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26. 16:34ㆍ이래서야/탈핵
일본 원전피해 및 심각성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은 전 세계의 골칫덩이다. 하루 300t의 방사능 오염수가 끊임없이 태평양으로 새어나간다. 이를 단기간에 차단할 뚜렷한 대책도 없는 상태다. 하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오염수로 인한 영향은 통제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완전 차단’이란 말도 반복하고 있다. 태평양 바다가 모두 자기 것인양 오염수를 내보내고 있으면서도 불안과 걱정에 쌓인 주변국에 대한 사과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어디 오염수뿐이랴. 후쿠시마는 여전히 방사능의 공포 속에 떨고 있었다. 마을 모습도, 주민들 마음도 치유되지 않고 있었다. 중앙일보 취재진이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2년 반을 맞아 후쿠시마의 모습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원전 주변 반경 약 50㎞ 지점부터 원전 앞 1㎞까지 샅샅이 둘러봤다.
배 50척은 2년 반 동안 묶여 있어
지난 12일 낮 후쿠시마현 나미에마치(浪江町) 니혼마쓰(二本松) 사무소. ‘귀환(歸還)곤란구역 출입허가증’을 교부받고 취재차량을 원전 방향으로 15분가량 몰자 이중으로 차단된 바리케이드가 나타났다. 원전으로부터 약 40㎞ 지점. ‘귀환곤란구역에 따라 통행금지’란 팻말이 걸려 있고 5명의 경비원이 차량 탑승객의 신분증과 허가증을 일일이 대조했다. 귀환곤란구역이란 연간 방사선 누적선량이 높아 5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거주 및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곳. 입구에서부터 도로변 풀들은 잡초가 돼 삐죽삐죽 솟아 있었고 음료 자동판매기는 녹슬어 흉측한 몰골로 변해 있었다.
30분 뒤 도착한 곳은 쓰시마(津島) 스크린 검사소. 원전에서 약 20㎞ 떨어진 이곳부터는 방호복으로 갈아입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었다.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두 겹으로 된 신발 덮개를 했다. 손에는 면장갑 위에 다시 고무장갑 두 개를 추가로 끼어야 했다.
방호복을 착용하고 16번 국도에 들어서자마자 차량에 설치한 방사능 측정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일반인의 시간당 방사능 피폭 허용기준치는 약 0.19마이크로시버트. 차량 안 측정기 수치가 순식간에 3.55마이크로시버트까지 오르더니 불과 3분 사이 8.61로 치솟았다. 기준치의 45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원전 반경 10㎞ 내의 나미에마치에 들어서자 갑자기 원숭이가 도로변에 나타났다. 보초 역할을 하는 듯한 원숭이 한 마리가 잽싸게 ‘외지인’의 등장을 경고하고 사라지자 곧이어 우두머리로 보이는 덩치 큰 원숭이 한 마리가 도로변 담배가게 쪽에서 취재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 민가 지붕 위로 뛰어 올라갔다. 눈에 띄는 야생 원숭이만 대략 10여 마리. 사람을 경계할 필요가 없어진 야생 원숭이가 원전 주변 마을의 민가와 상점을 접수한 것이다.
바리케이드 검문소의 한 60대 남성은 “인적이 끊긴 지 2년 반이 되다 보니 야생동물들이 인간의 위협을 느끼지 못하고 피하지도 않는다”며 “검문소 동료의 차량은 며칠 전 도로에서 야생 멧돼지에 들이받혀 파손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원전에서 8㎞가량 떨어진 나미에마치역. 역 광장 앞 가로등의 윗부분이 부러진 채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상점들은 마치 폭격을 맞은 듯 폭삭 주저앉은 채였다. 간간이 지나가는 경찰 차량과 전력회사 차량만이 눈에 띄었다. ‘마쓰모토 이발소’나 ‘사토 주점’ 같은 간판이 없었다면 이곳에 예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인적을 찾아볼 수 없이 폐허가 된 유령 도시였다.
