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25. 21:42ㆍ이래서야/더불어살기위하여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일기
박성식 | 민주노총 부대변인
2010-11-23
‘사내하청 비정규직’이라는 사회적 인식조차 있지 않았던 1995년, 우리의 이름은 ‘업체사람’이었다. 그 호칭은 우리가 붙인 이름이 아니었다.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불러야할지도 몰랐고, 오히려 누가 부를까봐 전전긍긍 하는 위축된 존재였다. 같은 작업복 차림이지만 현대자동차 정직원이 아닌 것이 눈에 띌까봐 조용히 일했고, 휴식때도 가까운 정직원 휴게실에 들어가지 못해 작업장 구석 어딘가에 몸을 기댔다. 우리는 소속감도 존재감도 없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그래도 이십대 초반 젊은이들에겐 여차하면 그만두겠다는 막연한 미래라도 있었지만, 사십 오십 먹은 업체사람들은 그들 중에서도 더 조용한 침묵의 존재였다. 벌써 15년이 지난 기억이다. 당시 한 사내협력업체에 고용된 나는 정사원들과 함께 중형차 쏘나타와 마르샤의 범퍼를 조립하는 일을 했다. 정직원은 앞범퍼를 달았고 나는 뒷범퍼를 달았다. 같은 일을 했지만 정직원의 반토막도 안되는 나의 임금은 월 14만원 셋방생활과 노부모를 감당하기에도 숨이 찼다. 때문에 우리에겐 주말특근과 철야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고, 실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도 없었다.
“철야 대기해!” “왜? 싫어?” “일찍 퇴근하면 뭐하냐! 그렇게 돈이 쓰고 싶냐!”
(일찍 퇴근이 8시냐! 그리고 언제 쓸 만큼 돈이나 줬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다.)
“약속은 지킨다. 시급 10원 올려주기로 한 거 올려준다. 해줄 건 다 해준다.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불량 줄여!” (약속? 개에게나 던져 줄 그따위 약속이란 게 1년 만에 겨우 10원 인상이다.)
“지각이 많아!” “차가 막힌다고? 일이십분 더 일찍 일어나면 돼!” (그러면 내일은 6시에 나와야겠군.)
지시하는 관리자들의 혀는 혈관을 파고드는 주사바늘처럼 차갑고 여름밤 모기의 극성보다 짜증스러웠다. 그들은 “나도 한때 너희들 같았다”고 말하곤 한다. 우리들의 심정을 잘 안다는 얘기고 어른이랍시고 꺼내는 레퍼토리였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정규직이 버린 장갑과 작업복을 구해 빨아 쓰는 모습은 사라졌을까? 정사원들보다 잘한다는 소릴 듣고 싶어 더 열심히 일하던 처량한 자존심은 여전할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정규직의 연말성과급 같은 건 없었던 그 차별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마침내 2010년 파업을 한다. 이십년이 넘도록 수만, 수십만명의 가슴에 쌓였던 응어리를 이제야 토해낸다. 너도 나도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지만, 정작 비정규직의 처지는 나아지지 않는 현실의 위선에 이제야 달려든다.
불법이라 우기지 마라. 무시당하고 차별받는 서러움을 아는가. 때리지 마라. 구겨버리고 발에 차이는 휴지조각이 아니다. 이간질 마라. 정규직은 귀족이란 모함을 뒤집어쓰고 비정규직은 그 모함조차 부럽기만 한 노동자의 울분을 아는가. 우리는 업체사람도 비정규직도 아니다. 우리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다.
수조원을 쏟아부어 회사를 사들일 돈은 있어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현실상’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가.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는 대법판결까지 나왔는데 나몰라라 하는 것이 과연 ‘법과 원칙’인가. 하긴 옛날부터 그랬다. 하나도 갖지 못한 노동자들의 결핍보다, 아흔아홉을 갖고도 백을 채우지 못해 안달하는 당신들의 탐욕만이 현실이었고 법이었지. 그래서 우리는 파업한다. 20년 넘게 차별하고 부려먹었으면 족하지 않은가. 현대자동차는 사내하청 비정규직지회와 교섭하라! 이제 얼굴 맞대고 대화할 정도의 양심은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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