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핵폐기물, 무엇이 문제인가?

2016. 8. 10. 16:14이래서야/탈핵


고준위핵폐기물, 무엇이 문제인가?


탈핵신문 2016년 8월호

황대권(영광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공동행동 대표)





 


왜 이런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아무런 권한도 힘도 없는 일개 국민이 이토록 고민하며 자신을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운동가의 책무라고 하기엔 사안이 너무도 중하고 커서, 차라리 세월이 약이려니 하고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한다. 문제제기를 해봐야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똥은 이미 싸 놓았고, 분명 어딘가에 치워야하는데 아무도 받아주는 이가 없다.” 이럴 경우 공권력을 가진 정부가 나서서 일방적으로 처리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하겠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일처리의 과정이 공개적이고 투명해야 한다는 것과 더 이상 폐기물을 만들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 외에 없다. 10만년 이상 인간사회와 격리시켜야 하는 고준위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일은, 겨우 1만년의 역사를 지닌 인류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박근혜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위’를 발족하겠다고 선언하면서부터이다. “대안 없는 운동이나 반대를 위한 반대는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뛰어든 탈핵운동이지만, 고준위핵폐기물 만큼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대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인간이 다룰 수 없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1978년 고리1호기가 최초의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무려 34년이 지나서야 핵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화장실을 제대로 지어놓지도 않고 계속 똥을 싸다가 똥통이 가득차기 시작하니까 그제야 새 화장실을 짓겠다고 나서는 정부가 야속하기만 하다.

 

아니 이전 정부에서 그런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모두들 감당이 안 되어 미루기만 하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처음으로 공론화위원회를 발족하기로 내부적으로 준비를 다 해놓고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없던 일로 해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원전수출과 핵확산 정책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까 두려워 그리하지 않았나 추정된다. 박근혜 정부는 전 정부의 핵정책을 고수하면서도 더 이상 미루었다가는 똥통이 가득 차 핵발전 자체가 곤란해질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이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대책이 안 서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진행된 크고 작은 국책사업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고준위핵폐기물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안을 다루는 정부의 태도와 방법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부가 내부적으로 어떤 국책사업을 하기로 결정하면 마치 모든 권한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양 일방적으로 전격적으로 추진하는데 국가공무원들이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머릿속에 “국책사업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집행되며, 거기에는 개인 또는 지역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상식’만 장착한 채 오로지 집행하는 데만 골몰한다. 자기들은 영혼 없는 집행자일 뿐 사업에 대한 모든 책임은 결정한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도 결정권자들이 사후에 제대로 책임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재임기간 동안 막무가내로 일을 저질러놓고 공직을 내려놓으면 그걸로 끝이다. 독재정치에 길들여진 국민들도 으레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둔다. 그리고 과거에 저질러진 잘못을 추궁하기엔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너무도 엄중하여 그렇게 할 엄두가 나지 않는 측면도 있다. 교활한 정치인들은 이를 악용하여 새로운 사건으로 과거의 잘못을 덮는 더러운 수법을 쓰기도 한다.

 

그렇긴 하더라도 국민소득이 선진국 수준으로 오르자 사업하는 방식도 다른 선진국처럼 민주적이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일자 ‘어쩔 수 없이’ 절차적 민주주의 방식을 도입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요식행위’일 뿐 내용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예컨대 정부는 지난 5월 26일 고준위핵폐기물 저장시설 건설계획을 공시하고 그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듣기 위해 6월 17일에 공청회를 개최한다고 공지하였다. 공청회는 핵발전소 인근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지만, 다음날 도하 신문은 산자부가 주최한 공청회가 ‘절차대로’ 잘 마쳤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국민 의견 수렴과정도 없이 7월 25일에는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최종 승인을 한다고 한다(도대체 핵폐기물 처리를 왜 ‘진흥위원회’에서 결정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폐기물을 재처리하여 핵발전을 진흥하기 위해서인가?).

 

엄청난 사안이 최종 결정되는데 국민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결정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이전 기사를 통해 7월 말쯤에 결정이 날 거라는 사실만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지금 나는 2016년 1월에 작성된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부지 예비타당성조사’라는 제목의 12페이지짜리 용역계약서를 들여다보고 있다. 세상에 이럴 수 있는가? 공청회를 통해 국민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도 전에, 국가기관에서 최종 결정이 나기도 전에 사업시작을 위한 용역 계약을 체결하여 부지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고준위핵폐기물이 문제가 아니라 국책사업을 다루는 정부의 시각이 문제다. 우리가 심히 우려하는 것은 한 번의 실수도 용납이 안 되는 고농도방사성폐기물 처리사업마저 독재시절의 관행에 빠져 안일하게 집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발이지 정부는 님비를 탓하기 전에,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주장하기 전에 과연 자신이 절차대로 민주적으로 잘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길 바란다.


 

황대권(영광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공동행동 대표)


출처 : 탈핵신문 8월호