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9. 20:11ㆍ이래서야/탈핵
<핵 없는 사회>
핵발전의 시대는 끝나고 있다
세계적 추세와 민주주의의 문제
서관모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핵 사고 뒤 독일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은 원전을 폐쇄하고 신재생 에너지를 확대하고 있다.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원전을 폐쇄하기는커녕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고 신규 원전 건설을 늘리고 있다. 울산저널이 핵 없는 사회를 주제로 노후 핵발전소와 방사능의 위험성, 핵 마피아와 원자력법의 문제점, 탈핵 활동과 에너지 전환 등을 다룬 전문가 기고를 연재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전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온난화가 현재 인류에게 최대 위협의 하나이다. 지난 6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 성직자들과 10억 신자들에게 보내는 ‘교황 회칙’에서 기후변화 문제를 신학과 믿음의 문제로 재정의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체계가 어떻게 지구를 훼손하고 불평등을 양산했는지 그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구체적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긴급한 대응을 촉구하였다.
교황은 ‘어머니 지구’를 위험한 상태에 처하게 하는 현재의 흐름이 계속되면 이번 세기 내에 극단적인 기후변화와 전례 없는 생태계 파괴가 발생할 것이라 경고하고,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 모델 때문에 발생한 지구 온난화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고 역설하였다. 교황은 가톨릭 신자이든 아니든 신의 창조물인 지구를 다음 세대에 넘겨줄 수 있도록 보존하기 위하여 화석연료를 즉시 재생가능에너지로 대체해 나갈 것을 촉구하고 지구를 오염시키면서 성장한 부유한 나라들은 가난한 나라들이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교황 회칙은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지구의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아주 명확한 목소리라며, 이제 본격적으로 행동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도 트위터를 통하여 즉각 회칙에 찬성하였고, 북미이슬람소사이어티의 이맘(최고성직자) 무하마드 마지드는 주간지 타임에 보낸 성명에서 지구를 지키려면 모든 종교인들이 하나가 돼야 하는 만큼 교황의 요청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 말했다.
교황 회칙이 커다란 반향을 초래한 것은 단순히 지구온난화와 환경파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경고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그 원인인 자본주의 경제체계의 문제, 따라서 불평등의 문제와 민주주의의 문제를 함께 제기하였기 때문이다. 회칙에 대해 모두가 찬성한 것은 아니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들은 교황이 정치적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면서 반대 입장을 표시하였는데, 이것은 이들이 석유자본주의의 노골적인 대표자들이기 때문이다.
제임스 러브록의 경고
프란치스코 교황과 비교해 볼 수 있는 분으로 저명한 환경주의자 제임스 러브록을 들 수 있다. 지구를 생물, 대기권, 대양, 토양까지를 포함하는 하나의 실체로, 환경과 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 가설’로 유명한 러브록은 대기와 해양의 온난화의 위협을 경고해 왔다. 그러한 러브록이 2004년에 핵발전 옹호론을 제시하여 그를 존경하던 많은 이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다. 그는 2003년 유럽에서 발생한 유례없는 열파로 인해 3만 명 이상이 사망한 사태를 접하고서 지구 온난화의 재앙이 눈앞에 닥쳤으며 화석연료 에너지원을 풍력ㆍ태양열 등 환경친화적 에너지원으로 바꾸기엔 때가 늦었고 핵발전이 인류 생존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공언하였다. 2006년에 그는 온난화로 21세기 말에는 수십억 인류가 절멸하고 살아남은 몇 쌍의 인류는 그나마 인간이 살 만한 상태로 남을 북극에 거주할 것이라 주장했다.
심지어 러브록은 전쟁시에 민주주의가 일시적으로 유보되듯이 전쟁만큼이나 심각한 문제인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민주주의가 일시적으로 유보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입장은 환경문제 발생의 정치경제적 원인을 완전히 무시하고 환경을 위해 민주주의를 억압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환경 파시즘의 입장, 결과적으로 환경문제에 절대적인 책임이 있는 독점자본, 그리고 그와 유착한 보수 정치권력의 이익에 봉사하는 반환경적인 입장이다. 지구온난화 추세에 대한 러브록의 예측이 맞는다면 핵발전이 인류 생존을 위한 유일한 현실적 대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2012년에 그는 자신의 극단주의적 진단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저서는 경고용이었다고 변명하였다.
