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 황동규

2015. 10. 15. 00:16시,좋은글/詩

 

 

 

 

 

시월 / 황동규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2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 하리.
두견이 우는 숲 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木琴소리 목금소리 목금소리.

 

3
며칠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한 탓이리.

 

4
아늬,
石燈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 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 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5
낡은 단청 밖으론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내 며칠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이 비가 뿌려와서???
절 뒷울 안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 보면 낙엽 지는 느릅나무며 우물이며

초가집이며 그리고 방금 켜지기 시작한
등불들이 어스름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을 나는 본다.

 

6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를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황동규(黃東奎, 1938. 4. 9 ~ )
시인, 영문학자. 소설가 황순원의 장남.
평안남도 숙천에서 출생, 1946년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월남하였다.
서울대학교 영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58년《현대문학》에
시 <10월>,<동백나무>,<즐거운 편지> 등을 추천받아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후 <한밤으로>,<겨울의 노래>,<얼음의 비밀> 등의 역작을 발표했으며,
이러한 초기 시들은 첫 번째 시집 《어떤 개인 날》에 수록되어 있다.
이어 두 번째 시집 《비가(悲歌)》, 3인 시집 《평균율》을 간행하였고
《사계(四季)》의 동인으로 활약했다.

  
그 밖의 시집으로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풍장(風葬)》 등이 있다.
1968년 현대문학신인상, 1980년 한국문학상을 수상했다.
황동규의 시는 전통적인 한국 서정시의 강한 편향성과 서정성에서 벗어나
1950년대 이후의 현대시사 위에 독자적인 맥락을 형성한 것으로 보이며
독특한 양식적인 특성과 기법으로 인해 현대시의 방법적,
인식적 지평을 확대해 놓았다는 점에서 동시대 비평계의
지속적인 관심과 평가를 받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