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하여..

2015. 11. 10. 03:13역사/역사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하여..

(옮겨온 글)

 

 

 

 

최근 역사에 대한 최고 화두는 국정교과서지만 가능하면 이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입장을 언급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딱히 외압이 있다거나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닙니다. .... 적어도 이 사안에 대해서는 스스로 생각해보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미 대략적인 판단이 섰겠지요. 그런고로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일단 현재 언론에서 떠드는 종북이나 친일, 보수나 진보 같은 개념은 적어도 이 문제에 한해서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밝힙니다. 사실 이런 편 가르기는 사소한 문제라고 봐도 상관없겠지요. 진짜 핵심이 될 것은 ‘국가가 역사를 재단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입니다. 
 
오래 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과거 동아시아 세계에서는 역사를 편찬하는 것이 군주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정사(正史)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삼국사기>와 같은 사서들을 예로 들 수 있지요. 국가의 주도로 편찬된 역사서들입니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군주제에서의 입장이고, 현재의 민주정 사회에서 같은 개념이 통용될 지는 의문입니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같은 기록물은 임금이라도 함부로 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이 원칙을 어긴 대표적인 인물이 연산군이지요.  
 
 
해외의 사례를 참고해볼까요.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서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역사 교과서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었습니다. 전쟁을 통해 영토가 재편되고 민족이라는 개념이 중시되며 미국과 서유럽 각국에서 역사 교과서를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가 쟁점으로 떠올랐지요. 예를 들면 알자스-로렌 지방의 역사를 프랑스의 역사로 볼 것인가 독일의 역사로 볼 것인가와 같은 문제입니다.  
 
재밌는 건 당시 국가 간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도 당사국들의 교과서는 검인정제, 혹은 자유발행제를 유지했다는 점입니다. 간혹 분단의 특수성을 국정화의 근거로 언급하는 경우도 있는데, 과거 분단국가였던 서독 역시 검인정제 교과서를 포기한 일이 없습니다.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와 같은 당시의 강대국들은 교육 문제에 국가가 간섭하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이러한 간섭이 교육의 자유라는 중요한 원칙을 침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역사 교과서 문제에 대한 국가 간 갈등해소는 학자들과 교사들의 자발적 원칙 아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완벽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균형 잡힌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었지요.  
 
 
반면 국가가 역사 교육에 깊게 개입한 사례도 있습니다. 최근의 예로는 일본과 러시아가 있지요.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역사 교과서가 애국심과 향토애를 강조해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게 기본이라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애국적 역사 교과서 집필에 관심을 보이며 승인받은 저자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했습니다.  
 
과거로 가면 좀 더 극단적인 경우가 나옵니다. 
 
“역사교육은 국가의 부정을 목표로 하는 좌파들의 영향력을 일소해야 한다.
역사는 '올바르게 해석된' 공정성에 기초해야 한다.“ 
 
위 인용은 나치 독일의 프로파간다 개발 및 교육기관이었던 제국연구소가 정의한 역사교육 서술 원칙 중 일부입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제2의 로마제국을 국민들에게 약속하며 전쟁활동을 부추겼습니다.
유고슬라비아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역사상 우리는 언제나 짓밟히고 억압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보스니아의 이 끔찍한 이슬람 인들에게 맞서 싸워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인종 청소의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역사가들은 과거를, 대영제국이 세계를 다스리는 영광스러운 현재에 이르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라고 너무나 자주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유신 정권은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듯 민족주체성 확립과 국론통일을 위해 교과서 국정화를 단행했습니다. 현재 국내의 국정화 찬성 측의 논리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교육부의 취지문은 “이념적 편향성으로 인한 사회적 논쟁을 종식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국민통합을 이룩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이라고 명시하고 있지요.   
 
 
위정자들은 쓸모없는 이념 대립을 종식시키자는 명목 하에, 그리고 국가와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킨다는 목적을 내세우며 국가가 역사에 개입할 것을 천명합니다. 이것이 교육이 응당 해야 할 일이라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기록은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줍니다. 편협한 사상을 주입했던 나치독일과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은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역사관은 유고슬라비아를 산산조각 냈고 그 또한 전범으로 재판받다 감옥에서 사망했습니다. 유럽사를 공부하신 분이라면 대영제국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얼마나 비판적인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저는 근대 이후 국가가 역사에 개입했을 때 긍정적인 효과를 낸 사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국내외의 역사학자들이, UN이, 그리고 미국, 영국, 중국, 아랍권 등 다수의 해외언론이 다양한 역사교육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폐쇄적 세계관에서는 논리와 이성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역사 악용의 단초를 제공해주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권력에 의해 악용된 역사는 국민에게 잠시나마 위안을 주기도 하지만 결국 대가를 치르게 되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결코 가벼웠던 적이 없습니다.  
 
 
물론 현재의 검인정 교과서가 편향되었다는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이며 끊임없이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 개입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현재의 검인정 체제는 국가가 내세운 기준을 통과해야하기에 이미 충분할 정도의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실제로 문제가 된다면 그 책임은 검정을 통과시킨, 그러니까 이제 곧 국정교과서를 발행하게 될 교육부에 있는 것이겠지요.  
 
백번 양보해서 국정교과서가 명목상의 목표를 달성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데 지금은 교과서로만 역사 정보를 얻는 시대가 아닙니다. 수많은 매체에서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의 조건으로는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보가 통제되던 시대에도 학생들은 순응적이지 않았습니다. 1929년 식민사관에 따른 역사 교육을 받던 학생들은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주도했습니다. 1974년 이후 친정부성향의 국사 교과서로 역사를 배운 학생들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어른들의 예상보다 더 큰 결과를 내기도 합니다. 
 
 
종합하자면 현재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역사교육의 세계적 흐름에 부합하지 않으며, 그 주장의 타당성이 충분하지도 못하고, 그 명목상의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에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겠지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현재 상황에서 곱씹어볼만한 문장을 소개해드리며 글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가 마이클 하워드의 말입니다.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정부가 국민을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대하는 반면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그러지 않는다.” 

 

출처 : https://story.kakao.com/ch/kistory/feed

 

 

 

아래는 인터넷 자료 스크랩

 

 

국정화 관련 사진 몇 컷과 영상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을 주도하는 주요 인물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

정용욱 한국역사연구회장(왼쪽 세번째)이 9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흥사단 강당에서 열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역사·역사교육 연구자들은

이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역사학계 배제한 0.1%만의 국정화 선포 / 뉴스타파 15.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