러브록의 경우는 정치경제 체제의 문제를 도외시하면서 환경문제에 접근할 때에 어떠한 위험한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전세계의 핵마피아들, 특히 한국의 핵마피아들은 핵발전이 지구온난화와 생태계 파괴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라는 러브록의 한때의 주장을 핵발전에 대한 현실주의적 대안을 추구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유용한 무기로 여전히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아무도 러브록을 핵발전 정당화에 끌어들이지 않는다.
핵 사고의 위험성
러브록과 같이 선의로 핵발전을 화석 연료 발전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이들이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것이 핵 사고의 위험이다. 최초의 대형 원전 사고인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핵발전소 사고에서는 노심용융이 일어나 핵연료가 외부로 누출되었지만, 원자로 격납용기가 붕괴되지 않아 외부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민주당의 지미 카터 대통령은 사고 현장을 방문해 “미국은 새 원전을 짓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당시 129개 원전 건설 계획이 승인을 받은 상태였지만 이미 짓고 있던 53개 발전소만 건설이 계속됐을 뿐 나머지 계획은 취소됐다. 1973년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 인허된 것을 마지막으로 미국에서는 40년 가까이 신규 핵발전소가 건설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공화당 부시 대통령 집권기인 2005년 ‘에너지 정책 법’이 통과되었고, 핵발전에 대한 연방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각종 안전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어려워 핵발전소 건설이 지체되다가 우여곡절 끝에 현재 5기의 신규 원자로가 건설중이다. 미국에서 핵발전소 건설이 이렇게 미미한 것은 첫째 핵발전의 위험성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대중적 인식이 높아져 비용산정 기준이 강화되었기 때문이고, 둘째, 암석층 수평시추와 화학물질을 섞은 물을 사용하는 수압파쇄를 통한 셰일가스 개발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져 화석 에너지에 대한 핵발전의 경제성이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연방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이 없다면, 5기의 신규 원자로 건설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1986년에는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고가 일어나 98만 명이 사망하고, 남한의 1.5배 넓이의 국토가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그 결과 서유럽 여러 나라에서 탈핵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사고가 난 곳이 정치적 독재와 경제적 후진 상태에 있던 우크라이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체르노빌 핵 재앙은 선진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후진국적 현상으로 치부하였다. 유럽 정치권에서 핵발전 폐기 정책을 분명히 택한 것은 녹색당과 좌파 정당들, 소수의 사회민주당들뿐이었다. 2011년 후쿠시마 핵 재앙이 일어나고서야 사태가 일변했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핵발전은 이제 위험하고 비경제적인 사양산업으로 추락하였다.
핵발전의 세계적 추세와 관련하여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주)이 2014년 11월 간행한 <원자력발전 백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원자력발전은 안정적인 기저부하로서 전세계 전력 생산량의 약 15%를 담당하고 있다. 2013년 12월 현재 30개국에서 총 434기의 원전이 운영 중이며, 15개국에서 총 72기의 원전이 건설 중에 있다”(714쪽). 그러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2015년 자료에 의하면 전세계 원자력발전 비율은 1996년 17.6%로 정점에 도달한 후 2013년 10.8%로 계속 낮아져 왔다. 이 10.8%를 <원자력발전 백서>는 15%로 부풀리고 있는데, 15%라는 수치는 2005년의 수치이다. 원자력발전량 자체도 2006년에 정점에 달한 후에 계속 줄어들고 있다.
핵발전 폐지하는 서유럽 국가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주목해야 할 것은 핵발전에 대한 유럽 각국의 정책이다. 2013년 현재 서유럽 각국의 핵발전 비율은 프랑스 73.3%, 벨기에 52.1%, 스웨덴 42.7%, 스위스 36.4%, 핀란드 33.3%, 스페인 19.7% 영국 18.3%, 독일 15.4%이다. 이 8개국 중 독일, 스위스, 벨기에, 스웨덴이 핵발전 폐지를 결정하였다. 1990년 마지막 핵발전소를 폐쇄한 이탈리아에서는 2009년 부패와 추문으로 악명 높은 베를루스코니가 0%인 핵발전 비율을 2030년까지 25%까지 올린다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2011년 국민투표에서 94.1%의 압도적인 반대로 부결되었다.