원전에서 3㎞ 거리의 후타바마치(雙葉町) 대로변 옆 풀밭. 소 20여 마리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피폭을 당해 식용으로 내다팔 수 없어 정부가 도살을 지시한 소들이다. 하지만 목책에 걸려 있는 ‘생명의 낙원’이란 간판이 소 주인의 심정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가축으로서의 가치는 상실했는지는 모르지만 ‘피폭 소’라고 해서 결코 생명을 빼앗을 순 없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인근 6번 국도를 지나자 돌연 방사능 측정기의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측정기 화면도 ‘경고 수준’을 알리는 적색으로 변했다. 수치는 시간당 21마이크로시버트. 차량 안임에도 불구하고 연간 방사능 피폭 허용치로 환산하면 무려 110년치에 달하는 방사능이 쏟아진 것이다. 외부에서 이 방사능에 그대로 노출됐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 오싹해졌다. 어찌할 수 없는 후쿠시마의 현실이었다.
이튿날 원전에서 약 30㎞ 떨어진 이와키시의 히사노하마(久ノ濱) 항구. 항구에는 50척의 배가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밧줄에 묶여 있었다. 어민들의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2년 반 동안 한 번도 생선을 잡아 팔지 못하고 있는 스트레스 때문이다. 지난해 6월부터 시험조업을 실시해 온 후쿠시마현 북부지역 어업협동조합과 달리 이곳이 속한 남부지역 조합은 줄곧 조업을 중지해 왔다. 더구나 이달 초부터 일부 어종에 대해 시험조업이 예정돼 있었는데, 오염수 문제가 불거져 나오며 또다시 연기되면서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어부인 스즈키 미쓰노리(鈴木三則·62)는 “2년 반이나 기다렸는데 또 조업이 지체되면 어민도 배도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취재진이 만난 어부들은 대부분 한국 정부가 지난 6일 발표한 ‘일본 8개현 수산물 금수’ 조치에 대해서도 불만을 쏟아냈다.
히사노하마 항구에서 남쪽으로 10㎞가량 떨어진 오나하마(小名濱)항. ‘저인망어업협동조합’의 니키 가쓰미(仁木克己·67) 회계주임은 “국가가 아예 출하를 금지시킨 42개 어종은 잡아봐야 팔지도 못하고 폐기 처분할 수밖에 없다”며 “따라서 그동안 계속된 모니터링을 통해 방사능 안전성이 검증된, 세슘 농도가 아주 낮거나 전혀 검출되지 않은 문어·오징어·털게 등 16개 어종에 한해 시험조업을 하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험조업이란 본격적인 조업 재개를 앞둔 준비단계다. 생선을 잡아 일부 상인을 통해 유통시켜 실제로 팔리는지 안 팔리는지 소비자의 반응을 살펴보려는 작업이다.
하지만 막상 후쿠시마 수산물을 소비자에게 내다팔아야 하는 상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오나하마항 부근 대형 어시장에서 10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상인 시오노 가즈히로(鹽野和裕·28)는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나오고 있는 게 현실인 만큼 향후 10년은 후쿠시마에서 조업을 재개하기 힘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16개 어종 시험조업 … 재개 움직임
취재 중 확인한 것은 ‘후쿠시마 안의 양극화’였다.
취재진이 숙박한 이와키시는 원전에서 남쪽으로 43㎞가량 벗어난 곳. 방사능 수치는 시간당 0.12마이크로시버트로 기준치보다 한참 밑이었다. 낮에는 식사를 위해 식당 앞에서 상당 시간 줄을 서 기다려야 했고 밤에는 거리마다 인파가 넘쳤다. “여기가 후쿠시마 맞아?”란 말이 절로 나왔다. 12일 밤 취재진이 찾은 한식집에는 마침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작업하는 가시마(鹿島)건설과 도시바(東芝) 직원들이 회식 중이었다. 주인 이상옥씨는 “전국에서 몰려온 원전 복구 관련 종사자들로 때아닌 대목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때 회식 중이던 한 직원이 취기가 올랐는지 벌떡 일어나 자신의 이름인 ‘요시오’를 가사에 넣어 개사한 듯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요시오는 원전에서 일한다오~. 내일도 가야 한다오~. 무섭고 두려움도 있다오. 하지만 내가 갈 길은 바로 그곳이라오.” 후쿠시마에서 살아가는, 살아갈 수밖에 없는 ‘후쿠시마인의 운명’이 애절하게 느껴졌다
일본 후쿠시마 지역은 원전 피해지역으로,살아남은 자들까지도 미래에 대한 불안때문에, 그들의 일상적인 삶 조차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에, 의혹 하나가 불거지면서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바로 " 일본 원전피해 지역 후쿠시마 주민 40여명이 우리나라의 전북 장수군에 집단 이주? "였다.그것뿐이 아니었다.
