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 아저씨께 보내는 협박편지

2014. 12. 5. 01:15이래서야/더불어살기위하여

 

 

"최경환 아저씨, 저는 화가 났습니다"..연고대에 대자보 등장

세계일보 | 김동환  | 2014.12.04 15:18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한 대학생들의 대자보가 등장했다. 작년 하반기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이후 약 1년 만이다.

 

최근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과 고려대 정경대 후문 게시판 등에는 '최씨 아저씨께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를 붙인 이들은 연세대와 고려대생이 운영하는 20대 대안 미디어 '미스핏츠' 회원들로 추정되며, 최씨 아저씨는 최 부총리다. 이들에 게재한 대자보는 '정규직 과보호 발언'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은 "최경환 아저씨, 저는 좀 화가 나 있습니다"라며 "아저씨가 하신 말 때문에요"라고 글을 시작했다. 이어 "계급장 떼고, 우리가 포장마차에서 만났다고 상상해 봅시다"라며 "요즘 욕 많이 드시느라 힘들다고 소주 한 잔 따르신다면 그거 냅다 뺏어 제 잔부터 채우렵니다"라고 덧붙였다.

 

글은 최 부총리가 지난달 천안 국민은행 연수원에서 열린 정책세미나에 참여해 한 말을 비판하고 있다. 당시 최 부총리는 "정규직을 한번 뽑으면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하고 임금피크제도 잘 안 된다"며 "정규직 과보호로 겁 난 기업이 (인력을) 못 뽑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규직) 해고를 쉽게 하기보다 임금체계를 바꾸는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라며 노동시장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아저씨의 '정규직 과보호' 발언은 '일자리를 인질로 잡고 있으니 정규직 이놈들 순순히 권리를 내놓아라'는 걸로 들린다"며 "우리는 정규직 과보호가 불만이 아니라 비정규직이 너무 보호 안 돼서 불만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경제부총리 취임하시면서 얘기하셨던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보호 강화'는 허울만 좋은 선물이었나요?"라고 되물었다.

 

이들은 "정말 계속 이러시면 곤란하다"며 "정규직 갉아먹고 '노동자 모두'는 얼마나 행복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다 같이 망하자는 거 아니면 우리 같이 좀 삽시다"라며 "이건 권유, 애걸이 아니라 협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같이' 좀 살길을 찾아봅시다"라고 글을 맺었다.

 

<대자보 전문>

 

최경환 아저씨, 저는 좀 화가 나 있습니다. 아저씨가 하신 말 때문에요. 총리 대 찌질이 대학생으로 말하지 말고, 계급장 떼고, 우리가 그냥 포장마차에서 만났다고 상상해 봅시다. 요즘 욕 많이 드시느라 힘들다고 소주 한 잔 따르신다면, 저는 그거, 냅다 뺏어 제 잔부터 채우렵니다. 저는 경제는 잘 모르는 학생입니다만, 제가 체감하는 삶은 아저씨 생각이랑 많이도 다릅니다.

 

작년 서울시 통계를 보면, 40대 이상은 암으로 죽고, 20대는 자살로 죽었답니다. 장년층이 속 곪아 암으로 죽는다면, 청년층은 애쓰다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아저씨, 제 친구들은 평균적으로 천 삼백만원어치 빚을 지고 대학을 나갑니다. 요즘엔 취업도 힘들어서, 1년 정도 '취준'하는 건 찡찡될 축에도 못 끼고요. 기업들은 '스펙초월'이다 뭐다 하는데, 주변에 토익점수 하나 없이 이력서 쓰는 애들, 본 적 없습니다. 주변에 취직한 친구들 두 명이 야근하는 분량을 합치면 일자리 하나는 거뜬히 나오는데 왜 채용인원은 그렇게 적습니까.

 

고생대결 하자는 게 아니라요, 그냥 같이 잘 좀 해보자고요. 우리도 부모한테 빚 안지고, 독립해서 멀쩡히 회사 다니고 싶어요. 그래서 다들 이 고생하면서 안정적으로 돈 벌 데 가고 싶어한다고요. 이 빚, 본인이 못 갚으면 부모 빚 되고 형제 빚 되요. 청년이 자립할 수 있는 사회 못 만들면 청년만 손해가 아니라고요. 안 그래요, 또 하나의 부모 최경환씨? 우리가 취업 못하고, 창업 망하고, 집 못사면 우리 부모님 세대도 죽어난다고요. 우리가 엄마아빠가 가진 부동산들 안 사주면 집은 누가 사고, 부모님 받으실 연금은 누가 내요. 청년이 이 사회의 허리입니다. 허리를 이렇게 끊으면, 달릴 힘이 어디서 날까요?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돈 낸다고 저희 미래 책임져 주시지도 않잖아요. 제가 60살 되면 남는 연금이 없을테니까요. 예? 그러면서 20만원 지원하고 다자녀 낳으라고 하고요. 택도 없네요. 자꾸 이렇게 헛소리 하시면 우리는 순순히 애를 낳아주지 않을 겁니다. 다른 정치인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꾸 청년을 '봉'으로 알고 선거때만 빛 좋은 개살구를 던지면, 우리는 순순히 연금을 내주지도, 집을 사주지도 않을 거란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맞습니다. 협박입니다. 제가 협박을 하는 이유는 아저씨가 먼저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저씨의 '정규직 과보호' 발언은 제게 "일자리를 인질로 잡고 있으니, 정규직 이놈들, 순순히 권리를 내놓아라"로 들렸거든요. 저희는 정규직이 과보호되서 불만인게 아니라, 비정규직이 너무 보호 안 돼서 불만인데, 자꾸 아저씨는 '창의적'인 해법을 말합니다. 아니, 트렌드따라 '창조적'이라고 해드릴께요. 경제부총리 취임하시면서 얘기하셨던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보호 강화는 허울만 좋은 선물이었나요?

 

아저씨, 우리가 고생고생해서 얻은 일자리가 '저질'이면 누가 제일 힘들지 생각해보세요. 우리도 힘들지만, 엄마 아빠한테 용돈도 못드리고 내복 한 벌 못사드릴 거라고요. 손자 볼 생각은 꿈에도 마시고요. 설마, 애 기를 돈도, 시간도, 공간도 없을 저에게 뭔가 막 기대하고, 그러실 거 아니죠?

 

정말, 계속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미래를 갉아먹고 지금 당장 얼마나 배 부를 수 있습니까? 정규직 갉아먹고, '노동자 모두'는 얼마나 행복할 수 있습니까? 청년 세대에게 짐을 미뤄두고, 장년 세대는 얼마나 마음 편할 수 있습니까?

아저씨, 다 같이 망하자는 거 아니면, 우리 같이 좀 삽시다. 이건 권유나 애걸이 아니라 협박입니다. 우리, '같이' 좀 살 길을 찾아봅시다.

 

김동환 기자kimcharr@segye.com
사진=온라인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