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의 인식과 기록의 역사

2009. 6. 28. 23:34山情無限/山


백두대간의 인식과 기록의 역사

안 강

  

백두대간이 언제부터 이 땅을 이해하는 지리인식체계로 자리잡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간접적인 기록이나 지도 등을 통해 길게는 천 여년이 짧게는 수 백년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시의 인식이 현재와 같은 완결된 체계가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백두에서 지리까지"라는 큰 줄기에서는 현재와 별로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런 오랜 세월을 이어온 인식체계가 20세기 초 식민지로 전락하는 나라와 겨레의 운명과 함께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이 땅을 바라보는 눈과 얼도 고스란히 일본제국주의에 그 자리를 내주고 만 것입니다. 해방이 된 후에도 그냥 잊혀져 있던 백두대간이 십 여 년 전부터 시작된 뜻있는 이들의 외롭고 힘든 노력으로 이제야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 분들의 눈물과 지새운 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아래 글은 백두대간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 10세기 초 :『옥룡기』(도선) '우리 나라는 백두산에서 일어나 지리산에서 끝났으니'라는 설명 등장. 『성호사설』(이익)에서 인용.

○ 1402년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권근)의 한반도를 보면 백두대간의 모습이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음. 이후 간행된 지도에는 이런 흐름이 뚜렷하게 반영되고 있음. (참고 자료 : 옛지도의 백두대간 )

○ 16세기 경 :『패관잡기』(어숙권)에 보면, 고려 공민왕 때 우필흥이 임금께 올리는 글(上書)중에 '우리나라 지세는 백두에서 시작하여 지리에서 끝났다'는 내용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음.

○ 1751년 :『택리지』(이중환) 조선 산맥, 백두대맥, 백두남맥, 대간 등의 용어 사용.「산수」편에 대간과 정간 12정맥으로 볼 수 있는 내용 묘사.(참고 자료 : 『택리지』속의 백두대간.

○ 1760년 경 :『성호사설』(이익) 「천지문」 편 제목 : '백두정간' 중에 백두대간 용어 사용

○ 1770년  :「여지고」(신경준) 『동국문헌비고』 중의 한편으로 산경표의 뿌리가 됨.

○ 1800년 경 : 『산경표』:「여지고」를 기본으로 백두대간과 정간, 정맥을 족보식으로 체계, 도표화함

○1861년 : 「대동여지도」(김정호) 백두대간이 지도상에 가장 잘 표현되어 있음. (참고 자료 : 이우형 복간본 <대동여지도> 원도, 영인자료. 전도 축소본)

○ 1899년 :『대한지지』(현채) 백두산은 전국산의 조종으로 지리산에서 끝나며, 정간으로 표현.

○ 1908년 :『대한신지지』(장지연) 백두산맥이라 표현

○ 1913년 :『산경표』(조선광문회) 간행. 조선광문회는 '빼았긴 국토와 역사의 줄기를 되찾으려는 방법의 하나로 조선 구래(舊來)의 문헌·도서 중 중대하고 긴요한 자료를 수집'하여 편찬하였는데 지리서 중 『산경표』를 세 번째로 간행함.(참고 자료 : 영인자료)

○ 1980년 :『산경표』(조선광문회)가 이우형의 손에 들어와 <대동여지도>와의 대조 등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됨.

○ 1986년 : 언론매체로는 처음로 『스포츠레저』에 이우형의 권유에 의해 백두대간이란 용어 등장함. 『조선일보』(07/24)에 이우형의 「국내 산맥이름 일제가 바꾸었다」는 기사 실림.

○ 1988년 : 한국대학산악연맹 학술지 『엑셀시오』에 백두대간 ( 1. 백두대간이란 무엇인가 -박기성. 2. 백두대간을 가다 : 종주기 - 편집실)을 특집으로 다룸.

○ 1990년 :『산경표』조선광문회본 영인.(박용수 해설. 푸른산) 이 영인본은 『산경표』의 본 모습을 일반인들이 접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함. (참고 자료 : 산경표를 다시 펴내면서)  월간 『사람과 산』은 이 때부터 백두대간과 정맥의 자료와 종주기 등을 꾸준히 기사화하여 백두대간을 소개하는데 큰 역할을 함.

○ 1993년 :『산경표를 위하여』(조석필. 산악문화)가 자비로 출판되었다가 여러 사람들의 성원으로 호남정맥 종주보고서와 함게 엮어 단행본으로 출간됨. 현재 절판되었고 그 내용의 대부분은 『태백산맥은 없다』에 보완 수정되어 실렸음. <대동여지전도>의 발문에 실려 있는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山自分水嶺)'는 원리를 산악인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현대적으로 해석, 설명하였음. 이후 대부분의 백두대간 관련 이해와 설명 방식은 이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백두대간과 정맥을 종주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준칙이 됨.(참고 자료 : 『산경표를 위하여』)

○ 1997년 :『태백산맥은 없다』(조석필. 사람과 산)는 『산경표』와 백두대간에 대한 관심을 결정적으로 촉발시킨 책으로 현재 백두대간과 관련된 기초 자료와 원리 이해의 뿌리는 대부분 이 책과『산경표를 위하여』에 두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함. 책말미에 『산경표』(조선광문회본 영인)를 싣고 있음.(참고 자료 : 『태백산맥은 없다』소개)

○ 2000년 :『한글 산경표』(현진상. 풀빛)는 한글 세대를 위하여 『산경표』를 한글화한 최초의 책임.『산경표』의 원전으로 보이는「여지고」등 여러 자료와의 꼼꼼한 대조를 통해 많은 부분의 오류를 바로 잡았음. 그리고 『산경표』의 저자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문헌 고찰을 통하여 『산경표』의 저자는 여암 신경준이 아니라 신경준의 「여지고」를 기본으로 1800년대 초에 누군가가 지은 것으로 추정함.(참고 자료 : 『한글 산경표』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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