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가 / 이상은

2016. 7. 11. 22:49Music/Music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노래/ 이상은


님아 님아 내 님아 물을 건너가지 마오
님아 님아 내 님아 그예 물을 건너시네
아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니
아 가신 님을 어이 할꼬


公無渡河 (공무도하)
公竟渡河 (공경도하)
墮河而死 (타하이사)
當奈公何 (당내공하)


님아 님아 내 님아 나를 두고 가지 마오
님아 님아 내 님아  그예 물을 건너시네
아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니
아 가신 님을 어이 할꼬


公無渡河 (공무도하)
公竟渡河 (공경도하)
墮河而死 (타하이사)
當奈公何 (당내공하)


公無渡河 (공무도하)
公竟渡河 (공경도하)
墮河而死 (타하이사)
當奈公何 (당내공하)


公無渡河 (공무도하)
公竟渡河 (공경도하)
墮河而死 (타하이사)
當奈公何 (당내공하)


公無渡河 (공무도하)
公竟渡河 (공경도하)


님아 님아 내 님아 물을 건너가지 마오
님아 님아 내 님아 그예 물을 건너시네






공무도하가 [公無渡河歌 ]


배경설화 원문과 해설


古今注, 卷中, 音樂 第三


箜篌引,朝鮮津卒 藿里子高妻麗玉所作也。子高晨起刺船而擢,有一白首狂夫,被髮提壺,亂流而渡,
其妻隧呼止之,不及,遂墮河而死。於是援箜篌而鼓之作 公無渡河之歌:聲甚悽愴,曲終自投河而死。 藿里子高還,以其聲語妻語麗玉。麗玉傷之,乃引箜篌而寫其聲,聞者莫不墮淚飮泣焉。麗玉以其曲傳鄰女麗容, 名曰箜篌引 。



[요약] 중국 후한의 채옹이 펴낸 《금조》에 채록되어 내려오는 고대가요로 백수 광부의 아내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4언 4구로 된 고대가요로 공후(箜篌)를 타며 노래로 불려져 ‘공후인(箜篌引)’이라는 악곡(樂曲)의 명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중국 후한(後漢)의 채옹(蔡邕, 132~192)이 지은 《금조(琴操)》에 처음 채록되어 전해지며, 진(晋) 나라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에는 관련 설화도 함께 전해진다. 송(宋) 나라 때에 곽무천(郭茂倩)이 역대의 악부를 정리한 《악부시집(樂府詩集)》에도 수록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17세기 초 차천로(車天輅)의 《오산설림초고(五山說林草藁)》에 처음 나타나며, 18세기 이후 한치윤(韓致奫)의 《해동역사(海東繹史)》,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유득공(柳得恭)의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 등에도 수록되었다. 그리고 20세기 이후 장지연(張志淵)의 《대동시선(大東詩選)》,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청구시초(靑丘詩鈔)》 등에서 고조선(古朝鮮) 시대의 시가(詩歌)로 소개되었다.


이 작품의 제작 연대와 작자는 분명하지 않은데, 한치윤은 《해동역사》의 ‘악지(樂志)’에 최표의 《고금주》에 수록된 설화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해석을 덧붙였다.


“공후인(箜篌引)은 조선(朝鮮)의 진졸(津卒)인 곽리자고(霍里子高)의 처 여옥(麗玉)이 지은 것이다.   곽리자고가 새벽 일찍 일어나 배를 젓고 있는데, 머리가 흰 미친 사람[白首狂夫]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호리병을 들고 어지러이 물을 건너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소리 높여 부르며 막으려 했으나 다다르기 전에 강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백수광부의 아내는 공후를 타며 ‘공무도하(公無渡河)’의 노래를 지으니 그 소리가 매우 구슬펐다. 노래를 마치고 아내는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자고가 돌아와 아내인 여옥에게 그 소리와 이야기를 들려주자 여옥은 슬퍼하며 공후를 타며 그 소리를 따라하니 듣는 사람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여옥이 그 소리를 이웃의 여용(麗容)이라는 여인에게 전하니 이름을 공후인(箜篌引)이라 하였다(고금주). 조선은 곧 한(漢) 나라 때의 낙랑군(樂浪郡) 조선현(朝鮮縣)이다. 여옥이 공후인을 지었으며, ≪고시기(古詩紀)≫에 그 노래가 실려 있으며, ≪예문(藝文)≫에도 나타나는데, 마찬가지로 공무도하(公無渡河)라 하였고, ≪금조(琴操)≫ ‘9인(九引)’에도  공후인이 있는데 모두 여옥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처럼 한치윤은 《해동역사》에서 이 작품의 배경인 조선(朝鮮)을 낙랑군(樂浪郡) 조선현(朝鮮縣)으로 보고, ‘예문지(藝文志)’에서는 기자조선(箕子朝鮮) 시대의 작품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러한 해석은 공무도하가를 고조선 시대의 시가로 보는 주요한 근거가 되었다. 고조선 시대에 민간에서 불리던 노래가 한사군(漢四郡)의 성립 이후 중국으로 유입되어 한자로 채록된 작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허베이성[河北省]에도 조선현(朝鮮縣)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의 배경인 조선(朝鮮)이 고조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학설도 있다. 시경체(詩經體)로 된 가사 등으로 볼 때 중국 한(漢) 시대에 상화가(相和歌)로 불린 악부시(樂府詩)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작자에 대해서도 한치윤과 같이 여옥이 지었다고 보는 학설도 있고, 곽리자고의 작품이라고 전하는 문헌도 있다. 하지만 최표의 《고금주》에 수록된 설화의 내용에 따르면 여옥은 백수광부의 아내가 부른 노래를 따라서 부르고 전했을 뿐이므로 백수광부의 아내가 지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공무도하가는 4언 4구의 한시(漢詩)로 채록되어 전해지는데, 문헌에 따라 표기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해동역사》의 ‘예문지’에는 “공무도하(公無渡河) 공경도하(公竟渡河) 타하이사(墮河而死) 당내공하(當奈公何)”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맨 처음 수록한 채옹의 《금조》에는 “공무도하(公無渡河) 공경도하(公竟渡河) 공타하사(公墮河死) 당내공하(當柰公何)”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중국 남송(南宋) 때에 정초(鄭樵)가 편찬한 《통지(通志)》에는 “공무도하(公無渡河) 공종도하(公終渡河) 공타이사(公墮而死) 당내공하(當奈公何)”라고 표기되어 있다. 20세기 이후 편찬된 《대동시선》과 《청구시초》에는 마지막 구가 “장내공하(將奈公何)”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 의미는 거의 차이가 없는데, “임아,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이 그예 물을 건너네. 물에 빠져 죽으니 이제 임은 어이할꼬” 라는 뜻이다.  출처 : 네이버 백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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