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조선열전 (원문+독음+해석)

2015. 7. 25. 22:03공부방/고전








史記卷一百一十五 朝鮮列傳第五十五



集解張晏曰:「朝鮮有濕水、洌水、汕水,三水合為洌水,疑樂浪、朝鮮取名於此也.」索隠案:朝音潮,直驕反. 鮮音仙. 以有汕水,故名也. 汕一音訕.

 

장안(長安)이 말하기를 “조선에는 습수(濕水)·열수(洌水)·산수(汕水)의 세 물이 있어 이것이 합쳐서 열수가 되었다”고 했다. 아마 낙랑(樂浪)이나 조선은 여기에서 이름을 딴 것인 듯 싶다. 汕(산)의 음은 訕(산)이다.


 

朝鮮[一]王満者,故燕人也. [二]自始全燕時[三]嘗略屬真番、[四]朝鮮,[五]為置吏,築鄣塞. 秦滅燕,屬遼東外徼. 漢興,為其遠難守,複修遼東故塞,至浿水為界,[六]屬燕. 燕王盧綰反,入匈奴,満亡命,[七]聚黨千餘人,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渡浿水,居秦故空地上下鄣,[八]稍役屬真番、朝鮮蠻夷及故燕、斉亡命者王之,都王険. [九].


[一]正義潮仙二音. 括地志云:「高驪都平壌城,本漢樂浪郡王険城,又古雲朝鮮地也.」

[二]索隠案漢書,満,燕人,姓衛,撃破朝鮮而自王之. 

[三]索隠始全燕時,謂六國燕方全盛之時. 

[四]集解徐広曰:「一作『莫』. 遼東有番汗県. 番音普寒反.」索隠徐氏拠地理志而知也. 番音潘,又音盤. 汗音寒.

[五]索隠如淳云:「燕嘗略二國以屬己也.」應劭云:「玄菟本真番國.」

[六]集解漢書音義曰:「浿音傍沛反.」索隠浿音旁沛反. 正義地理志云浿水出遼東塞外,西南至樂浪県西入海. 浿普大反.

[七]正義命謂教令. 

[八]索隠案:地理志樂浪有雲鄣. 

[九]集解徐広曰:「昌黎有険涜県也.」索隠韋昭云「古邑名」. 徐広曰「昌黎有険涜県」. 應劭注「地理志遼東険涜県,朝鮮王舊都」. 臣瓚云「王険城在樂浪郡浿水之東」也.


會孝恵、高后時天下初定,遼東太守即約満為外臣,保塞外蠻夷,無使盜邊;諸蠻夷君長欲入見天子,勿得禁止. 以聞,上許之,以故満得兵威財物侵降其旁小邑,真番、臨屯[一]皆來服屬,方數千里. [二]


[一]索隠東夷小國,後以為郡. 

[二]正義括地志云:「朝鮮、高驪、貊、東沃沮五國之地,國東西千三百里,南北二千里,在京師東,東至大海四百里,北至営州界九百二十里,南至新羅國六百里,北至靺鞨國千四百里.」[二]正義括地志云:「朝鮮、高驪、貊、東沃沮五國之地,國東西千三百里,南北二千里,在京師東,東至大海四百里,北至営州界九百二十里,南至新羅國六百里,北至靺鞨國千四百里.」


傳子至孫右渠,[一]所誘漢亡人滋多,又未嘗入見;真番旁衆國欲上書見天子,又擁閼不通. 元封二年,漢使渉何譙諭[二]右渠,終不肯奉詔. 何去至界上,臨浿水,使禦刺殺送何者[三]朝鮮裨王長,[四]即渡,馳入塞,[五]遂帰報天子曰「殺朝鮮將」. 上為其名美,[六]即不詰,拝何為遼東東部都尉. [七]朝鮮怨何,発兵襲攻殺何.


[一]正義其孫名也. 

[二]索隠説文云:「譙,譲也.」諭,暁也. 譙音才笑反.

[三]索隠即送何之禦也. 

[四]正義顔師古云:「長者,裨王名也. 送何至浿水,何因刺殺也.」按:裨王及將士長,恐顔非也.

[五]正義入平州楡林関也. 

[六]索隠有殺將之美名. 

[七]正義地理志云遼東郡武次県,東部都尉所理也. 


天子募罪人撃朝鮮. 其秋,遣樓船將軍楊僕従斉浮渤海;兵五萬人,左將軍荀彘出遼東:討右渠. 右渠発兵距険. 左將軍卒正多率遼東兵先縦,敗散,多還走,坐法斬. 樓船將軍將斉兵七千人先至王険. 右渠城守,窺知樓船軍少,即出城撃樓船,樓船軍敗散走. 將軍楊僕失其衆,遁山中十餘日,稍求収散卒,複聚. 左將軍撃朝鮮浿水西軍,未能破自前.


天子為両將未有利,乃使衛山因兵威往諭右渠. 右渠見使者頓首謝:「願降,恐両將詐殺臣;今見信節,請服降.」遣太子入謝,獻馬五千匹,及饋軍糧. 人衆萬餘,持兵,方渡浿水,使者及左將軍疑其為変,謂太子已服降,宜命人毋持兵. 太子亦疑使者左將軍詐殺之,遂不渡浿水,複引帰. 山還報天子,天子誅山.


