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혁명가.. 교회가 곧 기독교라는 생각은 위험

2015. 12. 24. 13:51Good News/나눔과섬김

 

 

“예수는 혁명가…교회가 곧 기독교라는 생각은 위험”

등록 : 2015-12-23 16:24

 

 

 

 

 

김형석 명예교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가 모교인 연세대 뒷길을 걷고 있다.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본 예수

 

그는 목사도 아니고 신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그는 철학자이다. 평생을 철학교수로 살았다. 지난 9월 그는 96살의 나이에 <예수>를 썼다. 그가 쓴 <예수>는 1만권 이상 팔렸다. “예수가 누군가를 묻고, 그 예수와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를 진지하게 모색하고 경건히 탐구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된다면 그 이상의 고마움이 없겠다”고 서문에서 겸손하게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그가 예수를 안 것은 중학교 1학년, 14살 때였다. 건강이 나빠 삶의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그 겨울 그는 예수를 만났다. “내가 찾은 것은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었고, 영혼의 친구로서의 예수였다”고 한다. 그는 고백한다. “예수를 안 뒤 지난 80년 동안 하루도 하나님과 예수는 내 생활에서 떠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예수를 잊거나 떠난 때가 있어도 예수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나는 가까이 있기 때문에 모르는 점이 많았던 예수를 지난여름 다시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예수를 내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알려주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그 주제는 과연 인간 예수가 우리의 신앙적 대상이 되는 그리스도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목사도 아니고 신학 전공도 안한
나이 96살, 평생 평신도

 

 건강 나빠 삶의 한계 느꼈던 14살
독서를 통해 예수를 알고
그의 가치관, 기독교 정신 체화

 

 목사의 설교로 예수 알았다면
이미 기독교를 포기했을 것
그들은 기독교 지식에만 매달려

 

 큰 교회가 성공이라는 생각에
참된 기독교 정신 버려
교회만 가면 천당 간다는 건 죄악

 

김수환 추기경 말처럼
교회는 사회 위해 있는 것이지
사회가 교회 위해 있는 것 아니다

 

 

지금도 하루 2번 강연, 원고지 40장 써


그가 말하는 ‘친구’는 그와 동시대를 살아온 이 땅의 지성인들이었다.


백살을 그리 멀리 남겨놓지 않은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사진)는 놀라우리만큼 건강하다. 1970년대 중반 그가 쓴 에세이집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60만 독자가 읽었다. 허무와 죽음, 고독과 절망, 좌절감 속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절망을 극복하고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그의 철학적 수필집은 당시 초베스트셀러였다.


그는 지금도 하루 두 차례의 강연을 하고, 원고지 40장 이상의 글을 쓴다. 대장 내시경은 평생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위 내시경은 20년 전에 딱 한 번 해봤다. 물론 평생 술과 담배를 멀리했다. 어릴 때 그는 건강의 열등생이었다. 중년까지는 친구들과 비슷했다. 그럼에도 그는 젊은 시절 못지않은 정열과 건강으로 노년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의 건강 ‘비결’을 우선 물어보고 싶었으나, 참았다. 우선 그에게 <예수>를 쓴 이유를 물었다.

 

 

 

김형석 명예교수는 <예수>를 쓴 이유는 인간 예수임을 밝히고, 그가 그리스도임을 주변인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한국 교회 비정상적 모습 걱정


“나는 독서를 통해 예수를 알았지, 결코 목사들의 설교를 통해 안 것이 아니다. 만약 설교를 통해 기독교 신앙에 접근했다면, 이미 기독교를 포기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통해 예수를 알고, 예수의 인생관, 가치관, 그리고 기독교 정신을 체화했다. 목사들은 예수의 인생과 가치를 알려주기보다는 기독교 지식을 전달하려고 애쓴다. 지식은 새로운 지식이 들어오면 교체된다. 또 참된 신앙에 들어가는 데는 열쇠가 필요하다. 그 열쇠는 바로 예수이다. 예수와 나의 관계를 알지 않고는 기독교 주변에만 서성이게 된다. 많은 교인들이 ‘나 교회 다닌다’며 만족한다. 교회에 가서 헌금을 많이 하면 높은 직분도 준다. 그런 이들에게 ‘예수를 만났나?’ 물으면 ‘아직 못 만났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이들에게 예수는 인간 예수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책임을 감당한 인간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는 이어서 한국 교회의 비정상적인 ‘교회주의’를 걱정했다. “오늘날 교회는 사랑의 봉사보다는 소유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좀더 큰 교회, 좀더 많은 신도를 자랑한다. 유럽의 수백년 걸려 지은 큰 성당은 건축미와 예술성은 자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성당의 건축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굶주림을 견뎌야 했고, 고귀한 생명과 인권이 유린당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는 곳에서는 영원한 생명의 길이 열리지 않는다는 예수의 교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유럽에선 이미 1970년대 버림받아


