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 18. 23:49ㆍ山情無限/山
[패러글라이딩 | 히말라야 횡단 원정] (上)
가장 높이 날아 가장 멀리 보는 알바트로스처럼
글·사진 | 박정헌 대장 노스페이스 산악팀
150km '빙하의 바다'와 만년설 능선 보며 비행 오래전 영국의 BBC방송에서 수개 월 동안 육로를 통해 2,400km 길이의 히말라야를 횡단하는 다큐멘터리를 4부작으로 방영한 적이 있다. 나라별로 분류한다면 파키스탄, 인도, 네팔, 부탄, 중국 5개 국가다. 종교적으로는 무슬림, 힌두교, 불교로 나누어진다. 나라 간의 국경을 통과하면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자연환경보다는 종교적인 차이로 인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의 변화였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히말라야는 수평적 시각을 초월해 더욱 넓은 지구를 외곽에서 바라보는 3D다. 가장 척박한 문명 속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 가장 혹독한 환경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 끝없는 하늘 길을 걸어보았다. 원정대는 히말라야 자락의 사람과 산을 만나며 장엄함과 행복에 관한 낮은 소리를 들었다.
불법으로 소지한 통신기기로 인도 입국부터 곤욕
▲ 병풍 같은 만년설을 배경으로 촬영비행 중이다.
본대는 두 달 동안 총성과 평화가 공존하는 파키스탄의 비행을 끝내고 지난해 10월 17일 암리트차르(Amritsar)에 도착해 국경 폐쇄식을 참관했다. 약 10m 길이의 철문 좌우로 각각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나누어진다. 두 발로 양 나라를 함께 디딜 수 있는 거리를 두고 용맹하고 건장한 군인들이 서로 강한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 오버액션을 하는 모습은 너무도 재미났다. 오후 5시 열리는 이 행사는 외국인은 물론이고 수백 명의 현지인들이 자리를 메우는 관광 명물로 자리 잡았다.
다음날 파키스탄을 출국하는 수속은 의외로 간단했다. 까다로운 짐 검사도 없이 순식간에 많은 짐들은 게이트로 옮겨졌다. 마치 아프리카의 마시이족 아낙들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가는 것처럼 두건을 쓴 짐꾼들이 총총 걸음으로 게이트까지 가져다주고, 반대편 인도국경선에서 대기하던 짐꾼들이 달리기 계주를 하듯이 짐을 받아 같은 방식으로 출입국관리소까지 운반해 주었다.
인도 입국수속은 생각 외로 까다로웠다. 세관원들이 모든 짐들을 직접 확인하며 하나하나 풀어헤쳤다. 하얀 벽면에 ‘위성전화는 불법’이라고 적혀 있는 글귀를 보니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걸까! 우리는 인말새트 1대와 투라야 위성전화 1대, 무전기 5대를 가지고 있었다. 인도에서는 휴대전화기를 제외한 모든 통신장비는 법적으로 휴대할 수 없다.
카고백의 지퍼가 하나하나 열릴 때마다 마치 옷이 하나하나 벗겨져 나가는 느낌이다. 불안감은 점점 늘어갔다. 20개가 넘는 짐들을 점검하는 세관원도 점차 힘이 들고 짜증이 나는지 치밀함이 떨어지고 있다. 이훈구 기자는 인말새트 가방을 이미 점검한 짐 쪽으로 세관원의 눈길을 피해 발로 차버린다. 취사장비와 된장·고추장 등이 들어 있는 드럼통이 열리자 세관원은 똥 밟은 표정을 짓는다. 이상한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찌르자 급기야 짐 검색을 중단한다. 휴~, 하늘이 열리고 답답한 가슴이 터지면서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다.
위험 수위 99.9% 선에서 검사가 중단되었다. 재빨리 짐을 세관 밖으로 내던지고 입국심사대를 통과한다. 한숨 돌리고 나니 그제서야 면세점이 보인다. 두 달 만에 처음 보는 위스키는 사막의 오아시스보다 반갑다. 황급히 몇 병을 구입한다. 마시지도 않았지만 이미 마음은 만취한 기분이다. BBC 영상에서 아나운서는 국경 게이트에서 인도의 한 친구가 시원한 맥주 한 병을 건네는 것으로 무슬림과 힌두교의 문화적 배경을 풀기 시작한다.
히말라야의 시작점이라고 하는 낭가파르바트에서 인도 국경은 50km에 불과하다. 두 나라는 종교적 이념 차이로 분리되어 지금까지도 대치 중이다. 특히 파키스탄이 카슈미르 카길(Kargil)을 접수하기 위해 인도를 침공하면서 타이거 힐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지금도 포탄의 흔적과 그 전쟁의 냉기가 남아 있다. 우리는 낭가파르바트에서 인도의 스리나가르까지 직선거리 150km의 가까운 하늘 길을 접고 이슬라마바드를 거쳐 암리차르에서 국경을 통과해 3,000km를 달려 레(Leh)에 도착했다.