左將軍破浿水上軍,乃前,至城下,囲其西北. 樓船亦往會,居城南. 右渠遂堅守城,數月未能下.


左將軍素侍中,幸,將燕代卒,悍,乗勝,軍多驕. 樓船將斉卒,入海,固已多敗亡;其先與右渠戦,因辱亡卒,卒皆恐,將心慚,其囲右渠,常持和節. 左將軍急撃之,朝鮮大臣乃陰閒使人私約降樓船,往來言,尚未肯決. 左將軍數與樓船期戦,樓船欲急就其約,不會;左將軍亦使人求閒郤降下朝鮮,朝鮮不肯,心附樓船:以故両將不相能. 左將軍心意樓船前有失軍罪,今與朝鮮私善而又不降,疑其有反計,未敢発. 天子曰將率不能,前(及)[乃]使衛山諭降右渠,右渠遣太子,山使不能剸決,與左將軍計相誤,卒沮約. 今両將囲城,又乖異,以故久不決. 使済南太守公孫遂往(征)[正]之,有便宜得以従事. 遂至,左將軍曰:「朝鮮當下久矣,不下者有狀.」言樓船數期不會,具以素所意告遂,曰:「今如此不取,恐為大害,非獨樓船,又且與朝鮮共滅吾軍.」遂亦以為然,而以節召樓船將軍入左將軍営計事,即命左將軍麾下執捕樓船將軍,並其軍,以報天子. 天子誅遂.


左將軍已並両軍,即急撃朝鮮. 朝鮮相路人、相韓陰、尼谿相參、將軍王唊[一]相與謀曰:「始欲降樓船,樓船今執,獨左將軍並將,戦益急,恐不能與,(戦)王又不肯降.」陰、唊、路人皆亡降漢. 路人道死. 元封三年夏,尼谿相參乃使人殺朝鮮王右渠來降. 王険城未下,故右渠之大臣成巳又反,複攻吏. 左將軍使右渠子長降、[二]相路人之子最[三]告諭其民,誅成巳,以故遂定朝鮮,為四郡.[四] 封參為澅清侯,[五] 陰為荻苴侯,[六] 唊為平州侯,[七] 長[降]為幾侯. [八]最以父死頗有功,為溫陽侯. [九]


[一]集解漢書音義曰:「凡五人也. 戎狄不知官紀,故皆稱相. 唊音頬.」索隠應劭云:「凡五人. 戎狄不知官紀,故皆稱相也. 路人,漁陽県人.」如淳云:「相,其國宰相. 路人,名也. 唊音頬,一音協.」

[二]集解徐広曰:「表云『長路』. 漢書表云『長■』,音各.」索隠案:漢書表云「長■」,音各.

[三]索隠路人子也,名最. 

[四]集解真番、臨屯、樂浪、玄菟也. 

[五]集解韋昭曰:「屬斉.」索隠參,澅清侯. 韋昭云「県名,屬斉」. 顧氏澅音獲.

[六]集解韋昭曰:「屬勃海.」索隠陰,荻苴侯. 晉灼云「屬勃海」. 荻音狄,苴音子餘反.

[七]集解韋昭曰:「屬梁父.」索隠唊,平州侯. 韋昭云「屬梁父」.

[八]集解韋昭曰:「屬河東.」索隠長,幾侯. 韋昭云「県名,屬河東」.

[九]集解韋昭曰:「屬斉.」索隠最,涅陽侯. 韋昭云「屬斉」也.


左將軍徴至,坐爭功相嫉,乖計,棄市. 樓船將軍亦坐兵至洌口,[一]當待左將軍,擅先縦,失亡多,當誅,贖為庶人.


[一]索隠蘇林曰:「県名. 度海先得之.」


太史公曰:右渠負固,國以絶祀. 渉何誣功,為兵発首. 樓船將狹,[一]及難離咎. 悔失番禺,乃反見疑. 荀彘爭勞,與遂皆誅. 両軍倶辱,將率莫侯矣.


[一]集解徐広曰:「言其所將卒狹少.」


[索隠述賛]衛満燕人,朝鮮是王. 王険置都,路人作相. 右渠首差,渉何■上. 兆禍自斯,狐疑二將. 山、遂伏法,紛紜無狀.


이제부터 원문의 독음과 해석을 붙인다.


朝鮮王滿者, 故燕人也.

조선왕만자, 고연인야.

조선왕 위만은,

원래 연나라 사람이다.

 

<의문점>

故燕人(고연인) - 옛날 연나라 사람이다.

즉, 한나라의 제후국이 아닌 춘추전국시대의 연나라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나라의 노관이 부임하기 전부터 있었던 연나라 사람이란 뜻이다. 이는 한족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즉, 동이족 계열일 것으로 판단된다. 위만이 동으로 도망친 이유는 여기에 있을지 모를 일이다.


▶조선 : 사기정의(史記正義)에 고려의 도읍은 평양성(平壤城)이며, 평양성은 왕검성을 말하고 또 옛부터 말하기를, 조선 땅이라 불러왔다고 했다.

*** 지명에 관하여 : 고대에는 천도를 하게 되면, 근처의 지명도 함께 옮겼다고 단재 신채호 선생은 밝혔다.


自始全燕時, 嘗略屬眞番, 朝鮮爲置吏, 築<章+邑>塞

자시전연시, 상략진번, 조선위치리, 축<초+읍>새.