교회가 곧 기독교라는 생각이 위험하다고 했다. 기독교는 가족과 병원 같은 많은 공동체를 포함하고 있고, 대표적인 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이다. 그는 김수환 추기경이 말한 “교회는 사회를 위해 있는 것이지, 사회가 교회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바티칸 교황이 이런 생각을 하는 데는 1500년 걸렸다. 젊은 김수환 신부가 이런 생각을 했기에 비슷한 생각을 한 바오로 6세가 그를 추기경으로 발탁했다는 것이다.


“큰 교회가 성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교회는 참된 기독교 정신을 버렸다.” 그는 1972년에 세계일주 여행을 하면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이미 그때 유럽에서는 기독교가 버림받고 있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교회는 한때 700명까지 신도가 있던 대형교회였으나 당시 예배 보는 신도가 20명뿐이었다. 목사는 5명이나 됐는데 예배 보는 내내 목사들은 입구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다음주에 들른 영국 런던의 가장 오래된 큰 교회는 일주일 있다가 문을 닫는다고 했다. 천주교 성당도 마찬가지였다. 코펜하겐의 큰 성당은 문을 닫고 도서관과 주민센터로 변했다.” 그는 교회주의에 빠지면 기독교 정신이 버림을 받는다고 했다. 목사의 설교에는 교리와 교권은 있는데 인권은 없어서 지성인들이 교회를 외면한다고 했다. “큰 교회 목사들은 교회에 안 오면 죄인이라고 강조한다. 죄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다른 이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다. 목사들이 교회만 나오면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고, 교회만 나오면 천당을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죄악이다”라고 했다.


그는 예수의 혁명가적 정신을 강조했다. “예수는 인간다운 인간이 되고, 도덕적인 인간의 의무를 다하도록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신앙적 은총을 내린다고 했다. 또 정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이는 복이 있으니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했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 온유한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들의 표현은 그 자체가 계명과 교리에 속박됐던 구약 전체에 대한 도전이자, 로마제국의 권력에 대한 항거적인 혁명정신”이라고 김 교수는 말한다. 한 사람의 통치자를 위해 모든 사람이 노예화되는 것을 정당시하던 당시 시대정신을 뒤엎는 소중한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평신도이면서 권위 있는 성경학자이길 원하는 김 교수는 가난한 목수로 일하던 예수가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 인류를 구원하며 느껴야 했던 인간적 고뇌와 두려움을 성경 곳곳에서 느꼈다고 한다. 그런 예수이기에 평생 함께한다고 했다.

 

 

지팡이 보청기 틀니 없이 꼿꼿


그에겐 노인들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지팡이나 보청기, 틀니가 없다. 50살 중반부터 혼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수영을 일주일에 세 번, 30분씩 한다. 그것이 그의 장수와 건강의 비결일까?


그는 나이를 먹어도 일을 멈추지 않고 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한다. “건강을 잊었어요. 아마도 건강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일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며 “앞으로 1년은 더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기자는 대학 1학년 때 그의 ‘철학개론’ 강의를 들었다. 중간고사 문제가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차이를 논하라”였다.(그때 그 과목을 C학점을 받아 장학금을 못 받았다) 점심 대접을 하고 싶었으나 약속이 있다고 했다. 그가 음식점에 작은 목소리로 전화를 해 예약을 부탁했다. “몇 분 오시냐?”는 질문에 그는 “한 명”이라고 답한다. 문득 그가 지난 세월 익숙해졌을 ‘인간적 고독’에 대해 떠올랐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