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 1. 23:00ㆍ시,좋은글/詩
십자가를 지신 예수 / 이요한
히브리전서(傳書) / 고정희
한 사나이가 언덕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한 사나이가 언덕을 오르고
한 사나이의 이마에 두 줄기 핏방울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한 사나이가 골고다 언덕을 오르고
오르고 오르고 오르다 쓰러지고
맨살의 등줄기에 매섭고 긴 채찍이
수없이 내리치고 있었습니다.
사나이는 쓰러지고
불볕 같은 햇빛 아래 사내는 지쳐 쓰러지고
갈릴리 해변은 한없이 적막한 바람에 뒤덮이고 아,
한 사내가 골고다 언덕에 다시 쓰러지고 있었습니다.
목말라 비틀거리는 사내는 자기 키보다 더 큰 나무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로 골고다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마리아, 그녀의 한(恨)에 절은 눈물과 가슴을 외면한 채
주검보다 무거운 고독에 짓눌린 마리아 그녀의 폭탄 같은 오열을 외면한 채 사나이는
먼 곳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그 사내는
대학을 다닌 적도 없습니다.
부귀를 누린 자도 아닙니다.
권력을 가진 적도 없습니다.
그럴싸한 명사를 만난 적도 없습니다.
가난한 거리와 버림받은 이웃과
냄새나는 유대의 거리 그 천한 백성들의
눈물과 한숨이 있었을 뿐입니다.
율법에 두 발 묶인 죄의 사슬로부터
무섭도록 외로운 삶의 멍에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뿐인 불쌍한 무리들,
동정받을 일밖에 없는 히브리의
단 하나 친구인 그리스도는
가진 것 없는 당신 주제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줘야만 했습니다.
처음엔 기적을, 그 다음엔 정성을
그 다음엔 영혼을, 그 다음엔 전 생애와 주검까지도
죄 많은 유대에게 넘겨줘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부활까지도 그
찢어지게 가난한 히브리에게
무더기로 넘겨준 사내, 멋진 사내 예수.
그는 공부를 많이 한 적도 없습니다.
세도의 가문은 더욱 아니고
오직 별 볼일 없는 갈릴리 어촌의 목수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세상 죄 다 짊어지고
피 한 방울 남김없이 다 쏟아버린
그 사내가 성금요일 오후 세시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성당의 휘장이 갈라지고,
그를 본 영혼들은 한꺼번에 쩍,
금이 가고 있었습니다.
-『이 時代의 아벨』(문학과지성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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