연나라가 강성할 때부터,

일찍이 조선을 공략하여 진번(眞番)에 속하게 하고,

치소를 설치하여 관리를 파견했으며,

장(章+邑) 땅에 요새를 쌓았다.

 

<章+邑>=障(막힐 장)

*** 自始全燕 : 연나라는 그 전성기에(연나라가 강성할때부터) - 이병도,노태돈,김성배,송호정

***위 해석은 이병도 일문의 해석임.

 

[다른해석 - 김종서]

自始全燕, 時嘗略, 屬眞番朝鮮, 爲置吏築<章+邑>塞

자시전연, 시상략, 진번조선, 위치리축장새

(나라를 처음 건국하고 망할 때까지) 연나라 전기간에 걸쳐서

(진번과 조선에) 늘 침략을 당하였으므로

진번과 조선을 (침략을) 경계하여

관리 두고 그로 하여금 보루와 요새를 쌓게 하였다.

 

自始全燕(자시전연) : 연나라의 전기간에 걸쳐서

 - 自始(자시) : 처음부터,   自(자) : ~때부터, 始(시): 처음, 시초, 최초

 - 全燕(전연) : 연나라 전기간 동안- 강성할때라고 쓸때는 全을 안쓴다고 함. (盛,興자를 쓴다)

 

時嘗略 : 늘(시시때때로) 침략을 당하였다.

 - 時(시) : 그때, 늘, 당시, 시대, 세대

 - 嘗略(상략) : 침략을 당했다,

 - 嘗(상) : 음식을 맛보다, 격다, 경험하다, 당하다.

 

屬眞番朝鮮(촉진번조선) : 진번과 조선의 침략을 경계하였다.

 - 진번조선(眞番朝鮮) : 진조선, 번조선

   ( 신채호 선생은 항상 조선의 후국들은 앞에 지명을 붙이고 뒤에 조선이라 붙였은데,

    진번조선이 여기에 해당한다, 즉 진조선, 번조선

    ,,,, 조선은 삼조선으로 신(진)조선,말조선,불(번,변)조선 이다.

 - 屬(촉,속) : 경계할 촉, 조심할 촉, 다스릴 속, 무리 속,

 

爲置吏築<章+邑>塞(위치리축장새) : 관리로 하여금 보루와 요새를 쌓게 하였다.

 - 爲(위) : ~때문에, ~으로 인하여, ~로 하여금 ~로 하게하다.

 

 

秦滅燕, 屬遼東外徼.

진멸연, 속요동외요.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하매,

요동에 속하게 하여 변방의 경계로 삼았다.

 

[다른해석 - 김종서]

秦滅燕, 屬遼東外徼.

진멸연, 속요동외요.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하고,

요동도 복속 시키었다.

 

요동은 지명이 아니라 국가명이라는 견해.

이 견해는 진시황본기에 나타난다고 함. 너무 길어 생략함.

 

***아래부분도 더 있지만, 시간이 없어 우선 이것만 다른해석을 넣었음.

*** 더 많은 다른 해석은 시시 때때로 계속 올리겠음.

 

▶ 시황 21년 기원전 226년 왕분(王賁)이 연 나라의 도성 계성(薊城)을 공격하였다. 진왕이 왕전으로 하여금 증원군을 이끌고 가서 왕분을 돕게 했다. 왕전은 연나라 태자단(太子丹)이 이끌던 연군(燕軍)을 격파하고 계성(薊城)을 점령하였으며 태자단의 목을 얻었다. 연왕은 동쪽의 요동(遼東)으로 도망가서 그곳의 왕이 되었다.

▶ 시황 25년 기원전 222년 군사를 대대적으로 일으켜 왕분(王賁)을 장수로 삼아 요동의 연왕을 공격하게 했다. 왕분이 싸움 끝에 연왕(燕王) 희(喜)를 사로잡았다.(진시황본기)


漢興, 爲其遠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爲界, 屬燕.

한흥, 위기원난수, 복수요동고새, 지패수위계, 속연.

진나라의 뒤를 이어 한나라가 일어나매,

조선의 땅은 너무 멀어 지키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옛날 진나라 때 세운 요동의 요새를 다시 수리하여 패수를 한나라의 경계로 삼고,

나라에 속하게 했다.

 

▶패수(浿水) : 패(浿)는 패(沛)이다. 패수는 요동의 요새 밖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낙랑의 서쪽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패수는 보(普)에서 크게 꺾인다. 요동에 번한현(番汗縣)이라고 있었다. (普)는 번(番)과, 한(汗)은 한(寒)과 통한다.(한서지리지)


燕王盧綰反, 入匈奴, 滿亡命, 聚黨千餘人, 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

연왕노관반, 입흉노, 만망명, 취당천여인, 퇴결만이복이동주출색.

연왕 노관이 반하여, 흉노로 도망치자,

그 휘하 장수였던 위만도 목숨을 구하여,

천여 명의 무리를 모은 다음,

머리에 상투를 틀어 만이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달아나 요새 밖으로 나아갔다. 