경남 산청에는 일본의 민간주도의 '일본마을'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이들도 후쿠시마 지역 일본인들로, 농업회사법인 감수원에 의하면, 한국에서 생활을 원하는 재일동포와 일본인 등 35가구를 분양할 계획이라 했다.
아직도 방사능 공포…노인-가축만 남은 ‘유령마을’
사람의 발길이 끊긴 상점가를 뼈가 앙상한 소와 개들이 돌아다닌다. 고삐에 묶인 채 굶주려 죽은 소들의 뼈와 가죽만 남은 사체가 널브러져 있다….
주민들이 모두 떠난 후쿠시마(福島) 현 도미오카(富岡) 마을은 영화에서 본 유령 마을과 똑같았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까지는 동북쪽으로 불과 10km 거리. 강제피난 지시를 거부한 채 혼자 마을을 지키고 있는 주민 마쓰무라 나오토(松村直登·52) 씨의 도움으로 동아일보 취재팀은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마을 안을 취재할 수 있었다.
전기도 수도도 끊긴 집에서 살고 있는 마쓰무라 씨는 살아남은 마을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일과를 보내고 있다. 그는 “정부에서 곧 돌아다니는 가축을 포획해 도살처분 하겠다고 한다”며 “죽음의 도시가 따로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일시 피난했다 가축을 돌보러 돌아온 그는 이미 피폭 판정을 받은 상태다.
원전사고 1년이 지났지만 후쿠시마 전역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여전하다. 원전을 중심으로 반경 20km 내 강제피난지역(경계구역)은 일부 원전 관련 차량의 출입만 허가된 채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 피해를 당했던 1년 전 모습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경계구역 바깥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 정부는 원전 반경 20∼30km 지역을 대상으로 설정한 긴급 시 피난준비구역을 지난해 9월 해제했다. 하지만 일부 노인만 돌아왔을 뿐 대부분 도시는 텅 비어 있다. 비교적 안전하다는 지역에 남아 있는 주민들도 만성적인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텅 빈 마을, 노인들만 남아
원전 반경 20km 지점에 설치된 나미에(浪江) 마을의 경계구역 검문소에서는 재해대책법에 따라 출입을 금지한다는 표지판과 함께 경찰이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었다. 검문소 바로 앞에서 측정기로 방사능 수치를 재보니 지상 1m 높이에서 시간당 0.6μSv(마이크로시버트)가 나왔다. 하지만 측정기를 지면에 대자 ‘삐삐삐’ 하는 경보음과 함께 순식간에 수치가 시간당 9.14μSv로 뛰었다. 연간 법적 허용치인 시간당 3.8μSv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검문소 바로 바깥 마을에서 만난 주민은 “경계구역과 불과 1km 차이인데, 어디는 피난 지역이고 어디는 아니라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노인들만 마을에 일부 남아 있는데 토양오염이 심한 데다 이 지역 농산물이라면 팔리지도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 남쪽 히로노(廣野)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인구 5200명이 북적였던 마을은 긴급 시 피난준비구역에서 해제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차역 앞 800m가량 이어진 중심 거리의 상점이 모두 셔터를 내리고 있다. 주택가도 대부분 대문과 창문이 잠겨 있고 유치원과 초중학교도 텅 비어 있다. 피난지에서 집안 정리를 하러 잠깐 들렀다는 가자와 도루(加澤太) 씨는 “현재 노인들만 250명 정도 마을에 돌아와 있다”며 “돌아와도 가게나 병원 등 생활기반시설이 모두 문을 닫아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현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현재 현 전체 인구는 198만814명으로 사고 전보다 4만3587명이 줄었다. 또 전체 인구의 3%인 6만2674명은 주소지만 남겨둔 채 현 밖에서 피난 중이다. 지역경제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지난해 현 전체 쌀 판매량은 전년의 40%에 그쳤다. 1월 실업수당 수급자는 2만300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아이 암보험 드는 엄마들
비교적 안전하다는 지역에 남아 있는 주민들도 불안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하고 있다. 원전에서 60km가량 서북쪽으로 떨어진 다테(伊達) 시에 사는 주부 다케우치 아이(가명·27) 씨는 식사 때마다 세 살짜리 딸의 밥을 따로 짓는다. 농사일을 하는 남편이 직접 재배한 쌀에서 세슘은 검출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불안해 원전에서 좀 더 떨어진 지역의 쌀을 사 먹이고 있다. 딸이 밖에서 노는 시간도 2, 3일에 한 번으로 제한했다. 그나마 현관 앞에서 20분을 넘기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도 주위 엄마들이 아이들의 암보험을 들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다케우치 씨는 “유치원에 같이 다니던 아이들이 지난해 13명에서 올해 2명으로 줄었다”며 “일 때문에 피난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딸만 보면 죄를 짓는 기분이 다”고 말했다.