독일은 2022년까지 핵발전소를 전면 폐쇄하고 2050년까지 전체 생산 전력의 80%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할 계획을 확정하였는데, 보수계열로서 핵발전에 찬성하던 메르켈 총리가 후쿠시마 사고를 보고 단호하게 핵발전 폐지 정책으로 전환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독일의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율은 2014년에 이미 27%까지 올라갔다. 스위스는 2034년까지 핵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하였다. 핵발전 의존도가 세계 2위인 벨기에도 핵발전 폐기정책을 채택하였다. 스웨덴은 사회민주당 집권기인 1980년 신규 핵발전소를 건설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을 2010년 보수당 정권이 폐지하였으나 2014년 사회민주당 중심 연립정권이 들어서면서 핵발전 폐지 정책을 복원하였다. 스페인에서는 핵발전소 건설 반대 정책을 유지한 사민당 정부에 이어 2011년 핵발전에 찬성하는 보수 국민당 정부가 집권하였지만 원자로 신규건설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2015년 12월 총선에서 사민당 주도 좌파 연립정권이 들어설 것이 확실시되는데, 그러면 스페인도 핵발전 폐지 국가의 대열에 합세하게 될 것이다.
독일 비블리스 핵발전소
핀란드와 프랑스
이처럼 이탈리아를 포함한 서유럽 9개국 중 핵발전 지속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 영국, 핀란드뿐이다.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긴장 관계에 있으며 현재 원자로 4기를 가동하고 있는 소국 핀란드는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2005년 원자로 1기를 착공하였고, 2018년에 1기를 착공할 계획이다. 건설이 예정되었던 다른 1기는 취소되었으며, 추가적인 건설도 이루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용후핵연료 최종 처분장을 건설중인 핀란드는 공론화에만 30년을 들였다. 처분장은 20억년 넘게 지진이 없었던 안정된 지반 지하 455m에 건설되고 있는데, 영구처분이 시작돼도 계속되는 전체 연구 기간이 120년에 달할 정도로 핵폐기물 처리 안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 역시 주목할 사례이다. 2015년 5월 프랑스 하원은 2025년까지 핵발전의 비율을 50%로 축소하고 2030년까지 재생가능에너지 비율을 40%로 높인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그 직전인 4월에 정부기관인 ‘환경 에너지 관리청’이 30만 유로를 들여 14개월 동안 연구한 결과 보고서 <2050년까지 100% 재생 가능 전기 믹스를 향하여>가 공개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전기 수요를 2050년까지 100% 재생가능 에너지로 충당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현재 프랑스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핵발전 50%, 재생가능에너지 40%, 화석에너지 10%의 ‘전력 믹스’의 경우와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현재 프랑스의 KWh당 전기 가격이 9.1센트라면 100% 재생전기일 때 11.9센트, 40% 재생전기일 때 11.7센트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기의 3/4을 핵발전에 의존하고 있고 핵발전량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며, 세계 최고수준의 핵발전 관련기술과 안전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프랑스의 정부기관 연구결과이기 때문에 핵발전과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용 비교에서 지금까지 나와 있는 세계의 그 어떤 연구보다도 신뢰할 수 있는 결과이다.
미국에서도 듀크 대학 존 블랙번 교수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경우 핵발전 단가는 꾸준히 상승하고 태양광발전 비용은 꾸준히 하락하여 2010년에 이미 핵발전 단가가 더 비싸졌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한 바 있다. 이것은 한계가 있을 수 있는 개인의 연구로 치부하더라도, 프랑스 ‘환경 에너지 관리청’의 연구보고서는 핵발전의 시대가 이미 끝나가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08이미지
영국과 미국
핀란드를 제외하면 영국은 서유럽에서 유일하게 종래의 핵발전 정책을 고수하는 나라이다. 2014년 현재 원자로 수 16개, 핵발전 비율 18%인 영국은 2035년까지 총 11기의 원자로를 신규 건설하기로 했다. 그러나 가동중인 16개 원자로 중 2기는 2019년, 10기는 2023년, 4기는 2028년과 2035년에 운행을 정지하기로 예정되어 있음을 고려하면, 신규 원자로는 기존의 것을 대체하는 수준에 가깝다. 영국의 핵발전량은 1998년 정점에 이른 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반면 풍력, 태양광 등 재생가능에너지는 2004년의 14 TWh(테라와트시)에서 2014년 65 TWh로 급증하여 핵발전의 비율 18%를 추월하였고, 이 추세는 가속되고 있다.
