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생태 민주화와 탈핵의 정치

2012. 10. 26. 01:32이래서야/탈핵


<시론>

생태 민주화와 탈핵의 정치
김연민 울산대 교수(산업공학) 
2012-10-24



생산, 소비, 폐기의 대량화를 멈출 때다
폐연료봉 6천개 쌓인 후쿠시마의 교훈을

33만개 폐연료봉 옆에서도 새기지 못해

 



최근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등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반면 살아가는 공간과 사회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관련하여 사회 체계를 규정짓는 생태 민주화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은 경제의 비민주화 즉 재벌 독점이 강화되면서 다양한 자연 에너지를 배제하고 재벌, 대기업 중심의 대량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로 규정되는 생태적 비민주화의 길을 걸어왔다.


비민주적 정권은 안정된 전력 공급을 위해 원자력 발전을 확대하고, 재벌 대기업이 초과이윤을 얻도록 산업용 전기료를 가정용 전기료인 122원/kWh의 2/3 정도로 유지해 왔다. 우리나라의 원전정책은 예를 들면 400만 명 이상이 사는 부산, 울산과 같은 인구 밀집지역에 고리, 월성 등의 핵 발전 단지를 건설하여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거대한 위험에 시민이 노출되게 하였다.


원전은 400만~500만 개에 이르는 부품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부품이 한 가지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고리 1호기, 월성원전 1호기 등은 건설된 지 30년이 지나 부품 공급이 원활치 않고 제조사가 폐업하거나 생산을 중단해 아예 구하지 못한 부품도 허다하다. 이런 점에서 국내 원전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한편 지식경제부와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폐연료봉은 월성, 고리, 영광, 울진 등 4개 원자력발전소에 총 33만 6000다발(2010년 9월말 기준)이 저장돼 있다. 발전소별로는 월성이 32만 3696다발로 가장 많고, 고리 4469다발, 영광 4340다발, 울진 3639다발 등이 있다. 연간 폐연료봉 발생량은 680톤 (발전소 1기당 47다발)으로,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저장시설이 포화될 전망이다.


후쿠시마 원전에 쌓여 있는 6,000여개의 폐연료봉이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와 태평양 연안 국가들을 핵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상황을 볼 때 34만 개에 달하는 폐연료봉은 그야말로 ‘시한폭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폐연료봉을 장기적으로 보관 또는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와 함께 월 발생량이 139드럼인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도 각 원전에 8만 9315드럼(200리터 드럼 기준)이 저장돼 있다.


세계 각국이 원자력을 안 쓰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덴마크, 독일 등은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하며 전 국민의 보편적 복지와 행복을 염원하는 규범적이고 성숙한 사회를 지향해 왔다. 반면 우리 사회의 강압적 지배 세력은 시민과 지역이 자신의 에너지와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고 그 반대의 길인 ‘원전파시즘’의 길을 폭주해 왔다. 전대미문의 후쿠시마 핵 재앙 앞에서도 ‘원전 르네상스’를 향해 돌진하는 이 나라 위정자들의 무모함과 시민의 무신경은 위험 사회를 벗어날 전망을 어렵게 한다.


현재 한국에서 에너지전환 가능성은 거의 절망적으로 보인다. 10 년 전쯤 한국에서 에너지전환 운동이 처음 시작될 때 사람들은 희망을 품었다. 한국의 한 사람당 전기소비는 2000년에 5,704kWh였으나 2010년에는 9,493kWh 로 늘어나 40% 가까이 증가하였다. 그동안 에너지소비가 너무 많이 증가했고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만들어져 지금은 희망을 이야기하기가 정말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현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생명마저 걸린 생태민주화에 대한 논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정치의 계절을 맞아 경제 민주화 논의와 함께 생태 민주화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져야 한다.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까지 해악을 끼치는 위험한 물질을 사용하지 않으며, 핵 발전 사회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벗어날 새로운 탈핵의 에너지 정책이 나와야 한다.

 

“미래는 예측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대선 후보들은 생태 민주화의 시금석으로 낡고 위험천만인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에 대한 수명 연장을 중단시키는 공약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