떠났다고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다. 남편을 남겨두고 다섯 살짜리 아이만 데리고 인근 현으로 이사한 요시다 유코(吉田裕子) 씨는 3년 전 간신히 마련한 자신의 집에 영원히 들어갈 수 없는 게 아니냐며 불안해했다. 그는 “아직도 집 지으면서 생긴 빚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일상이 깨지자 불안과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이 늘고 있다. 후쿠시마 시 중앙시민의료생활협동조합은 원전사고 이후 6개월간 불면증 환자가 전년 대비 27%, 고혈압 환자는 같은 기간 13% 늘었다고 집계했다. 반면 진료할 의사는 줄고 있다. 현 병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원전사고 이후 12월까지 현 내 의사 152명이 떠나고 81명이 새로 들어와 모두 71명이 줄었다.
이런 가운데 현재 피난 중이지만 귀향을 결심한 기초자치단체들도 있다. 히라노 마을사무소가 1일 귀촌해 문을 열었고 인근 고리야마(群山) 시에 피난 중인 가와우치(川內) 마을사무소도 26일 고향에 돌아갈 예정이다. 가와우치 마을 엔도 유코(遠藤雄幸) 촌장은 “위험이 남아 있지만 고향이 바로 거기 있기 때문에 돌아가기로 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엔도 촌장의 책상 주변에는 ‘포기하지 않는다’ ‘부흥원년’ ‘결속’ 등의 표어가 붙어 있었다.
방사성물질 계속 유출… “원전사고는 진행형”
도쿄전력은 1월 19일 후쿠시마 제2원전 2호기의 격납용기에 공업용 내시경을 넣어보고 깜짝 놀랐다. 강렬한 방사선으로 생긴 하얀 반점이 화면 가득히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바닥에서 4.5m까지는 차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냉각수는 4m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각종 데이터를 근거로 밖에서 추정한 것과 실제 내부 모습은 너무 달랐던 것이다.
일본 정부가 원전사고 9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원자로의 온도가 100도를 밑돌아 안정적인 상태”라며 ‘냉온정지’를 선언한 것을 무색하게 하는 일이었다. 냉온정지 선언은 원자로 상황을 파악조차 하지 못한 채 내린 성급한 조치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비판은 해외 원전 전문가들에게서도 이어졌다.
“일본의 원전규제 당국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었다.” “이제 원전사고만 났다 하면 일본을 먼저 의심하게 됐다.”
지난달 24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 정부 산하 ‘원전사고 조사·검증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해외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와 관료의 불투명한 정보 공개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회의에 참석한 장순흥 KAIST 교수(한국원자력학회장)는 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보 은폐 사실이 뒤늦게 속속 드러나면서 일본 정부는 국내적으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신뢰를 잃었다”고 평가했다.