▲ 1 레로 향하는 잠무카슈미르 하이웨이를 달리고 있다.
2 케이롱에서 인도 첫 비상을 하고 있는 필자.
인도와 파키스탄이 가장 비교되는 것은 잘 정비된 포장길이다. 파키스탄에서는 지프의 천장에 머리가 닿는 일이 일상이다. 차량 간의 거리를 200여m 두고 운행해야 할 정도로 먼지가 심해 모래사막 속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카라코룸 하이웨이의 요란한 치장에 철렁거리는 트럭은 사라지고 컨테이너처럼 각진 사각버스가 대조적으로 달리고 있다.
사실 지형적으로 인도가 파키스탄을 공격하기는 만만치 않다. 지형적으로 험준한 바윗길들이 워낙 많아 바위 하나 굴러 떨어지면 길이 막히고 만다. 그래서인지 파키스탄 군인들은 방어적인 준비자세가 없어 보이는 반면 인도 군인들은 군기가 들어 보인다.
카라코룸 콩코르디아에서 김민수 대원이 위성전화로 인도에서 비행 가이드를 하기로 한 비르의 수레시에게 우리의 인도 입국에 관련한 일정과 차량 등에 관해 통화했다. 우리가 인도 마날리(Manali)에 도착해 몇 달 만에 한국식당에서 송어회와 소주를 마시려고 하는데 총을 가진 경찰관 여러 명이 몰려와 다짜고짜 “홍필표가 누구냐?” 묻는다. 우리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알고 보니 그때 민수가 전화한 번호를 추적해 이미 인도 대행사 직원은 간첩 의심자로 조사를 받고 나온 상태였다. 가만히 생각하니 휴전선 북한 진영에서 남한으로 날아온 전파나 다름없다. 그것도 불법으로 규정된 위성전화기를 이용해-. 여기서 우리는 인도가 저력의 IT 강국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이미 몇 시간 전 경찰이 숙소에 다녀갔다는 정보를 받아 위성전화를 몸에 휴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해 주머니에 넣어 식당으로 갔다. 그리고 식당 냉장고 속에 감추어 두었다.
떼로 몰려온 경찰에 놀란 한국식당 아주머니는 우리보다 더 안절부절못하며 위성전화를 주지 않으면 큰일 나고 자기도 잡혀간다고 야단이다. 점점 분위기가 살벌해지자 경찰관은 일행 모두 경찰서로 가자고 엄포를 놓는다. 나는 방에 들어온 경찰들에게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경찰이 보는 앞에서 냉장고에서 위성전화기를 꺼내기가 너무 민망했다.
하지만 경찰은 전혀 양보할 기색이 아니었다. 식당 아주머니도 소주를 파는 것도 불법이라 앞으로 영업도 못 한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결국 체면이고 뭐고 냉장고 속에서 슬며시 전화기를 꺼내니 살벌한 시베리아 벌판 같은 분위기를 풍기던 경찰들도 황당한 표정으로 이상한 웃음을 짓는다. 결국 위성전화기와 여권을 압수당하고 내일 아침에 경찰서로 출두하라 지시하고 돌아간다. 상다리가 부러질 것같이 차린 그 맛난 소주와 송어회가 어디로 들어갔는지 맛을 느끼지 못했다.
굶주린 비행 욕구 채우기 위해 힘찬 비상
▲ 3 다랑이논을 넘어 랜딩을 준비하고 있다.
4 35km를 날아와 바람이 강해 안니에서 착륙점을 찾고 있다.
원정대는 레에서 비행을 시작하려 했지만 군사지역이 많아 이륙하는 순간 경찰들이 벌떼처럼 몰려와 잡아갈 상황이라, 결국 마날리로 넘어가는 중간 지점인 케이롱(Keylong)에서 비행을 시작하기로 하고 이동을 계속했다.
만추의 계절에 라닥은 온통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다. 지구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로 높은 도로가 모두 레 주변에 있다. 고도 5,500m에 가까운 이 도로들은 10월 중순이면 모두 동면에 들어가 다음해 4월에 다시 열린다.
케이롱에 도착한 원정대는 아무리 주변을 살펴보아도 3,000m가 넘는 깊은 골짜기로 형성된 천길 절벽을 이룬 산 위에 이륙할 만한 장소가 없다는 공통된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비행 가이드인 비제이가 “어제 비르에서 출발해 케이롱 쪽으로 장거리 비행을 하던 여성 파일럿 한 명이 추락해 사망했다”는 비보를 전해 주며 “케이롱도 비행이 금지될 수도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산 넘어 산이다. 앞에서 이상한 인도인이 차량을 잡는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사복경찰관 얘기로는 우리 운전사들이 검문에 불응하고 도주해 차를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운전사를 족치고 있다. 이훈구 기자가 한참동안 상황을 설명하려 했지만 괘씸죄에 걸려 대장이 잡아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돈을 주어야 하나 고민하며 한참 옥신각신한 이후 겨우 상관에게 사정해 풀려날 수 있었다.
