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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초, 산친구들과 알프스에 갔다 돌아오며 스위스 레만 호반을 열차로 달렸다. 30년 만에 다시 보는 레만호인데, 나는 그 호반 도시 브베이를 지날 때 에밀 자벨(Emile Javelle·1847~1883)을 생각했다. 실은 그의 유명한 책 <한 등산가의 회상>이 머리에 떠올랐던 것이다. 자벨이 그 책을 쓰며 이곳 대학에서 수사학(修辭學)을 강의하다 짧은 생애를 마친 곳이 브베이였다.
만일 내가 등산을 몰랐다면 이번 알프스 나들이는 고사하고 에밀 자벨과 그의 유명한 책을 알 리가 없었으리라.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지만, 산을 알면서 어느새 등산이 나의 또다른 전공처럼 되었다. 등산책을 늘 펼치고 등산에 관한 글도 많이 써왔기 때문이다.
나도 남부럽지 않은 서재를 가지고 있다. 그 서재는 대부분 외국 등산 서적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 속에 자벨의 <한 등산가의 회상> 일본어판이 두 권 있다. 하나는 세계산악 명저전집에 들어 있고 다른 하나는 단행본으로 모두 저명한 일본 등산가들이 옮긴 것이다.
내가 이렇게 자벨의 같은 책을 둘이나 가진 것은 그 번역들이 모두 명역이고, 특히 단행본의 경우 그 번역자가 내 마음을 끌었기 때문이다.
그 역자는 일찍이 중학시절, <한 등산가의 회상>에 끌려 이를 탐독했으며 훗날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교수가 됐다. 그는 그 뒤 산에 다니며 자벨의 그 책을 옮겼고, 끝내는 저자의 뒤를 따라 알프스를 답파했다. 메스너가 “등산, 그것은 병인가” 라고 자문자답했지만, 자벨의 책에 빠져들어 자기 인생을 결정한 그 대학 교수야말로 등산에 병든 사람이 아니었을까 한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면서 미지의 세계며 모험의 대상이었던 등산이 날로 퇴색하고 있는 듯해 가슴 아프다. 지난날 젊은이들이 무거운 키슬링 배낭을 지고 산에 올랐으며, 클레터슈즈로 암벽을 탔는가 하면, 찬 비를 만나 추위에 떨었고, 눈 속에서 꽁꽁 얼어 굳은 등산화를 침낭 속에 넣고 자던 일들이 엊그제 같다. 아이젠은 으레 모래네 금강이었고 등산화라면 누구나 송림 것을 부러워했다. 돔형 천막이 어디 있으며, 고어텍스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이것이 30년 전 우리 산악계의 모습이었다.
이번에 알프스를 돌아보며, 샤모니에서 그 유명한 드루와 그랑조라스를 비롯한 침봉군의 세계를, 그리고 체르마트의 마터호른은 물론이고 몬테로자의 4,000미터급 연봉들을 바로 눈앞에 보았다. 알프스는 30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많이 후퇴했으리라 믿었는데, 6월 한여름 마터호른 동벽과 북벽이 마치 신설을 쓴 듯했다.
글쓰기는 고사하고 평생 등반기 한 권도 읽지 않는다면…
나는 나 자신이 지난 30년 사이에 얼마나 달라졌는가 혼자 생각했다. 등산계가 원로라고 하는데, 나이가 그러니 굳이 부정할 수도 없다. 나는 지난날 에베레스트와 북극권 그린란드를 체험했지만 그 밖에 이렇다 할 등반 하나 한 것이 없다. 그저 내가 했다면 외국의 등반기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한편, 하찮은 글들을 이것저것 써왔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산과 만나며 나의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고 자부한다. 전공(專攻)이란 원래 학문분야에서 쓰이는 말인데, 등산은 나에게 또다른 전공처럼 됐다. 등산에는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았고 그것은 마치 철학을 공부하는 기분이었다. 대학에서 원서를 강독하듯, 나는 등산책들을 읽어나갔다. 구미 선구자들의 책에는 깊은 사색과 체험의 세계가 있고, 등산사조가 변천하며 새로운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에 따른 전문용어들이 많아서 나는 등산을 하며 이것들을 배워나갔다.