3월 초 현재 후쿠시마 원전 용지 내부를 제외하면 반경 20km 이내 경계지역이라고 해도 방사능 수치는 시간당 10μSv(마이크로시버트) 이하로 비교적 안정적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났어도 해외에서 ‘도쿄’를 위험한 도시로 간주하는 것은 사고 당시 솔직하지 못했던 일본 정부가 자초한 상황”이라는 게 장 교수의 지적이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 40년 후인 2052년에 원자로를 해체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안정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방사성물질의 유출을 막기 위해 1호기에 포장 막을 씌우는 등 일부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사고 원전에서는 지금도 시간당 1000만 베크렐의 방사성물질이 나오고 있다. 또 원전 냉각을 위해 주입한 물이 배관 틈으로 새어나와 원자로마다 1만∼2만 t의 고농도 오염수가 차는 바람에 작업에 차질을 주고 있다.
압력용기 바닥을 뚫고 격납용기 하부에 가라앉은 용융 연료봉이 땅속까지 스며들었다면 원전 폐로는 계획보다 더 오래 걸릴 수 있다. 이럴 경우 원전 주변 지역은 향후 수십 년 동안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버려질 수밖에 없다.
사고 직후 정부와 관료들의 무능과 무책임을 폭로하는 조사 결과도 최근 계속 나오고 있다. 순수 민간인으로 구성된 독립검증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도쿄전력과 감독관청인 원자력안전보안원은 지진 발생 당일인 지난해 3월 11일 이미 멜트다운 소지가 크다고 판단했지만 정부는 이를 은폐했다. 또 일본 정부는 긴급 시 방사능 확산을 예측하는 시스템인 SPEEDI가 사고 직후 방사능 확산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음에도 확실하지 않은 자료라며 한 달이나 지나 발표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국제원전사고 등급 가운데 최악인 7등급을 받았을 때 일본에서는 “가스미가세키(일본 정부 및 관료)의 신뢰등급이야말로 레벨 7”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시스템의 일본’이라는 신화를 산산조각 내버린 원전사고 이후 1년이 지났어도 불신의 먹구름은 여전히 일본사회 곳곳을 뒤덮고 있다.
남편 남겨둔 채… ‘자발적 이산가족’ 속출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지진 때문에 불안해 견딜 수가 없어요. 아직도 3·11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일본 도쿄에 사는 30대 중반의 여성 오하시 아야코(大橋亞矢子) 씨는 한숨을 내쉰다. 도쿄를 포함한 수도권에서는 지난해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리히터 규모 3 이상의 지진이 하루 평균 1.48회 발생하고 있다. 앞으로 4년 이내에 수도권에 규모 7 이상의 강진이 발생할 확률이 50%라는 도쿄대 지질연구소의 발표도 있었다.
오하시 씨의 걱정은 지진만이 아니다. 방사능에 오염된 먹을거리, 자녀 건강, 더딘 복구 작업 등 현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총체적 불안감도 골칫거리다. 대지진이 난 지 1년이 다 됐지만 일본 국민의 일상생활을 뒤흔드는 ‘생활 속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요코하마 시에서 커피숍을 하는 이와사키 도모미(巖崎智美·42) 씨는 요코하마에 직장이 있는 남편만 남겨둔 채 초등학교 1학년인 딸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구마모토(熊本)로 이사하기로 했다. 구마모토는 일본 남쪽인 규슈지역에서도 거의 끝자락이다. 이와사키 씨는 “수도권은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하다지만 앞으로 우리 애의 건강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쿄시내 상당수 초중고교는 전 학생이 의무적으로 학교급식을 하게 돼 있지만 지난해 가을부터는 도시락 지참을 허용했다. 급식에 들어가는 식자재의 원산지를 묻는 전화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방사능 오염에 대한 우려와 불신은 주부들의 장보기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40대 주부 기노시타 도모코(木下朝子) 씨는 “예전에는 저녁 메뉴를 정하고 장을 봤지만 이제는 슈퍼마켓의 재료를 보고 그날 메뉴를 정한다”고 말했다. 예전 같으면 전혀 인기가 없던 호주산 쇠고기가 가장 먼저 동나는가 하면 한국산 식품을 파는 한국 슈퍼마켓은 일본 손님으로 하루 종일 북적인다.
