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이 정답 아닌 100가지 이유

2011. 4. 27. 21:37이래서야/탈핵

 

 

원전이 정답 아닌 100가지 이유
김철웅|경향신문 논설실장 kimseoul@kyunghyang.com
수정 : 2011-04-26 19:57:01

 

 

 

 


2001년 발생한 9·11테러는 ‘묵시록적 사건’으로 묘사되곤 했지만 지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묵시록적 성격이 그보다 더하다고 생각한다. 9·11 며칠 후 나는 한 칼럼에 “사람들이 쌍둥이 빌딩에서 솟아오르는 거대한 화염 속에서 악마의 얼굴을 보았다는 입소문은 이 사건의 묵시록적 성격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고 썼다. 세기초였지만 세계무역센터의 드라마틱한 붕괴 광경이 던진 충격은 세기말 묵시록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할 만큼 컸다. 테러 후 세계는 2개의 전쟁에 휘말려들었다. 학자들이 9·11 이전과 이후로 시대구분하는 용어를 쓸 만큼 파장은 심대했다. 그러나 10년 후 일본에서 터진 원전 사고는 묵시록적 사건에 대한 통념을 깨는 것이었다. 이런 게 진짜 묵시록적 암시 아닌가….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후쿠시마 사고는 사람들이 잊고 있던 공포를 불현듯 일깨웠다. 인류를 멸절시킬 수 있는 핵재앙 공포다. 허용치를 훨씬 넘는 방사성물질이 누출돼 대기와 토양, 바다를 오염시켰다. 원전 반경 20㎞ 이내는 경계구역으로 지정돼 피난령과 함께 출입이 봉쇄됐다. 20㎞권 밖 지역 가운데 방사선량이 많은 곳의 주민 1만여명도 피난토록 했다. 15만명이 피폭 여부 조사 대상이 됐다. 사고 발생 한달 반이 지났지만 방사성물질 누출 제어 작업은 진척이 없다. 후쿠시마 사고를 종말론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이유는 바로 방사능 때문이다. 가령 2004년 말 인도네시아 등지의 강진과 쓰나미로 22만명이 사망했지만 그것에서 대재앙 이상의 종말론적 의미를 찾기는 어려운 것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재앙

 

후쿠시마에서 사고수습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와중에 어제 체르노빌 원전 사고 25주년이 돌아온 것도 의미심장하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는 시공상의 차이, 기술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그 전개양상이 비슷하다. 사고의 위험수준은 최고등급인 7이다. 이는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유럽 전역의 암 사망자 증가, 기형아 출산 급증 등 비극이 25년 후 이곳에서도 재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방사성물질은 한번 오염되면 수백년간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체르노빌 사고가 난 1986년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란 중요한 책을 저술한다. 이 책은 현대 산업사회를 위험이 전면화하고 정상적인 것이 된 사회, 즉 위험사회로 규정했다. 벡은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라는 기발한 명제를 제시했다. 현대사회의 위험은 계급 및 국가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며 생태재해와 오염물질이 국경을 무시하듯 계급경계도 무시한다는 것이다. 위험이 평등하고 민주적이라는 벡의 생각은 탁견으로, 그가 체르노빌 사고가 난 역사적인 해에 <위험사회>를 쓴 것은 우연치고 절묘해 보인다. 벡은 2008년 한국에 왔을 때 이런 말도 했다. “국가가 모든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고 말로만 주장하는 것은 곧 국민의 불신이 생겨나기 때문에 위험한 전략이다.”

 

무릇 큰 재앙이 이웃 나라에서 발생하면 관련 대책을 점검도 해보고 수정도 검토해야 하는 법이다. 가령 이웃 국가는 아니지만 독일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가 나자 신속한 원전 폐쇄 정책으로 선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정부와 국민 공히 그럴 태세가 돼 있기는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놀랍도록 침착하고 태평한 모습이다. 엊그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세계적 기후변화 대응체제 구축, 청정에너지 보급 측면에서 원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원전 주무부처 장관인 그는 사고 초기에도 “원전 계획을 수정할 일 없다”고 못박았다.

 

 

방사능 물질 오염 수백년 지속

사려깊지 않아 보이지만 백번 양보해 이 낙관론이 강철 같은 신념의 표현이라고 해도 전혀 믿음이 안 가는 소리다. 벡이 지적했고 후쿠시마 사례가 입증한 대로다. 문제는 최중경이란 아바타가 아니라 그 주인 이명박 대통령이다. 4대강 사업 속도전이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탓이 아닌 것과 같다. 대통령에게서 원전이 청정 녹색에너지란 생각이 떠나지 않는 한 현재의 ‘명품 원전’ 타령, 원전 수출 입국 구호는 계속될 것이다.

 

한국의 평균적 안전관리 능력은 미덥지 않다. 그렇다면 ‘하지만 원전분야만은 특별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드러나는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봄 우리는 이 피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과 맞대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