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1 / 이기철

2019. 9. 2. 16:30시,좋은글/詩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1 / 이기철


어떤 노래를 부르면 내 한번도 바라보지 못한 짐승들이 즐거워질까
어떤 노래를 부르면 내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도, 까치도 즐거워질까
급히 달려와 내 등뒤에 連座한 시간들과
노동으로 부은 소의 발등을 위해
이 세상 가장 청정한 언어를 빌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날(日)을 노래하고 싶다
나이 먹기 전에 늙어버린 단풍잎들은 내 가슴팍을 한 번 때리고
곧 땅속으로 묻힌다
죽기 전에 나무둥치를 감고 타오르는 저녁놀은
地上의 죽음이 저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가르치는 걸까
살이 연한 능금과 배들은 태어나 첫번째 베어무는
어린 아이의 갓 돋은 치아의 기쁨을 위해 제 살을 바치고
群集으로 몰려오는 어둠은 제 깊은 속에다 아직 밤길에 서툰 아기 짐승을 위해
군데군데 별들을 박아 놓았다
우리가 아무리 높이 올라도
검은 새가 나는 하늘을 밟을 수는 없고
우리가 아무리 정밀을 향해 손짓해도
정적으로 날아간 흰나비의 길을 걸을 수는 없다
햇빛을 몰아내는 밤은 늘 기슭에서부터 몰려와
대지의 중심을 덮고
고갈되기 전에 바다에 닿아야 하는 물들은
쉬지 않고 하류로 내려간다
病들도 친숙해지면 우리의 외로움 덮어주는 이불이 된다 
산과 들판에 집 없이도 잠드는 목숨을 위해
거칠고 무딘 것들을 달래는 것이 지혜의 첫 걸음이다
달콤하지 않아도 된다 내 노래가
발 시린 짐승의 무릎을 덮는 짚이기만 하다면,
향기롭지 않아도 된다 내 부르는 노래가
이슬 한 방울에도 온몸이 젖는 풀벌레의 날개를 가릴 수 있는
둥글고 넓은 나뭇잎이기만 하다면



출전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문학과지성사, 1993

 

이기철 (李起哲, 1943 ~ )

 

1943년 경남 거창에서 출생,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2년 『현대문학』 <5월에 들른 고향>으로 시단에 데뷔했고,
1976년부터 ‘자유시’ 동인으로 활동했다.

대구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영남대 명예교수, 영남어문학회 회장으로 재직중.

- 시집 -
『낱말 추적』 대구 중외, 1974
『전쟁과 평화』 문학과지성사, 1985
『우수의 이불을 덮고』 민음사, 1988
『내 사랑은 해지는 영토에』 문학과비평사, 1988
『시민일기』 우리문학사, 1991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문학과지성사, 1993
『열하를 향하여』 민음사, 1995
『유리의 나날』 문학과지성사, 1998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민음사, 2000
『그 말이 내 가슴에 들어왔다』 영남대학교출판부, 2002
『스무살에게』 수밀원, 2005

『정오의 순례』 애지, 2006
『손수건에 싼 편지 PDF』 한국문학도서관, 2007
『잎 잎 잎』 서정시학, 2011

『나무 나의 모국어』 민음사, 2012
『별까지는 가야 한다』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꽃들의 화장시간』 서정시학, 2014

『안경을 닦다』 책펴냄열린사, 2015 (공저)
『가장 따뜻한 책』 민음사, 2015
『흰꽃 만지는 시간』 민음사, 2017
『풀잎에 쓴 시』 시선사, 2018
『산산수수화화초초』 서정시학, 2019

- 시선집 -
『청산행』 민음사, 1995
『가혹하게, 그리운 이름』 좋은날, 1998
『노래마다 눈물이 묻어있다』 시인생각, 2013

- 소설집 -
『땅 위의 날들』 민음사, 1994

- 시론집 -
『시를 찾아서』 심상사, 1990

- 비평서 -
『인간주의 비평을 위하여』 좋은날, 1998

학술 저서, 기타
『작가 연구의 실천』 영남대학교출판부, 1986

『시학』 일지사, 1989
『분단기 문학사의 시각』 우리문학사, 1991
『근대 인물 한국사, 이상화』, 동아일보사, 1992
『영국 문학의 숲을 거닐다』 푸른사상, 2011
 『이상화 전집』 문장, 1982

 

- 수상 -
대구문학상(1986),

시와시학상( ? ),

최계락문학상( ? ),
금복문화예술상(1990),

후광문학상(1991),
도천문학상(1993),

김수영문학상(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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