 

▶노관 : 노관의 부친과 한고조 유방의 부친인 태상황과는 매우 친한 친구였다. 태상황이 한고조를 낳자 그 부친도 노관을 낳았다. 한고조와 노관은 같은 날에 태어나서 동무하여 같이 자랐다. 고조가 패에서 궐기할 때 노관은 객의 자격으로 종사했다. 고조가 항우를 파하고 한나라를 세우자 노관은 장안후가 되었다. 이어서 연왕 장도(臧荼)가 한나라에 투항하자 그 빈자리에 노관이 봉해졌다. 이어서 한고조와 여후(呂后)가 유씨(劉氏)가 아닌 공신들로서 제후에 봉해진 사람들을 차례로 주살하자 노관도 위협을 느끼고 황제에게 조현을 드리러 가지않았다. 한고조는 번쾌(樊噲)를 시켜 연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이에 노관은 가솔들을 거느리고 흉노로 도망친 것이다. 

< 그런 노관이 왜 흉노로 달아났을까? >

그것은 BC 195년 4월 한고조 유방이 죽자, 유방의 불알친구였던 노관은 권력을 장악한 여태후는 노관이 유방과 어릴적 부터 기방출입을 함께 하는 등의 행동을 했기 때문에, 노관을 극히 싫어했다. 여태후는 유방의 친근 세력을 모두 제거하는 과정에서도 특히 노관을 제거하려고 노력했는데, 무려 20만명의 대군을 보내 노관의 연나라의 씨를 말리려고 했던 것이다.

< 의문점 >

상사인 노관은 흉노로 도망갔는데, 어째서 휘하장수인 위만은 노관을 뒤따르지 않고 동으로 달아났을까?

 [추론] - 위만은 노관의 휘하장수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 위만은 한족 출신이 아닌 동이족 출신이다.

 


渡浿水, 居秦故空地上下鄣, 稍役屬眞番朝鮮蠻夷及, 故燕齊亡命者王之, 都王險.

도패수, 거진고공지상하장, 초역속진번조선만이급, 고연제망명자왕지, 도왕검.

패수를 건너,

당시 아무도 살지 않던 장 땅의 좌우에 자리를 잡고 살다가,

이어서 서서히 그 주변에 있던 진번과 조선의 만이(蠻夷) 및,

옛날 제(齊)와 연(燕)에서 도망쳐와 살고 있던 자들을 복속시켜 그들의 왕이 되어,

왕검성에 도읍했다.  

 

▶ 왕검성 : 한서 <지리지(地理志)>에 의하면 요동(遼東)에 험독현<險瀆縣>을 말한다고 했다. 험독현은 지금의 하북성 창려(昌黎)를 말한다. 조선왕이 도읍을 삼은 왕검성은 낙랑군 경내를 흐르던 패수 동쪽에 있다고 했다.


會孝惠, 高后時天下初定, 遼東太守卽約滿爲外臣.

회효혜, 고후시천하초청, 요동태수즉약만위외신.

효혜제와, 

여태후 시대에 이르러 천하가 비로소 안정되자,

조선왕 위만이 요동태수에게 한나라의 외신이 될 것을 약속했다.

保塞外蠻夷, 無使盜邊.

보새외만이, 무사도변.

이에 요동태수는 요새 밖의 만이들로부터 보호해 줌으로서,

조선의 변경이 노략질 당하지 않게 했다.


諸蠻夷君長欲入見天子, 勿得禁止.

제반이군장욕입견천자, 물득금지.

그러자 요새 밖의 여러 만이들의 군장들이 한나라에 입조하여 천자를 뵙기를 원하자,

이를 금하지 못했다.


*** 천자 : 한무제를 말한다. 한무제는 대표적인 전제정치자로서 살육을 밥 먹듯이 한 것으로 보인다.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 이유가 흉노로 도망간 장수를 비호하다가 벌을 받았다고 전해지나, 실은 사마천이 사기를 완성하고 한무제에게 보여줬는데, 한무제의 업적을 요리조리 잘잘못을 지적하였기에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한무제가 사기는 찢어버리고 사마천은 궁형에 처했으며, 사기를 다시 쓰라고 했다고 한다.



以聞, 上許之.

이문, 상허지.

이 말을 전해들은,

황제는 그들의 입견을 허락했다.


以故滿得兵威財物侵降其旁小邑.

이고만득병위재물침항기방소읍.

이 일로 인하여 위만은 군사들과 재물들을 얻어 주위의 소읍들을 침략하여 항복을 받아냈다.

眞番臨屯, 皆來服屬, 方數千里.

진번임둔, 개래복속, 방수천리.

진번과 임둔 등에 살던 만이들이,

모두 달려와 조선에 복속되자,

조선의 강역은 사방 수천리가 되었다.


▶ 조선(朝鮮), 고려(高麗), 맥(貊), 동옥저(東沃沮), 5국의 땅은, 동서 1200리, 남북 2000리이며, 그 서울은 동쪽에 있다. 조선의 동쪽으로 400리를 나가면 대해(大海)가 있고, 북쪽의 경계인 '영주(營州)'까지는 920리이다. 남으로 '신라국' 까지 600리, 북으로는 '말갈국'까지 1400리이다.(사기정의)


傳子至孫右渠, 所誘漢亡人滋多.

전자지손위거, 소유한망인자다.

조선의 왕위는 위만에게서 그 손자인 우거에게 전해지고,

그 동안 한나라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 불러 살게 하니 그 수효가 많았다.


又未嘗入見, 眞番旁衆國欲上書見天子, 又擁閼不通.

우미상입견, 진번방중국욕상서견천자, 우옹알부통.

