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흘렀어도 처참한 불모의 땅 '체르노빌'

2016. 4. 26. 22:31이래서야/탈핵



30년 흘렀어도 처참한 불모의 땅 '체르노빌'
한겨레 | 2016.04.26.
 


원전 폭발로 반경 30㎞ 출입금지
그린피스 “9만3천명 희생”


콘크리트로 덮고 덮어도 암 발병, 기형 등 깊은 후유증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참사가 26일로 30주년을 맞았다.


1986년 4월26일 이른 아침 옛 소련의 우크라이나공화국 프리피야트 시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4호 원자로에서 고장으로 압력이 커져 원자로 뚜껑이 폭발해 열렸다. 방사성 물질이 새어나왔다. 사고 직후 31명이 현장에서 즉사했으나, 발전소의 직원들도 이틀이 지나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됐다. 소련 당국은 며칠이 지나서야 체르노빌에서 사고가 났다고만 발표했고, 자세한 실상이 밝혀지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새어나온 방사성 물질은 인근 벨라루스공화국, 심지어 북유럽 쪽으로까지 번졌다.


↑ 체르노빌 원전 사고 30주년을 하루 앞둔 25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벽면에 그린피스가 빔프로젝터로

한글로 쓴 ‘체르노빌 30주년, 한국은 안전한가요?’라는 내용을 비추고 있다. 체르노빌 원전은 현재 방사능 유출 등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석관으로 덮여있는 상태다. 체르노빌/그린피스 제공


체르노빌포럼의 2005년 보고서는 방사성 물질 누출로 사고 당시 50명 이상이 숨지고, 그 후유증으로 9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했다. 그러나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모두 9만3000명이 죽었다고 보고한다. 최악의 원전 사고인 체르노빌 참사는 원전의 안전성과 그 비용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계기가 됐다. 또 소련의 붕괴를 재촉한 사고이기도 했다.


사고 뒤 프리피야트 시의 주민들은 소개되고, 사고 원자로를 콘크리트 석관으로 덮어씌우는 수습 작업을 벌였다. 연 인원 약 50만명이나 동원됐고, 이들 역시 후유증에 시달렸다. 당시 소련이 강제적 동원 체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체르노빌 원전은 2000년까지 14년이나 더 가동되다가 폐쇄됐다. 현재 체르노빌 원자로 반경 30㎞는 접근 금지구역으로 프리피야트 시 등은 콘크리트 무덤으로 남아있다.


30년이 지났으나, 피해 지역의 주민들은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린다. 사고 이후 태어난 아기들 사이에서는 높은 암 발병율을 보이고, 지금도 심각한 기형이나 희귀한 암을 지닌 아기가 태어나고 있다. 팔다리가 없거나, 심지어 머리가 둘인 아기도 태어났다.

사고 수습이 끝난 것도 아니다. 사고 직후 해당 원자로에 덮어씌운 콘크리트 석관은 노후화돼서 현재 새로운 구조물로 대체하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궁극적으로는 로봇을 투입해 원자로를 해체해야 한다. 누출된 방사성 물질은 3%에 불과하고, 나머지 97%의 방사성 물질이 그대로 남아있다. 노후화된 원자로가 붕괴하면, 더 많은 방사성 물질이 새어나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체르노빌 참사 뒤 원전 업계는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에서도 같은 규모의 원전 사고가 다시 일어났다.


이날 우크라이나 정부는 사고 시간에 맞춰 사이렌을 울리고 추모식을 가졌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사고 현장 근처에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하고, 키예프의 교회에서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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