케이롱에 도착한 다음날 전혀 이륙장이 없을 것 같은 골짜기를 10분 정도 내려가니 우측으로 갈지자 도로가 사면을 타고 오른다. 두리번거리며 이륙장을 찾아보지만 바람 방향과 맞지 않다. 다시 자리를 옮겨 이륙장이 될 만한 장소를 찾았다. 파키스탄과 비교해 너무도 안전한 이륙장을 발견한 것이다. 멋진 이륙장을 발견한 것은 보석을 발견한 것보다 기쁘다. 무엇보다 안전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 1 빌링 2,400m 이륙장. 300명 정도가 비행한다.
2 지도를 보고 gps에 좌표를 입력 중이다.
케이롱은 좌우에 큰 만년설 능선을 사이에 두고 비행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고도를 높인다면 양옆으로 히말라야에서 가장 넓은 150km의 ‘빙하의 바다’, ‘은둔의 땅’을 한눈에 넣을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하지만 오전 11시 이후면 어김없이 바람이 강해져 오전 10시 이전에 이륙해 11시면 착륙해야 했다. 여러 번 비행 드라이브로 동행한 비제이는 11시 이후가 최상의 이륙 시간이라 했지만 세 명의 파일럿 모두 히말라야라는 지형적 위험성을 너무 잘 알기에 누구도 그런 위험 속에서의 비행을 원치 않았다.
하루는 바람이 강해지고 열기류가 상승하면서 기체가 내려오지 않아 혼쭐나기도 했다. 위험을 넘어 아름다움을 본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아름다움만큼 아픔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바람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 사과나무 군락지인 쿨루계곡을 타고 비르에 도착했다. 비르는 세계 비행자들의 천국이다. 이미 300여 명의 파일럿들이 인도 대륙에서 불어오는 남풍을 받아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설산들을 왕복하며 바람을 낚고 있다. 하늘 위의 태공들은 물 반 고기 반 황금어장을 만끽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동안 굶주린 비행 욕구를 채우기 위해 힘찬 비상을 시작한다. 역시 비르는 내 생각을 저버리지 않았다. 매일 2~3시간의 비행을 쉽게 할 수 있었고, 1m가 넘는 독수리들이 열기둥의 포인트를 찾아주면서 하늘 길을 열어 주었다. 러시아 친구는 비행 중 독수리와 충돌해 기체와 하네스를 연결하는 라인에 독수리 날개가 걸려 추락했지만 다행히 나무 위에 떨어져 아무 사고 없이 탈출할 수 있었다.
하필이면 경찰서 앞에 착륙, 감금돼 조사
▲ 케이롱에서 인도 첫 비상을 하는 대원.
더 신기한 것은 라인에 걸린 독수리를 풀어서 다시 자연 속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이 모습은 헬멧에 부착한 작은 카메라에 찍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많은 파일럿들은 이 상황을 두고 사람이 비행을 잘못한 것인지 독수리가 잘못한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다. 독수리의 영공을 침범한 인간에게 죄를 물어야 할지, 라인을 보지 못한 독수리의 잘못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한 문제였다. 이 사고는 파일럿들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준 사건이었다. 그러나 독수리는 하늘의 마스터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창공의 절대군주다.
우리는 열기둥을 향해, 뭉게구름을 향해 낚싯대를 던졌고 언제나 황금어장이었다. 비르에서 멕글로드간즈 달라이 라마의 집 지붕 위까지 날아가 소리 질러 불러보고 다시 돌아온 100km 왕복 비행과, 바기(Bagi)에서 우타르카시(Uttar Kashi)까지 직선 100km 비행은 월척이었다. 월척을 낚은 파일럿은 좋지만 육상대원들은 꼬박 2일간을 달려 우리와 합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타르카시에서 경찰서 앞에 함영민 대원이 착륙해 그날 이후 경찰들의 감시와 추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갑자기 하늘의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다. 두 번이나 경찰서에 감금되어 조사를 받았지만 법적으로 우리를 추방하기는 힘들었다. 이들이 비행을 못 하게 하는 조건은 중국 국경과 50km 이내라는 것이 전부였다. 조서를 작성하고 비행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작성하고 경찰서 문을 나설 수 있었다.
인도 히말라야는 독수리들의 천국이다. 2,400km의 산맥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독수리와 조류들이 서식하고 있다. 10년 동안 독수리 보호를 위해 힘써온 네팔 포카라(Pokhara) 거주 영국인 친구 스코트는 농민들이 농약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독수리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파키스탄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히마찰에서는 인도 대륙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을 타고 독수리와 동무하며 멋진 하늘 길을 열었다. 상승기류를 타고 구름에 헤딩하고 솜사탕 같은 구름 속에서 나침반을 보고 진로를 잡아간다. 우리는 가장 높이 날아 가장 멀리 보는 알바트로스를 꿈꾸며 네팔로 나아가고 있었다.
월간산 [509호] 2012.03 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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