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제국주의 짝패 국제사법재판소 갈 이유 없다

2012. 9. 5. 04:14역사/독도

 

 


"독도, 제국주의 짝패 국제사법재판소 갈 이유 없다"
한겨레 | 입력2012.09.04

재일 독도연구가 박병섭씨 인터뷰

 

 


"1952년 ICJ 갔다면 졌을 수도


지금은 우리땅 근거 많이 확보


1906년 석도가 독도라는 자료

 

 

 


조선 실효지배 증거 더 찾아야"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의 허구성을 일본 사료 추적을 통해 낱낱이 밝혀낸 것으로 유명한 재일 독도 연구가 박병섭(70)씨는 3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문제를 다루자는 일본의 제안에 대해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근거는 아주 많지만, 제국주의 시대 힘의 논리가 스며 있는 국제법을 적용하는 재판에 우리가 굳이 응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회사원으로 일하다 10여년 전부터 독도 연구에 매달려온 민간 연구가다. 일본 쪽 사료를 많이 발굴했으며, 그동안 <울릉도·독도 역사연구> 등 여러 권의 책을 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던 무렵부터 일본 우익의 위협을 받았던 박씨는 사진은 싣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 영유권 문제를 단독 제소하겠다고 한다.

 

"일본이 처음 그 얘기를 꺼낸 1952년에 국제사법재판소에 갔다면 우리가 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땅이라는 근거를 우리가 많이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이 공정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일본은 지금도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한다.

 

"일본은 에도막부 때인 1696년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라며 도항을 금지했다. 울릉도에 도항해 벌목을 한 사람을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다루면서 그려놓은 지도에 울릉도·독도는 조선 영토로 돼 있다. 메이지 유신(1868년) 이후 1905년까지 일본 정부가 간행한 지도 어디에도 독도가 일본 영토로 표시돼 있지 않다. 그래서 일부 일본학자도 고유영토론을 부정한다."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은 최근 국회에서 "일본이 1905년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재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 전 지도 제작을 관할하던 일본 내무성은 당시 영토 편입에 반대했다. 시마네현의 독도 편입은 조선 정부가 1900년에 독도가 우리 영토라고 칙령을 반포한 이후의 일이다."

 

-일본은 1900년 칙령을 한국 영유권의 근거로 인정하지 않는다.

 

"당시 독도를 한자로 '석도'라고 표시했다. 일본은 석도가 독도라는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거문도(전라남도) 어민들이 '독섬', '돌섬'으로 부르던 것을 그렇게 표현했을 텐데, 이를 뒷받침할 자료들이 나오고 있다. 1906년 <황성신문> 기사에 울도(울릉도)군수가 울도군을 만든 경위를 설명하면서, 울도군 안에 '석도'를 포함시켰다고 하고 있다. 울릉도 근처 섬이라면 독도뿐이다. 1905년 이전에 조선 정부가 독도를 실효지배한 근거도 있다. 일본 어민들은 1903년 무렵부터 한국 어민들과 함께 울릉도를 거점으로 독도 주변에서 강치(바다사자의 일종) 사냥을 하고 울릉도에서 수출했는데, 당시 울도군절목에 보면 외지를 출입하는 화물에 세금을 징수했다고 돼 있다. 울도군에서 독도를 관리했을 것임을 보여준다. 석도가 지금의 독도라는 근거와, 조선 정부의 독도 실효지배 근거를 더 찾아내면 좋을 것이다."

 

-앞으로 일본은 자기네 영토라는 주장을 더 강화할 텐데 어떤 대응이 좋은가?

 

"한-일 어업협정(1998년 개정)에 대한 시마네현 어민들의 불만이 그 밑에 깔려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토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가 지배하고 있으므로 불필요하게 일본을 자극하기보다는 차분한 연구로 우리 주장의 근거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일본 시민사회에도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근거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한·일 역사공동연구의 한 분과로 다뤄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도쿄/정남구 특파원je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