조선왕은 그때까지 입견하지 않던 중에,

진번의 경계 밖에 있던 여러 나라들이 글을 올려, 천자에게 조현하려고 하나,

또한 조선이 세운 관새에 가로막혀 통하지 못한다고 했다.


元封二年, 漢使涉何, 諭右渠, 終不肯奉詔.

원봉2년, 한사섭하, 유우거, 종불긍봉조.

원봉 2년 (즉 기원전 109년),

한나라가 섭하를 사자로 보내,

우거에게 유지를 내렸으나,

조선왕 우거는 선뜻 조칙을 받들려고 하지 않았다.


何去至界上, 臨浿水, 使御刺殺送何者, 卽渡, 馳入塞.

하거지계상, 임패수, 사어자살송하자, 즉도, 치임새

섭하가 조선에서의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그 경계인,

패수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 어자를 시켜 섭하를 전송하러 따라나선 조선의 비왕(裨王) 장(長)을 찔러 죽이게 하고, 즉시 강을 건너,

요새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장(長)은 비왕(裨王)의 이름이다. 비왕은 섭하를 전송하기 위해 패수까지 따라온 것을 섭하가 그 호위를 시켜 죽인 것이다.

*** 비왕(裨王) : 왕을 보좌하는 왕.

중국식으로 보자면 조선왕은 황제와 같다. 왕 옆에 보좌하는 왕이 있다면 바로 중국식으로는 황제인것이다. 흔히들 황제는 왕을 두고 왕은 속령을 다스린다고 생각하는데, 영토가 부족하던가 아니면 옆에서 보좌가 필요할 경우 왕의 작위만 내렸다.


遂歸報天子曰, 殺朝鮮將.

수귀보천자왈, 살조선장.

이어서 장안성(長安城)으로 들어가 천자에게 보고하기를,

조선의 장수를 한 명 죽였다고 했다.


上爲其名美, 卽不詰, 拜何爲遼東東部都尉.

상위기명미, 즉부힐, 배하위요동동부도위.

황제는 그가 조선의 장수를 죽여 명예를 갖추었다고 생각하여,

꾸짖지 않고,

오히려 섭하를 요동의 동부도위에 임명했다.


▶ 동부도위 : 요동군(遼東郡) 무차현(武次縣)은 당시 동부도위의 치소가 있던 곳이다.(한서지리지)

朝鮮怨何, 發兵襲攻殺何.

조선원하, 발병습공살하.

조선이 섭하에게 원한을 품고,

군사를 내어 동부도위가 있는 곳을 습격하여 죽였다.

*** 섭하가 있는 동부도위치치까지 가서 죽였다는 것은 한나라의 일방적 패전이다.

국경지대에는 군사가 많았을 것인데, 단순히 습격하여 죽였다?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다.


天子募罪人擊朝鮮.

천자모죄인격조선. 

천자가 죄인 중에서 군사를 모집하여 조선을 공격하게 했다.


其秋, 遣樓船將軍楊僕, 從齊浮渤海, 兵五萬人, 左將軍荀彘, 出遼東討右渠.

기추, 견누선장군양복, 종제부발해, 병오만인, 좌장군순체, 출요동토우거.  

그해 가을,

누선장군 양복으로 하여금,

산동반도에서 출발하여 발해를 건너,

5만의 수군을 이끌고 공격하게 하고,

좌장군 순체에게는, 요동에서 출동하여 우거를 토벌하도록 했다.

 


右渠發兵距險, 左將軍卒正多率遼東兵先縱, 敗散.

우거발병거험, 좌장군졸정다솔요동병선종, 패산.

우거가 군사를 내어 왕검성의 견고함에 의지하여 대항하자,

좌장군은 요동의 병졸이 많음을 믿고 먼저 조선군과 싸웠으나,

패하여 군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多還走, 坐法斬.

다환주, 좌법참

그리고 얼마 있다가 대부분의 군사들이 복귀하자, 

그들을 군법에 의해 참수했다.


樓船將軍將齊兵七千人, 先至王險, 右渠城守.

누선장군장제병칠천인, 선지왕검, 우거성수.

누선장군이 산동성 출신의 7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먼저 왕검성에 당도하여 공격하자,

우거는 성에 의지하여 지켰다.

 

窺知樓船將軍少, 卽出城擊樓船, 樓船軍敗散走.

규지누선장군소, 즉출성격누선, 누선군패산주.

이어서 누선장군이 거느린 군사들의 수가 적다는 것을 알아내고,

즉시 군사를 이끌고 성문을 열고 나가 누선장군과 그 군사들을 공격했으며,

누선장군의 군사들은 싸움에서 패하고 흩어져 달아났다.


將軍楊僕失其衆, 遁山中十餘日, 稍求收散卒, 復聚.

장군양복실기중, 둔산중십여일, 소구수산졸, 복취.

누선은 많은 군사들을 잃고,

산속으로 들어가 10여 일간을 숨어 지내며,

이윽고 얼마간의 시간이 흩어진 군졸들을 수습하여,

다시 전열을 정비할 수 있었다.


左將軍擊朝鮮浿水西軍, 未能破自前.

좌장군격조선패수서군, 미능파목전.

그동안 좌장군은 조선의 패수서군을 공격했으나,

쉽게 이길 수 없었다.


天子爲兩將未有利, 乃使衛山因兵威往諭右渠.

천자위양장미유리, 내사위산인병위왕유우거.

