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관문

2014. 11. 1. 17:33Photograph/photograph

 

 

 

의령관문(宜寧關門)

 

 

 

 

 

 

 

 

 

 

 

 

 

 

 

 

 

정암철교

 

 

 

 

 

홍의장군 충익공 곽재우 기마상

 

1552년 의령 유곡면 세간리 출생. 임진왜란 때 의병장

1585년(선조 18)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답안지의 내용이 왕의 뜻에 거슬린다하여 파방(罷榜).

이후 과거를 포기 은거하다 1592년 4월 14일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이르켰다.

의병 창의 후 첫 전투인 5월 4일 기강전투 승리 후 정암진에서 대승

붉은 옷(紅衣)을 입고 선두에서 진두지휘를 하여 홍의장군이라고 함.

1차 진주성 전투 때 김시민 장군이 승리하는데 휘하의 부하를 지원하였고,

정유재란 때는 창녕의 화왕산성을 지켰다.

글씨. 시문에도 능하였으며 저서로는 '망우당집'이 있다.

 

임진왜란으로 나라를 버리고 백성도 버리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중국(접경)으로 도망을 간

선조 일행을 향하여 백성들이 돌을 던져 야유를 하였다. 이러한 선조는 충무공과 충익공의 활약으로

전쟁에서 조선을 구해내자 이들이 자신을 밀어내지 않을까하는 의심을 하게된다.

그 의심이 너무 깊어 이순신은 적의 조총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망우당은 스스로 굶어 죽는다.

 

國以任賢使能而興 棄賢專己而衰
(나라는 현명한 사람을 임용하고 능력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흥성하고
현명한 사람을 버리고 자기 뜻대로만하면 쇠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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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鼎巖/솥바위)

 

의령과 함안과 경계를 이루는 남강 가운데 있는 솥뚜껑을 닮은 바위.

옛부터 정암진으로 도선장이 있었고 임진왜란 때는 망우당 곽재우 의병장이

왜적을 막았던 승첩지. 풍수지리설에는 식복과 재물을 상징하는 곳.

 

전설에 의하면 이 솥바위를 중심으로

반경 이십리(8km)이내에는부귀가 끊어지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나라에 공훈을 세워 벼슬과 시호가 이어졌고,

청빈한 선비로서 세상을 풍미한 인물이 태어나고, 

또한 굴지의 재벌 그룹들이 수없이 일어났으니,

오늘도 저렇게 촛불을 켜놓고 소원을 기도하는

전설이 현실이 된 길한 희망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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