미국이 경제성이 없음에도 신규 핵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는 것은 패권적 핵무장국가로서의 미국의 군사적, 정치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영국의 핵발전 지속 정책은 후쿠시마 사고 후 취했던 원전 제로정책을 4년 만에 폐기한 일본의 군국주의적 극우 아베 정권의 정책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하위 동맹국가로서의 지위와 제국주의적 야욕을 떠나서는 설명될 수 없다. 국내적으로 미국과 영국은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국가로서 급속한 경제적 양극화로 선진국 중 불평등도 1위와 2위를 기록하고 있고 선진국 중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다. 일본에서 민주주의가 유럽의 몇 분의 일만큼이라도 살아 있다면 아베의 핵발전 지속 정책은 시행불가능할 것이다.
비민주적 국가에서 핵발전 확대
2015년 현재 가동중인 원자로는 31개국에서 394기이며(미국 100기, 프랑스 58기, 중국 26기, 한국 23기), 발전량은 미국, 프랑스, 러시아, 한국, 중국, 캐나다, 독일, 우크라이나, 영국, 스웨덴, 스페인 등의 순이다. 국가별로 건설중인 원자로 수는 중국 23, 러시아 8, 인도 6, 미국 5, 한국 4, 아랍 에미리트 3, 벨라루스ㆍ파키스탄ㆍ슬로바키아ㆍ우크라이나 각 2, 아르헨티나ㆍ브라질ㆍ프랑스 각 1기 등 총 61기이다. 여기서 보듯이 핵발전 증가는 대부분 사회경제적으로 비민주적인 나라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중국은 현재에는 핵발전 비율이 2014년 2.4%로 아주 낮지만 건설중인 26기에 이어 앞으로 23기를 더 건설할 계획이고, 2030년까지 100기 이상의 원자로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어서 지구의 장래에 대해 커다란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더욱이 발전소가 동부 해안에 집중되어 있어 사고가 날 경우 한국에 직접적인 위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중국의 민주화가 진행되어 위험하고 비경제적인 핵발전 확대 추세가 완화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중국, 한국 등과 같이 위험하고 비경제적인 핵발전 확대정책을 강행하는 나라들도 있지만, 세계적인 추세는 분명히 탈핵이다. 서유럽의 여러 나라들처럼 핵발전의 위험과 비용에 대하여 국민들에게 적절한 정보가 제공되고 국민의 의사가 반영된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면 핵발전은 도저히 확대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핵마피아의 원자력 찬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국의 에너지 정책과 핵발전 정책의 비민주성과 위험성에 대해서는 양심적인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해 왔고, 탈핵운동도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한수원과 정부 당국, 경제관료들, 보수 정치인들, 독점재벌들, 보수언론들, 학계의 대부분의 원자력공학 전문가 등 ‘핵마피아’는 진실을 철저하게 왜곡하고 국민을 오도하며 원자력 찬가를 부르고 있다.
한 예로 원자력안전재단은 지난 7월 22일에 입력한 동아사이언스 기고문 ‘원자력발전, 선진국에서 신흥 개발도상국으로 원전 시장 패러다임이 바뀐다’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탈원전 바람에도 불구하고 원전은 축소 가능성보다 확대 가능성이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원전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온실가스 감축, 신재생에너지의 기술적 한계, 에너지안보, 경제적 효율성, 환경에 대한 안정성 등을 고려할 때 단기적으로 원전을 대신할만한 대안에너지원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이유로 각 나라는 기존의 원전 정책을 유지하거나 확대에 나서고 있다.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신흥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에너지와 전력수요가 급증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원전 건설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게다가 원자력발전이 석탄과 석유 사용을 줄이며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해 상대적으로 환경적인 에너지원으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에너지 사용이 늘면서 석유에 대한 수입이 급증하고 더불어 고유가가 지속될 가능성도 높아져 그동안 원전건설을 억제하던 원전선진국들도 적극적인 신규원전 건설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은 기존 원전의 폐쇄와 맞물려 비중이나 수량이 점차 감소하는 분위기다.