음식물을 통해 몸속에 방사능이 조금씩 축적되는 내부피폭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는 의학적으로 검증된 결과가 없다. 하지만 ‘앞일을 알 수 없다’는 불안이 음식물 공포를 불러오고 있다. 후생노동성이 다음 달부터 음식물 방사능 규제치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불신과 공포는 지역 이기주의로 이어지고 있다. 피해가 집중된 후쿠시마(福島) 미야기(宮城) 이와테(巖手) 3개 현은 지진해일(쓰나미)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1년 동안 처리된 양은 5%에 불과하다. 자체 소각시설로 감당할 수 없어 전국 지자체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퇴짜를 맞았기 때문이다. 지자체들은 “소각장을 과도하게 가동하면 시설이 빨리 노후한다”거나 “쓰레기는 각 지자체 내에서 해결하는 게 원칙”이라며 외면하고 있다. 정부가 최근 쓰레기 반입을 허용하는 지자체에는 재정 지원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아직까지 손을 들고 나선 지자체는 없다.
지난해 말 아사히신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80%가 일본을 위험사회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위험한 상황에 빠지거나 재해를 만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안심 안전사회를 자랑해온 일본 국민의 불안심리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본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6일 현재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사망·실종자는 1만9126명이며 이 중 19세 이하 미성년자가 5.5%인 1046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日,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피해복구비 최소 23조엔 “가뜩이나 나랏빚 많은데…”
“30세 청년이 교통사고를 당해 10년 만에 회복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30년이 걸려도 회복될까 말까한 심각한 교통사고를 또 당했다. 이제는 나이까지 들어 매우 힘들 것이다.”
일본 정부 산하 싱크탱크인 JETRO-아시아경제연구소의 미즈노 준코(水野順子) 신영역연구센터장은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의 현재를 이같이 진단했다. 1995년 한신(阪神)대지진을 겪은 일본이 회복하는 데 10년이 걸렸지만 이보다 피해 규모가 수배에 이르는 동일본 대지진은 30년이 걸려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미즈노 센터장은 “1995년만 해도 일본 경제는 활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장기불황을 겪고 있는 점도 큰 차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의 후유증을 딛고 일어설 수 있을 것인가.’ 도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총리관저 주최 정부합동 외신기자 회견장에서는 일본의 미래를 묻는 특파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들의 질문에는 ‘사상 초유의 쓰나미에 원전사고까지 겹친 지난해 대지진 상처의 완전한 극복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는 듯했다.
실제로 일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현안은 산적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앞으로 10년간 최소 23조 엔에 이르는 복구자금 마련을 위해 국채발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넘어 선진국 가운데 최악이다.
요코하마시립대 국중호 교수(재정학)는 “해마다 20조 엔씩 국채발행액이 순증하는 일본으로서는 복구자금을 마련하느라 나라살림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직은 저축 등 민간금융자산(1300조 엔)이 나랏빚(1000조 엔)보다 많아 버티고있지만 대지진으로인해 국가부도 위기가 더 빨리 올수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문제도 풀어야 할 난제다. 전력 생산에서 원전 의존율이 30%에 이르는 일본은 다음 달이면 현재 가동 중인 2개의 원전까지도 가동을 중단해 54기 모두 멈춘다. 명목상 정기점검을 위한 것이지만 원전 반대 여론이 높아 재가동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 때문에 앞으로 필요한 전력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더 드는 화력발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는 도쿄전력은 다음 달부터 공장용 전력요금을 평균 17% 인상하기로 했다. 장순흥 KAIST 교수(양자공학)는 “제조업이 점차 정보기술(IT)화 되고 있는 추세에서 전기요금은 가격경쟁력과 직결된다”며 “원전 가동이 모두 중단되면 일본 제조업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본이 겪고 있는 에너지문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적지 않다. 세계적인 수준의 에너지 절약 기술이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겪으며 탄생했듯이 반(反)원전 여론이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보급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지진과 원전사고가 많은 희생자를 낳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져왔지만 사회적으로는 한층 더 튼튼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도 있다. 아리타 신(有田伸·사회학) 도쿄대 교수는 “재해복구 과정에서 피해 지역 주민과 전국의 자원봉사자가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회적 신뢰는 더욱 공고해졌다”며 “대지진을 계기로 일본의 정책 결정 과정에 지역주민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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