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 복지 못한다는 '거짓말'

2011. 3. 21. 23:20이래서야/더불어살기위하여

 

 

 

돈 없어 복지 못한다는 ‘거짓말’
유종일 |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jyou@kdischool.ac.kr
수정 : 2011-03-21 23:52:46

 

 

 

 


일본에서 전해오는 비극과 공포의 소식, 리비아에서 들려오는 학살과 투쟁 이야기 등으로 어수선하다. 인간의 조건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 삶의 비극은 자연재앙이나 정치적 격변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소득 재분배에 예산이 필요한가

우리 사회는 자원과 권력을 매우 불공평하게 배분함으로써 끔찍한 고통을 초래하고 있다. 먹고 산다는 나라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서 자살률이 최고이고 빈곤율도 가장 높은 편이다. 용산참사 6명, 쌍용차 해고노동자 14명을 비롯해서 억울하게 죽어가는 이가 너무 많다. 노인 빈곤율이 무려 45%로 1위다. 일상화된 비극이어서 우리가 무감각해졌을 따름이지, 지진이나 폭격이 초래하는 비극에 못지않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없앨 수 있는 고통이기 때문에 더욱 비극적이다.

 

최근 대두한 복지국가론의 정당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복지의 비용과 관련해서 논란이 많다. 모든 정책을 실시함에 있어 그 비용과 효과를 잘 따져보아야 함은 물론이다. 문제는 복지 비용을 계산하는 셈법이다. 복지 비용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비용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복지지출의 대부분은 이전지출이다. 정부가 소비나 투자를 위해 돈을 쓰는 일반적인 지출이 아니라 소득을 재분배하는 것일 뿐이다. 나라경제의 입장에서 보면 오른쪽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왼쪽 호주머니에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없어 복지를 못 한다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 된다.

 

예를 들어 무상급식에 얼마가 들고 무상의료에 얼마가 든다 하는 식의 얘기는 회계적인 의미의 재정비용일 뿐 경제학적 의미의 사회적 비용이 아니다. 정책과 관계없이 어차피 밥도 먹고 치료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나라경제 차원에서는 이미 지출은 결정된 것이다. 4대강 사업이나 무기 구매처럼 새로운 지출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예산당국이 이 돈이 어디서 나오나 걱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복지지출이 이전지출이라는 것은 당연히 증세 등 추가적인 국민부담을 전제한 것이다.

 

복지가 사회적 비용을 전혀 유발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행정비용도 있고, 인센티브 왜곡에 의한 비효율성도 발생한다. 세금이 높아지고 복지혜택이 많아지면 노동이나 투자 등 더 벌기 위한 노력을 덜 하게 되거나, 무상의료의 경우처럼 과소비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위 ‘복지병’ 문제다. 그런데 이러한 종류의 비효율성은 구체적인 제도의 설계에 따라 그 크기가 결정된다. 세금을 걷을 때도 소득세냐, 재산세냐, 소비세냐에 따라 경제적 효과가 달라지고, 지출을 할 때도 근로유인을 유지하고 과소비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존재여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복지비용과 관련해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복지가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효과도 초래한다는 것이다. 건강과 교육수준 및 직업훈련의 향상 등 인적자본의 질을 높여서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효과도 있고, 삶이 안정됨에 따라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요구가 완화되고 구조조정도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있으며, 내수를 진작하여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도 있다.

 

 

경제성장 촉진효과도 이미 증명

복지비용에 관해 서구 복지국가들을 대상으로 수많은 연구가 있었다. 놀랍게도 대다수의 연구결과는 복지의 효율성 비용에서 성장촉진효과를 뺀 순 복지비용이 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경제학자들이 복지가 클수록 경제성장이 부진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데이터에서 확인하고자 수없는 시도를 했지만 대부분 그 가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복지의 효율성 비용이 크지 않은데다가, 성장촉진효과가 이를 상쇄해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복지 비용과 효과도 최종 결과는 얼마나 효율적인 제도를 설계하느냐에 달려있다. 앞으로 복지 비용 논란은 제도 설계에 관한 구체적 논의로 발전되어야 한다. 쓸데없는 이념논쟁은 집어치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