이 글에서 중국, 인도에서 원전 건설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말과 선진국에서 원전 비중이 감소하고 있다는 말을 제외하면(실은 “감소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실제 감소하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는 핵발전 확대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집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2014년 8월 19일 “나는 원전에 대해 무조건 믿고 있는 입장”이라며 원전 신규건설 전폭 찬성 입장을 밝혔다.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집권세력 중에서 그 누가 대통령의 핵발전 정책에 대하여 토를 달 수 있겠는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대체에너지 투자비율이 평균 20%에 가까운데 우리나라는 2~3% 정도로 세계 최하위권이며 그것도 폐열에너지를 빼면 1% 밖에 안 된다. 핵발전을 녹색에너지로 포장한 이명박 정부에 이어, 낡고 위험한 월성 1호기를 주민 의견수렴 없이 위법적으로 수명 연장한 이 정부 하에서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민주적 탈핵의 길
대형 원전사고가 나면 그 회복 비용은 4대강 사업의 수십 배, 수백 배에 달할 수 있다. 이웃 후쿠시마 복구비용이 최소 100조원에서 많게는 700조원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 생명의 위험과 국토ㆍ생태계의 반영구적인 파괴 위험을 생각하면 비용 산정 자체가 불가능하고 무의미해진다. 그런데 원자로 사고발생 위험 비용, 원전해체 및 환경복구 비용, 사용후핵연료 처분 비용과 같은 중대한 비용을 극도로 저평가하여 발전단가가 낮으니 원자력 발전을 확대해야 한다는 한수원 측의 비용 계산에 대하여 집권세력 가운데 누가 진지한 토론이라도 하려 하겠는가?
따라서 언제든지 발생할지 모르는 핵 재앙을 막고 핵발전 비용을 외부화하여 국민에게 부담지우는 핵마피아 세력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핵발전에 반대하는 다수 시민들의 참여와 행동이며, 이차적으로는 정치적 민주화를 위한 전국민의 투쟁이다. 한국에서 원전 밀집도는 세계 1위이며, 그것도 영광의 6기를 제외하면 가동중ㆍ건설중ㆍ건설예정인 원전 모두가 동남해안에 밀집해 있다. 불행하게도 이 지역은 핵발전 찬성 정치세력의 아성이다. 망국적인 지역분할 구도의 타파는 민주화의 절대적인 조건이면서 또한 대한민국이 핵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는 데에도 절대적인 조건이다.
마침 스탠포드 대학의 에너지 전문가 토니 세바가 2014년에 간행한 책 <에너지 혁명 2030>이 번역, 출간되었다. 저자에 의하면 2020년에 태양광은 원유에 비해 상대적 가격포지션을 1만2000 배, 원자력에 비해 상대적 가격포지션을 6000 배, 가스에 비해 상대적 가격포지션을 1만900 배 개선하게 될 것이며, 2030년에는 태양광과 풍력이 모든 에너지를 제공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석유의 고갈로 인해, 또 지구온난화에 의한 압박으로 어쩔 수 없이 태양광에너지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 면에서 석유나 원자력은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저렴해지는 태양광으로 자연스럽게, 필연적으로 이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IT 기술의 발달속도를 참고하면, 앞에 언급한 듀크 대학 블랙번 교수와 프랑스 환경 에너지 관리청의 연구결과를 보면, 이것은 비현실적인 예측이 아닐 것으로 본다. 꼭 203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보다 몇 년 더 안 가서 태양광과 풍력이 핵발전과 화석연료발전을 추방할 것임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은 극소수의 핵 권력이 조만간 끝날 핵발전 시대를 억지로 연장하면서 불의한 기득권을 누리는 후진국, 독재국의 길이 아니라, 서유럽 선진국들이 앞서 걷고 있는 민주적 탈핵의 길이다. 핵발전과 석탄발전을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으로 대체하는 평화적ㆍ생태적인 길은 가능한 길일 뿐 아니라 필연적인 길이며, 경제적으로 번영하면서 동시에 생명과 지구를 살리는 길이다.
출처 : 울산저널 2015. 8.12, 8.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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