천자가 두 장수가 싸움에서 이기지 못함을 보자,

즉시 위산을 조선에 사신으로 보내 군사들의 위세를 빌려 우거를 회유하도록 했다.

 

右渠見使者頓首謝, 願降, 恐兩將詐殺臣, 今見信節, 請服降.

우거견사자돈수사, 원항, 공양장사살신, 금견실절, 청복항.

우거가 한나라의 사자를 보더니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의 말을 올리고,

그는 이미 항복하기를 원하고 있었으나, 

두 장군이 속여 자기를 살해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항거한 것이며,

이제 황제가 보낸 부절을 보게 되었으니, 항복하겠다고 했다.


遣太子入謝, 獻馬五千匹. 及饋軍糧.

견태자입사, 헌마오천필. 급궤군량.

조선왕 우거는 태자를 입조케 하여 사죄의 말을 올리게 하고,

말 오천 마리를 끌고 가서 바치게 했다.

이어서 군량미를 내어 한나라 군사를 배불리 먹이게 했다.

*** 태자 : 황제국은 왕자중 다음번 황제 계승권자를 말한다.

중국식으로 보면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조선은 제후국인데 태자를 두었다니 알 수 없는 부분이다.

 


人衆萬餘, 持兵, 方渡浿水, 使者及左將軍疑其爲變, 謂太子已服降, 宜命人毋持兵.

인중만여, 지병, 방도패수, 사자급좌중군의기위변, 위타재이복항, 의명인무지병.

그리고 백성들 중 만여 명을 뽑아,

군사로 삼아 태자에게 주어, 바야흐로 패수를 건너 한나라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사자와 좌장군이 많은 군사들이 함께 한나라에 들어가게 되면 변란이 일어날 것을 의심하여,

태자에게 말하기를 이미 항복했음으로, 마땅히 명에 따라 군사들을 해산시켜야 할 것이라고 했다.

*** 항복: 한족식의 표현이다. 강화조약을 말하는 것이다.

*** 말 5천마리를 바치는데, 백성은 1만명을 뽑고, 그 백성을 또 군사로 만들어 한나라 수도로 갈려고 했다. 말 5천 마리를 이끄는데, 수백명이면 될텐데.... 어찌 석연찮다.

*** 태자가 반란을 일어날것을 의심하였다? 이는 또 무슨 개소리인가? 일반 백성이면 어떻게 병장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키겠는가? 이는 분명 백성이 아니라 훈련이 잘된 정예병이었을 것이다.

 


太子亦疑使者左將軍詐殺之, 遂不渡浿水, 復引歸.

태자역의사자좌장군사살지, 수부도패수, 복인귀.

태자 역시 사자와 좌장군이 자기를 속여 죽이지나 않을까 의심하여,

이어서 패수를 건너기를 단념하고,

군사들을 이끌고 조선으로 돌아가 버렸다.

*** 한나라에서 보면 항복한 나라의 태자가 1만여 군사를 이끌고 도성으로 간다고 하는데, 국경까지 갔다? 또한, 1만여 군사를 이끌고 승리한 나라의 도성까지 가려고 했다? 뭔가 구릿내가 난다.


山還報天子, 天子誅山.

산환보천자, 천자주산.

위산이 돌아와 천자에게 고하자, 

천자는 위산을 죽였다.

 

*** 왜 위산을 죽였을까?

한무제는 어떤 이유인지는 잘 몰라도 강화조약을 꼭 맺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강화조약이 거의 가까웠을 시에 태자가 돌아가는 바람에 강화조약이 깨졌기에 이 책임을 물어 위산을 죽인 것이다.


左將軍破浿水上軍, 乃前, 至城下, 圍其西北.

좌장군파패수상군, 내전, 지성하, 위기서북.

좌장군이 패수상군을 격파하고,

앞으로 전진하여,

왕검성 밑에 다다라,

그 성의 서쪽과 북쪽을 포위했다. 


樓船亦往會, 居城南.

누선역왕회, 거성남.

누선장군도 역시 군사를 이끌고 와서,

왕검성의 남쪽에 진을 쳤다.


右渠遂堅守城, 數月未能下.

우거수견수성, 수월미능하.

우거가 여전히 성을 굳게만 지키니,

왕검성은 수개월이 지나도 함락되지 않았다.


左將軍素侍中, 幸將燕代卒, 悍乘勝, 軍多驕.

좌장군소시중, 행장연대졸, 한승승, 다군교.

좌장군은 조선에 출병하기 전에는 천자를 모시면서 총애를 받았었고,

또한 연(燕)과 대(代) 지방의 용감한 군사들을 거느렸을 뿐만 아니라,

전에 조선의 패수상군을 무찔러 승세를 타고 있어,

그 자신과 군사들은 매우 교만해져 있었다.


樓船將齊卒, 入海, 固已多敗亡.

누선장제졸, 입해, 고이다패망. 

누선장군은 제(齊)의 군졸들을 이끌고,

바다로 나와 조선에 당도했으나,

예전에 이미 고립되어 이미 많은 군사들을 잃었었다.


其先與右渠戰, 困辱亡卒, 卒皆恐, 將心慙.

기선여우거전, 곤욕망졸, 졸개공, 장심참.

그는 먼저 우거와 싸움을 하다가,

싸움에 패하여 곤욕을 치르며 군사들을 잃었기 때문에,

그 휘하의 군졸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장수된 자신은 마음속으로 매우 부끄러워하였다.


