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1. 22:43ㆍ시,좋은글/詩
인양 / 백무산 가라앉은 것은 건져올리지 못한다 그것은 항해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캄캄한 수심 아래 무거운 정적 속으로 배는 멈추지 않고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배는 오랜 시간 세상의 모든 기술 다 동원해도 수백층 매머드 빌딩 세우는 시간보다 더 오래 가라앉아 있어야만 한다 수십만 톤급 배를 함부로 주물러대지만 육천팔백 톤짜리 작은 배 하나 건져내지 못한다 세계에는 바닥을 건져올리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순간에 거대 도시를 폐허로 만드는 지식은 있어도 바닥을 인양하는 지식은 보유하지 못한 세계 하루아침에 거대한 산을 밀어내고 바다를 막고 마천루를 들어올리는 기술은 있어도 저 버림받은 가벼운 목숨들 들어올리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코끼리만 한 슈퍼돼지를 만들어내는 기술은 있어도 하루 일 달러면 살릴 수 있는 수억명의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기술은 보유하지 못한 세계 수만 킬로미터 상공에 우주정거장을 만들고 수백억 킬로미터 태양계 밖을 항해하는 기술은 있어도 수십 미터 물 아래를 구조할 기계 하나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것은 정상 사회에서 일어난 정상 사고이기 때문이다 이미 정상인 것은 건져낼 이유가 없다 세계의 신은 이제 구원을 위해서 오지 않고 심판을 하러 오지도 않는다 버림받고 가라앉은 것은 구조의 대상도 아니고 처분의 대상도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독재자는 이제 권좌에 있지 않고 독재를 찬양하는 기술에 있다 모든 독재자의 공은 7이고 과는 3이다 진보주의자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그 기술은 첨단산업처럼 눈부시다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다 아우슈비츠도 731부대도 거기서 행한 생체실험으로 얻은 의학 지식으로 수많은 질병을 퇴치하고 죽은 자들보다 더 많은 인류를 구하지 않았느냐고 공이 7이지 않았느냐고 세계는 그렇게 간다 그래서 인양하지 않는 것이 지혜다 불을 붙일 수는 있으나 끄지는 못하는 핵물질처럼 인양하지 않는 것이 세계의 합리성이다 물에 잠긴 것은 그대로 놔두고 이제 애도도 거두고 정상사회로 가라고 재촉하고 화를 내고 폭력을 행사하듯이 그들은 안다 버림받고 가라앉은 것이 정상 사회를 들어올리는 부력이라는 것을 비참한 신체들 튀어나온 눈들 문드러진 손톱들 함몰한 가슴들 폐를 잠식하는 울음들 절단된 신체들 구조의 대상이 아니라 버림받음과 떨어져나감과 절단은 관리의 대상일뿐 언제나 침몰 하지만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고 장담하는 것 침몰한 후에는 침몰하는 일은 언제나 일어났던 일로 만들어내는 것 침몰하는 일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 되게 하는 것 세계의 상식적인 질서가 되게 하는 것 무엇 때문에 인양할 것인가 인양할 이유가 사라진 것 무엇 때문에 구출할 것인가 구출의 이유가 사라진 것 그래서 세계의 신은 이제 구원하러 올 필요도 심판을 하러 올 필요도 사라진다 책임은 소멸되고 비참은 오직 관리 될 뿐이다 무엇을 인양하려는가 누구는 진실이라고 말하고 누구는 그걸 희망이라고 말하지만 진실을 건져올리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고 희망이 세상을 건져올린 적은 한번도 없다 그것은 희망으로 은폐된 폐허다 인양해야 할 것은 폐허다 인간의 폐허다 폐허를 인양하다(2015), 창비 |
△인양 회피, 침몰 2년 반이 지나도록 인양을 ‘못’ 하고
세금 낭비론이나 유포해 유가족들이 포기하도록 압박하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닻도 끊어 버렸다지, 녹슬어 삭아가고 있는 선체도 그날의 흔적을 지우고 있다.
그 안에 갇혀있을 아이들도 함께.. ⓒ사진 출처 해양수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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