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30. 00:41ㆍ시,좋은글/詩
바다 / 백석
바닷가에 왔더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는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 비늘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섦기만 하구려
-[여성] 1937.
백석 시집(고형진 엮음) [정본 백석 시집]
특유의 독특한 머리스타일로 영어수업을 하고 있는 백석(1937)
통영 강구안 골목 곳곳에는 백석의 시가 벽면에 걸려 있다.
평안도 정주 태생인 그의 시가 통영의 후미진 골목에 내걸린 이유는 무엇일까.
1935년 6월 당시 24세였던 시인은 친구 허준의 결혼식 축하 모임에서 동료 기자이자
친구인 신현중의 소개로 ‘난’(박경련)이라 불리던 꽃다운 여고생을 만나 한눈에 반했다.
곧 그는 친구들과 난의 고향인 통영으로 향했지만 만나지 못하고 뒤돌아서야 했다.
그는 ‘통영’이란 시에서 “미역오리 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라며 당시의 심사를 토로했다.
이듬해 1월 백석은 겨울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간 난을 만나려고
신현중을 졸라 다시 통영에 갔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서울로 올라간 뒤였다.
그는 다시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깃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통영2’ 중)라고 노래했다.
운명의 장난인지 두 달 뒤에도 통영에 갔지만 역시 그녀를 만날 수는 없었다.
함흥에서 교편을 잡은 그는 겨울방학을 맞아 이번에는 허준을 앞세워 난의 집으로
아예 청혼을 하러 갔다. 하지만 난의 부모는 가난한 시인이자 교사인 백석을 박대하고
혼인을 반대했다. 백석의 어머니가 기생 출신이라는 소문을 친구 신현중이
귀띔한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난은 4월에 신현중과 혼인을 하고 말았다.
백석은 ‘내가 생각하는 것은’을 통해 “새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을 한탄했고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며 가슴으로 울었다.
이 기막힌 사연을 써 내려간 시가 바로 <바다>이다.
시는 사랑하는 님을 바다에 비유했는데
바닷가에서 이야기를 하고 개지꽃(나팔꽃)을 보며 환하게 웃어주던
사랑했던 님에 대한 아련한 마음 저림이 담긴 아름다운 시.
구부정하게 모래톱을 올라 바다를 보면 그녀가 보이는 걸까?
바다 / 노찾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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