其圍右渠, 常持和節.

기위우거, 상지화절.

한나라의 군사들이 우거를 포위하고는 있었으나,

마음속으로는 항상 강화가 맺어지기만을 바랬다.


左將軍急擊之, 朝鮮大臣乃陰閒使人私約降樓船, 往來言, 尙未肯決.

좌장군급격지, 조선대신내음한사인사약항누선, 왕래언, 상미긍결.

좌장군이 먼저 급공을 가하자,

조선의 대신들은 비밀리에 사람을 누선에게 보내 항복을 청하며,

왕래하였으나, 

항상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左將軍數與樓船期戰, 樓船欲急就其約, 不會.

좌장군수여누선기전, 누선욕급취기약, 불회.

좌장군이 누선장군과 왕검성을 공격할 날짜를 정하여 약속하였으나,

누선장군은 조선의 대신으로부터 항복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낼 욕심으로, 

좌장군과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左將軍亦使人求閒, 降下朝鮮, 朝鮮不肯. 心附樓船.

좌장군적사인가간, 항하조선, 조선불긍. 심부누선.

좌장군도 역시 사자를 보내,

항복을 촉구했으나,

조선은 그의 요청에는 선뜻 응하지 않았다.

조선은 대화상대로 누선장군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以故兩將不相能, 左將軍心意樓船前有失軍罪, 今與朝鮮私善而又不降, 疑其有反計, 未敢發.

이고양장불상능, 좌장군심의누선전유실군죄, 금여조선사선이우불함, 의기유반계, 미감발. 

이것을 기회로 두 장군 사이에 틈이 벌어지게 되어,

좌장군은 누선장군이 예전에 싸움에 패하여 군사를 잃은 것에 대한 죄를 추궁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던 차제에,

이번에는 누선장군이 조선과 서로 친하게 지내는 관계로 자기에게 항복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그가 반심을 갖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품게 되었으나,

입으로는 그 생각을 감히 말하지 못했다.


天子曰將率不能, 前乃使衛山諭降右渠, 右渠遣太子, 山使不能<專+刀>決, 與左將軍計相誤,

천자왈장솔불능, 전내사위산유항우거, 우거견태자, 산사불능<전+도>결, 여좌장군계상오,

卒沮約.

졸저약.

천자가 말하기를, 두 장수가 군사를 지휘하지 못했기 때문에, 옛날 위산을 사절로 조선에 보내 우거를 회유토록 하여, 우거는 마침내 태자를 시켜 한나라에 입조토록 했으나, 위산이 능히 일을 알아서 처리하지 못해, 좌장군과 함께 일을 그르치고, 결국은 약속이 깨진 것이라고 했다.


今兩將圍城, 又乖異.

금양장위성, 우괴이.

그리고 오늘 두 장수가 왕검성을 포위하고 있으나, 또다시 서로 마음을 합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以故久不決, 使濟南太守公孫遂往之, 有便宜得以從事.

이고구불결, 사제남태수공순수왕지, 유편의득이종사.

그래서 조선의 일이 그렇게 오랫동안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제남태수 공손수를 시켜 조선으로 가서, 현지의 사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도록 했다.


遂至, 左將軍曰.

수지, 좌장군왈.

공손수가 이윽고 조선에 도착하자, 좌장군이 그에게 말했다.


朝鮮當下久矣, 不下者有狀, 言樓船數朝不會, 具以素所意告遂曰.

조선당하구의, 불하자유상, 언누선수조불회, 구이소소의고수왈.

조선의 성을 함락시키는데는 오랜 시일이 걸리겠고, 또 지금까지 성이 함락되지 않은 것은, 누선장군이 여러 차례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리고 평소에 품고 있던 생각을 모두 공손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今如此不取, 恐爲大害, 非獨樓船, 又且與朝鮮共滅吾軍.

금여차불패, 공위대할, 비독누선, 우조여조선공멸오군.

지금 이와 같은 상황에서 성을 취하지 못하게 되면,

커다란 피해를 입을 뿐만 아니라,

또한 누선장군이,

조선과 함께 힘을 합쳐 우리 군사들을 멸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遂亦以爲然, 而以節召樓船將軍入左將軍營計事.

수역이위연, 이이절소누선장군입좌장군영계사.

공손수 역시 좌장군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부절을 보내 군사의 일에 관해 의논할 일이 있다고 하며 누선장군을 좌장군의 군영으로 불렀다.

 

卽命左將軍麾下執捕樓船將軍, 幷其軍.

즉명좌장군휘하집포누선장군, 병기군.

공손수는 좌장군에게 명하여 누선장군을 체포하라고 명하고,

그 밑의 군사들을 모두 좌장군 휘하에 두도록 했다.


以報天子, 天子誅遂.

이보천자, 천자주수.

이어서 그 일을 공손수가 귀국하여 천자에게 고하니,

천자가 공손수를 죽였다.


左將軍已幷兩軍, 卽急擊朝鮮.

좌장군이병양군, 즉급격조선.

좌장군이 누선장군 휘하의 군사를 거두어 합하자,

즉시 조선에 대해 급공을 가했다.


朝鮮相路人, 相韓陰 尼谿相參 將軍王唊, 相與謀曰, 始欲降樓船, 樓船令執, 獨左將軍幷將,

조선상로인, 상한음 니계상삼 장군왕겹, 상여모왈, 시욕항루선, 누선영집, 독좌장군병장,

戰益急.