나는 일찍이 일본 산악계의 선구자였던 오오시마 료기치(大烏亮吉·1899~1928)를 알게 되면서 나의 등산세계가 열렸다. 그것은 중학시절 우연히 만난 그의 책 <산-연구와 수상>에서 비롯했다. 오오시마는 대학시절 산악부원으로 산책과 접하며 영어와 독일어 외에 프랑스어가 필요한 것을 알고 혼자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얻은 그의 외국어 실력은 당시 산악계에서 따라갈 자가 없었다고 한다.
등산은 원래 우리 것이 아니다. 서양사람 가운데 알피니즘은 ‘Western Concept(서구의 개념)’이라고 콧대를 높이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이제 등산도 국제화해서 더 이상 그러한 편견에 기분 상하는 일은 없다. 그래도 피차 간격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것인데, 이러한 사실을 우리 산악계가 어느 정도 알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오늘날 산에 가는 사람이 날로 늘고 있다지만, 그들 가운데 등산세계라는 독특한 생활권이 있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등산은 오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등산하며 배우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그 첩경은 등산책을 옆에 두고 사는 데 있다.
세계 등산사에 이름을 남긴 알피니스트 가운데 소위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은 별로 없다. 독일의 레오 마투슈카(Leo Maduschuka·1908~1932)가 그나마 공부했을 뿐 이본 취나드는 고교를 중퇴했고, 메스너도 공대를 중간에 그만두었다. 일찍이 윔퍼를 비롯해 머메리, 카신, 보나티며 헤르만 불에 이르기까지 모두 위대한 등반을 하고 그 기록들이 오늘날 고전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들은 학력이 없음에도 한결같이 뛰어난 문장가였다. 그들의 글은 겉치레가 아니고 소박하며 진솔한 산행의 묘사로 체험의 세계를 그대로 그렸다.
원래 산행기란 명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미사여구 같은 수식이 아니라 깊이 있고 사실적인 성찰이 중요하다. 다행히 등산하는 사람은 소박하고 생에 대한 의욕과 정열이 남다른데, 그런 우리가 글쓰기는 고사하고라도 평생 등반기 한 권도 읽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기기만이요, 수치다. 무엇보다 생활인으로서 불충실한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등산하며 무엇인가를 배운다. 사람들은 등산을 보통 바위타기로 시작하려는데, 이것은 등산의 외형이지 내용이 아니다. 등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본질인 등산정신이다. 이것을 중심으로 등산세계가 열린다. “Is it worth the risk?”라든가 “Bergsteigen-eine Sucht?” 같은 말, 즉 ‘그것은 목숨을 걸 만한가’나 ‘등산, 그것은 병인가’라는 영어와 독일어권에서의 문제 제기는 등산에 대한 본질적 물음이다.
등산세계가 예상하고 전제로 하는 것은 메스너의 조어(造語)나 다름없는 ‘죽음의 지대’며 또한 ‘한계상황’이다. 그리고 이런 세계를 추구하는 극한 등반가들의 의식과 행위다. 그런데 이것은 등산가라고 아무나 흉내내기 어려우며, 결국 우리는 오직 추체험(追體驗)을 통해서 비로소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다.
나는 에베레스트의 수직세계와 북극권 그린란드의 수평세계에서 진정 만고의 정막과 무한이 어떤 것인지 알았고, 대자연이 과학기술문명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 생존의 절대적 조건임을 느꼈다. 나는 또한 선구자들의 등반기에서 학교 교육이 가르치지 않는 ‘한계도전’이니 ‘불확실성’ 그리고 ‘편의성’ 등 등산 특유의 개념과 키워드를 배웠다. 이러한 전문적 용어들은 오직 등산하며 공부하는 자들의 몫이다.
메스너의 <죽음의 지대>에 이런 글이 나와 주목된다. “원칙적으로 등산가 수만큼 등산의 동기가 있으며, 그 체험도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너나 할 것 없이 판에 박힌 등산활동을 하기 때문에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이런 경우 본질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산의 높이가 아니며, 루트의 난이도는 더욱 아니다.”
날로 좁아가는 등산세계에서 우리에게 끝내 남는 것은 마음속의 고산과 거벽이며, 문명을 벗어난 대자연이다. 그러나 그것은 등산가의 감수성과 능력에서 오는 자기인식의 소산이다.
/ 글 김영도 77에베레스트 원정대장·한국등산연구소 고문
너는 등산하며 무엇을 배우는가
2010. 2. 17. 16:31ㆍ山情無限/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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