하는 등 당시 사대부들의 면모를 나타냈다. 또한 대부분의 인물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행위인데 시(詩)를 짓는 것이다. 천왕봉 정상에 올라 주변을 조망하며 시를 읊고, 승려와의 대화를 마친 후 시를 지어주기도 했으며, 음주를 하며 일행들과 시를 지어 주고받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제명(題名) 행위를 들 수 있다. 제명은 명승지에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는 행위인데, 유람 간에 제명을 한 흔적이 나타난다. 9인의 인물이 모두 제명 행위를 한 것은 아니고, 2명은 제명을 했고, 다른 2명은 이 행위에 대해 비판을 했다.
우선 제명을 한 인물은 김종직과 박여량이다. 김종직은 쑥밭재를 지나며 바위에 이름을 새기게 했으며, 박여량은 상류암 암자의 벽에 일행들의 이름을 썼다. 이에 반해 제명을 비판을 한 인물은 조식과 성여신이다. 조식은 바위에 이름을 새겨 자신을 만고에 알리려 하는 선비의 정신을 비판했고, 성여신 역시 조식의 제명에 대해 비판하며 간접적으로 자신의 뜻을 나타냈다.
유람록에 나타난 풀과 나무들
지리산 유람록의 본문에는 여러 가지 수종이 출현한다. 이를 정확히 파악한다면 조선시대 지리산 권역의 수종을 유추할 수 있다. 정확한 수종파악을 위해 번역문에 나타난 수종과 원문을 비교해 초본 및 식물도감을 찾아보았고, 한자로 표기된 원문의 명확한 해석을 위해 한자사전과 한자자전을 참조했다.
출현 초본류 유람록의 본문에 나타나는 초본류는 총 9종류로 세부내용은 <표 6>과 같다. ‘龍須草(용수초)’는 골풀로, 백합목 골풀과의 다년생초본이다. ‘書帶草(서대초)’는 백합목 백합과의 맥문동을 가리키는 듯하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書帶(서대)’가 맥문동을 나타내는 단어이기는 하지만 자료의 해석만을 신뢰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菊(국)’, ‘白菊(백국)’, ‘黃菊(황국)’은 초롱꽃목 국화과의 국화를 나타내고, ‘麻(마)’는 현재에도 널리 이용되는 백합목 마과의 마다.
‘當歸(당귀)’와 ‘石蒲(석포)’는 한자 그대로 산형과의 당귀와 백합목 백합과의 돌창포를 나타내며, ‘蕨(궐)’은 고사리목 고사리과의 고사리를 나타낸다. ‘獨活(독활)’은 땅두릅 혹은 멧두릅이라 불리는 산형화목의 두릅나무과의 풀이다. 국화과의 취나물로 추측되는 ‘靑玉(청옥)’과 ‘紫玉(자옥)’이 있는데, 이는 줄기의 색깔에 따라 청옥과 자옥으로 나눠진다고 하나 명확하지는 않다. 국화의 경우는 주로 사찰의 마당이나 마을 정자 주변에서 자라고 있어 인위적으로 심어 가꾼 것으로 보인다. 마 역시 마을을 지나다 보았다고 서술되어 있어 위와 동일한 이유로 사료된다.
출현 목본류 지리산 유람록에 출현하는 목본류는 총 36종이다. 원문의 한자만으로 정확한 수종을 유추할 수 없는 6종을 제외한 30종의 목본류는 <표 7>과 같이 정리했다.
유람록 번역문에 출현하는 수종 중 원문과 비교해 정확하게 서술되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杉(삼)’과 ‘檜(회)’가 대표적이다. 과거의 경우에는 흔히 삼나무라 알려진 ‘杉(삼)’은 전나무를 나타낼 때 표기하는데, 조선시대라는 시간적 배경에 미루어 볼 때 당시의 지리산에 일본 원산인 삼나무는 존재하지 않았다. 노송을 나타내는 ‘檜(회)’ 역시 과거 ‘杉(삼)’과 더불어 전나무를 나타낼 때 쓰이곤 했다.
그리고 녹나무라 번역된 ‘枏(남)’ 역시 상록활엽교목으로 주로 따뜻한 남부지방에 주로 분포한다. 가을철만 되어도 쌀쌀한 기후의 지리산에서 녹나무가 생존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보인다. 원문에 ‘枏(남)’이라 쓰여 있는데, 이에 대한 이유나 과연 ‘枏(남)’이 어떤 수종을 지칭하는지에 대하여는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다음은 원문에 나타났지만 정확한 수종파악이 힘든 한자들이다. 첫 번째는 ‘紅樹(홍수)’라 표현된 구절이다. 흔히 ‘紅樹(홍수)’라 하면 붉은 나무 혹은 붉은 잎의 나무를 나타낸다. 본 표현이 사용된 유람록은 계절적으로 가을철이므로 붉게 물든 잎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것이 단풍나무, 복자기나무, 혹은 옻나무 등의 붉은 잎을 가지는 수종인지 쉽사리 유추할 수 없다. 단순히 ‘紅樹(홍수)’라는 표현만으로 정확한 수종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두 번째는 ‘胡椒(호초)’다. ‘胡椒(호초)’는 인도 남부가 원산인 덩굴성 식물로 후추의 한자어인데, 열대성으로 지리산에서 살 수 없는 수종이다. 이러한 이유로 볼 때 당시에 ‘胡椒(호초)’를 심어 가꾸었는지, 그 열매만을 구해서 가지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세 번째는 ‘琪樹(기수)’이다. 유람록 중 ‘법당을 나와 琪樹(기수) 밑에 둘러 앉아’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玉(옥)처럼 아름다운 나무를 나타낼 때 흔히 쓰는 단어이다. 하지만 번역문의 ‘琪樹(기수)’에 대한 주석을 보면 ‘南天燭(남천촉)’이라 설명하고 있다. ‘南天燭(남천촉)’은 남천을 가리키는데 남천이 2~3m까지 자라긴 하지만 정확히 남천을 가리키는 것 같지는 않다. 국어사전에 ‘琪樹(기수)’의 같은 말로 ‘玉樹(옥수)’가 나오는데 그 뜻 중에는 회화나무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 산림문화에 대한 사회적 수요와 분위기는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산림문화에 대한 자료 제공은 부족한 실정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 연구는 산림문화의 다양한 스펙트럼 제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산림문화의 다양성 증진을 위해 시작된 본 연구 역시도 아직은 취약한 점이 많다. 현존하는 52편의 지리산 유람록에 대한 좀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확하고 다각적 측면에서의 접근을 위해 지리학, 관광학 등 타 분야와 연계한 연구 역시도 필요하다.
또한 이미 조성되어 운영 중인 지리산길은 물론, 아직 미조성된 전라권의 지리산길에 선인들의 유람경로를 포함시켜 코스를 개발해 낸다면, 현재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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