전익급. 

조선의 관리 로인,

한음, 니계상 삼, 장군 왕겹등이, 

서로 모여 말하기를,

애초에 우리가 누선에게 항복하려고 했으나,

누선은 잡혀 옥에 갇히고,

좌장군이 한나라의 군사들을 합하여 홀로 지휘하게 되어,

싸움은 더욱 급하게 되었다.


恐不能與, 王又不肯降, 陰唊路人皆亡降漢.

공불능여, 왕우블긍항, 음겹로인개마항한.

우리가 한나라 군사들을 이기지 못할까 두렵고,

또한 왕은 선뜻 항복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하고,

한음, 왕겹, 로인 모두가 조선성에게 도망쳐 나와 한나라에 투항했다.


路人道死

로인도사.

로인은 투항하러 오는 도중에 죽었다.


元封三年夏, 尼谿相參, 乃使人殺朝鮮王右渠來降, 王險城未下.

원봉3년하, 니계상삼, 내사인살조선왕우거래항, 왕검성미하.

원봉 3년 (기원전 108년) 여름에,

니계상 삼이,

사람을 시켜 조선왕 우거를 죽이고 한나라에 항복했으나,

왕검성은 여전히 함락되지 않았다.


故右渠之大臣成巳又反, 復攻吏.

고우거지대신성사우반, 복공리.

우거의 대신 성사가 반하여,

다시 한나라 군사들을 공격하였기 때문이다.


左將軍使, 右渠子長降, 相路人之子最, 告諭其民, 誅成巳.

좌장군사, 우거자장항, 상로인지자최, 고유기민, 주성사.

좌장군이,

항복해 온 우거의 아들 장(長)과,

로인의 아들 최를 보내어,

조선의 백성들을 회유토록 하고,

성사를 죽였다.


以故遂定朝鮮, 爲四郡.

이고수정조선, 위사군.

이로써 조선을 평정하고,

그곳에 사군을 설치했다.


封參爲澅淸侯, 陰爲狄苴侯, 唊爲平州侯, 長降爲幾侯, 最以父死頗有功, 爲溫陽侯.

봉삼위홰청후, 음위적저후, 겹위평주후, 장강위기후, 최이부사파유공, 위온양후.

니계상 삼은 홰청후에,

한음은 적저후에,

왕겹은 평주후에,

장은 기후에 봉하고,

죽은 로인이 공을 세웠음을 생각하여 그 아들인 최는,

온양후에 봉했다.

 

*** 보통 항복했으면 그 지역의 민심을 수습하라고 그 지방에 임명하는 것이 상례인데 어찌 다른 지역에 작위를 봉했을까? 이는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하고 보장왕을 조선군왕으로 봉했던걸 보더라도 이치에 않맞는 것이다. 우리가 배운 현재의 평양성이 고조선의 마지막 수도 였다면 그 지방에 작위를 내렸을것인데 다른 지역이다. 좀 찜찜하다.


左將軍征至, 坐爭功相嫉妬, 乖計, 棄市.

좌장군정지, 좌쟁공상질투, 괴계, 기시.

천자는 좌장군이 처음에 원정 나와서,

공을 다툰 결과 서로 질시하여,

계책을 어긋나게 했음으로,

기시형에 처해 죽였다.


樓船將軍亦坐兵至洌口, 當待左將軍, 擅先縱, 失亡多, 當誅, 贖爲庶人.

누선장군역좌벙지열구, 당대좌장군, 천선종, 실망다, 당주, 속위서인.

누선장군 역시 열구에서 조선군과 싸워 군사를 잃었으며,

마땅히 좌장군의 군사가 오기를 기다렸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멋대로 군사를 이끌고 나가,

많은 군사들을 잃었음으로,

마땅히 죽여야하나,

목숨만은 살려주어 속죄금을 물고 서인이 되게 하였다.


太史公曰. 右渠負固, 國以絶祀.

태사공왈. 우거부고, 국이절사

태사공이 말한다.

우거가 왕검성의 견고함을 믿고 한나라에 항거하다가

조선의 사직이 끊기게 되었다.


涉何誣功, 爲兵發首.

섭하무공, 위병발수.

섭하가 거짓으로 공을 세워,

한나라와 조선 사이에 병화를 일으키는 시초가 되었다.


樓船將狹, 及難離咎.

누선장협, 급난이구. 

누선장군의 협량함은,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저지르게 되었다.


悔失番, 乃反見疑.

회실번, 내반견의

번을 잃고 후회하다가,

결국은 서로 반목하고 의심하게 되었다.


荀彘爭勞, 與遂皆誅, 兩軍俱辱, 將率莫侯矣.

순체쟁로, 여수개주, 양군구욕, 장솔막후의.

공로를 다툰 순체도,

공손수와 함께 주살당하니,

누선장군과 좌장군 모두가 욕됨을 입어,

그 중 아무도 열후의 반열에 서지 못한 것이다.

*** 마지막 부분을 보면
좌장군 순체 같은 경우는 공로를 다퉛다고 주살했다고 하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순체는 공로를 다퉛다고 하지만 조선을 멸함의 1등 공신이다.
이런 자를 단순히 공로를 다퉛다고 죽이다니 앞뒤가 맡지 않는다.

분명히 이 사기의 조선열전 부분은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 곳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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